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걸레21 지정 공식 유사 역사학자 차태헌입니다.
한걸레가 저를 유사역사학자로 지칭한 건 지칭한거고.. 역사 관련 글은 계속 써야겠죠? ^^
사실 내가 뭘 바라고 역사 관련한 글을 쓰거나 책을 만든 것도 아니고 .. 단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역사 이야기를 하고 저도 사람들을 통해서 배우는 단지 그 뿐만의 이야기입니다만 어쨋든 유사 역사학자로 [공식 지정]되고 말입니다. 이럴 때 일수록 더 열심히 글을 열심히 올리는 것이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유사 역사학자의 바른 자세가 아닌가 합니다.
이번에는 본 (本) 과 가야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지난번에 어떤 분이 댓글에서 임나 일본부의 부(府) 이것이 미코토 “모찌”라고 음독한 것을 예로 드셨는데요. 저도 흥미있게 지켜보던 이슈입니다. 방송에서 어떤 분이 가방모찌.. 이런 이야기도 하셨던 듯 하네요.
이 분이 고대의 일본어 사전 화명초나 이런 자료들도 검토를 해서 실제로 그 당시에 저런 단어가 쓰였는지.. 검토를 하신건지 그리고 가방 모찌의 의미로 쓰였다면 임나 일본부 한자에 부府를 안넣고 지持를 넣었을텐데 이런건 좀 이상하죠?. 어쨌든.. 고대 동북 아시아에서 모지..모도 말이 마루..등등으로 표현되는 본 本 .. 이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중세 유럽에서 신의 아들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했다는 사상과 그것을 상징하는 십자가가 중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일단 선 결론 후 썰풀기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일단 本, 모찌 , 모도 , 말이 , 마루이 ....
1. 사상이나 철학적으로 고대 천손족에게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고
2. 그렇기 때문에 국가나 통치자의 이름에도 삽입이 되었고..
3. 이것이 고대 천손족 사이에는 本이라 쓰고.. 모도, 모지, 마라, 말이, 여러 형태로 불리웠다.
사실 이 개념을 안다는 건 참 중요하죠. 아니 이렇게 말씀드려야 하겠네요. 이 개념을 알면 복잡하게 얽혀있는 한국 일본의 고대 사료들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는 것...
일단 일본어의 훈독이라고 하는 것과 음독이라고 하는 것을 알아보죠. 한국어에서는 本을 본이라고 읽습니다. 다른 읽는 법은 없습니다. 本을 뽕~ 이렇게 읽으면서 저 음독 안하고 훈독했어요 한국에서 이러면 선생님한테 비오는 날 먼지날 때까지 두들겨 맞겠죠. 일본어는 어떻냐? 本을 “혼” 이라고도 읽고 “모도” 라고도 읽습니다. 日本을 니혼이라고 읽지요.
그러면 雄本을 웅혼 이렇게 읽을까요? 아닙니다. 저건 쿠마“모도”라고 읽죠. 큐슈의 현 이름입니다. 네 음을 따서 本을 “혼”이라고도 읽기도 하고 뜻을 따서 本을 “ 모도” 라고도 읽죠. 그렇다면 本을 모도라고 읽는게 일본어냐? 일본서기가 만들어지는 8세기 이전까지는 고대 일본 고대 한국 이런 개념이 없었습니다. 가야인 백제인 신라인들이 반도에서 그리고 열도에서 뒤죽박죽 싸우던게 실제 역사죠. 네 언어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고대에 本에 대한 개념을 고유어로 “모도”라고 표현하는건 동북아시아에서 공통된 사항이었겠죠. 그러면 한국어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을까? 예를 들어서 한국에서는 큰 아들을 “맏” 아들 큰 며느리를 “맏” 며느리 이렇게 표현하죠. 그리고 산에서 가장 높은 곳을 산“마루” 이렇게도 표현하고요.. 현대 한국어는 이런데 고대에는 어떻냐? 현대 한국어의 “마루” “ 맏” 이런 개념들이 고대에는 宗 이라는 개념으로도 표현되었네요. 네 일본어 本하고도 같은 의미이기도 하죠.
