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행방을 찾아 강계 땅을 헤메고 다닐 때 수월은 우리에게 또 한차레
엄청난 그의 수행력을 보여주는데, 그 이야기는 이렇다.
수월이 강계에 있는 어느 절에서 열 명 남짓한 대중과 함께 머물때의 일이다.
때는 추운 겨울밤이었는데, 갑자기 총 칼로 무장한 비적들이 쳐들어와서 돈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겨우 탁발로 끼니를 때우는 가난한 절인지라 내놓을 만한 돈이 한 푼도 없었다.
비적들에게 사정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화로에 숯불을 피우고 긴 칼을 박아 달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대중을 모두 대들보 위에 거꾸로 매달았다.
빨갛게 달군 칼로 몸을 지지기 위해서였다.
비적들은 이것을 "불침"이라고 불렀는데, 불침 맛을 보아야 돈을 내놓는다는 것이었다.
나라가 어지럽던 그 무렵, 어디가나 이런 비적들이 떼지어 다녔다.
이런 비적떼들 중에는 스스로를 의병이라 속이고는 백성을 괴롭히는 경우가
허다하여 의병들도 여간 애를 먹는 게 아니었다.
평양은 청일전쟁이 끝나자 팔만 명이던 인구가 만오천 명으로 줄었고,
집도 다섯 집 가운데 네 집꼴로 부서졌는데, 이것은 청나라나 일본 군대들이
저지른 일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비적들이 한 짓이 더 많았다는 말까지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라를 망치는 적이 밖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 말 없이 대들보에 매달려 있던 수월이 입을 열었다.
" 내가 이 절의 책임자여. 이 절 돈은 내가 모다 관리 하니께 그 불침은 나한테나 주지 그랴 "
덕분에 대중들은 한 차례씩만 불침을 받았으나, 수월은 무려 일곱 차례나 불침 맛을 보아야 했다.
아무리 지져도 작은 신음소리마져 내지 낳는 수월이 너무나 신기했던지
비적들은 일곱차례나 지져대며 수월의 얼굴빛을 살폈다. 수월은 태연했다.
마치 잠들어 있는 아이의 얼굴처럼 어떤 고통도, 어떤 원망도 찾아볼 수 없었다.
비적들은 난생 처음 적정의 본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 셈 이었다.
망상 한 줄기도 떠오르지 않는 수월의 얼굴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밑 없는 침묵이었고,
이 침묵은 맑디맑은 거울이 되어 비적들로 하여금 그들의 어두운 삶을 비추어 보게 했다.
그런 불가사의한 수월의 모습 앞에서 비적들도 끝내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때 수월의 나이 환갑을 앞둔 쉰일고여덟쯤이었다.
불침의 독기는 참으로 무서웠다.
대중 모두 이레가 넘도록 몸져누운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수월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생활했을 뿐만 아니라 나무하고 탁발도 해서 몸져 누운 대중을 정성껏 보살폈다.
수월의 이런 보살핌이 없었다면 많은 대중이 몸을 못 쓰게 되거나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한다.
출처 - 물 속을 걸어가는 달 - 학고재 - 김진태지음
첫댓글 녜~ 조금은 알겟습니다.느낌으로^^부처님이신듯...
그렇게 마음속으로 느끼시면 됩니다 ..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