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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13차(유둔재 → 북산 → 무등산 → 안양산 → 둔병재)
2006년 1월 21일(토요일) 맑음
▶ 개요
-. 04:10 울산 반구동 로터리 출발
-. 07:52 유둔재 도착
-. 08:05 유둔재 출발
-. 08:47 447.7봉(삼각점)
-. 09:27 백남정재
-. 10:29 북산(782m)
-. 10:59 꼬막재 갈림길
-. 12:00 규봉암
-. 12:35 장불재
-. 12:55 입석대
-. 13:15 서석대 갈림길
-. 13:37 장불재 원점
-. 13:55 백마능선 시작 (중식)
-. 14:45 중식 후 출발
-. 14:55 암봉
-. 15:10 능선 삼거리 이정표
-. 15:27 안양산
-. 15:55 둔병재(금일 정맥 도상거리 : 12.9km)
-. 16:30 화순읍 도착
-. 17:30 광주 문흥동 도착(보석 찜질방 숙박)
▶현재까지 호남정맥 종주 총 도상 거리 : 195km(사람과 산 종주 지도집 참조)
▶산행기
-. 04:10 울산 반구동 로터리 출발
-. 07:52 유둔재 도착
또 한 번 애마와 기수의 변신이다. 오늘은 성안형님이 당신의 애마 겔로프를 제공하고 스스로 기수까지 자청했다. 철수가 회사의 특수 보직을 수행하느라 공석을 하나 만들었지만 계획된 정시에 출발을 한다(04:10). 그러나 걱정도 된다. 우리의 영원한 첨병 철수 없이도 알바를 하지 않고 마루금을 잘 이어갈 수 있을까?
지난번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사전 경유지를 확인하고 눈을 감는다. 섬진강 휴게소에 들려서 우동과 준비한 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호남고속도로 창평 나들목을 통해서 60번 지방도로와 만나서, 광주 쪽으로 잠시진행하다 고서면 4거리에서 좌회전하여 887번 지방도로에 올린다.
광주호를 오른쪽에 끼고 달리니 지난번 12주차 산행시 등로에서 이정표를 통해서 만났던 ‘가사문학관’과 ‘소쇄원’앞을 지난다. 오늘 산행을 마치고 광주로 돌아갈 때 내려서 둘러보면 되겠다 싶다. 남면소재지를 통과하고 꼬부랑길 오르막을 유연하게 올라서 만디에 당도하니 유둔재이다(07:52).
-. 08:05 유둔재 출발
참고래 전사 3명을 오늘의 들머리에 세우고 사진기의 셔터로 출발을 알리는 총성으로 대신하고 쌍지팡이를 씩씩하게 휘둘리며 오솔길을 오른다(08:05). 지난차주 산행을 마치고 택시를 기다릴 동안 젊은 부부가 산책을 나섰던 길이다. 우린 그 길을 대단한 탐험가 마냥 배불리 채운 배낭을 메고 의기양양 나선다.
-. 08:47 447.7봉(삼각점)
완만한 오르막으로 잠시 오르다 봉우리 하나 두고 왼쪽으로 휘어지며 다시 골짜기로 내려간다. 분위기상 정맥의 마루금이 맞나 라고 의심이 들 정도이다. 소나무 숲 속에 소로가 서로 엉기는 안부를 지나니 왼쪽에 자창마을이 지척이다. 경사는 심하지 않으나 어김없이 가시덤불이 더욱 기성을 부린다. 여름 녹음 철에는 산행을 하겠나 싶다. 삼래와 투덜대며 봉우리에서니 좁은 정상에 참나무가 울창하고 ‘독산 449 1989 복구’삼각점이 있는 447.7봉이다(08:47). 잔설로 흰 모자를 썬 듯 한 무등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 09:27 백남정재
여긴 아예 장애물 경기장이다. 희미한 등로에 가시덤불뿐이다. 가파르게 내려서니 묵은 임도이고 왼쪽으로 따르니 왼쪽 등성이에서 내려서는 고속도로(?) 수준의 등로와 만난다. 이 좋은 길을 나두고 우린 가시덤불 미로에서 조금 이탈을 했나보다.