宗 을 한자어로 찾아보면 대략 이런 뜻이 되겠네요.
1. 마루, 일의 근원(根源), 근본(根本)2. 으뜸3. 제사(祭祀)4. 존숭(尊崇)하는 사람
5. 일족(一族), 동성(同姓)6. 선조(先祖) 중의 덕망(德望)이 있는 조상(祖上)
7. 시조(始祖)의 적장자(嫡長子)8. 우두머리, 가장 뛰어난 것
9. 사당(祠堂), 가묘(家廟), 종묘(宗廟: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
10. 제사(祭祀)하는 대상(對象)11. 갈래12. 파(派), 교파(敎派)13. 높이다, 마루로서 높이다
14. 조회보다(朝會--), 조회하다(朝會--)15. 제사하다(祭祀--), 제사(祭祀)를 지내다
本=宗= “ 모도, 모지, 마루” 라는 개념을 고대에 가장 잘 나타낸 것이 마립간이 아닌가 해요. 아래 백과 사전을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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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麻立干)은 수장(首長)을 뜻하는 ‘간(干)’ 앞에 ‘마립’이 붙어서 이루어진 칭호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인용된 김대문(金大問)의 설명에 의하면, ‘마립’은 신라 말로 말뚝[橛]을 뜻하며, 왕과 신하가 위치하는 자리인 ‘함조(諴操)’를 일컫는다고 한다. 왕이 주가 되어 가장 위에 있고 그 아래에 신하들의 자리가 지위 순서대로 배열되었기 때문에, 왕의 호칭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한편 국어학에서 ‘마립’은 ‘마루[宗]’나 ‘마리[廳]’ 등의 어원에 해당하는 말로, ‘으뜸’의 의미를 가진다고 보았다. 즉 마립간은 여러 간 중에 으뜸가는 간, 곧 대수장(大首長)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따라서 마립간은 이전의 왕호인 차차웅(次次雄)이나 이사금(尼師今)과 달리 왕이 강력한 정치적 권력을 가졌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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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인 本, 宗 , 이것이 고대 열도와 반도에 분포했던 고조선의 후예들에게 모지, 모도, 말이, 마리, 이런 소리로 표현한 것이었다. 이 개념을 이해하면 다음의 사료들이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에서 제가 작은 따옴표로 “본” 혹은 “모지” “모도” “ 무다” 등으로 표시한 부분에 유의해서 사료를 있는 그대로 한번 읽어보죠.
A ] 남제서 동이열전
가라국 加羅國은 삼한三韓의 한 종족種族이다. 건원 建元 원년(A.D.479;) 국왕 하지荷知가 사신을 보내와 방물을 바쳤다. 이에 조서를 내렸다. “널리 헤아려 비로소 [조정에] 올라오니, 멀리 있는 이夷가 두루 덕德에 감화됨이라. 가라왕加羅王 하지荷知는 먼 동쪽 바다 밖에서 봉물을 가지고 관문을 두드렸으니, 보국장군 輔國將軍 ”본“국왕 ”本“國王을 제수함이 합당하다.”
加羅國, 三韓種也. 建元元年, 國王荷知 使來獻. 詔曰: 「量廣始登, 遠夷洽化. 加羅王 荷知款關海外, 奉贄東遐. 可授輔國將軍·本國王.」
B ] 구당서 동이열전
일“본”국은 왜국의 별종(別種)이다. 그 나라가 해가 뜨는 곳에 있기 때문에 일“본”을 나라 이름으로 하였다. 혹은 말하기를, 왜국이 스스로 그 이름이 우아하지 못한 것을 싫어하여 일“본”으로 고쳤다고 한다. 혹은 말하기를, 일본은 과거에는 작은 나라였는데, 왜국의 땅을 병합하였다고 한다. 그 나라 사람으로 입조한 자가 대부분 자기 나라가 크다고 자부하여 사실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중국이 이를 의심하였다
日本國者, 倭國之別種也. 以其國在日邊, 故以日本爲名. 或曰: 倭國自惡其名不雅, 改爲日本. 或云: 日本舊小國, 倂倭國之地. 其人入朝者, 多自矜大, 不以實對, 故中國疑焉.
