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이연 선생은 봄철만 되면 지병처럼 우울증을 앓았다. 특히 5월이 되면 증세가 최고조에 이르렀는데, 나중에야 그것이 '광주세대(-선생은, '386세대' 따위의 우스꽝스런 명명이 아니어야 한다며 한사코 당신 세대를 '광주세대'라 불렀다)'로서 겪는, 역사사회적 상흔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대문도 없이 휑한 오륜동 씨알서원에서, 시대의 고통과 소외된 인간의 고통을 늘 상기하던 선생. '내 어리석은 까닭'이란 이름의 의미를 더욱 유난하게 곱씹던 선생의 5월. 그 마당에는 커다랗고 오래된 물앵두 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물론 소유주는 집주인 아주머니였지만, 연로하신 아주머니는 서생들과 선생이 날을 잡아 열매따기를 기다리시다가, 소식이 없으면 은근히 채근하기도 하였다.
일반적인 앵두보다 훨씬 여린 과육에, 속이 비치는 말간 다홍빛이 탐스럽고, 달고 상큼한 과즙이 감질나던 물앵두. 해마다 사다리에 올라 열매따는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지. 그런데 씨알서원에서는 그 앵두마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계절 간식이 아니었다. 어느날 선생이 사다리에 올라 내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가지를, 열매가 많이 달린 것만 골라 땅으로 밀어 주시며 말하였다.
"....대학원생이었던 시절에는 견디다 견디다 힘들면 지리산으로 갔었지. 몇 백번은 올랐을 걸. 구석구석 내 손바닥처럼 안다. 그래도 지리산은 무섭다. 산은, 준비하고 오른 사람에겐 속내를 열어보이지만, 만만히 보고 오르면 큰 코는 물론이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곳이다. 하여경! 당신도 한 번 화를 내면 온 동네가 숨을 죽이고, 한 번 웃으면 온 개울이 다 화답하는 그런 그릇으로 자신을 키워보시라. 이 물앵두는, 내가 종일 곡기를 끊고 이 앵두 몇 알로 버티며 책을 보기도 했던 나무다. 5월 20일이 지나면 맛이 없다. 먹어 보시게!"
봄이 무르익고, 햇살이 따뜻함을 지나 그 열기를 더해 간다 싶을 때면, 어김없이 환영처럼, 환청처럼, 오륜동 마당에 서 있는 커다란 앵두나무 두 그루와 선생의 음성이 귓전을 울린다. 태어나서 도무지 '틀'이라곤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내게, 선생은 길이었고, 틀이었고, 신화이기도 하였다.
내일이면 4월이다. 나에게, 그리고 대한민국의 많은 다른 이들에게도 2014년 이전과 이후의 4월은 다를 것이다. 눌이연 선생의 5.18과 우울증이 내게 추체험의 대상이었다면, 서해 바다에 수백명이 가라앉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던 그 날 이후로, 해마다 4월이 되면 나 또한 증상을 겪는다. 그리고 오늘은, 2004년 4월에 시작해서 13년을 이어온 한 예능 프로그램이 종영을 고했다.
"....지난 13년 동안 제가 잘했다는 느낌보다 부족함을 느끼는 시간이 많았다. 스토리텔링이 좋은 PD가 맡으면 어떨까. 달리 뻗어나갈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다. 멤버들과도 13년 동안 함께 하다보니, 너무 알고 있는 정보와 성향들이 많다보니 좌충우돌이나 보지 못한 기회를 발견하지 못해서 스토리가 뻗어나가지 못하나 생각도 했다. 그것에 대한 고민을 수년 전부터 멤버들과 함께 해 왔다....이 프로그램이 13년까지 올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지금은 제게 내재된 인문학 소재, 스토리텔링에 대해 탈탈 털린 상태다. 털어낸 다음 제습기에 넣어 건조까지 끝낸 느낌이어서 그런 걸 다시 채우고 싶다" (<무한도전> 담당 PD 김태호 인터뷰 중에서)
" 이 프로그램에 저희의 인생이 담겨있습니다"( 유재석의 종영인사 중)
씨알서원도 그랬다. 우리의 인연이 13년 동안 이어지리라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매 학기마다 '무한도전'을 하는 마음으로, 각자의 창조성과 에너지의 밑바닥을 드러내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를 응원하며 달렸었다. 늘 고심하는 선생 덕분에 우리도 최선을 다할 수 있었고, 최선을 다했기에 미련이 없었다. 서로에 대한 아쉬움이나 원망보다 그저 어딜 가서 무얼 하건 각자 존재의 꽃을 피우리라 응원하는 마음으로 헤어졌다. 왜 우여곡절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은 역시나 '내 부족함'과 선생과 동학에 대한 감사함 뿐이다. 자기 한계를 경험해 보았다는 것. 자기 한계에 자발적으로 도전해 본다는 것.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사람을 얼마나 견결하고 성숙하게 만드는지, 씨알서원과 무한도전은 보여주었다.
"....종교도 아니었지만 종교보다 충실했고, 사랑도 아니었지만 사랑보다 절실했으며, 전투도 아니었지만 전투보다 치열했던 그들의 훈련과 공부를 되새긴다. 내가 매양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늘 찐덥게 바라보았던 그들. 이제는 사라진 '씨알서원'을 때늦은 애정과 애도 속에 가만히 추억한다" (김영민, <봄날은 간다> 중, "씨알서원을 추억하며", 160쪽)
내게 그러하였듯, 그들에게도 그러했을 것이다. 내 인생의 '무한도전'이었던 씨알서원을 기리며, 이제는 역사가 된 <무한도전>을 더불어 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