임도를 계속 따르다 49번 철탑 아래를 지나서 오르막이 시작된다. 손목고도 425봉을 넘어 농장의 농로를 지나며 남진하던 등로의 방향이 서진으로 바뀌고 조리 대나무 숲을 왼쪽으로 틀면서 가파르게 내려서니 협소한 안부에 소로가 가로 지르고 지나간다. 둔덕으로 올라서니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요란한 백남정재이다(09:27). 이제 사람이 넘나든 흔적은 없어 보이나 지도상 왼쪽의 무동리 수구촌과 오른쪽의 경상리를 연결하던 재이다.
-. 10:29 북산(782m)
임도 사거리 안부를 지나 본격적 오르막이다. 점점 경사가 가팔라지며 너덜지대를 지나고 오르막이 쉬 끝나지 않을 분위기다. 용 한번 쓰고 바위가 듬성듬성 자리한 평평한 손목고도 660봉에서 선두가 쉬고 있다. 삼래님의 집사람이 마련해준 머리통만 한 사과를 하나 먹고 나니 배가 벌떡 일어난다.
오른쪽으로 90도 꺾기며 잔솔밭을 내려서면 헬기장이고 여기저기 쇠똥 무더기가 갈잎 진 잔디밭에 나 뒹굴고 있다. 철사 줄 울타리를 따라 다시 오르막이다. 허긴 호남의 명산인 무등산의 알현이 힘 안들이고 쉬 이루어 질 리가 있겠나.
또 용트림 한번 하고 올라서니 북산(782m 10:29)이다. 돌담을 두르고 통신 시설이 있고 ‘독산 451 1996 재설’삼각점이 작은 돌탑과 같이 있다. 아침에 지나왔던 광주호의 물빛이 옥색이고 지나온 마루금도 또렷한데 무등의 위용 인지 바람은 점차 거세진다.
-. 10:59 꼬막재 갈림길
검은 빛을 띤 바위가 선 신선대이다(10:39). 신기하게도 꼭대기 비좁은 공간에 동그란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망자가 무척이도 신선이 되고자 했나보다. 그리하여 지금은 신선으로 살고 있을까? 어디 누군들 신선이 되지 않고 싶은 사람 있겠나? 허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니 외롭지는 않겠다.
푸른 소나무를 따라 내려서니 여기도 철사 가닥으로 경계를 둘러놓았고 농로가 지나가는 평평한 안부다. 맞은편 임도를 따라 부부가 내려온다. 처음 조우한다는 반가움에 앞선 회장님이 소리도 크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이제 담양과도 이별이다. 정맥의 마루금은 여기서부터 화순 땅을 한참 지날 것이다. 그리 가파르지는 않지만 속도를 내지 못하겠다. 억새가 장관이다. 그 사이로 눈이 빙판으로 변한 미로를 따라 나아간다. 임도를 가로지르고 북봉을 바라보며 억새 속으로 내쳐 오르지만 잔설 속에 미로조차 사라지고 없다. 마침 지나온 임도를 따라 한패가 지나간다. “북봉으로 가는 길이 어디입니까?” 회장님이 소리치지만 그네들은 듣지를 못했는지 대답이 없다. 경상도 사투리라 알아 묵지 못하나? 뒤돌아 내려와 임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조금 나아가니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나타나고 등로는 산책로로 변한다. 그제야 이 길이 정상을 점령군에게 넘겨주고 오르지 못하여 우회하여 꼬막재로 올라 장불재로 가는 등로임을 알아챈다.
-. 12:00 규봉암
이곳 등로에는 아직도 유달리 눈이 많이 쌓여 있다. 녹았다 다시 얼고 하여 매우 미끄럽다. 그러나 지나온 등로를 생각하면 여긴 고속도로이다. 광일목장 후문 이정표(장불재 3.9km 관리사무소 4.4km)를 지나서 부터는 오고가는 산님들을 만나며 외로움을 던다. 휴일이 아닌 토요일 이지만 생각보다는 산님들이 많다.
