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8장 1절~ 5절
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언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마게도냐에서 디도를 만나 고린도교인들의 편지를 받고 바울은 기뻐하였습니다. 은혜 위에 선 고린도 교인들의 편지는 바울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위로가 되는 사람인가 되돌아봅시다. 은혜 위에 서지 못하면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근심하십니다.
교회와 성도에게 세상에 근심이 되게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기대를 가진 세상 사람들에게 이기적이고 자기만 아는 삶을 산다면 그들도 실망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말씀 앞에 온전히 사도록 합시다. 그 앞에서 내 생각 내 주장 내 의견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나는 죽은 존재입니다. 죽은 자는 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세상에 소망과 희망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죄에서 떠나 회개하며 은혜 위에 서야 합니다.
바울은 보고자 하였습니다. 디모데의 권면과 바울의 만남도 거부한 고린도교인과 관계가 끊어질까 근심하던 상황이었습니다. 마게도냐에서 8장 이후 바울의 기쁨과 변경된 계획에 대해 사도로서의 일을 해명할 수 있었습니다.
3차 선교의 목적인 구제헌금과 거짓사도들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주안에서 바울과 고린도교인들은 형제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는 모두가 한 형제라는 것입니다.
간증자는 은혜를 현재화하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언하는 것이요 내 자랑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성도의 교제 안에는 간증이 필요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이루심을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우리 모두 가운데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은혜 가운데 있으면서도 나의 은혜는 아니라고 마음을 닫는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내 삶 가운데 함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짜증 비난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를 확산할 수 없게 합니다. 각자 받은 은혜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6장에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주며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에게는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17장에 소동 가운데 급히 베뢰아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베뢰아 성도들이 다시 아뎀까지 피신시켰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유대인의 박해와 동족에게도 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박해와 혼란 속에서 기쁨이 있었습니다.
극심한 가난 중에도 풍성한 연보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박해받을 때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떠나는 자들이 있었으나 풍성한 나눔을 한 마게도냐의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 수 있었습니다. 여러 환경이 힘들지라도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것을 특권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나눔은 특권으로 여겨야 합니다. 특권을 나만 누리고 섬김을 받는 것으로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구제의 헌금을 고린도교회에서 먼저 시작하였습니다. 대흉년으로 인해 어려운 재앙의 순간에 교회는 서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거짓 사도들의 방해로 구제헌금을 모을 수 없었습니다. 극심한 가난과 어려운 가운데 있는 마게도냐 교회에 구제를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특권으로 여기며 참여하였습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였습니다. 헌심의 모습이 성도의 삶에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인들은 너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권면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은혜 위에 있는 사람만 가능한 것입니다. 참 생명과 기쁨 중에 있을 수 있습니다. 동일하게 부어주시는 은혜입니다. 은혜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묵은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먼저 드리고 위로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