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설(古小說)
※ 소망을 투영함, 황당하고 비윤리적인 경우를 중시.
독비 → 책 읽어주는 종
전기수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
서울, 전주, 안성 등지에서 목판본으로 인쇄 판매되었는데 방각본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이것은 전국에 여러가지 소설을 대량으로 공급하였고, 작자 미상의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진 계기가 됩니다.
완판 - 전주에서 시작됨. 내용도 그만큼 풍부함.
금오신화의 출현
금오신화의 작자 김시습(1435-1493)은 전국을 두루 순회한 다음, 경주의 금오산에 들어가 『금오신화』를 엮어 산 속에 숨겨 두었다고 합니다.
『금오신화』에는 다섯 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모두 비현실적인 귀신·용궁·사후세계·꿈 등을 나타내고 있고, 현실에 바탕을 둔 소설은 한 편도 없었습니다. 이는 당대 소설의 한 부류인 전기소설(傳奇小說)의 영역이 있다고 봅니다. 인간이 아닌 동식물이나 사물을 의인화하여 표현한 가전체 작품으로 바로 인간의 실생활을 구상하여 나타내기에는 좀 덜 성숙한 면이 있습니다.
몽유록(夢遊錄)
『금오신화』에 이어서 꿈속의 일을 표현한 몽유록이 본격적으로 창작됩니다. 이 속에서도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와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은 몽유록이며,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도 몽유록에 아주 가까운 작품으로 기억됩니다. 몽유록은 이렇듯 작가가 꿈을 꾸고, 자신이 그 꿈속에서 어떠한 일에 가담한 내용을 쓴 기록처럼 나타냅니다.
원생몽유록은 단종의 슬픔과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육신의 한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풍자정신에 입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풍자수법의 몽유록은 상대의 삼국유사 소재 조신의 꿈 이야기가 있었고 이규보도 비슷한 작품을 남기고 있습니다,
원유몽유록의 작자에 관하여서는 이설이 분분합니다. 김기동의 저 『이조시대소설론』에서는 3학설을 비판하고 생육신의 한 사람인 원호(元昊)로 그 작자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심의(沈義)는 「대관재몽유록(大觀齋夢遊錄)」을 지었습니다. 주인공이 꿈 속에 한 곳을 갔는데 거기는 역대의 우리나라 문인들이 왕국을 건설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작자 심의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나라 역대의 문인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평가를 내려보고, 자신의 시문역량을 비교 과시해 보며, 중국 문인들과의 우열 다툼이 가능한 것인가를 비판하려 했습니다.
의인소설
동식물이나 사물을 의인화하여 구상하는 일은 직접 인간을 등장시키기 곤란한 경우에 우의적으로 표현하려는 수단입니다.
설총은 <화왕계>를 이야기하고, 김춘추는 <귀토지설>을 듣고서 깨우쳐 사지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고려말의 가전체 작품들도 모두가 의인소설의 초보단계에 속합니다.
조선 전기에 나타나는 의인소설은 수성지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며, 구성이 소설의 영역에 들기에는 미약한 성간의 용부전도 논의의 대상이 됩니다. 화사가 임제의 작이라고 하면 역시 이 시기의 의인 소설입니다.
수성지는 임제의 작으로 마음을 의인화햇습니다. 마음인 천군이 왕이고 이성에 속하는 인의예지가 왕을 보좌하는 조정의 관작을 맡으며, 기질에 속하는 감정적인 요소, 즉 희로애락, 시청언동 등이 외직을 담당하여 다스리는 나라로 나타내었습니다. 이에 감정의 움직임 때문에 나라의 우환이 생기는데, 이것을 퇴치하기 위한 장군으로 술을 의인화한 국양을 맡아서 적을 격퇴시킵니다.
이 소설은 우리나라 소설의 발달과정에서 일면을 차지합니다.
술에 관한 문제로서, 임춘의 국순전은 술을 간신에 비유하고, 국선생전에서 이규보는 술을 시의에 잘 맞추는 현명한 신하로서 비유합니다.
후기에 나타나는 천군연의, 천군본기에서는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적으로 설정하였으니, 수성지에서 분수령이 되는 셈입니다.
