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곡백과 무르익는 결실의 계절 가을이 찾아왔다. 무엇을 해도 기분 좋은 적당한 기온의 계절이다. 가을이 오면 대한민국 산하는 더욱 아름다워진다. 멀리 갈 필요없다. 짧아서 더욱 아쉽고, 귀하게 느껴지는 이 가을에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남겨보자. 여행 마니아들이 추천해 준 12곳 국내 여행지에서 무르익어 가는 가을의 정취를 느껴본다. (편집자 주)
단풍과 낙엽의 계절이 돌아왔다. 설악산, 지리산, 내장산으로 단풍유람에 나서려니 거리가 멀고 비용이 만만치 않아 떠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가까운 북한산은 단풍은 곱지만 인파에 시달리다보면 혈압이 머리끝까지 올라온다. 조용하면서도 걷기 좋고 저질체력에 맞는 단풍길이 없을까?
지하철패스 한 번만 긁으면 갈 수 있는 곳, 서울대공원 삼림욕장을 추천한다. 청계산 북서쪽 기슭에 자리해 사람에 치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경사가 완만해 걷기에 부담 없다. 3시간 동안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름다운 비밀의 숲길을 걷고 나면 박하사탕을 입에 문 것처럼 가슴이 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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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근교 비밀 숲길인 서울대공원 산림욕장. |
‘아름다운 숲길’ 에 선정된 서울대공원 산림욕장
청계산의 천연림 속에 조성된 삼림욕장은 서울대공원 둘레길 코스로 보면 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어우러진 오솔길은 8㎞, 5개 구간과 11개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시작은 동물원 정문을 지나 왼쪽 산림전시관 뒷편과 호주관 뒤편 두 곳에 입구가 있다. 어느 곳부터 시작해도 부채꼴 모양으로 동물원 정문과 연결된다.
동물원을 가운데 두고 청계산의 4부 능선을 휘감아 돌게 되는데 아카시아숲, 밤나무숲, 소나무숲 등 수종별로 5개 구간으로 나눠지며 자연과 함께하는 숲, 얼음골 숲, 생각하는 숲, 쉬어가는 숲 등 11개의 주제를 품고 있다. 짧게는 50분, 길게는 2시간 30분정도 체력과 구미에 따라 다양한 선책이 가능하다. 거기다 남미관, 저수지, 맹수사 등에 샛길이 나 있어 자신의 체력에 따라 언제든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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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 구간과 11개의 주제를 가지고 있는 서울대공원 산림욕장. |
삼림욕은 초여름부터 늦가을이 가장 좋으며 오전 10시부터 12시 사이에 나무에서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온다. 숲속의 공기를 직접 피부와 접촉해야 삼림욕 효과가 있으니 아무래도 통기가 좋고 땀 흡수가 잘되는 옷을 입는 것이 좋다.
산림전시관 뒤쪽 생태로 입구에 들어서면 솔숲이 반긴다. 아이가 태어나면 금줄에 소나무가지를 걸어 놓는데 이는 송진에 병균을 물리치는 살균력이 있기 때문이란다. 예쁜 오솔길을 따라가면 밤나무 숲이 나온다. 밤나무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다른 나무들을 돋보이게 하는 미덕을 갖추고 있는데 낙엽이 두꺼워 바닥은 융단을 깔아놓은 것처럼 푹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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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운치를 더해주는 낙엽길. |
곳곳에 산막과 벤치가 놓여 있어 간식 먹기에 그만이다. ‘독서하는 숲’은 자연의 숨소리를 들으며 책 한권 읽기에 좋도록 꾸며졌다. 벤치 앞에 구상, 김현승 등 유명시인의 시가 걸려 있어 울긋불긋한 가을 단풍아래서 명시를 감상하게 된다. 저수지 샛길부터 약수터까지는 황토로 덮여 있어 땅의 기운을 느낄 수 있도록 맨발로 걸는 것을 권한다. 부드러운 감촉이 발바닥에 전해온다.
8km 길의 딱 반인 ‘쉬어가는 숲’에서는 걸어왔던 길을 한번 되돌아보며 자신의 인생을 반추해 보는 자리다. 약수 한사발로 목을 축이고 다시 걷다보면 사색의 공간인 ‘생각하는 숲’이 나온다.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앉아 숲을 마주해 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청계산의 맑은 물이 지나가는 얼음골은 한여름에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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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숲에 조성된 약수. |
계곡이 깊고 천연림으로 이루어져 숲에서 발산하는 테르펜이 날아가지 않아 피톤치드의 효과가 큰 포인트다. ‘자연과 함께 하는 숲’은 아카시아 나무가 무성한데 식물이름과 특성이 적힌 표찰을 달고 있어 아이들 생태공부에 도움이 된다. 마지막은 ‘선녀못이 있는 숲’이 피날레를 장식한다. 대공원이 조성되기 이전에 마을이 있었는데 이 동네 아낙들이 낮에는 빨래를, 밤에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목욕을 했던 연못이다. 못골산막에서 잠시 다리품을 팔며 쉬었다가 삼림욕로를 따라 내려가면 동물원 외곽순환길과 연결된다.
추억의 단풍길, 동물원 외곽순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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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의 단풍이 유혹하는 동물원 외곽순환길. |
8km의 산림욕장이 부담스럽다면 동물원을 감싸고 있는 순환길을 걸어보라. 널찍한 아스팔트길은 차가 다니지 않아 사랑하는 연인과 제대로 된 가을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이왕이면 바바리 깃을 세우고 맘껏 폼을 잡으면 내가 바로 모델이 된다. 동물원 정문에 들어서 왼쪽 연못 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순환길 시작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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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단풍이 많아 유난히 화려한 단풍길인 동물원 외곽순환길. |
5km 순환길 내내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형형색색의 단풍이 유혹하며 발목이 푹푹 빠질 정도로 낙엽이 풍성한 길이다. 입구부터 맹수사까지는 잎이 작은 애기단풍이어서 유난히 고운 빛을 낸다.
