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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의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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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읽을꺼리 스크랩 지방 서식(신주,위패,지방,축문,관혼상제)
알라딘 추천 0 조회 33 12.10.28 14:4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 종이재단법

   지방에는 원래 정해진 규격이 없지만 신주를 약식화한 것이므로 신주의 체제에 유사하게 제작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지방은 깨끗한 한지에 길이는 주척(周尺)으로 한자(尺) 두치(寸)이고 너비(幅)가 세치(寸)인 바 길이는 22cm너비가 6cm정도이다. 이 크기에 맞추어 직사각형으로 절단하여 위쪽을 둥글게 오려서 만들었다. 위를 둥글게하고 아래쪽을 평평하게 하는 까닭은 천원지방(天圓地方 : 하늘은 둥글고 땅은 평평하다)을 상징한 것이다.

 

2. 지방서식(紙榜書式)

   ㅇ 기제(忌祭)때 가문(家門)에 따라 단설(單設 : 돌아가신 본인 한 분만을 제사 지냄)로 도 지내고,  합설(合設 :돌아가신 내외분을 함께 제사 지냄)로도 지낸다. 현대에는 거의 합설로 지낸다.

       ㅇ 지방(紙榜)을 쓸 때 단설(單設)일 때는 돌아가신 분 한분만을 쓰고, 합설(合設)일 때는 돌아가신 내외분(內外分)을 함께 쓴다. 만약 전후취(前後娶)일 때는 세분을 함께 써야 한다. 이때 서고동비(西考東비 :서쪽은 고위(考位)이고 동쪽은 비위임)이므로 좌편에 남자의 신위를 쓴다.

       ㅇ 아내의 제사에는 자식이 있어도 남편이 제주(齊主)가 되고 장자(長子)의 제사에는 손자(孫子)가 있어도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아버지가 제주(齊主)가 되며, 남편의 제사일 때는 자손(自孫)이 없을때만 아내(妻)가 제주(祭主)가 된다.

       ㅇ 지방(紙傍)을 쓸 때는 관직(官職)이 있을 때는 그 품계(品階)와 관직(官職)을 쓰고, 관직이 없을 때는 남자는 학생(學生) 또는 처사(處士), 수사(秀士)또는 수재(秀才)라고 쓰며, 여자는 유인(孺人), 여사(女士)라 쓴다.

       ㅇ 조선조(朝鮮朝) 때는 남편(男便)이 9품이상의 관직자(官職者) 일때 그 아내에게 외명부(外命婦)의 품계(品階)를 주었으므로 지방을 쓸때 남편이 9품이상의 관직이 있으면 아내도 그에 상응하는 품계를 쓰는데 조선조 후에는 그런 제도가 없으므로 여자 자신이 관직에 있었을 때만 그 관직을 써야 한다.

       ㅇ 벼슬이 없었던 분의 경우에는 관작 대신에 처사 또는 학생이라고 쓰는데, 조선시대에는 이 말이 과거 시험을 준비 중이던 예비 관원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을 지칭하던 용어이다. 근래에는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와 같이 쓰는 것이 관습처럼 되어서 이를 마치 지방 문안의 표준인 것처럼 여겨 관직을 지낸 사람이건 아니건 이렇게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풍습이라 할 수 있다.

       ㅇ 오늘날에도 공직에 있었던 분들의 지방에는 당연히 관직을 써야 하고, 일반 사회 단체나  기업체 등에서 중요한 직위에 있었던 분들 모두 공공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직에 준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관직을 쓸 때는 대표적인 직함 하나만을 간략하게 쓰는 것이 좋다.

       ㅇ 박사, 석사, 학사와 같은 학위를 가진 분은 그것을 쓰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예전의 진사나 생원도 일종의 학위로서 신주나 지방에 쓰였기 때문이다.

       ㅇ 여성의 경우에는 오늘날은 남편의 벼슬에 따라 봉작하는 법이 없으므로 봉작은 쓸 수 없다. 따라서 남성의 경우에 준하여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곧 관직이나 사회적 직함 또는 학위를 쓰는 것이 무방하다. 관직이나 사회적 직함은 전통 시대의 봉작과 같은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는 남녀 평등의 정신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일정한 직함이 없는 여성은 그냥 유인이라고 쓰는 것도 좋다. 조선시대에도 봉작을 받지 못한 여성은 모두 유인이라고 썼기 때문이다.

 

지방쓰기 서식 필요하신분은 눌러주세요  들어가셔서 제사상식, 지방쓰는법, 축문쓰는법 자세

하게 설명되어 있어 추천합니다.

 

 

 

예절에 대한 기본상식을 아주  쉽게 설명해 놓은 사이트 입니다.

 

[기 본 예 절]                    

[예절의 방위]                   

[제 사 상 식]  

[관 례 상 식]

[장 례 상 식]

[혼 례 상 식]

[질 문 모 음]    아래 사이트를 눌러주세요

 

 http://www.masters.co.kr/bbs/board.php?bo_table=07_3&wr_id=13          

 

 

 

 

 

 

 

 

현대 관직을 쓰는 경우의 예

 

  . 현조고국회의원부군신위

  

  . 현고대법관부군신위

 

  . 현조고고등검사장부군신위

 

  . 현조고육군중장부군신위

 

  . 현고충청북도총무과장신위

 

  . 현고원통면장부군신위

 

 ㅇ 현대의 사회직함을 쓰는 경우의 예

  

  . 현조고은성물산주식회사장부군신위

 

  . 현조고문화출판이사부군신위

 

 

축문(祝文)에 대(對)한 해설(解說)


축문의 종류는 여러 종류가 되는데 일일이 그격식을 따지자면 요즘같은 시대에 맞지 않을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생각하는 사고가 달라 졌는데 굳이 옛방식을 따를 필요가 없이 폐지되어야 할것은

폐지되고 현실에 맞는 그런 격식을 따라야 할것이다.

상례(상례(喪禮)와 제례(祭禮)에 따르는 여러 가지의 축문(祝文)과 고사(告辭)를 씀에 있어서 흔히 나오는 주요 문구(文句)를 다음에 설명해 둔다.



1.  (태세) : 제사 지내는 해의 간지(干支)

2.  (삭일) : 제사 든 달의 초하룻날 일진(日辰

3.  (일진) : 제사 날의 간지(간지(干支)

4.  이상은 육십갑자(六十甲子)에 따른 것인데 책력을 보면 알 수 있다.

5.  (모관) : 남자의 경우 관직이 있는 사람은 그 관명(官名)을 쓰고 없으면 학생(學生)이라 쓴다.

6.  (모공) : 남자의 경우 타인이 말할 때에는 본관(本貫)과 (성(姓)공(公)이라 쓰고, 자손(子孫)이 직접 제사를 지낼 때에는 부군(府君)이라 쓰며 연소자에게는 이를 쓰지 않는다.

7.  (모봉) : 부인의 경우 옛날에는 남편이 관직에 오르면 그의 처도 따라서 품계(品階)를 얻어 호칭했으나 그것이 없으면 유인(孺人)이라 쓴다.

