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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예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三道軒정태수
왕희지 집자성교서(集字聖敎書) 행서의 바이블
(왕희지 집자성교서 첫 페이지) ◈太宗文皇帝가.序文을 짓고. 弘福寺의 중 懷人은 晉나라 右將軍 王羲之의 글씨를 集字하다, 듣건데는 天地에 모양이있어 天은 덮고 地는 실어서 만물을 생성시키고,
(2페이지) 춘하추동의 四時는 모양은 볼수없으나, 춥고 더운 無形의 힘으로써 만물을 생육시킨다 하였다, 이런 까닭에 우러러 하늘을 보고 엎드려 땅을 살펴보면,아무리 凡庸한 사람일지라도 그 一端을 알수있지만, 음양의 이치를 밝게 깨우침은 賢人이나 哲人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천지가 음양에 쌓여있으면서도. 쉽게 알아볼수있는 것은 그 모양이 있기 때문이요,
음양이 天地에 充滿해 있으면서도, 알기 어려운것은 그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고로. 形像이 나타나서,徵驗(징험)할수있다면. 비록 어리석은 자라도, 의심하지 않지만, 형상이 나타나지 않으면,지혜로운 자라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것이다, 더구나, 불교는 虛를 숭상하고, 幽寂(유적)을 근본으로 하며, 만물을 크게 구도해서 十方을 맡아 다스리며, 威靈을 일으키면 上이 없고 神力을
눌러도 下가 없을 만큼. 深遠한.(작성중)
내가 제일 처음 여초 김응현 선생에게 사사받은것이 바로 왕희지 집자성교서다,
이 집자성교서는 말 그대로 왕희지 의 법첩중에서 글자를 모아,集字한 책입니다
임모본(모사하여 臨書를 함)을 했지만, 왕희지 글씨의 가장 중요한 지침서 이기도 하고, 서예인들이 가장 즐겨 배우는 것으로 제 1첩이 집자성교서라고 일컬을수 있습니다,
무려 25년간,,집자를 했다하니,,할말을 잏는 사건이 아닐수 없습니다,
唐의.승려 회인(懷仁)이라는 사람이.. 절에서,,하라는 설법은 안하고,, 672년에 세운 碑이며,,모두 집자를 해온,,회인의.. 임모 실력 또한 대단한 것이죠?
모두 1900여자 인데.. 행서를 처음 하는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 내용중에는, 이백이나 두보의 만남도 읽을만 하고,,
꼭 똑같이 쓰는 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결구와 조형의 상태를 자기것으로 만들어, 맘대로 휘갈기는것이 아닌,,
방필과 원필이 충분히 조화롭게 조형된 아름다움을 습득하기 바란다,, 詩,書.畵 삼절에 능하다기 보다는, 한가지에 능하여, 다른 두가지를 습득하는 방법또한, 어울림있는 예술세계에, 조화를 더 할수있지 안겠는가,,한다,
..찻잎 小考
왕희지의 행서로써 난정서 흥복사단비,그리고 성교서가 옛부터 유명할진데 後의 것은 왕희지의 書跡에서 집자한것이기 때문에 집자성교서라 일컽는다, 또한 王書를 모은것이기에 集王聖敎書라고도 불린다, 또한 비문의 머리에 일곱개의 부처문양이 새겨져있어"七佛聖敎書"라고도 한다, 碑의 제 1행에는 "大唐三藏聖敎書"라 題 되어있으나, 이것은 잘못명기 되어있는것이기에 바른 명칭으로 해야할것인데..일단 통칭에 따른다,
그러나 내용은 성교서와 당시 황태자였던 高宗의 述聖記 그리고 玄장(클장)의新譯으로된"반야바라밀다심경"의 세문장을 함께 刻한것이다,
여기에 성교서라고 하는것은 貞觀 22년(648) 8월 당의 태종이 현장의 再次에 걸친 懇請에 의해 그 新譯의 經論에준 序文으로써 태종 스스로 붓을 들어 이것을 寫하고 諸經의 머리에 씌웠다
碑에 刻한 蓋聞에서 "永大에 이르는 781字 그것이다,
(자료출처 : 찻잎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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