지도를 펼쳐놓고 간식을 먹으며 양지쪽에 앉아서 휴식을 한다. 회장님이 코팅한 지도가 신기했던지 아저씨 한분이 다가와 고개를 내밀며 “꼬막재는 어디쯤에 있습니까?”그사이 그분의 일행들이 모여든다. 순천에서 친구들과 동부인으로 왔으며 관리사무서에서 출발 했으며 꼬막재로해서 장불재로 가고 있단다. 회장님의 친절한 설명과 우리들의 행장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줌마 한분은 “그러면 아저씨들이 전문가네”하신다. 그분들이 먼저가시고 회장님에게 물었다. “오늘따라 웬일로 그리도록 친절한교? 아줌마라서 그런교?” “야야 한사람이라도 꼬셔나야지 언제 우리랑 대간이라도 함께할 줄 모른다 아이가!”변함없이 성안형님이 마련한 고구매에 찐 계란으로 점심이 늦어질 것 같아 요기를 단단히 하고 일어난다.
한 모퉁이 돌고나니 본격적 너덜지대이다. 눈이 쌓여있어서 여간 조심이 되지 않는다. 바위위에 걸터앉아 어린아이와 간식을 먹고 있는 아빠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규봉암 20미터 전 이라며 이정표가 있다. 너덜지대를 가파르게 오르니 바위 절벽 위에 ‘무등산 규봉암’종루가 버티고 있고 돌계단으로 올라서니 불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 어수선하다. 바위 절벽아래 석간수로 목을 적시고 물병에 담아서 내려온다.
-. 12:35 장불재
규봉암을 내려서서도 너덜지대는 계속된다. 바위 단면에 검은 페인트로 ‘석불암’이라며 화살표로 표시를 해두었다. 그 길로 나를 제외한 우리 일행이 내려선다. 난 올랐던 종루로 되돌아 내려왔는데. 그러면 규봉암위에 또 석불암이라고 있나? 아님 석불사 규봉암이가?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너덜지대를 진행하니 오른쪽으로 참나무 가지에 ‘복원불사 기도도량 석불사’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고 그 아래 작은 표찰로 석불암 입구라고 달려있다(12:13). 여기가 진짜로 석불암 입구인 갑다.
이 등로는 무등산의 정상을 오른쪽에 두고 크게 우회하는 형국이다. 회장님은 북봉으로 해서 정상을 철조망 통과라도 해서 갔어야 했다며 못내 아쉬워한다.
너덜지대도 끝이나니 점점 인기척이 많이 나더니 억새의 군락사이로 휴식 공간이 만들어 져 있고 많은 산님들이 끼리끼리 모여 점심을 먹고 있다. 그러다 보니 쓰레기들도 많아 안타깝다. 주말 등산객이 많이 찾는 근교 산행코스라 그러나 보다. 조형물 같은 방송 송신탑을 올려다보며 협곡을 오르듯 마저 올라서니 광활한 운동장 같은 장불재가 펼쳐지고 반짝이는 억새의 조명에 사진으로만 보았던 입석대, 서석대가 웅장한 무등산이 내려다보고 있다(12:35).
-. 12:55 입석대
-. 13:15 서석대 갈림길
-. 13:37 장불재 원점
진창길로 변한 등로를 따라 많은 산님들이 오르내린다. 백마능선으로 곧장 해 달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이제 가면 언제 또 일부러 무등산을 오겠냐며 우리도 입석대로 향한다.
특이한 형상의 검은 돌들이 세로로 서있다 해서 입석대 인가 보다. 우리만 처음 오나 했는데 많은 구경꾼으로 인산인해이다. 흔적을 남기고 내려서다 이정표도 남기려니 여러 사람들이 오르내리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어 차례를 기다린다. 마침 촬영을 마친 예쁜 여학생에게 그대로 포즈를 부탁해서 한 컷하고는 계속 서석대로 향한다.
천연의 돌들이 계단을 만든 형국이다. 바위와 억새와 잡목들로 적당하게 어우러진 봉우리에 선다. 더 이상 정상으로의 오름길을 점령군이 철조망으로 딴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서석대는 다시 왼쪽으로 조금 더 내려 가야하나 멈추고 무등산 연왕봉, 천왕봉(1,186.8m)의 알현은 멀리서 바라만 보고 발길을 돌린다.