8.  (모씨) : 부인의 경우로서 남편에 따른 외명부(外命婦) 호칭을 쓰고 그 밑에 본관성씨를 쓴다.

9.  제주촌칭(祭主寸稱)

10. 제사 지내는 자손의 촌칭(寸稱)인데 초상을 당하면 졸곡(卒哭))전에는 부상(父喪)에는 고자(孤子), 모상(母喪)에는애자(哀子). 부모(父母)가 모두 안 계실 때는 고애자(孤哀子))라 쓰며, 조부상에는 고손(孤孫) 조모상에는 애손(哀孫), 조부모가 모두 안 계실 때는 고애손(孤哀孫)이라 쓰고, 담제이후에는 효증손(孝曾孫). 고조부모제사에는 효현손(孝玄孫). 남편의 제사에는 모씨(某氏). 아내의 제사에는 부(夫)라 쓴다.

11.  제위(祭位)

12. 제사를 받으실 당자인데 제주와의 촌수에 따라 각각 달리 쓴다. 부친은 현고(顯考), 모친은 현비(顯비), 조부는 현조고(顯祖考), 조모는 현조비(顯祖비), 증조부는 현증조고(顯曾祖考), 증조모는(顯曾祖비). 고조부는 현고조고(顯高祖考). 고조모는 현고조비(顯高祖), 남편은 현벽(顯), 처는 망실(亡室). 또는 고실(故室)이라 쓴다. 현자(顯字)는 고인을 높이는 뜻이다.

13. 고사자성명(告祀者姓名)

14. 산소에서 토지신(土地神)에게 고사를 지낼 때 직접 제주가 아니고 타인이 지낼 때에는 그 사람의 성명을 쓰고 직접 제주가 지낼 때에는 제주의 이름만 쓴다.

15. 봉사자명(奉祀者名)

16. 제사를 지내는 사람의 이름을 쓰되 제(弟)이하에는 쓰지 않는다.

17. 감소고우(敢昭告于) (감조곡우 혹은 감소 고우)

18. 처(妻)의 제(祭)에는 감자(敢字)를 삭제(削除)하고 소고우(昭告于)라 하며 제(弟) 이하(以下)에게는 고우(告于)만 쓴다.

19. 여기에서 밝혀둘 것이 있으니 「감소고우(敢昭告于)」라는 말은 「감히 밝혀 아뢰옵니다」하는 말인데, 「감조곡우」라고 도 읽고 「감소고우」라고 도 읽는다.

20. 그런데 자원(字源)을 보면「소(昭)」를 「소」라 하면 「평야(評也), 소대(昭代), 저야(著也)」 등의 경우이며 「광야(光也), 명야(明也), 효야(曉也))일 경우에는 「 조」라 한다.

21. 그리고 「고(告)」는 「고상일곡(告上日告)」(곡)이요. 「발하일고(發下日誥)」 ( 고)라는

22. 말이 「광운(廣韻)」에 기록(記錄)되어 있다. 따라서 「감소 고우」 로 흔히 읽지만 「감조곡우」가 정확(正確)한 독축(讀祝)이다.

23. 애모불녕(哀慕不寧)

24. 처(妻)에게는 비도산고(悲悼酸苦) 불자승감(不自勝堪). 형(兄)에게는 비통무사(悲痛無巳) 지정여하(至情如何), 제(弟)에게는 비통외지(悲痛(阜+畏)至) 정하가처(情何可處). 자(子)에게는 비념상속(悲念相續) 심언여회(心焉如(火+毁))라 쓴다.

25. 주과용신건고(酒果用伸虔告)

26. 제(弟) 이하(以下)에는 주과(酒果) 용고(用告) 궐유(厥由)라 쓴다.

27. 호천망극(昊天罔極)

28. 은혜가 하늘과 같이 크고 넓어서 헤아릴 수 없다는 뜻

29. 부모(父母)에게는 호천망극(昊天罔極). 조부모(祖父母) 이상(以上)에게는 불승영모(不勝永慕). 남편(男便)에게는 불승감창(不勝感愴). 제이하(弟以下)에게는 불자승감(不自勝感)이라 쓴다.

30. 근이(謹以)

31. 처와 제(弟)이하에는 자이(玆以)라 쓴다.

32. 복유(伏惟) : 처(妻)와 제(弟) 이하(以下)에게는 쓰지 않는다.

33. 존령(尊靈) : 처(妻)와 제(弟) 이하(以下)에게는 유령(惟靈)이라 쓴다.

34. 애천(哀薦).지천(祇薦) :애천 . 지천

35. 처(妻)와 제(弟)이하는 진차(陳此). 백숙부모(伯叔父母)에게는 천차(薦此)라 쓴다.

36. 향(饗) : 높이 받드는 문자(文字)이니 줄을 바꾸어 현자(顯字)와 함께 높이 쓴다.

37. 현자(顯字)도 한 자 높이 쓴다.

38.

39. 기타(其他) 참고사항(參考事項)

40.

41. 정월(正月) 설날이나 팔월(八月) 추석(秋夕)과 같은 절사(節祀)에는 축(祝)이 없다고 하나 축문이 있어도 가하고 단작(單酌)으로 초헌(初獻)만 하며 그 밖의 절차는 기제(忌祭))와 같다. 또 묘제(墓祭))의 진설이나 절차는 기제사에 준하지만 먼저 참신(參神)하고 후에 강신(降神)한다.


축문서식(祝文書式)

각종(各種) 축문(祝文) 서식(書式)을 다음에 소개(紹介)한다.

출주고사(出主告辭)

(사당(祠堂)에서 신주(神主)를 모셔 나을 때 읽는 축(祝).

금이(今以)

현고 모관부군 원휘지신 감정신주 출취정침 (청사)

顯考 某官府君 遠諱之辰 敢請神主 出就正寢 (廳事)

(풀이) 오늘이 돌아가신 날이옵니다. 신주(神主)께서 정침(正寢)으로 나아가기를 감히 바라옵니다.


 

饗향

 

 

謹근

以이

淸청

酌작

庶서

羞수

恭공

伸신

奠전

獻헌

尙상

 

顯현

高고

祖조

考고또는顯현

高고

祖조비諱휘

日일

復부

臨임

追추

遠원

感감

時시

不불

勝승

永영

慕모

 

顯현

高고

祖조

孺유

人인

密밀

陽양

朴박

氏씨

歲세

序서

遷천

易역

 

顯현

高고

祖조

考고

某학

官생

府부

君군

 

 

 

敢감

昭소

告고

于우

歲세

次차

太태

歲세

某모

月월

月월

建건

朔삭

初초

某모

日일

日일

辰진

孝효

玄 현

孫손

哲철

壽수

 

維유

 

 

 

 

 

 

고조부모

〔뜻풀이〕

 OO년 O월 O일 효손 OO은 삼가 고하옵이다.

 고조할아버님

 고조할머님 어느덧 해가 바뀌어

 할아버님(또는 할머님)돌아가신 날을 다시

 맞게 되오니 영원토록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맑은 술과 몇 가지 음식

 음식으로 공손히 제사를 드리오니 흠향하여

 주시옵소서.

