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한국문학전집’ 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뉴스 라이브러리속의 모던 경성]1930년대 전집 출판 봇물…문단 30년의 결실 ‘현대조선문학전집’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입력 2022.10.01
조선일보 1938년9월1일자에 실린 '현대조선문학전집' 광고. 제7권 희곡집 출간을 알렸다. 1,2집은 3판, 나머지는 재판을 찎었다고 소개했다.</figcaption>
1930년대는 문학전집(선집)이 쏟아진 시대였다. 잡지 ‘삼천리’의 ‘조선명작선집’(1936), 박문서관의 ‘현대걸작장편소설전집’(1937)에 이어 1938년 출간된 ‘현대조선문학전집’(총7권)은 한국 근대문학의 ‘정전’(正典)을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전집으로 손꼽힌다. 근대 문단 30년이 배출한 주요 작가와 대표작을 추려 한국 문학의 성과를 한자리에 모은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전집에 수록된 이광수, 나도향, 김동인, 박태원, 이효석, 이태준, 한용운, 정지용, 백석, 모윤숙, 김기림처럼 훗날 한국문학사에 굵직한 자취를 남긴 문인들을 당대에 평가해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이 전집은 단편소설과 시가(詩歌), 희곡, 평론, 수필기행 등 문학 전 분야를 망라했다. ‘근래 출판계에서 처음 보는 가장 대담한 장거’(백철, 조선일보 1938년3월11일) ‘조선 문단이 창시된 이래 이 전집 만큼 획기적인 대업은 따로 없었을 것’(김문집, 조선일보 1938년8월7일)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전집’에 수록된 작가와 작품들이 해방 이후 교과서에 실리는 등 한국 문학의 대표작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서 명성을 확인할 수 있다.
◇단편소설, 시가, 수필기행, 희곡, 평론 등 5개 분야
‘현대조선문학전집’을 낸 곳은 조선일보 출판부였다. 1938년2월 신문 한 개면을 털어 광고가 나갔다. ‘신문학30년의 총결산-전집 간행의 의기충천’이라는 굵직한 제목 아래 ‘현대조선문학전집’ 출간을 예고했다.총 7권 출간 계획을 밝히면서 3월초 제1회 배본을 앞두고 예약 신청을 받는다는 안내가 실렸다. 1920년대 일본 신조사 세계문학전집이 쓴 방식처럼, 신문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내고 예약을 받아 대량 판매했다. 전집은 단편집 3권, 시가집, 수필기행집, 희곡집, 평론집 각 1권씩으로 그해 3월부터 9월까지 차례로 출간됐다.
조선일보 1938년2월3일자에 실린 '현대조선문학전집' 출간 광고. 이 전집은 해방 후 중고교 교과서에도 수록 작품들이 실리면서 한국 문학의 정전 역할을 했다.</figcaption>
◇단편소설 35명, 시가집 33명...
전집에 수록된 작가는 단편소설 35명, 시가집 33명, 평론집 12명, 희곡집 6명, 수필기행집 16명이다. 작품 수로 보면 단편소설 37편, 시가집 174편, 평론집 18편, 희곡집 7편, 수필기행집 18편이다. 수록 작가는 아래와 같다.
1권 단편집(상): 이광수 나도향 박화성 이태준 김유정 박태원 장덕조 엄흥섭 이기영 이효석 이석훈
2권 시가집: 주요한 이광수 양주동 김동환 이은상 한용운 정지용 김억 박팔양 임화 이병기 김정식(소월) 박종화 김오남 백석 모윤숙 김광섭 김기림 노천명 김상용 박용철 신석정 김일 김동명 김영랑 주수원 조벽암 임학수 김형원 이상화 변영로 오상순 이장희
3권 단편집(중): 김동인 장혁주 전영택 한설야 함대훈 이상 안회남 방인근 백신애 한인택 이선희
4권 수필기행집: 이광수 안재홍 이은상 김동인 김진섭 정인섭 이태준 양주동 나도향 박화성 노자영 심훈 이원조 이선희 박태원 김자혜
5권 평론집: 박영희 양주동 최재서 이원조 김문집 유진오 정인섭 김남천 김환태 이헌구 백철 김기진
6권 단편집(하): 염상섭 주요섭 이무영 이익상 강경애 현진건 최학성 최정희 유진오 채만식 최명익 전무길 김말봉
7권 희곡집: 유치진 채만식 송영 홍로작 김정진 이무영
◇'전집’ 수록기준은?