잔설로 희끗한 백마능선이 우릴 손짓하고 빛고을 광주 시내는 이름답지 않게 뿌옇게 잡히며 광주호도 내려다보인다. 추월산, 강천산도 보일 것이나 겨울 날씨 답지 않게 조망의 형편이 좋지 못하여 방향으로 짐작만 한다. 호남정맥의 마루금인 무등산은 광주광역시와 화순군 경계이다.
▶무등산
⊙ 위 치 : 화순군 화순읍 이서면, 광주광역시 동구, 북구, 담양군 남면 일대
⊙ 높 이 : 해발 1,186.8m
⊙ 별 칭 : 무돌뫼(무진악), 무당산, 무덤산, 무정산, 서석산
⊙ 유 래
무진악이라는 이름은 무돌의 이두음으로 신라때부터 쓰인 이름이다. 무돌의 뜻은 무지개를 뿜는 돌이란 뜻이다.
서석산은 고려때부터 불려진 것으로 추측되는데 상서로운 돌이라는 뜻으로 서석대와 관련하여 붙여진 별칭이다.
무당산은 신령스런 산이란 뜻을 가졌는데 이산을 옛사람들은 신적인 산으로 보았던 것이다
무덤산이란 말은 무등산이 홑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모습이 마치 둥근 무덤처럼 생겼기에 이렇게 부른것 같다
무정산은 조선왕조의 이성계가 왕명에 불복한 산이라 하여 무정한 산으로 지칭한데서 연유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무등산이란 명칭은 서석산과 함께 고려때부터 불려진 이름으로 비할데없이 높은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란 뜻이다.
⊙ 주변산세
무등산에는 수많은 볼거리가 많이 있는데 어떤것은 멀리서도 바라볼 수 있도록 우뚝 솟아 있는것도 있지만, 어떤것은 가까이 가서야 볼 수 있는 것도 있다. 무등산은 오르기에 가파르지 않다.
그래서 휴일이면 무등산의 경승을 즐기려는 인파가 끊이지 않으며 남녀노소 할것없이 간편한 옷차림으로 산을 찾는다. 볼만한 풍경이 있는 구경거리는 서석대, 입석대, 세인봉, 규봉, 원효계곡, 용추계곡, 지공너덜, 덕산너덜 등이 있다.
전망을 즐기려면 중머리재, 장불재, 동화사터, 장원봉 등이 있다. 이 중 화순쪽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입석대, 규봉, 지공너덜, 장불재, 백마능선, 규봉암에서의 동복호 조망 등이 있다.
⊙ 무등산의 구성
* 새인봉 : 임금의 옥새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인괘봉이라고도 한다. 또 천제등을 향해 엎드려 있으므로 사인을 닮았다하여 사인암이라고도 한다.
* 서석대 :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줄지어 서있다. 저녁노을이 들때 햇살에 반사되어 수정처럼 빛나기 때문에 서석을 수정병풍이라고도 했다고 전한다. 무등산을 서석산이라 부른것은 이 서석대의 돌경치에서 연유한 것이다. 서석대의 병풍바위는 맑은 날 광주 시가지에서도 그 수려함을 바라볼 수 있다.
* 입석대 : 석축으로 된 단을 오르면 5~6각형 또는 7~8각형으로 된 돌기둥이 반달같이 둘러서 있는데 이를 입석대라 부른다. 이런 절경은 다른산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어온 입석대는 석수장이가 먹줄을 퉁겨 세운듯 하늘에 닿을세라 조심스럽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 우람하기만 하다. 옛날에는 이곳에 입석암이 있었고 주변에는 불사의사, 염불암 등의 암자들이 있었다.
* 규 봉 : 규봉을 보지않고 무등산을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할 정도로 한폭의 한국화를 대하듯, 신들이 옥을 깍아 놓은 듯 무등산에서 가장 절경이 빼어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여기서 멀리 바라보면 동복댐의 물이 손에 잡힐 듯 눈에 선하다.
원래 규봉이란 절 입구에 우뚝솟은 세개의 돌기둥이 마치 임금앞에 나갈때 신하가 들고있는 홀같이 생겨서 이를 한자로 취하여 규봉이라 한 것이다. 이 바위를 또 삼존석이라 부르는데 여래존석, 관음존석, 미륵존석으로 불리우며 도선국사가 명명했다고 전한다.
