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포다리로 더 잘 알려진 이 다리는 1930년 9월 13일 착공하여 1932년 3월 7일 준공되었다. 길이 1060m, 폭 8.4m(중앙차도 5.4m, 좌우보도 각 1.5m)의 게루바식판항교로 교각이 56개이다. 구포다리는 강서구 대저동과 북구 구포동을 잇는 다리로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다리였으므로「낙동장교」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공사 총인원은 7,760명, 공사비 70만원(정부보조 40만원, 지방비 19만원, 지방지원부담 11만원)이 소요되었다.
1935년 당시 구포다리 모습
이 다리 건설이전 구포와 대저 사이는 나룻배로 왕래하였다. 다리가 개통된 이후 구포는 경남지방과 경부선을 통한 내륙지방과 연결하는 교통요지로 새로운 면모로 바뀌었다. 이 다리는 그 동안 부산과 경남을 잇는 대동맥으로 산업․경제․문화․정치의 교량역할을 해왔으며 한국전쟁 때에는 전쟁물자 수송에 큰 몫을 해낸 귀중한 것으로 낙동강과 더불어 우리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1954년 당시의 구포다리 모습
1997년 12월 현재의 구포다리 아래쪽에 최첨단 공법으로 시공한 구포대교의 준공되면서 70여년 동안 구포와 강서를 주요통로서의 역할을 물려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서게 되었다. 이후 구포다리는 차량 통행은 금지하고 인도교로 활용되었다.
1997년 당시의 구포다리
구포다리는 노후화가 지속되어 붕괴의 우려로 차량통제를 하고 있다. 2003년 9월 13일 태풍 ‘매미’로 인한 상류지역 강우로 다리발 붕괴로 100m 상판 유실로 철거여부를 검토 중에 있으나, 일부 시민들은 역사유적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2005년 6월부터 길이 1,060m, 너비 9.15m인 구포다리의 상판 철거작업을 시작하여, 11개 상판 가운데 9개 상판이 2008년 2월 25일 현재 철거됐다. 3월 16일까지 상판 2개를 완전 철거하였다. 나머지 교각 부분은 12월까지 완전히 철거되어 77여년의 애환을 뒤로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려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