무원 김시헌 선생님이 우리 곁을 떠나신지도 해가 바뀌려 하고 있다.
아래의 글은 선생님을 추모하기 위해 그분의 작품 '부부'를 읽고
'수필문우회' 합평 시간에 발표한 나의 '부부'에 대한 작품론이다.
염려스러운 것은 행여 나의 어지러운 글이 그분의 이름에 누가
되지않을까 하는 점이지만 그래도 여기 옮기는 것은 선생님을 더
자세히 알리고자 해서이니 문학동도들의 혜량을 바란다.('부부' 원작은 첨부파일에 붙임)
작품론(作品論) / 김 광
김시헌의 부부.hwp
이 글은 1970년대의 작품이며 주로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취하고 있으나, 간혹 관찰자의 입장이 될 때도 있습니다. 작가의 글이 대개가 엄숙한데 비하면, 인간적인 정취가 많이 묻어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아는 작가는 그저 딱딱한 사고思考를 가진 선비 또는 책상물림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따스하고 정이 많다는 걸 이 작품은 발견하게 해줍니다.
작가는 이 글을 쓴 뒤 그리 오래 가지 않아서 아내를 여의고 『꽃의 의미』라는 작품을 발표합니다. 그 작품 말미에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먼 곳으로 간 아내를 새로 느낀다.’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이것만 봐도 작가의 아내 사랑이 얼마나 애틋한 것이었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의 시간적 배경은 화자의 나이 50대 때 여름날 달밤이고, 무대처럼 등장하는 자택이 장소적 공간으로 배경전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당으로 흩어진 달빛과 그 여광餘光은 물상 그대로의 사실적 터치임에도 불구하고 은연중에 쓸쓸한 분위기를 더해주는 효과를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달밤이라는 외적 요인이 글 전체, 특히 도입부의 이미지를 조율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분위기는 화자를 추억과 몰입의 세계로 이끌어 갑니다. 그 추억에는 당연히 주인공으로 아내가 등장합니다.
젊었을 때의 곱던 모습을 지금의 아내는 물론 가지고 있지 않지만 ‘육체 때문에 아내가 옛날보다 미워진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라는 구절은 모든 걸 깔끔하게 함축하는 간결함을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정당성도 보이고 있습니다. 또 화면 가득히 크로즈업 되는 아내의 모습은 화자에게는 시공時空을 뛰어넘어 치밀한 입자의 화소로 다가오는 것들입니다.
첫날밤의 모습… 화자를 아는 독자들은 의외다 싶을 정도의 다소 리얼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으나, 화자의 남다른 감수성이 달빛의 출현에 의해 더욱 예민해지면서 대상이 지닌 근원적 인식소를 탐닉하게 되었지 싶습니다. 어찌됐든 화자의 눈에 비친 아내의 모습은 늘 곱고 보고 싶은 모습입니다. 형편이 어려웠던 화자는 따로 살림을 차릴 형편이 못되어 결혼식을 올리고서도 아내를 처가에 맡기고 요즘 말하는 주말부부식의 신혼생활을 합니다. 화자는 직장이 있는 먼 곳에 혼자 있으면서, 아내가 너무 보고 싶어 서랍 속의 아내 사진을 몇 번이고 꺼내본다는 구절은 슬프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 글의 감상感傷은 거기까지입니다. 오히려 그 때의 감상이 인생의 재산이 되었다고 화자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가슴 가득히 차오르는 감정을 화자는 냉철하게 절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요소들이 오히려 애잔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렇듯 긴 세월을 함께한 부부, 어찌 화자의 가슴 속에 메모랜덤으로 남아있지 않겠습니까? 달빛 가득한 뜰을 거닐다 방으로 들어온 화자는 어느새 세월의 덧옷을 입고 누워 있는 아내를 내려다보며 아득한 기억의 퍼즐을 끄집어냅니다. 이 메모랜덤이 이 수필을 만듭니다.
늘 마주보고 부대끼며 살다가 누가 먼저일지는 모르겠지만 부부 중 한 사람이 먼저 떠날 경우, 남겨진 사람의 처지를 그냥 과정일 뿐이라고 염두를 정하니 자신이 한없이 적막寂寞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적막이란 단어는 절제와 응축 외에도 작품의 색깔을 반영해주는 의미 있는 말입니다. 격한 울림은 없을지라도 이 글이 그저 심상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은 적막이라는 표현이 건네는 아우라 때문일 겁니다. 그 표현이 이 작품을 더욱 품위 있게 만들지 않나 싶습니다.
「침정불로沈情不露, 서정불설抒情不說」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수필을 쓸 때는 정에 잠기되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야 되고, 정을 펴되 말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칫 감정에 치우치기 쉬운 대목에서 애상哀喪으로 흐르지 않은 건 본 받을 만합니다.
수필을 시나 소설과 달리 충실한 자아실현이며 성숙된 내면의 성찰이라고 본다면 화자의 이 작품은 이런 단계들을 성공적으로 소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읽는 이에게 즐거움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추억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모티브를 제공하니까요.
김시헌 선생님의 작품성향은 인간 속에 내재한 근원적인 문제들을 고백, 이러한 심적 현상에서 오는 허무와 권태, 절망을 극복하며 환희와 희망을 추구하는데 이 작품 역시 그러한 구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수필을 한길에서 잘려나간 논둑길이라고 말하는 화자의 이 글은 특별한 기교나 인위적 착색 또는 주입식 교훈이나 현학적 치장 같은 것을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뿐만 아니라 반짝이는 상상력이 아닌, 깊이 있는 사색으로 조탁한 발견의 언어와 만나게 합니다. 현란한 문체나 역동적 구성보다는 신실한 문장과 정직한 직조를 보게 합니다.
시간이 좀 지난 작품이다 보니 신선하지 않게 느껴지는 곳도 있습니다.
‘한 번 더 결혼을 한다면 옛날 같은 그러한 서툰 동작은 안 하리라 생각되지만’하는 문장은 지금은 좀 그렇지만, 그 당시엔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역할도 하였을 겁니다.
말미의 처리 또한 여운을 남기는 문사文士의 글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