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C 산타바바라 대학에서 가까운 Coleta Beach>
드 넓은 바다, 태평양을 바라 보면서 나는 또 다시 나를 바라본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 너무나 편하고 즐겁지만 조그만 차안 분위기는 업 다운을 반복한다.
동부로 떠난 첫 번째 여행은 설레임과 기대 때문에 떠나기 바빴고 느끼는 것으로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하지만, 동부여행 이후 나는 버릇처럼 짐 꾸러미에 마음의 짐 꾸러미 하나를 더 챙겼다. 아집을 버리는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
시간적 여유에서 얻은 공간적 자유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조건이었다. 한 봄날 캠퍼스에서 운명처럼 만난 아내, 생각만 해도 안스러운 내 아들, 그들을 나의 잣대로 재단하려 했던 집착, 그러나 늘 감성 과잉에 이성이 자리를 내주고 만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그 짐 꾸러미는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도 운명처럼 지고 있다. 하늘을 짊어지고 있는 아틀라스 처럼. 그렇지만 다행스럽다. 자신을 돌아본다는 말이 사치로 여겨질 만큼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 그 곳이 아닌 미국에 있으니까,
시간으로부터 해방된 미국에서 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인이 되고 싶다. 산타 바바라 해변에서 이런 상념에 빠졌지만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뒤 플로리다에 가서도 놓지는 못했다.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었을까?
2009년 11월 28일 US-101 고속도로를 밤 세워 달려 늦은 밤 샌프란시스코과 로스엔젤레스의 중간쯤에 있는 작은 마을 산 미구엘(San Miguel)에서 여장을 풀고 하룻밤을 잤다.
산타 바바라에 도착한 것은 산 미구엘을 출발한 지 3시간만인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 점심을 먹기 위해 해변의 피크닉 테이블을 찾는다고 찾아간 것이 UC Santa Barbara 캠퍼스.
그래서 차를 돌려 다시 찾아간 곳이 'Coleta Beach'였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따스하게 내려쬐는 태양빛이 바닷물에 반사돼 반짝이고 태양열에 데워진 태평양에선 훈훈한 해풍이 부드럽게 불어온다.
비치의 왼쪽 끝으로는 다리가 길게 바다 중간까지 뻗어 나가 있고 반대 방향은 곶이 바다 속으로 돌출돼 해변은 초승달 처럼 둥글게 2~3마일에 걸쳐 뻗어 있다. 비치 뒤 쪽으로는 가늘고 높게 뻗어 올라간 야자수 조경이 이국적인 정취를 풍기는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유난히 모래장난과 해변에서의 물장난을 좋아하는 준석이, 점심을 먹자마자 바로 해변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물에 넘어졌는 지 흠뻑 젖은 채 우리 부부가 점심을 먹고 있는 피크닉 테이블로 돌아왔길래 “조심하지 않고 빠졌다”고 대뜸 혼을 냈는데 가만히 나중에 생각해보니 혼을 낸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다.