용부전은 이성에 속하는 객과 기질에 속하는 용부가 문답하여 이성이 게으른 기질 용부를 부지런하게 설득시키려 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는 작품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리학의 이론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술과 여자가 있음을 내세워 설득하였을 때, 용부의 게으른 병이 나았다는 것은 성리학에 대한 커다란 도전이며, 앞의 술 소재들과도 일련의 관계가 있는 내용입니다.
조선 전기의 소설은 양적으로 보아 그다지 풍부하지 않고 질적으로 전기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우리나라 소설문학이 창작되기 시작하였다는 획기적인 시대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시기의 소설은 모두 한문으로 기록되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우리 소설문학이 시초부터 우리 글로 기록되지 못했다는 것은 민족적 자각의식에 허점을 드러낸 부끄러움이 없지 않습니다.
민족의 역사는 반드시 소박한 원망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라서 흘러온 발자취와 문화유산을 현실적으로 수용하여 연구하고 비판한 다음, 미래의 보다 나은 역사창조에 지침을 마련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한문으로 기록된 우리 소설들을 성실하게 독파할 수 있는 능력을 첫째로 길러야 하고, 원전비평에 대한 정확한 안목을 길러야 합니다.
조선시대가 중기에 접어들면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엄청난 전쟁을 치르게 되자, 여러가지 변화된 양상을 드러냅니다. 그 하나가 문학에서의 변화이며, 문학 중에서도 소설의 변화인 것입니다.
그 동안 중국에 대해서는 존경하는 태도를 가지고, 일본과 여진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태도를 지녔습니다. 문화적인 힘까지 전달하는 중국에 비해, 일본은 우리에게 문화적인 이익을 주는 나라가 아니었고, 항상 괴롭히는 나라였으며, 만주에 사는 여진족과 그 밖의 몽고족, 거란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라가 온통 위태로울 때 비로소 나라라는 것에 대해서 상하의 신분이 하나로 접근하게 됩니다. 다시는 이런 전쟁 등이 없어야 한다는 경계와 자각에서 나온 유성룡의 징비록, 이로의 용사일기,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그 예입니다.
유몽인의 어유아담에 실린 홍도전이나 다시 문학적으로 정리한 최척전이 한 예입니다.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전 형조좌랑 강항은 적국인 일본에서 이황의 성리학을 전수 교육하고 귀국하여 일본에 대한 정책을 세운 책인 간양록,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기록한 황신의 동사록에 기재된 것 등 비참한 포로기록 등이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중의 민간에서의 고통은 광해군 때 기록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서도 여실히 나타납니다.
전쟁 이후의 소설 양상
임병양란 이후의 고대소설은 전쟁을 어떻게 문학적으로 수용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그 성격이 드러납니다,
임병양란의 쓰라림을 문학에서는 극복하여 보려는 의도에서 사실과 다른 허구적인 승리 이야기이거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를 문학적으로 제시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쟁 직후의 직접체험에서 세월이 흘러서 거리가 멀어지면서는 그 소설 양상이 조금씩 달라지게 됩니다. 이때까지 문학 전면에 별러 나서지 아니하였던 백성이나 하급관리 중에서 소설을 쓰는 작가가 대두됩니다.
<이춘풍전>은 조선시대 말기적인 작품으로 호색가(好色家)인 남편과 평양 기생 추월을 비난하면서 남장한 춘풍 아내의 기지와 담력과 언변을 통하여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내용입니다. 양반집을 자유롭게 출입하며 연대(連帶)를 맺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신분의 변화를 보이며, 여성의 활동이 집밖에서 강력하게 드러난 점에서 신시대의 여성 모랄을 제시한 작품이라 합니다.
남성의 정절을 주장하다가 제주 기생 애랑에게 혹하여 알몸으로 뒤주에 갇히는 일로 웃음거리가 된 <배비장전>, 위선적인 도학자가 근엄한 자세를 견지할 때 드러나는 허위성을 다룬 <삼선기(三仙記)>와 <배비장전>의 애랑과 비슷한 여주인공 오유란을 소재로 한 <오유란전>이 있습니다.
참고자료
국문학편찬위원회, <국문학신강>, 새문사,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