C ] 일본서기 신대기
고황산령존이 모든 신을 소집하여 “위원중국의 나쁜 신들을 평정하려고 한다. 누구를 보내야 좋은가. 그대들 모든 신은 숨김없이 말하라.”고 하였다. 모두 “천수일명(天穗日命;아마노호히노미코토)은 걸출한 신이므로 그를 보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여러 신의 말에 따라 천수일명을 보내 평정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 신은 오호아나“무지”노카미 大己貴神;에게 아첨하여 3년이 지나도록 보고하지 않았다.
D ] 일본서기 신공황후기, 신라를 정벌한 신공황후가 열도로 재 상륙하면서 호“무다” 譽田천황을 낳는 이야기
얼마 후 신이 가르치기를 “화혼(和魂)은 왕의 곁에서 목숨을 지킬 것이고, 아라미타마(荒魂)는 선봉이 되어 군선을 인도할 것이다[和魂은 니키미타마(珥岐瀰多摩)라고 읽고, 荒魂은 아라미타마(阿邏瀰多摩)라고 읽는다.].”라고 하였다. 신의 가르침을 얻고 나서 배례하고, 의망오언남수견(依網吾彥男垂見;요사미노아비코오타루미)을 신에게 제사지내는 주재자로 삼았다. 이때 마침 황후는 산달이었는데, 황후가 돌을 들어 허리에 차고 “일이 끝나고 돌아오는 날, 이 땅에서 태어나소서.”라고 빌었다. 그 돌은 지금도 이도현(伊覩縣;이토노아가타)의 길가에 있다.
E ] 백제 동성왕 혹은 “모대”왕에 대한 삼국사기 동성왕 기록
또 영명(永明) 8년(서기 490) 백제왕 “모대”(牟大)가 사신을 파견하여 표문을 올렸다. 이에 알자복야(謁者僕射) 손부(孫副)를 보내 모대에게 그의 죽은 할아버지 “모도”의 관작을 계승케 하고 백제왕으로 삼는 책명을 내리면서 ( 중략..)
『삼한고기(三韓古記)』에는 “모도”가 왕이 되었다는 사실이 없고, 또 모대는 개로왕의 손자요, 개로왕의 둘째 아들인 곤지의 아들로서, 그의 할아버지가 “모도”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니, 『제서(齊書)』에 기록되어 있는 바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又永明八年 百濟王牟大遣使上表 遣謁者僕射孫副 策命大襲亡祖父牟都 爲百濟王 ...(중략)
三韓古記無牟都爲王之事 又按牟大 盖鹵王之孫 盖鹵第二子昆支之子 不言其祖牟都 則 齊書 所載 不可不疑
F ]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에서 설명한 가라의 어원
소위 가라라고 하는 것은 “머리”마을을 칭하는 것이다.
所爲加羅者 首邑稱也
[ 임승국 저 환단고기에서는 수읍首邑을 “중심이 되는 읍” 이라고 의역을 하였다. 여기서는 의역을 하지 않고 직역하여 “머리” 마을 이라고 함 ]
첫 번째 사료 남제서의 가야 외교 관련 기록은 유일한 가야의 외교 관련 기록이기도 합니다. 479년은 고구려가 백제의 개로왕을 전사시키고 한반도 백제가 멸망한 475년 직후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마도 백제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중국과 교류했던 가야가 직접적으로 중국과 통교하게 된 계기가 이 사건이 아니었나. 그런데 여기에서 가야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본”本의 나라라고 칭하네요
두 번째 구당서가 기록한 일“본”입니다. 여기서는 소국이지만 왜의 땅을 점령했던 일“본” 의 이야기가 나오지요? 네 우리가 아는 일본하고는 상관없는 일본이죠. 고고학적으로 보면 이 일본의 후보로 가야가 나옵니다. 왜냐하면 가야의 유물은 3-4세기까지 대마 큐슈 북부에 한정되다가 5~6세기가 되면 나라 분지 쪽으로 이동을 하죠. 왜의 땅을 점령한 일본이 이건 아닐까요? 그리고 일본의 귀족 성씨들의 연원을 기록한 신찬성씨록에서는 이 지역에 임나와 가야 관련한 성씨들이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아라가야 신사가 있네요.