 증조(曾祖)-효증손(孝曾孫)

 고조(高祖)-효현손(孝玄孫)

 제사축문(祭祀祝文)

 같은 서식(書式)인데 다만 제위(祭位)와 봉사자

 (奉祀者) 칭호만 촌수에 따라 달리 쓴다.

 

 



 

饗향

 

 

謹근

以이

淸청

酌작

庶서

羞수

恭공

伸신

奠전

獻헌

尙상

 

顯현

祖조

考고또는顯현

祖조비諱휘

日일

復부

臨임

追추

遠원

感감

時시

不불

勝승

永영

慕모

 

顯현

祖조

孺유

人인

密밀

陽양

朴박

氏씨

歲세

序서

遷천

易역

 

顯현

祖조

考고

某학

官생

府부

君군

 

 

敢감

昭소

告고

于우

歲세

次차

太태

歲세

某모

月월

月월

建건

朔삭

初초

某모

日일

日일

辰진

孝효

孫손

哲철

壽수

 

維유

 

 

 

 

 

 

조부모

〔뜻풀이〕

 OO년 O월 O일 효손 OO은 삼가 고하옵이다.

 할아버님

 할머님 어느덧 해가 바뀌어

 할아버님(또는 할머님)돌아가신 날을 다시

 맞게 되오니 영원토록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맑은 술과 몇 가지 음식

 음식으로 공손히 제사를 드리오니 흠향하여

 주시옵소서.

 증조(曾祖)-효증손(孝曾孫)

 고조(高祖)-효현손(孝玄孫)

 제사축문(祭祀祝文)

 같은 서식(書式)인데 다만 제위(祭位)와 봉사자

 (奉祀者) 칭호만 촌수에 따라 달리 쓴다.

 



 

饗향

 

 

謹근

以이

淸청

酌작

庶서

羞수

恭공

伸신

奠전

獻헌

尙상

 

顯현

考고또는顯현비諱휘

日일

復부

臨임

追추

遠원

感감

時시

昊호

天천

罔망

極극

 

顯현

孺유

人인

密밀

陽양

朴박

氏씨

歲세

序서

遷천

易역

 

顯현

考고

學학

生생

府부

君군

 

 

 

敢감

昭소

告고

于우

歲세

次차

甲갑

戌술

五오

月월

丁을

未미

朔삭

初초

七칠

日일

癸계

丑축

孝효

子자

哲철

壽수

 

維유

 

 

 

 

 

 

부모

〔뜻풀이〕 OO년 O월 O일 효자 OO은 삼가 고하옵이다.

 아버님

 어머님 어느덧 해가 바뀌어

 아버님(또는 어머님)돌아가신 날을 다시

 맞게 되오니 하늘과 같이 크고 넓으신 은혜를 잊지 못 하여, 삼가 맑은 술과 몇 가지 음식

 음식으로 공손히 제사를 드리오니 흠향하여

 주시옵소서.

 호천망극(昊天罔極) :

 

 은혜가 하늘과 같이 크고 넓어서 헤아릴 수

 없습 니다.

 



 

 

 

饗향

 

 

謹근

以이

淸청

酌작

庶서

羞수

恭공

伸신

奠전

獻헌

尙상

 

 

歲세

序서

遷천

易역

諱휘

日일

復부

臨임

追추

遠원

感감

時시

不불

勝승

憾감

愴창

 

顯현

學학

生생

府부

君군

 

 

 

敢감

昭소

告고

于우

歲세

次차

甲갑

戌술

五오

月월

丁정

未미

朔삭

初초

七칠

日일

癸계

丑축

主주

婦부

沈심

順순

愛애

 

維유

 

 

 

 

 

 

남편의 경우

〔뜻풀이〕 OO년 O월 O일 주부 심순애는 삼가

 고하옵이다.

 어느덧 해가 바뀌어

 남편이 돌아가신 날을 다시 맞게 되오니

 슬프고 괴로운 마음 이기지를 못하여 삼가

 맑은 술과 몇 가지 음식으로 공손히 제사를

 드리오니 흠향하여 주시옵소서.

 

 불승감창(不勝感愴)

 

 슬프고 괴로운 마음 이기지 못함



 

 

 

饗향

 

 

慈자

以이

淸청

酌작

庶서

羞수

伸신

此차

奠전

儀의

 

尙상

 

 

歲세

序서

遷천

易역

亡망

日일

復복

至지

追추

遠원

感감

時시

不불

勝승

憾감

愴창

 

亡망

室실

儒유

人인

河하

東동

鄭정

氏씨

 

 

敢감

昭소

告고

于우

歲세

次차

甲갑

戌술

五오

月월

丁정

未미

朔삭

初초

七칠

日일

癸계

丑축

夫부

沈심

順순

燮섭

 

維유

 

 

 

 

 

 

아내의 경우

〔뜻풀이〕 OO년 O월 O일 남편 심순섭은 삼가

 고하옵이다.

 어느덧 해가 바뀌어

 아내가 돌아가신 날을 다시 맞게 되오니

 슬프고 괴로운 마음을 이기지를 못하여

 삼가 맑은 술과 몇 가지 음식으로 공손히

 제사를 드리오니 흠향하여 주시옵소서.

 

 망일복지(亡日復至)

 

 휘일부임(諱日復臨)과 같은 뜻이며 다만 격식을

 조금 낮춘 것임



 

 

 

饗향

 

 

謹근

以이

 

淸청

酌작

庶서

羞수

 

恭공

伸신

奠전

獻헌

 

尙상

 

 

歲세

序서

遷천

易역

諱휘

日일

復부

臨임

追추

遠원

感감

時시

情정

何하

悲비

痛통

 

顯현

兄형

學학

生생

府부

君군

 

 

 

敢감

昭소

告고

于우

歲세

次차

甲갑

戌술

五오

月월

丁정

未미

朔삭

初초

七칠

日일

癸계

丑축

弟제

沈심

順순

哲철

 

維유

 

 

 

 

 

 

형의 경우

〔뜻풀이〕 OO년 O월 O일 동생 김철수는 삼가 고하옵이다.

 세월이 흘러 형님의 제삿날이 다시 돌아 오니 형제지간의 그리운 정과 비통한 마음 한량 없습니다.

여기 삼가 맑은 술과 몇 가지 음식을 차려 공손히 올리오니 응감하소서.

 

 정하비통(情何悲痛)을 불승비통(不勝悲痛)이라 쓰기도 한다.

 

 그리운 정과 비통한 마음 한? 없습니다.



 

 

 

 

饗향

 

 

 

玆자

以이

淸청

酌작

 

陳진

此차

奠전

儀의

 

尙상

 

 

 

歲세

序서

遷천

易역

 

亡망

日일

復복

至지

 

情정

何하

可가

處처

 

 

亡망

弟제

 

洪홍

吉길

童동

 

 

 

 

 

告고

于우

 

歲세

次차

甲갑

戌술

五오

月월

丁정

未미

朔삭

初초

七칠

日일

癸계

丑축

 

兄형

O

O

 

 

維유

 

 

 

 

 

 

아우의 경우

〔뜻풀이〕 OO년 O월 O일 형은 삼가 고하오.