조절저수지광장에는 시인 서정주의 시비가 있어 잠시 머물며 명시를 음미해도 좋다. 조절저주지부터 남미관까지는 켜켜이 쌓인 낙엽이 볼만한데 레드카펫을 거니는 것처럼 촉감이 좋다. 시원스레 내뻗은 길, S자 모양의 길, 오메가 형상의 길 까지 변화무쌍한 길이 이어져 지루할 틈이 없다.
‘서울시 아름다운 단풍길’에 선정되어 11월 말까지 낙엽을 치우지 않아 가을의 운치를 느끼기에 좋다. 순환길 끝자락은 영화 <미술관옆 동물원> 촬영장소인 금붕어 광장이다. 희귀동물들이 사는 남미관 옆에 자리하고 있다. 정자와 벤치가 있어 단체여행객이 머물다가기 좋다.
다람쥐 광장에는 노천명의 시비가 서 있으며 동물모양의 놀이기구와 조약돌 냇가가 있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소다. 계곡 맞은편에 위치한 동양최대의 큰물새장은 황새, 고니, 두루미 등 멸종위기의 희귀조류 300마라가 서식하고 있는 초대형 새장으로, 최근에 내부를 개방해 인기가 높다. 동물원내 무료 셔틀버스에 오르면 생태 전문가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동물원 구석구석을 둘러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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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촬영지이기도 한 동물원 외곽순환길. |
미술책에 등장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책에 나온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은 그 내용도 좋지만 가을 분위기가 물씬 묻어 나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최고다. 인근 경마공원, 서울대공원, 서울랜드 등은 인파로 넘쳐나지만 이곳은 한적하고 운치 있어 미술품을 감상하기에 좋다.
입구에 들어서면 비디오아트 창시자인 백남준 작가의 '다다익선'아트작품을 만나게 된다. 1988년에 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작품으로 1000여개의 모니터를 사용하고 있다. 지상 1층부터 4층까지 나선형 감상통로를 이용해 위층에 올라가도록 꾸며졌다. 2층의 3, 4전시실은 1950년대 이후 우리나라 미술사에 족적을 남겼던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3층의 5전시실은 드로잉작품과 70년대 이후 작품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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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야외조각공원. |
아이를 동반했다면 어린이 미술관(02-2188-6137)을 놓치지 마라. 직접 그림을 그려보고 재미있게 놀면서 미술과 친해 질 수 있는 공간이다. 야외는 거대한 조각공원으로 조너선 브로프스키의 <노래하는 사람> 둥 60여점의 작품이 가을을 수놓고 있다. 나무 벤치에 앉아 단풍을 감상하거나 낙엽이 깔인 오솔길을 거닐어도 좋다.
*국립 현대미술관 여행팁: 매주월요일 휴관하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문가가 작품을 설명해주는 작품설명회를 운영한다.(12:00, 14:00, 15:00, 16:00, 17:00) 지하철 4호선 경마공원역에서 무료 서틀버스가 운행된다. 문의: 02-2188-6000
청계산 맑은 물소리 들으며 하룻밤, 서울대공원 자연캠프장
캠핑 열풍이 불고 있다. 그러나 텐트를 장만하고 장비를 준비하려니 경비가 만만치 않다. 서울대공원 자연캠프장은 이런 걱정을 잊게 해준다. 데크마다 텐트가 쳐 있고 고기를 굽는 그릴이 있으며 침낭까지 빌려준다. 매점에 삼겹살과 라면까지 팔고 있으니 부담 없이 야영을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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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와 장비를 갖추고 있는 서울대공원 자연캠프장. |
자연캠프장은 현대미술관 주차장 안쪽에 숨어 있다. 체력단련장과 등산로를 갖추고 있으며 서울랜드가 가까이 있다. 그러나 차를 주차장에 대고 짐을 옮겨야 하는 수고는 해야 한다. 텐트대여료는 1동당 1만5천원, 성인 2천원, 청소년 1,500원의 입장료를 별도로 내야하며 주차비는 8천원이다. 개인텐트, 천막 등은 설치할 수 없다. 숯불 이용시 반드시 그릴을 사용해야 하며 11월 말까지 이용할 수 있다.(문의:02-500-7878 http://grandpark.seoul.go.kr)
●여행정보
-교통
서울대공원과 현대미술관은 지하철 4호선 대공원역 대합실에서 5번 출구 대공원역에 하차해 코끼리 열차를 타면 동물원까지 올라갈 수 있다. 승용차는 서울대공원주차장(1일 4천원)에 주차할 수 있으며 현대미술관(1일 1만원)에 주차하면 도보 3분이면 동물원까지 갈 수 있다. 미술관안내센터에서 도장을 받으면 2천원을 할인받을 수 있다.
-맛집
국립 현대미술관 2층에 자리한 '라운지d' 에 들어가면 볶음밥, 피자, 파스타, 샌드위치 등 다양한 음식과 차를 맛볼 수 있다. 은은한 갈색톤의 조명과 넓은 넉넉한 실내 분위기가 미술관과 어울리며 야외 테라스가 있어 단풍을 즐기며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라운지 식당에 자리가 없으면 1층 구내식당에 가면 저렴하게 백반(3500원)을 먹을 수 있다.
글·사진/이종원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