네 자신을 “본”의 나라라고 표현한 가야와 왜의 땅을 병탄한 이 일“본” [본]자가 공통이 되는 것은 우연일까요? 아닐 수도 있겠지요
예상질문 ] 그럴 듯 하긴 한데 뭔가 5% 부족...
자 그러면 기록된 중국 사서에는 “本” 이라고 하는 한자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고대에 반도 남부와 열도를 종횡 무진했던 가야인들은 실제로 어떻게 읽었을까요? 네 이것의 힌트를 주는 것이 저는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가 기록한 가야의 어원.. “머리” 마을을 의미한다. 이 문장이라고 생각이 되네요.
남제서에서 보았듯이 가야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본本 의 나라라고 칭했고 이것은 우리가 현대의 한국어와 일본어에서 추적이 되듯이 “ 모도, 마루 ” 이런 단어라고 불리웠겠죠. 저는 태백일사를 지은 조선 성종 때 유학자 이맥이 가야가 원래 “ 마루(本)의 나라”를 의미했다. 라고 이두로 적힌 사서를 읽었고 그것을 한역해서 “首邑” 이라고 적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참고로 전 태백일사를 억지로 믿으시라고 권하지는 않습니다.
믿는 분들은 이 문장 잘 음미해보시고 안 믿으시는 분들은 앞에서 제시한 일본서기 신대기와 신공황후 열도 상륙 작전 기사를 한번 음미해보죠.
신공황후 신라 정벌 이야기는 물론 거짓 위사이구요.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런 위사가 창작되었나 알아보면. 이 이야기의 원형이 작은 나라 일본이 왜의 땅 ( = 열도 신라)를 정벌했던 이야기가 원형이었다는 것을 추론할 수가 있죠.
신공황후는 신라를 정벌하고 나서 열도에 상륙하면서 전쟁을 하게 되는데 열도에 상륙하고 나서 낳는 것은 호“무다” 譽田 천황 이지요. 애초에 임산부가 전쟁하러 간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구요. 왜 “호무다” 천황을 낳는 시점이 하필이면 열도에 상륙해서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냐.. 한국어 sun을 의미하는 “해”는 일본어로는 “히”입니다. 왜 재수 없게 한국어하고 일본어가 비슷하냐.
고대에는 같은 언어를 쓰던 가야 백제 신라 인들이 반도와 열도에 골고루 분포해서 살면서 한국어도 만들고 일본어도 만든거죠. 그래서 신공황후가 낳은 [호무다] 가 뭐냐 뭐긴 뭐겠어요 히(日) 모도(本)를 낳은 거고 일본(日本)을 낳은 거고 구당서에 기록된 대로 작은 나라 일본이 왜의 땅을 병탄한거고 그게 왜의 땅도 되지만 열도 신라도 되는거고.. 원형은 고대 가야인 일본이 열도 신라를 정벌한 이야기인데 요고 가지고 살짝만 비틀면 고대 일본이 한반도 신라를 정벌한 이야기가 되는거죠.
이 일본을 낳는 과정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누구인가요? 네 아라의 혼 되겠습니다. 荒魂이라 쓰고 아라阿邏 미타마( 瀰多摩= 혼) 라고 읽으라 하면서 아라가야의 이름을 대놓고 써놨네요. 왜 열도에서 일본이 탄생을 하는데 아라가야의 혼이 “일본=히모도”를 임신한 여인네를 지켜주냐. 일본이 가야 구체적으로는 아라가야이기 때문이죠.