 세월이 흘러 아우의 제삿날이 다시 돌아 오니 그리운 마음 어찌 할 바를 모르겠어서

여기 삼가 맑은 술과 몇 가지 음식을 차려 공손히 올리오니 응감하소서.

 

 정하가처(情何可處)

 

 그리운 마음 어찌 할 바를 모르겠소.



 

 

 

 

饗향

 

 

 

玆자

以이

 

淸청

酌작

 

陳진

此차

奠전

儀의

 

尙상

 

 

 

歲세

序서

遷천

易역

 

亡망

日일

復복

至지

 

心심

毁훼

悲비

念념

 

 

亡망

子자

 

洪홍

吉길

童동

 

 

 

 

 

告고

于우

 

歲세

次차

甲갑

戌술

五오

月월

丁정

未미

朔삭

初초

七칠

日일

癸계

丑축

 0

 0

 

 

維유

 

 

 

 

 

 

아들의 경우

〔뜻풀이〕OO년 O월 O일 .

 세월이 흘러 아들의 제삿날이 다시 돌아 오니 아비의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고 비통한 마음

 어찌 할 바를 모르겠어서

여기 삼가 맑은 술과 몇 가지 음식을 차려 올리오니 응감하여라.

 

 심훼비념(心毁悲念)

 

 아비의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고 비통한 마음

 그지 없다..

신주.위패.지방

지방 쓰는 방법
☆ 신위(神位)는 고인의 사진으로 하되 사진이 없으면 지방(紙榜)으로 대신합니다.
☆ 지방은 깨끗한 백지에 먹으로 쓰며 그 크기는 길이 22㎝폭 6㎝ 정도가 적당합니다.

지방(紙榜)
☆ 신위는 고인의 사진으로 하고 사진이 없으면 지방으로 대신할 수 있다.
☆ 지방은 깨끗한 백지에 진묵으로 정성 들여 쓰며 길이는 22Cm, 넓이는 6Cm정도로 한다.
☆ 지방의 내용은 생전에 관직이 없으면 학생(學生)이라 쓰고, 관직을 지냈으면 그 관직 그대로 씁니다.

☆ 그 부인의 경우는 유인(孺人)대신 정경부인(貞敬夫人)이라고 씁니다.
☆ 남자 지방의 고(考)는 부(父)와 동일한 뜻으로 생전에는 父라고 하고 사후에는 考라고 합니다.
☆ 비(女比)는 모(母)와 동일한 뜻으로 생전에는 母라고 하며 사후에는 비라고 합니다.

☆ 女子의 경우에는 孺人 다음에 본관 성씨를 쓰며 아내의 경우 자식이 있어도 남편이 주제가 됩니다.
☆ 자식의 경우에는 손자가 있어도 아버지가 주제가 됩니다.
☆ 재취로 인하여 삼위 지방일 경우는 왼쪽에 男子, 중간에 본비, 오른쪽에 재취비의 지방을 씁니다.

지방 쓸때 알아 둘 점
☆ 시제지방을 쓸 때는 몸을 청결하게 합니다.
☆ 고(考)는 부(父)와 동일한 뜻으로 생전에는 父라 하나 사후에는 考라합니다.
☆ 비(女比)는 모와 같아 생전에는 母라 하고 사후에는 비(女比)라 합니다.
☆ 남자의 지방을 쓸 때 벼슬이 없으면 學生으로 씁니다.
☆ 벼슬이 양천부원군(陽川府院郡)이라면 그 관직을 그대로 씁니다.

☆ 따라서 그 배위(配位아내)도 유인(孺人)대신 정경부인(貞敬夫人)이라고 씁니다.
☆ 여자의 경우 유인(孺人) 다음에는 본관과 성씨를 씁니다.
☆ 아내의 제사인 경우 자식이 있어도 남편이 제주(祭主)가 됩니다.
☆ 자식의 경우는 손자가 있어도 아버지가 제주가 됩니다.
☆ 만약 재취(再娶)로 인하여 지방이 삼위(三位)일 경우는 왼쪽에 남자의 지방을 약간 높게 붙입니다.
☆ 중간에 본비(本?)의 지방을 오른쪽에 재취비의 지방을 붙입니다.

지방쓰기 참고
☆ 모관부군(某官府君)은 벼슬이 있을 경우 해당 관직을 그대로 씁니다.
☆ 벼슬이 없으면 학생부군(學生府君)이라 씁니다.
☆ 여자의 경우 모봉(某封)은 남편의 직품에 따라 씁니다.
☆ 一品은 정경부인(貞敬夫人), 二品은 정부인(貞夫人), 3品은 숙부인(淑夫人)으로 씁니다.
☆ 四品은 숙인(淑人), 五·六品은 공인(恭人), 벼슬이 없으면 유인(孺人)이라 씁니다.
☆ 여자의 모관모씨(某貫某氏)는 본관 성씨를 씁니다.
☆ 한글의 경우도 한자 지방에 준하여 씁니다.

지방에 대한 解 說
☆ 顯: 일반적으로 (나타날 현)이라 읽지만 지방[紙榜]에서 顯자는 높을 현 으로 읽어야 합니다.
☆ [書經]에서 天有顯道라 했습니다.
☆ 亡: 처(妻)는 顯子를 쓰지 않고 망실(亡室)이라 씁니다.
☆ 동생(同生)은 顯자를 고쳐 망(亡)자로 하고 府君을 쓰지 않습니다.
☆ 學生을 처사(處士)로 쓰는 가문도 있습니다.
☆ 孺人: 생전에 벼슬을 하지 못한 사람 아내의 신주(神主)나 명정(銘禎)에 쓰는 존칭을 말합니다.



 ★ 지방쓰기 예시

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

 
 
 
 


 
 
 
 

백(숙)부모

남편

아내

(숙) (숙)
 
 
 
 
 


 

 

 

 



신위의 의미

모든 사람은 사후 신위를 모시게 되는데 이는 돌아가신분의 형체를 표상한 것으로 제사를 지낼 때 제사 대상으로 삼게 됩니다.
이 신위에는 돌아가신분의 혼이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하며  종교적 의미도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신위에는 예로부터 시동,신주,위패,사판,소상,동상,초상화,지방 등이 사용되었고, 현대에는 사진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제사 중에는 이들 신위에 신이 깃들이는 것으로 믿어졌습니다.

신주

흔히 우리가 무언인가 귀중하게 여길 때 신주 모시든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만큼 신주는 조상의 영혼이 깃들여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신주는 나무 위를 둥근 직육면체로 다듬어 그 위에 죽은 이의 친속 관계, 관작과 봉사자의 이름 등을 쓴 것으로 중국 고대 이래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신위의 상징입니다.
신주에 사용되는 나무는 중국의 한나라 때는 소나무를, 은나라 때는 잣나무를, 주나라부터는 밤나무를 사용하였다 합니다.