또 규봉십대가 있는데 광석대, 송하대, 풍혈대, 장추대, 청학대, 송광대, 능엄대, 법화대, 설법대, 은신대 등이 그것이다.
규봉에는 두 바위사이로 길이 나 있는데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어 문바위라 한다. 이곳에는 김덕령장군이 문바위에서 화순 동면 청궁마을 살바위까지 화살을 쏘고 백마가 먼저 도착하는지를 시험하였다가 화살을 찾지 못하고 백마가 늦었다하여 백마의 목을 치니 그제서야 화살이 날아와 바위에 꽂혔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무등의 단풍은 규봉의 것을 제일로 친다.
* 지공너덜 : 장불재에서 규봉쪽으로 가다보면 바위무리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이 너덜겅은 지공대사가 법력으로 수많은 돌들을 깔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무등산의 대표적인 너덜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천연석굴 은신대가 있는데 보조국사가 좌선수도 했다하여 보조석굴이라고도 한다.
* 장불재 : 광주시와 화순군의 경계가 되고 있는 능선고개로 해발990m의 고갯길이다. 규봉과 입석대, 서석대로 가는 유일한 등산로이다. 이전에 동복, 이서 사람들이 광주를 오갈때 지나던 고갯마루이다. 정상을 향해 왼편에 서석대, 오른편이 입석대이고 이서면쪽으로 능선을 따라 돌면 지공너덜과 규봉에 다다른다.
* 백마능선 : 장불재에서 방송시설이 있는 쪽으로 펼쳐진 능선인데 가을이면 억새의 흰손이 바람에 흩날릴때 마치 백마의 갈기처럼 보인다. 장불재에서 이어지는 고산 초원지대이기도 하다.
* 중머리재 : 증심사에서 지정 등산로를 따라 동쪽으로 약 3km올라가면 대피소가 있다. 이곳에서부터 가파른 고갯길이 나오는데 이곳이 중머리재이다. 산위에 올라가서 편안한 능선이 이어져 있어 사람들이 휴식하기에 적당하다. 이곳을 통하여 더 올라가면 장불재로 가고 이어 입석대, 규봉을 갈 수 있다.
- 화순군 사이트에서 -
-. 13:55 백마능선 시작 (중식)
-. 14:45 중식 후 출발
무등산의 코스에서 조금 비켜난 코스이라서 인지 이제 다시 우리들만의 산행이 시작된다. 그러나 가끔씩 만나는 산님들은 반갑다. 백마가 달리는 능선이라서 인지 바람이 차츰 더세 진다. 작은 봉우리 두 개 넘고 바람을 피 할 만한 전망대 바위 한편에 자리를 잡고 늦은 점심을 먹는다.
오른쪽 계곡 아래로는 화순읍 수만리 마을과 들녘, 길게 늘어진 도로들이 내려다보이고 왼쪽으로는 무등산의 전체 모습이 잘 보인다. 점심을 먹는 중에도 가끔씩 산님들이 오고 간다.
-. 14:55 암봉
-. 15:10 능선 삼거리 이정표
-. 15:27 안양산
등로는 암봉을 왼쪽에 두고 우회를 하며 내려간다. 날 등을 따르다 왼쪽으로 급격하게 내려서면 발가벗은 참나무 숲 안부이고 능선 삼거리라며 이정표가 홀로 서있다(15:05). 지나 왔던 길로 장불재 2.3km 오른쪽이면 수만리 1.2km 직진이면 정상 1.3km라고 안내한다.
이정표를 지나 참나무 숲을 빠져 나와 헬기장을 지나면 다시 철지난 억새가 장관이다. 억새 숲을 오르는 선두의 모습이 너무도 좋아 보여 사진기를 준비하니 아니 이게 건전지가 모두 소모되었단다. 이일을 우짜노! 못내 아쉬워하며 시름시름 정상에 올라서니 평평한 헬기장 마당이다(853m 15:27). 뒤돌아서면 방금 지나온 암봉 옆으로 무등산 전경이 다시 보이고, 왼쪽 멀리로는 동북호의 자락도 보인다. 정상이 황량하고 널따란 운동장 같아 홀로선 정상비는 을씬년 서럽다. 한 쪽에선 이정표에는 안양산 휴양림 1.2km, 수만리 2.5km를 가리킨다. 사진기 사정을 이야기 하고는 삼래의 사진기를 물려받아서 흔적을 남기고 안양산을 내려선다.