한일역사 공동 위원회에서 열도에 한반도 분국 없었다고 주절대신 홍대 교수하시는 김태식 어린이 , 그리고 이상한 책 내신 김현구 어린이.. 제 말 밑줄 쭉 그어가면서 공부하세요 ~ 아이 이뽀라 결국 낳은 것은 호무다 천황이란 사람을 낳은게 아니라 고대 열도의 가야의 국가 [일본]을 낳은거죠.
자 그리고 일본서기 신대기를 보죠. 일본서기 신대기에서는 백제계열 신들이 일본 열도를 다스리기 위해서 천수일을 파견했는데 이 신이 오호아나“무지”한테 아부했다. 라고 되어 있네요. “오호”는 크다는 형용사이고 “아나무지“가 뭔지 알려면 아나무라에 가보면 알일
일본 나라현 쿠사츠시에 가면 아나(穴) 마을에 가면 아라가야 신사가 있다고 하네요. 아니 아라 신사가 있어서 안라 마을인게 티가 팍팍 나는데 왜 한자를 구멍 혈[穴] 로 바꾸나 일본어로 구멍이 아나 거든요. 그래서 원래 의미를 알 수 없도록 필사적으로 한자 바꿔치기. 일본서기라는 1300년 넘게 유지되는 위서는 아무렇게나 만든게 아니라 이런 치밀한 국가적인 사업이었던거죠. 요 동영상 5분 이후부터 보면 되요. 다큐 이름이 미완의 나라 가야라.. 아니 가야가 열도에 가서 일본 세웠으면 충분히 강한 나라인데 뭐가 부족하다고 미완의 나라란건지 뭐 우주 정복이라도 해야 하나.. 네 그리고 여기에서 앞에서 살펴보았던 가야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단어 무지( 本) 이 가야 신을 상징하는 단어에 포함되어 “오오아나무지” 로 표현이 되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M26B0gtp2E4
앞에 신공황후가 일본을 낳는 이야기가 구당서에는 “옛날에 작은 나라 일본이 왜의 땅을 병탄했다”는 기록으로 나타나듯이 백제인들이 보낸 신이 오호아나무지 즉 가야의 본에게 종속된 이야기가 중국 정사에도 있느냐. 네 있습니다.
“ 그 (열도 신라의 ) 왕은 원래 백제인이다. 바다를 통해서 신라로 들어가 그 나라와 왕을 물려 받았다. 처음에는 백제에 부용하였으나 백제가 고구려를 정벌할 당시 그 노역을 감당하지 못하고 후에 ( 열도의 백제인과 신라가) 서로 따르고 귀의하여 마침내 강성해졌다. 이런 이유로 백제를 공격하고 가야의 부용국이 되었다.
其王本百濟人, 自海逃入新羅, 遂王其國. 初附庸于百濟, 百濟征高麗, 不堪戎役, 後相率歸之, 遂致强盛. 因襲百濟, 附庸於迦羅國焉. - 북사 열전 82권 신라 -
네 일단 열도 신라의 왕을 백제 사람이 하다가.. 백제에서 독립도 하고.. 백제와 전쟁도 하고.. 그리고 최종적인 결론이 중요한데 이것이 결국은 가야의 속국이 되었다고 나오네요.( 국사편찬위원회의 해석은 믿지 마세요. 사기입니다 ) 네 앞에서 우리가 보았던 일본이 왜의 땅을 병탄했다. 했을 때의 그 일본이 가야였다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이 되네요. 이것을 의인화 해서 표현한 것이 백제인들이 파견한 신이 “ 오오 아나 ( 아라가야) 무지 ( 本) 에게 아부하였다” 가 되겠네요.
자아 ~ 이렇게 해서 고대 가야는 본 혹은 일본 이라고도 표현되기도 하고 그게 이두로는 모도라고 표현되었다는 것을 알면 백제 동성왕의 정체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죠.