이들 나무는 각기 그 나라의 사당이 있던 지역의 토양에서 잘 자라던 나무를 사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신주는 두 쪽의 나무판을 맞대어 제작하는데 앞판에는 한 가운데에 죽은 이의 친속,관작,시호 등을 쓰고 그 왼쪽에 봉사자의 친속과 이름을 씁니다.
뒤판에는 한 가운데 아래로 길게 홈을 파고 거기에 죽은 이의 관작과 성명을 씁니다.
뒤판의 좌우에는 바람이 통하도록 둥글게 구멍을 뚫어 둡니다.
신주는 이 두 판을 맞붙여 받침대에 꽂아 세워 나무 상자 속에 담아 보존합니다.
신주는 장례식 때 묘지에서 제작되어 3년간 빈소에 모셨다가 담제를 지낸 후 사당에 모십니다.

위패

신주(神主) 또는 목주(木主)라고도 합니다.
주로 밤나무를 깎아 만들며 본신(本身)의 규격은 높이 1자[尺] 2치[寸], 너비 3치, 두께 1치 2푼[分]이며, 머리 부분의 5치 정도를 깎아서 둥글게 만듭니다.
앞면은 분(粉)가루에 아교를 섞어 발라 희게 만들어 이것을 분면(粉面)이라 하고, 뒷면은 한가운데에 길이 6치, 너비 1치 정도를 4푼 깊이로 파서 이것을 함중(陷中)이라고 합니다.

받침은 사방 4치에, 두께를 1치 2푼으로 하고 위에 홈을 파서 신주를 세워 받칩니다.
그리고 독(왑:함과 같은 것)을 만들어 그 안에 넣는데 이는 주로 불교 사찰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나서 붓으로 써서 작성하는데, 이것을 제주(題主:신주를 쓴다는 뜻)라고 합니다.
신주는 받들고 집으로 돌아가서 궤연(机筵)에 모셨다가 3년상을 마친 뒤에 사당(祠堂)에 봉안합니다.

가묘(家廟) 이외의 단(壇)·묘(廟)·서원 같은 곳에도 패를 봉안하는데, 예를 들면 사직단(社稷壇)에는 사신(社神)과 직신(稷神), 공자묘에는 공자를 비롯한 많은 성현을, 각 서원에는 명신(名臣)·의사(義士)의 위패를 봉안합니다.

지방

지방은 중국의 송나파 때부터 신주 대신에 일회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 초기부터 사용되었습니다.
사당의 건설이나 유지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도 웬만한 집이 아니면 신주를 모시지 못하고 그 대신 지방을 사용했습니다.
지방은 제사 직전에 만들었다가 제사를 마치면 소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제작이나 관리가 매우 간편하여 일반적으로 많이 쓰여져 왔습니다.

제사를 지낼때는 지방을 쓰는데, 지방이란 고인의 신위표시를 말하는 것으로 신주가 있으며 필요가 없다.
지방의 길이는 22cm장도 넓이는 6cm가 좋으며, 오늘날은 사진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소위 5대 봉사(五代奉祀)를 하여 왔으므로 현대인에도 종가집의 경우는 제사가 허다하겠다.
따라서 기본적인 지방은 다음과 같다.

부모님
夫의 축문
아내의 축문

①한문식
維歲次干支 母月干支朔 母日干支
유세차간지 모월간지삭 모일간지

孝子某 (奉祀者名) 監昭告于
효자모 (봉사자명) 감소고우

顯考某官府君  批某封某氏
현고모관부군 현 비모봉모씨

歲序遷易 顯考(批)학생부군
세서천역 현고(비)학생부군

諱日復臨 追遠感時 昊天罔極
휘일부림 추원감시 호천망극

謹以淸酌庶羞 恭伸奠獻 尙 饗
근이청작서수 공신전헌 상 향

②한글식
○년 ○월 ○일에 아들(손자)
○○ 는 아버님(할아버님)신
위앞에 삼가 고하나이다. 아
버 님(할아버 님)께서 별세하
시던 날을 다시 당하오니 추
모의 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에 간소한 제수를 드리 오
니 강림하시와 흠향하옵소서.
維歲次干支 某月干支朔 某日干支
유세차간지 모월간지삭 모일간지

主婦某(姓名) 敢昭告于 顯
주부모(성명) 감소고우 현

某官府君 歲序遷易 諱日復臨
모관부군 세서천역 휘일부림

追遠感時 不勝感槍 謹以淸酌庶羞
추원감시 불승감창 근이청작서수

恭伸奠獻 尙 饗
공신전헌 상  

維歲次干支 某月干支朔
유세차간지 모월간지삭

某日干支 夫某(姓名)
모일간지 부모(성명)

昭告于亡室某封某氏 歲序遷易
소고우망실모봉모씨 세서천역

亡日復至 追遠感時 不勝感槍
망일부지 추원감시 불승감창

玆以淸酌庶羞 伸此奠儀 尙 饗
자이청작서수 신차전의 상 향

②한글식
남편(아내)○○○은 당신의
신위 앞에 고합니다.당신이
별세하던 날을 다시 맞이하
니 지난 날의 추억이 간절합
니다. 이에 맑은술과 제물을
드리오니 흠향하오서.

신위

1. 신위

    모든 제사에는 향사 대상자를 상징하는 신위를 설치하게 된다. 신위는 돌아가신 조상의 형체를 표상한 것이다. 신위에는 예로부터 시동,신주,위패,사판,소상,동상,초상화,지방 등이 사용되었고, 현대에는 사진도 사용되고 있다. 제사 중에는 이들 신위에 신이 깃들이는 것으로 믿어졌다.

【1.신주】
    신주는 나무 위를 둥근 직육면체로 다듬어 그 위에 죽은 이의 친속 관계, 관작과 봉사자의 이름 등을 쓴 것으로 중국 고대 이래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신위의 상징이다. 신주에 사용되는 나무는 중국의 하나라 때는 소나무를, 은나라 때는 잣나무를, 주나라부터는 밤나무를 사용하였다. 이들 나무는 각기 그 나라의 사당이 있던 지역의 토양에서 잘 자라던 나무를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신주는 두 쪽의 나무판을 맞대어 제작하는데 앞판에는 한 가운데에 죽은 이의 친속, 관작, 시호 등을 쓰고 그 왼쪽에 봉사자의 친속과 이름을 쓴다. 뒤판에는 한 가운데 아래로 길게 홈을 파고 거기에 죽은 이의 관작과 성명을 쓴다. 뒤판의 좌우에는 바람이 통하도록 둥글게 구멍을 뚫어 둔다. 신주는 이 두 판을 맞붙여 받침대에 꽂아 세워 나무 상자 속에 담아 보존한다. 신주는 장례식 때 묘지에서 제작되어 3년간 빈소에 모셨다가 담제를 지낸 후 사당에 모신다.

【2.시동】
    신주나 위패를 봉안하는 의자로서 제상이 높으면 교의도 높아야 하고 제상이 낮으면 교의도
낮아야 한다. 요즈음에는 신위를 보통 제상 위에 봉안하고 있으므로 거의 사용하고 있지 않다.