-. 15:55 둔병재(금일 정맥 도상거리 : 13.3km)
안양산을 내려서면 계속 억새밭이고 간간이 다복솔의 푸름은 눈의 시야를 밝게 해 준다. 큰 소나무 몇 그루 지나니 갑자기 쏠리듯 내려 꽂는다. 굵은 동아줄로 핸드레일을 만들어 두었지만 쌓인 낙엽도 미끄럽고 기어이 엉덩방아를 찧는다.
등로가 양 갈래로 나타나 건너 쪽 산새를 보아 짐작으로 오른쪽 길을 선택하여 내려간다. 잠시 후 측백나무 조림지를 지나서 아스팔트 도로로 내려서니 둔병재이다(15:55). 왼쪽에 안양산 휴양림 울타리이고 도로위로 동 휴양림의 출렁다리가 지난 간다. 도로 왼쪽이면 이서면이고 오른쪽이면 점심을 먹으면서 내려다보았던 수만리로 해서 화순읍으로 가는 길이다. 조금 전 만났던 등로 갈림길은 아마 곧장 휴양림으로 내려오는 코스 같다.
이곳 둔병재는 곡성, 화순, 광주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임진왜란 시 의병들의 주둔지 이었던 곳으로 지금도 옛 성곽, 참호 등의 흔적이 남아 있고 병기를 만들었던 쇠메기골에서는 쇠 찌꺼기가 나오고 있다고 유래를 적은 입간판이 휴양림 산책로 입구에 서있다.
오늘 본래 구간 종주계획은 어림마을 까지 하기로 작정을 하였으나 입석대, 서석대를 다녀오느라 생각보다 지체가 심했고 늦은 점심 식사가 전체 페이스를 흐트러지게 한 결과 마지막 안양산 내림길에서 의외로 체력의 소모가 심했던가 보다. 지금부터 약 2시간여 진행해야하는 다음 소구간은 무리가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모두들(회장님은 제외, 불만이 많았을 테니까) 오늘은 부득불 여기서 접기로 하고 화순읍의 택시를 요청한다.
-. 16:30 화순읍 도착
-. 17:30 광주 문흥동 도착(보석 찜질방 숙박)
이내 도착한 택시를 이용하여 유둔재로 이동 중 기사 분에게 문의한 결과 화순읍에도 새로이 개장한 사우나 찜질방이 있단다. 하여 광주 지난번 그 찜질방으로 숙소로 애용하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화순읍으로 하기로 하고 택시를 이용해서 갔던 길로 되돌아온다. 이서면 소재지를 지나 다시 둔병재를 넘어 수만리를 지날 때는 점심을 먹었던 바위 전망대를 올려다보며 화순읍 보석 사우나 찜질방에 도착한다(16:30). 그러나 생각도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곳 역시 시골이라 아침 식당이 8시 반부터 영업을 한단다. 새벽 참에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일찍 산행을 나서야 하는 우리 일정에는 맞지 않는 것이다. 가까워 이동거리 및 시간의 절약으로 안성맞춤으로 생각하고 좋아 했는데. 광주와 화순간이 버스로 20여분 거리라 하니 할 수없이 다시 광주로 이동한다.
목포방면에서 동광주 나들목으로 접속되는 외곽 순환도로를 이용하니 금방 지난번 사고를 쳤던 문흥동 보석 찜질방이다. 근처 식당에서 해물탕으로 저녁을 해결하고는 하루를 유 하고자 찜질방 열기에 몸을 맡긴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유둔재에서 곧장 광주로 철수를 하였다면 아침에 지나쳤던 ‘가사문학관’ ‘소쇄원’을 둘러보고 왔을 텐데 그러지 못한 점이다.
이다음 언제 그곳을 둘러볼 기회가 또 찾아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