‘전집’ 선정 기준은 뭘까. ‘전집’편찬에 누가 참여했고,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지는 명확한 자료가 없다. 전집에 서북 출신 작가가 많이 포함돼있고, 당시 조선일보엔 방응모 사장을 비롯, 서북 출신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서북 출신이 편집진에 많이 참여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유용태, ‘근대 한국 문학정전의 문학제도적 접근’ 298쪽)
하지만 이보다 더 주목할 것은 전집이 나오던 1938년 조선일보 출판부엔 이은상 주간과 함대훈 주임을 비롯, 노자영, 노천명, 윤석중 같은 문인들이 대거 포진했던 사실이다. 편집국에도 이헌구, 이원조 같은 문인 기자들이 활약했다. 문학전집 출간에 적격인 탄탄한 인맥을 갖춘 셈이다.
◇재판 이상 찍을 만큼 호조
‘전집’은 권당 350쪽 분량에 가격은 1원20전이었다. 분량이 지나치게 긴 작품은 자연스레 걸러졌다. 민간 신문에서 내는 문학전집인 만큼, 작품성과 대표성은 물론 상업성까지 고려, 독자들이 선호하는 작가와 작품을 골랐을 것이다. 실제로 이 전집은 상당한 판매량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제7권 희곡집 출간을 알리는 광고(1938년9월1일자)에 따르면, 1권 단편(상), 2권 시가집은 3판을 찍었고, 나머지도 재판을 찍었다. 당대 독자들이 전집 수록 작품의 문학적 성취에 동의했다는 뜻이다.
◇일제 검열로 수난겪은 문학전집
‘현대조선문학전집’은 첫째 권부터 일제 검열에 걸려 수난을 겪었다. 조선일보 1938년2월3일자는 전집 1권 내용으로 이광수의 ‘방황’, 김동인의 ‘동업자’, 이기영의 ‘묘양자’(苗養者)를 예고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1권에 수록되지 못했다. ‘조선출판경찰월보’ 제114호(1938년3월)에 따르면, 이 작품들은 현대 조선의 사회제도를 저주하고 조선인의 비애를 강조한다는 이유로 출판 금지 처분을 받았다.(유용태, ‘근대 한국 문학정전의 문학제도적 접근’ 309쪽) 결국 김동인은 1권에서 빠졌고, 이기영은 ‘묘양자’대신 ‘원치서’를 실었다. ‘시가집’도 일본의 조선 통치를 저주하고 민족의식을 고양한다는 이유로 검열당했고, ‘평론집’도 마찬가지였다.
◇여성 작가, 과감하게 발탁
주목할 만한 사실은 ‘전집’ 첫권부터 여성 작가들을 과감하게 발탁했다는 점이다. 이광수, 나도향, 이효석, 이기영과 함께 박화성(1903~1988)의 ‘한귀’(旱鬼), 장덕조(1914~2003)의 ‘창백한 안개’를 포함시켰다. 백신애, 이선희(이상 단편집 중) 강경애, 최정희, 김말봉(이상 단편집 하) 등 단편소설 분야는 물론, 2권 시가집에도 모윤숙, 노천명을 포함시켰다. 이전 문학전집에선 없던 일이었다. 여성 작가들을 작심하고 한국 문학 주역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문학평론가 강진호 성신여대 교수는 ‘현대조선문학전집’이 ‘시, 소설, 수필, 희곡, 평론에 이르는 문학의 전 장르를 포괄했을 뿐 아니라 대상 작가도 이광수, 김동인, 김소월에서 김유정, 이상에 이르는 당대의 중견과 소장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면서 ‘이런 사실은 이 전집이 정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강진호, ‘한국의 문학전집 현황과 문제점’ 153쪽, ‘문화예술’ 통권280호)고 했다.
◇물레방아, 봄봄, 메밀꽃 필 무렵 등 교과서 수록
‘현대조선문학전집’ 수록 작가와 작품은 해방 이후 중고교 교과서에도 수록됐다. 나도향의 ‘물레방아’, 이태준의 ‘복덕방’, 김유정의 ‘봄봄’,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 이상의 ‘날개’, 김동인의 ‘광염소나타’ 등이 대표적이다. 김소월, 한용운, 정지용, 백석 등도 교과서에 늘 오르내리는 시인들이다. 세월의 도전에 밀려 예전만큼 주목을 받지 못하는 작품도 있다. 하지만 80여 년 전 한국 문학의 정전(正典)을 만든 편집진의 안목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요즘 독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참고자료
유용태, ‘근대 한국 문학정전의 문학제도적 접근-’현대조선문학전집’을 중심으로’, ‘어문논집’ 제47집 2011,7
박숙자, ‘조선문학선집’과 문학정전들, ‘어문연구’ 제39권 제4호, 2011년 겨울
강진호, ‘한국의 문학전집 현황과 문제점’, ‘문화예술’ 통권280호, 2002.11
조선 뉴스라이브러리 100 바로가기
※'기사보기’와 ‘뉴스 라이브러리 바로가기’ 클릭은 조선닷컴에서 가능합니다.
#김기철의 모던경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