【3.위패】
    위패는 그 형태가 신주와 비슷하지만 제작법은 간단하다. 단순히 한 토막의 직육면체 나무를 다듬어서 그 위에 죽은 이의 친속과 관작 등을 쓴 것으로 약식 신주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주로 불교 사찰에서 사용되고 있다. 위판이라고도 하는 사판은 신주 형태의 넓적한 목판에 죽은 이의 관작이나 호 등을 쓴 것으로 성균관,향교,서원,사우 등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다.

【4.지방】
    지방은 중국의 송나파 때부터 신주 대신에 일회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 초기부터 사용되었다. 사당의 건설이나 유지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도 웬만한 집이 아니면 신주를 모시지 못하고 그 대신 지방을 사용했다. 지방은 제사 직전에 만들었다가 제사를 마치면 소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제작이나 관리가 매우 간편하여 일반적으로 많이 쓰여져 왔다.

2. 축문

    축문이란 제사를 받드는 자손이 제사를 받는 조상에게 제사의 연유와 정성스러운 감회,그리고 간략하나마 마련한 제수를 권하는 글이다. 특히 기제사에서 지방을 붙이면 축문을 읽는것이 원칙이다. 살아계신 어른에게 색다른 음식을 올릴 때 의당 권하는 말씀을 올리는 것처럼 조상에게도 제수를 올리면서 그 연유를 고하는 축문을 작성한다. 축문의 내용은 그 제사를 지내게 된 연유를 '언제'-'누가'-'누구에게'-'무슨일로'-'무엇을'의 형식으로 고하고 제사를 받으시라는 줄거리로 이루어진다. 축문은 신명앞에 고하는 글이며 그 내용은 제위분께 간소하나마 제수를 차렸으니 흠향하시라는 뜻을 담는다. 축문도 지방과 마찬가지로 가능한 한 한문으로 쓰는 것이 좋다. 축문의 규격은 가로 24cm, 세로 36cm 의 깨끗한 백지에 쓰며, 벼슬이 있을 때의 호칭은 지방을 쓸 때와 같다. "學生" 대신에 "관직명"으로, 그 부인은 "孺人"(유인)대신에 "貞敬夫人"(정경부인)등을 쓴다. 명절에 지내는 차례에는 축문을 쓰지 않는다.

3. 지방쓰는법

    지방에는 원래 정해진 규격이 없지만 신주를 약식화한 것이므로 신주의 체제에 유사하게 제작하는 것이 좋다. 문안을 쓸때에는 붓을 사용하여 한자로 쓰는 것이 좋으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적당한 필기구를 이용하여 한글로 작성하여도 무방하다. 지방의 규격은 가로 6 cm, 세로 22 cm의 깨끗한 백지에 먹으로 쓴다. 상단을 둥글게 하고 아래쪽을 평평하게 하는데 이는 천원지방(둥근하늘과 평평한 땅)을 상징한 것이다. 문은은 일반적으로 남자고인의 경우 '顯考學生府君神位', 벼슬이 있으면 "學生"(학생)대신에 벼슬의 관직(예를 들면 "崇祿大夫"등)을 쓰고 그 부인은 "孺人"(유인)대신에 "貞敬夫人"(정경부인)을 쓴다. "孺人" 다음에는 본관성씨를 쓴다. "考"(고)는 사후의 "父"(부;아버지)를 뜻하며 "비"는 사후의 母(모;어머니)를 뜻한다. 아내의 제사는 자식이 있더라도 남편이 제사장이 되어야 하며, 자식의 제사는 손자가 있어도 아버지가 제사장이 되는것이 기본이다. 지방을 붙일 때 왼쪽이 높은 자리, 오른쪽이 낮은 자리이다. 한 할아버지에 두 할머니의 제사일 경우 가장 왼쪽이 할아버지, 중간이 본비, 오른쪽에 재취비의 지방을 붙인다.

 



    제사(祭祀)와 지방(紙榜)

           


                                     張  光   德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부설전통예절교육원









(사)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

부설전통예절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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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http://cafe.daum.net/dosanyewon

(한글:도산선비전통예원)

전화:053-422-3618/FAX:053-423-3619

1. 제사의 의미

  공자께서는 ‘부모가 낳아 주시고 뒤를 잇게 하셨으니 그 은혜가 이보다 더 큰 것은 없다.’ 하셨다. 그래서 부모를 사랑하지 아니하고 남을 사랑하는 것은 ‘悖德(패덕)’이라 하였고, 부모를 공경하지 아니하고 남을 공경하는 것을 ‘悖禮(패례)’라 하였다. 효도하는 자식의 부모 섬기는 법이란 일상의 기거를 공경스럽게 받들고, 봉양하는 것은 마음을 즐겁게 하며, 병이 들면 극진히 걱정하여 드리고, 상을 당했을 때는 진심으로 슬프게 받들며, 제사를 모실 때에는 위엄을 갖추어 정성을 다하라 하셨다.1)

  제사는 우리 일상에서 항상 부모에게 세 끼니를 정성스럽게 바치듯이 매일은 할 수 없어도 일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기일에 정성스럽게 차린 음식을 드린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우는 의무와 정성이 없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그 정성의 만분의 일이라도 베풀라는 것이다. 그 일을 멀리하고자 하니 선인들이 경계를 하고 제사를 정성으로 드리라고 강조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에게 發福(발복)을 기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자손들이 모여 평소와 같이 정성을 다하여 음식을 차려 드리는 것이며, 자손들의 화합과 화목을 바라는 뜻이 더 큰 것이다. 죽은 이가 음식을 먹는 자리는 분명 아닐 것이며, 살아있는 후손들을 위한 축복된 자리가 됨을 바랄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2. 지방의 유래

  제사를 지낼 때 처음에는 尸童(시동)을 두고 제사를 모셨다 한다. 그러나 여러 문헌에서 시동 이야기가 단편적으로 나타나지만, 자세히 언급된 곳은 없어 정확한 유래와 사용례를 알 수가 없다.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되는 것을 시대별로 살펴보면, 尸童(시동)- 塑像(소상)- 神主(신주)- 影幀(영정)- 紙榜(지방)- 寫眞(사진)으로의 변천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禮記에 ‘祭祀에 不爲尸하며’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呂氏가 말하기를 “尸는 주인의 자식을 취하여 행하는 것인데, 그 아버지가 자식을 섬기는 일이 되므로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또한 ‘若夫坐如尸하며 立如齊니라.“라는 구절이 나오는 것을 봐서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널리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史記에 ‘爲文王木主 載以軍爲中軍’나 ‘武王載木主 號爲文王 東伐紂’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神主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조 ?畢齋 金宗直(점필재 김종직) 선생은 아버지가 재직하고 있는 성주향교에 갔다가 공자 사당에서 공자를 비롯한 四聖十哲(사성십철)2)이 모두 소상으로 되어 있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시커멓게 퇴색이 되어서 절간의 천년 묵은 偶像(우상)을 보는 듯 놀라움을 금치 못 하므로 조정에 건의를 해서 位版(위판)으로 모두 고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3)

  宋浚弼(송준필)의 六禮修略(육례수략)에 影幀(영정)에 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程子(정자)는 사람들이 영정을 모셔 놓고 제사를 지내는데, 혹 수염이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다르다면 다른 사람을 모셔놓고 지내는 일이 되므로 좋지 않은 일이라 했다.’4) 또한 주자는 ‘고례에 사당에 신주와 영정 둘이 있다는 것은 안 된다. 신주와 영정 둘이라면 조상들의 정신과 마음이 흐트러지게 되니 둘은 안 된다. 신주와 영정이 있으면 신주가 둘인 셈이다. 고금의 뜻에 맞게 하려면 조상들의 정신을 하나로 모으려는 뜻을 잃지 말아야 한다.’5)고 하였으며, 劉氏(유씨)라는 분의 후손은 ‘주자와 이천선생은 제사를 지낼 때에는 영정을 쓸 수가 없으니, 영정을 모시는 집이라는 말을 고쳐서 祠板(사판)을 모시는 집이라고 했다.’6)고 하였다.


