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황순원
<줄거리>
소년은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있다. 그걸 보던 노파는 '저 애 누이는 꼭 죽은 제 어머니를 빼 닮았어'라고 말한다. 소년은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렇게 애타게 마음속으로만 그리워해 오던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소년을 휘잡아버린 까닭이다. 이제 소년은 그만 노는 것도 잊어버린다.
소년은 제 누이가 죽은 어머니랑 닮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소년의 생각에는 누이가 결코 예쁘지 않기 때문이다. 소년은 느닷없이 노파에게로 달려가 제 누이와 죽은 어머니가 닮지 않았다고 대답할 것을 요구한다.
소년은 누이가 만들어준 인형을 땅에 파묻어버린다. 소년은 돌아오는 길에 당나귀를 타다가 굴러 떨어지기도 하는데, 그걸 본 누이가 달려들어 일으키려 하자 손을 뿌리치고 달아나버린다. 누이는 동생이 자신을 꺼리는 줄은 알지만 그 아이의 마음을 돌이킬 길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소년은 점점 더 제 누이를 미워한다. 원래 옥수수를 좋아하던 소년이지만, 누이가 그것을 주었을 때 집어 던져버리기도 한다. 누이가 시집을 가는 날에도 소년은 몸을 숨기고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소년은 시집 간 누이가 죽었다는 기별을 듣는다. 소년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소년의 눈에 하염없이 고인 눈물 속으로 밤하늘의 별이 내려온다. 소년은 오른쪽 눈에 내려온 별은 어머니라고 느끼고, 왼쪽 눈에 내려온 별은 누나라고 느낀다. 그러다가도 소년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무래도 누나가 어머니와 같은 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읽기>
이 소설은『소나기』의 작가 황순원의 작품이다. 본래 시를 쓰다 소설로 갈래를 바꾼 황순원의 소설은 시적인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별』역시 마찬가지이다.
시에는 다의성(多義性)이란 것이 있다. 시어의 뜻이나 시구의 의미, 시 전체의 주제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던질 때, 설명문이나 논설문과는 달리 다양한 해석의 답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별』도 시적인 작품인 까닭에, 소설 속의 '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풀이가 있다.
'별'은 우선 '어머니'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평자는 '삶과 죽음의 거리'라고 보기도 한다. 간혹은 '빼앗긴 조국'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별'을 어머니로 보는 견해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소년은 오로지 별을 어머니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죽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시적 소설이라는 뜻에서)'한 작품이 된다. 그러나 뒤의 두 견해에는 쉽사리 수긍하기가 어렵다. 누이도 죽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죽고 누이도 죽었으니 그 사이에 거리란 상정될 수가 없는 것이고, 소년이 누이별을 부정하는 것으로 볼 때 이 소설을 독립 염원의 내용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비약으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소년은 왜 죽은 누이를 '별'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그것은, 누이가 죽은 어머니같이 예쁘지 않다고 믿는 소년의 생각 때문이다. 과연 소년의 어머니는 그처럼 미모인가. 소년은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므로 이는 단지 소년의 집착에 불과하다. 결국 소년이 어머니는 예쁘다고 생각하고 누이는 못나게만 보는 것은, 누이는 내 어머니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 셈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역시 세상의 한복판에다 자기 자신을 놓고 살면서 영원히 꿈을 꾸는 존재인가 보다 싶은 느낌이 든다. 또, 순진하고 다정다감한 소년조차도 죽은 누이를 그렇듯 냉정하게 물리치는 것을 보면, 인간이 자신의 꿈을 지키려는 의지는 참으로 강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황순원 : 본래 시를 썼던 황순원은
초기에는 시적 이미지가 고스란히 남은 소설을 많이 발표했다.
『소나기』,『별』등은 그러한 계열의 대표작.
주요작품에는『독 짓는 늙은이』,『목넘이 마을의 개』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