앞에서 우리는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 뭐여 ~ 왜 여씨인 백제 동성왕이 이름이 모대牟大로 나와 그리고 할아버지 모도牟都는 뭐여 나 이거 안 믿어~ 이러는 김부식을 보았는데요. ” 동성왕이 백제왕일까요? 물론 백제왕이죠 하지만 동시에 동성왕은 가야의 왕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세력들은 나주 고분군에서 보듯이 백제 유물 가야 유물들이 통합이 되어져서 나오죠. 신채호 선생님은 조선상고사에서 동성왕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쓰고 있는데 가장 강조한 부분이 신라와 백제를 대통합 할 수도 있는 위치에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동성왕이 신라쪽과 혼인하여서 백제왕이면서 동시에 신라의 왕위계승권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점을 강조하시는데요. 중요한 맥을 짚으시면서 우리 후손들에게 연구할 과제를 안겨준.. 신채호 조선 상고사는 지금 관점에서 다시 읽어도 새롭게 해석할 여지가 많죠..
이게 신화적으로는 이렇게 나오죠. 삼국유사 서동 설화의 첫 부분은 이렇습니다.
[고본(古本)에는 무강(武康)이라 하였으나 잘못된 것이다. 백제에는 무강이 없다.]
제30대 무왕(武王)의 이름은 장(璋)이다. 그의 어머니는 과부였는데 수도 남쪽 연못가에 집을 짓고 살다가, 그 연못의 용과 정을 통하고 아들을 낳았다. 어려서의 이름은 서동(薯童)이다. 서동은 재주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 어려웠다. 늘 “마”를 깨서 팔아 생활하였기 때문에 나라 사람들이 이것으로 이름을 삼았다.
일연 스님도 이 서동 설화의 주인공이 무강이라고 된 것을 본 듯 한데요. 헥갈린다 이러시고 무왕으로 이야기 하시지만.. 최근에 발결된 금석문에서는 무왕의 아내가 선화공주? 이런 것은 안나오죠 ^^ ; 네 서동이 아니라 이칭에 나온대로 “ 마동 ” 즉 “모도” 가 맞을 거구요. 동성왕이 되겠죠.
왜 백제왕인데 모도왕이냐.. 과부가 연못의 용과 정을 통했다. 이 부분을 해석하는게 핵심이죠. 과부란 무엇이냐.. 남편이 없는 여자지요. 남편은 다른 말로 하면 왕이 되는데 이 당시 백제는 본국인 반도 백제의 개로왕이 장수왕에게 피살당하고 나라 자체가 없어진 상태죠. 즉 남편없는 여인네..이렇게 표현되는거고 그러면 남쪽 연못가도 뭔지 알 수 있죠. 네 남쪽의 바다에 있는 세력을 의미하고 용은 특히 가야 신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상징.. 즉 반도 백제가 멸망하여 주인없는 세력이 된 반도 남부 백제 그리고 열도 백제 세력이 열도와 반도의 가야인.. 즉 일본인( 열도 가야인)들과 정치적인 대 통합을 한 것이 과부와 용이 통정하여 낳은 동성왕 되겠습니다.
그렇게 놓고보면 동성왕이 정사에서 “모도” 라고 칭한 것은 참으로 큰 의미가 있는거죠. 이 기록들이 마를 캐는 아이 이런 수준으로 격하된건 동성왕을 미워했던 백제인들의 기록이 큰 영향을 미쳤을거고.. 김부식은 잘 모르겠네요. 몰라서 모른다고 한건지 알면서도 모른다고 한건지는.. 다만 신채호 선생님께서는 동성왕이 한국 고대사에서 가지는 의미를 정확히 알고 계셨다는...( 이 부분은 제 책을 참고하세요 ^^)
아 오랜만에 역사 이야기를 하니 무지 길어졌네.. 근데 이를 우야모 좋노.. 본론인 “ 결국 본本 모도, 마루, 모지 이런 것들은 고조선까지 연결이 되고 천부경 광명이세 이렇게 연결된다는 것 이야기도 몬 꺼냈네...T-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