3. 지방과 신주, 위패

  신주나 위패를 밤나무로 하였는데 그래서 木主(목주)라고도 한다. 밤나무로 신주를 만든 것은 報本(보본)의 의미이다. 家廟(가묘)에 모신 조상의 경우는 神主(신주)라 하고, 문묘나 서원의 경우에는 位牌(위패)라 한다. 신주를 만들지 못하였을 때는 종이로 써서 붙이는데 이것을 紙榜(지방)이라 한다.7)

  신주는 장사를 지내고 무덤을 만든 뒤에 題主(제주)를 한다. 이미 만들어진 신주에 죽은 사람의 관직을 쓰는 것이다. 신주는 사정에 의해 당일 만들지 못했을 경우에는 뒷날 만들 수도 있다.

  지방은 신주를 만들지 못했거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나가서 제사를 모실 때 신주를 대신하여 쓰던 방법의 하나였는데, 지금은 큰 종가 이외에는 사당이나 감실을 두고 신주를 모시는 집이 거의 없으니 지방을 써서 붙이고 제사를 모신다.


구   분

지방(紙榜)

신주(神主)

위패(位牌)

재   료

종이(한지)

나무(밤나무)

나무(밤나무)

장   소

가정(신주가 없을 때)

가묘, 사당

문묘, 서원

쓰는 방법

... 神位

... 神主

退陶李先生

봉사자 이름

없다

있다

없다

<표 1> 지방과 신주, 위패의 구분

4. 제사를 지내는 범위

『禮記(王制)』에 天子는 三昭三穆(삼소삼목)과 太祖廟(태조묘)를 포함한 七廟(칠묘)를, 諸侯(제후)는 二昭二穆(이소이목)과 太祖廟를 포함한 五廟를, 大夫는 一昭一廟와 太祖廟를 포함한 三廟를, 士는 一廟, 庶人은 寢에서 祭祀한다고 하였다.

  高麗 恭讓王 2年(1390)에 家廟를 제정하라는 명이 내려 각 가정에서 부모의 신주를 모시는 사당을 짓게 되었다. 高麗末 趙浚(? ~ 太宗5 1405卒)은 「條陣時務書(조진시무서)」에서 ‘『朱子家禮(주자가례)』에 따라 大夫 이상은 三代를 제사하고, 六品 이상은 二代를, 七品 이하 庶人에 이르기까지는 다만 그 부모를 제사하는 것이다.’라 하였다.

  또한『朝鮮經國大典(조선경국대전)』에서는 文武官(문무관) 六品(육품) 이상은 曾祖父母, 祖父母, 父母의 三代를 제사하고, 七品以下는 祖父母, 父母 二代를 제사하며, 庶人은 단지 父母만을 제사한다고 하였다.8)

  朝鮮 中宗 때 己卯 諸賢이 家廟를 장려한 뒤 士人들은 누구나 家廟를 지었으며 그 후 庶人들까지 이에 따르게 되었다.9)


5. 지방의 내용

  지방에 쓰인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는 아래와 같다.

  顯① 考② 學 生③④ 府 君⑤    神位⑥

顯 ?⑦ 孺 人⑧ 金 海 金 氏⑨  神位


① 顯(나타날 현) : 자손이 돌아가신 부모나 조상을 존경하여 이르는 말이다. ‘顯’은 ‘밝음’을 이르는 말이고, ‘考’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뜻이다. 元나라 大德 이후 ‘皇父(황부)’란 호칭을 금하고, ‘顯考(현고)’라 부르도록 조칙을 내렸다 한다.

② 考(죽은 아비 고) : 돌아가신 아버지를 이르는 말이다.『禮記』生, 曰父曰母曰妻, 死, 曰考曰?曰嬪. 〔할아버지는 ‘祖考’, 증조할아버지는 ‘曾祖考’, 고조할아버지는 ‘高祖考’라 한다.〕

③ 學生(학생) : 일반적으로 벼슬을 하지 못한 故人에 쓰는 존칭이다. 벼슬을 하였다면 그 벼슬을 쓰면 된다.〔管理官 慶尙北道知事, 理事官 大邱中區廳長, 書記官 慶州西面長 등〕

④ 處士(처사) : 벼슬하지 아니하고 草野에 묻혀 있는 선비를 가리키는 말이다. 후세에는 점차 偉人(위인)을 우대하는 말로 쓰였다.

⑤ 府君(부군) : 죽은 바깥 조상에 대한 존칭이다.

⑥ 神位(신위) : 죽은 이의 영혼이 의지할 자리를 이르는 말이다.

⑦ ?(죽은 어미 비) : 돌아가신 어머니를 이르는 말이다.〔할머니는 ‘祖?’, 증조할머니는 ‘曾祖?’, 고조할머니는 ‘高祖?’라 한다.〕

⑧ 孺人(유인) : 九品 문무관의 아내를 일컫는 말이다. 또한 생전에 벼슬하지 못한 사람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남편이 벼슬을 했다면 그 직급에 따라 부인의 관작을 쓴다.〔貞敬夫人, 貞夫人, 淑夫人, 淑人 등〕

⑨ 金海金氏(김해김씨) : 여기서는 예를 든 말이고, 돌아가신 어머니나 조상의 관향과 성씨를 쓴다.〔安東金氏, 密陽朴氏, 信川康氏, 安東張氏, 光山金氏 등〕


대    상

부계(고위)

모계(비위)

부    모

현고(顯考)

현비(顯?) / 유인 인동장씨(孺人 仁同張氏)

조 부 모

현조고(顯祖考)

현조비(顯祖?) / 유인 안동김씨(孺人 安東金氏)

증조부모

현증조고(顯曾祖考)

현증조비(顯曾祖?) / 유인 밀양박씨(孺人 密陽朴氏)

고조부모

현고조고(顯高祖考)

현고조비(顯高祖?) / 유인 광산김씨(孺人 光山金氏)

<표 2> 대상에 따른 용어


2) 고위에 대한 비위의 칭호

우리 선조들은 남편의 관작(官爵)에 따라 부인의 칭호도 달랐다. 남편의 관작에 따라 부인의 봉작(封爵)이 올라간다는 것은 부인도 같은 공로가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지금의 우리 인식과는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표 3> 조선 시대 품계에 따른 작호.10)

