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테토스는 서기 55년경에 태어났다. 출생 장소는 프뤼기아의 히에라폴리스였다. 그의 부모가 이름을 지어주었으며, "에픽테토스"는 그리스어로 "획득한"이란 듯이다. 그는 어린 시절을 로마에서 보냈으며, 네로의 해방노예이며 매우 부유한 자유민이었던 에파프로디토스 밑에서 노예로 일했다.
에픽테토스는 무소니우스 루푸스 밑에서 노예로서 스토아 학파 철학을 공부했다. 하나의 자료만이 주인인 에파프로디토스가 에픽테토스의 다리를 부러뜨려 절름발이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어서 정확한 사정을 확인하기 힘들지만, 그는 절름발이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좀 더 믿을만한 증언은 킬리키아의 심플리키우스의 것으로, 에픽테토스가 어린 시절부터 절름발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에픽테토스가 어떻게 노예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었는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결국 그는 자유민이 되었고 로마에서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서기 93년경 도미티아누스는 모든 철학자를 로마에서 쫓아내고, 결국에는 이탈리아에서 떠나게 했다. 에픽테토스는 그리스 에페이로스에 있는 니코폴리스로 떠났으며, 니코폴리스에 철학 학교를 세웠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제자인 아리아노스는 그의 밑에서 젊은 학생으로 공부했고(대략 AD.108년 경), 에픽테토스의 강의를 적은 공책을 바탕으로 유명한 "에픽테토스의 논쟁"을 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부 학자는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빌린 책들처럼, 아리아누스의 책도 에픽테토스가 썼다기보다는 아리아노스의 저술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리아노스는 에픽테토스를 힘 있는 연설가로 묘사하였다. 그에 따르면, "에픽테토스는 듣는 사람에게 에픽테토스가 느꼈으면 하는 것을 느끼도록 유도하였다." 뛰어난 이들이 그와 대화를 나누려고 하였고,[10]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그와 친하게 지내면서 니코폴리스에 있는 그의 학교에서 에픽테토스의 말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평생 별로 가진 것 없이 매우 검소하게 살았다. 그는 오랜 기간 혼자 지냈으며, 그러나 노년에 그는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의 자녀를 입양했고, 한 여성의 도움을 받아서 그 자녀를 길렀다. 에픽테토스는 서기 135년 무렵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