아마도 격해졌던 것은 준석이가 내 말에 대꾸를 빨리 해주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준석이가 때로는 늦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참지 못한 것은 나였다. 하나 뿐인 내 아들 준석이는 어려서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귀하게 컸다.
그러나 아이가 나이가 들수록 응석받이로 둬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처음엔 다분히 의도적으로 혼내줬지만 점차 빈도가 늘어났던 것 같고 그것이 아빠를 좋아는 하되 무서워하는 원인이 된 것 같다.
나는 느끼지 못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준석이에게 더 많은 것을 기대했던 아빠의 이기적인 마음이 컸던 것 같기도 하다. 아이의 모습 그 자체를 사랑해 주지 못하고...
오래 전 읽은 책 ‘나의 라디오 아들’이란 자기고백적인 어머니의 육아이야기 책이 떠오른다. 귀하게 낳은 아이가 커 가면서 말도 제대로 못할 뿐아니라 보통의 아이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갖게 되는 실망감,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행동해주기를 바라는 어머니가 아이를 키우면서 겪게 되는 인간적 갈등과 어려움,
부부의 이혼까지 감수하는 힘든 노력 끝에 아들을 정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해 결국 모자가 행복을 찾아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준석이는 올해로 13살 곧 사춘기가 닥칠 나이다. 생텍쥐페리가 어린왕자에서 부드럽고 열린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 처럼 더 늦기 전에 아이 눈높이로 내려가는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우리 가족은 ‘다시’ 분위기가 업 다운을 반복하는 차안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로스엔젤레스를 향한 즐거운 여정을 이어갔다.
산타 바바라에서 40~50마일 가량 남쪽에 있는 Oxnard로부터 Malibu, Santa Monica까지 계속되는 'Santa Monica Mountains National REC. Area'에 접어들면 4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산타모니카 산맥이 태평양과 마주보며 뻗어 있는 해안절경이 장관이다.
워낙 경치가 아름답고 자갈과 굵은 바위로 덮인 해변이 이색적이기도 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산타모니카 산맥은 높이가 불과 100여 미터에 지나지 않고 산의 높이도 고르기 때문에 산맥이란 말보다는 해안 단구(段丘)란 말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산이 비바람에 깎이고 패인 지형이 군데군데 점처럼 찍힌 숲과 어울려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내고 어떤 산에는 사구아로를 비롯한 선인장이 숲을 이루고 있어 사막과 바다가 공존하는 멋진 시닉 뷰를 만들어 낸다.



산타모니카 산 위에 길죽한 흰색으로 보이는 것이 사구아로.

산맥과 바다 사이로 도로가 보인다
이 지역에 헐리우드 스타는 물론이고 미국 갑부들의 초호화판 저택들이 해안선을 따라 빼곡하게 이어져 있는 Malibu해변이 있다. 말리부는 옥스나드로부터 20마일, 로스엔젤레스 시내에서는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10여 마일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 곳 지형은 이렇다.
산타모니카 산맥이 병풍 처럼 서 있고 그 앞으로 태평양과 평행하게 도로가 나 있는데 도로를 따라 저택들의 대문이 죽 보인다. 도로에서 대문을 들어가면 저택 안마당이 시작되고 저택을 지나 바로 해변이 있는데 저택에 딸린 해변은 모두 Private Beach여서 일반인이나 관광객들은 들어갈 수 없을 뿐 아니라 해변을 볼 수 조차 없다.
저택 주위에는 야자수와 아열대지역 수목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고 수 마일쯤 되는 별장촌 사이로는 해안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하나도 없다. 부자들 만을 위한 철저하게 독립된 공간이다.
LA를 기준으로 북쪽으로 올라가다 말리부 해변이 시작되는 지점에 해안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어 들어가 봤지만 별장내부나 해변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말리부 관광을 끝으로 만 3일에 걸친 로스엔젤레스 관광에 마침표를 찍었다.
산타모니카에서 시작되는 인터스테이트 10번 고속도로를 타고 30시간 이상 걸리는 미주리 콜럼비아로의 귀가길에 올랐다. 아이 학교 때문에 마음이 급하긴 했지만 로스엔젤레스 교외 Palm Springs에 있는 프리미엄 아웃렛에 들러 가족과 지인들에게 나눠줄 선물 쇼핑을 하는데 미국 땅 한 가운데서 영어에 이어 한국말 안내방송이 나와 적잖이 놀랐다.
캘리포니아는 과거 스페인, 멕시코의 영토였기 때문에 영어 이상으로 스패니쉬가 통용되고 있는데 영어 다음에 한국어가 나와 반갑기도 하고 ‘왜일까’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LA에는 엄청난 수의 한국교포가 다운타운 근처 Wilshire Blvd주변에 코리아 타운을 형성하고 살고 있고 한국인들의 명품사랑이 남다른 점을 감안하면 특별히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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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이 키우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그 나름의 세계가 있는데 부모들은 그것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자기들 잣대로 아이들을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고, 또는 이해하더라도 기대심과 이기심이 앞서서 그렇게 행동을 하지. 인생은 큰 틀에서 봐야 하는데 자꾸 눈 앞에 것만 보게 되고...
니 말이 딱 맞다. 대구지부 발령 축하한다. 금세 적응될거다 걱정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