품계

정1품

종1품

정2품

종2품

정3품

(堂上官)

정3품

(堂下官)

종3품

정4품

종4품

정5품

종5품

정6품

종6품

정7품

종7품

정8품

종8품

정9품

종9품

고위

대광보국숭록대부

(大匡輔國崇祿大夫)

정헌대부

(正憲大夫)

통정대부

(通政大夫)

통훈대부

(通訓大夫)

봉정대부

(奉正大夫)

통덕랑

(通德郞)

승의랑

(承議郞)

무공랑

(務功郞)

통사랑

(通士郞)

종사랑

(從士郞)

비위

정경부인

(貞敬夫人)

정부인

(貞夫人)

숙부인

(淑夫人)

숙인

(淑人)

영인

(令人)

공인

(恭人)

의인

(宜人)

안인

(安人)

단인

(端人)

유인

(孺人)


예1) 顯十七代祖考嘉善大夫司憲府大司憲兼 世子輔養官 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 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 世子師府君 神主


예2) 顯十七代祖?貞夫人貞敬夫人光州李氏 神主



6. 지방쓰기 사례

   여기에서는 일반적으로 널리 시행되고 있는 고조부모까지의 제례에 대한 지방쓰기 사례를 들어 보기로 한다.


           <표 4>지방 쓰기 예문

대   상

예      문

고조부모

  顯 高  祖  考  學  生  府  君  神位

  顯 高 祖 ? 孺 人 金 海 金 氏  神位

증조부모

  顯 曾  祖  考  學  生  府  君  神位

  顯 曾 祖 ? 孺 人 密 陽 朴 氏  神位

조부모

  顯 祖  考  學  生  府  君   神位

  顯 祖 ? 孺 人 安 東 金 氏  神位

부  모

  顯 考  學  生  府  君    神位

  顯 ? 孺 人 金 海 金 氏  神位

부  처

  顯 ?  學  生  府  君   神位1)2)

  故 室 孺 人 安 東 金 氏 神位

자  식

  故(亡) 子 秀 士 ○ ○  神位

 

 위패의 서식

 

-= IMAGE 1 =-

위패의 서식

1) 신주의 서식
(1) 신주 한 위(位)에 한 분의 조상을 신주 중앙에 붓글씨로 내려쓰고, 서쪽(향해서 외쪽) 하단에 봉사자를
쓴다.
(2) 신주는 한 번 글씨를 쓰면 오래 모실 뿐아니라 항상 가묘에 모시기 때문에 신주(神主)라 명기한다.
(3) 신주 서식은 다음과 같다.

▣ 신주의 양식

·주①:'고(考)'는 돌아가신 아버지이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비()', 돌아가신 조부모는 '조고(祖考)',
'조비(祖)', 돌아가신 증조부모는 '증조고(曾祖考)', '증조비(曾祖)', 돌아가신 고조부모는 '고조
고(高祖考)', '고조비(高祖)', 아내는 '현(顯)'을 쓰지 않고 '망실(亡室)' 또는 '고실(故室)'이라
쓴다.
·주②: 직명과 직급은 사실대로 쓰고, 만일 없으면 '학생(學生)'이라 쓴다. 여자 조상으로서 남편의 신주에
벼슬(직명·직급)을 쓸 때는 '숙인(淑人)'이라 쓰고 남편이 벼슬이 없으면 '유인(孺人)'이라 쓰며
여자 조상이 자신의 직명·직급이 있으면 그것을 사실대로 쓴다.
·주③:'부군(府君)'은 남자 조상의 경우이고, 여자 조상이나 아내는 본관과 성씨를 '全州李氏'와 같이
쓴다.
·주④:'효자(孝子)'는 큰아들이 위패를 받드는 경우이고, 작은아들이면 '자(子)', 큰손자면 '효손(孝孫)',
큰증손자는 '효증손(孝曾孫)', 큰현(玄)손자는 '효현손(孝玄孫)'이라 쓰며 남편이면 '부(夫)'라
쓴다.
·주⑤: 이름은 사실대로 쓴다.
·주⑥:'봉사(奉祀)'는 어른의 경우이고 아내의 경우는 '행사(行祀)'라 쓴다.

2) 지방의 서식
(1) 지방을 쓸 때는 임시로 만드는 위패이기 때문에 '신주(神主)'라 하지 않고 '신위(神位)'라고 쓴다.
(2) 지방은 각각 모시는 것이 원칙이다.
부득이 같이 모실 경우에는 남자 조상을 서쪽(보아서 왼쪽)에 쓰고 여자 조상은 그 동쪽(보아서 오른쪽)
에 쓴다.
(3) 기타의 지방 서식은 신주 서식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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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패
위패는 그 형태가 신주와 비슷하지만 제작법은 간단하다. 단순히 한 토막의 직육면체 나무를 다듬어서 그 위에 죽은 이의 친속과 관작 등을 쓴 것으로 약식 신주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주로 불교 사찰에서 사용되고 있다. 위판이라고도 하는 사판은 신주 형태의 넓적한 목판에 죽은 이의 관작이나 호 등을 쓴 것으로 성균관, 향교, 서원, 사우 등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다.

지방
지방은 중국의 송나파 때부터 신주 대신에 일회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 초기부터 사용되었다. 사당의 건설이나 유지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도 웬만한 집이 아니면 신주를 모시지 못하고 그 대신 지방을 사용했다. 지방은 제사 직전에 만들었다가 제사를 마치면 소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제작이나 관리가 매우 간편하여 일반적으로 많이 쓰여져 왔다.

위패쓰는법...

망 (亡) ..윗머리에쓴다 ...........顯 (현)존칭 先(선)
엄 (嚴) 격식을 높여서 아버지를 부르는말 또한.
어머니를(亡 慈 母)망사모
부 (父 ) 고조 할아버지할머니 (亡高組父.母) 망고조부.모
증조할아버지 할머니(亡曾組父.母) 망증조부.모
작은 아버지 어머니 (亡灼父.母) 망작부,모

김 (金)
해 (海)....本 (본)을쓴다
후(后) ..남자는 후인
인 (人) ..여자는 유인 (孺人)




靈 영
駕 가

지방쓰는법 ;;;;;;;;;;;;;;;;;; 顯 考 學 生 府 君 神 位

현 고 학 생 부 근 신 위

복위(伏爲)는 지내는 사람을 말한다
지내는 사람이 아들이면(行孝子)딸(行孝女)손자이면 (行孝孫)
자식이나 손자가 아닌 다른사람이나 아내 남편이 재사를 지낼때는 기부 (記付)

예~행효손자 (行孝孫子) 김말동 복위 (伏爲)

 

 선사전(대성전) 

공자의 위패를 모신 선사전. 선사전은 달리 대성전이라 불리는데, 공자 뿐만 아니라

유학 성현을 모시는 곳이다. 

 

      선사전 중앙에 있는 공자상과 위패.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이래 철거된 것을

      1990년대 초에 다시 모셔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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