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신입회원 인사드리며 첫 항해기를 한편 올립니다.
이 글은 지난 2주간 일본 오사카 -> 부산수영만 요트경기장 -> 양양수산마리나 까지의 딜리버리 여정 중에서 혼자 운항했던 부산 -> 양양수산마리나 구간입니다.
일본매물(30~40피트)에 게시된 야마하34S를 일본 오사카 탄노와(Tannowa)항으로 부터 구입하여 한국 부산까지의 딜리버리는 일본 선장님 고사카상과 함께 하였구요, 부산에서 양양까지는 혼자서 이동하였습니다.
초보가 혼자 항해하느라 사진을 못찍을 만큼 정신없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2014.07.24 (목)
오늘은 목요일. 어제 저녁에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을 저녁 7시 반에 출발하여 지금 14시간 반을 운항중이다. 집이 춘천이라 부산에 배를 오래 두는 것이 계속 신경쓰이고 마음에 걸려, 지난주 일본으로 부터 부산에 입항한 뒤 잠깐 서울에 올라와 월, 화요일에 회사 업무를 보고 수요일 어제 버스편으로 5시간 동안 부산으로 향했다. 윤선장님과 몇번의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안되고 나는 그냥 요트경기장에 도착해서 반출신고 하고 물과 연료, 음식 약간을 보충하여 출발하면 되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부산에 도착할 즈음 윤선장님과 통화가 이루어져 배의 위치가 이동되어 있다는 것과 해경파출소에서 임시운항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배를 이동시켰다면 요트경기장 운영사무실에 가서 선불로 지불했던 5일간의 계류비를 반환받는 것까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좀 더 많아졌다. 어찌 되었든 해가 지기전에 출발하고 싶은 마음에 쉴 겨를도 없이 모든 일들을 해치우고 나니 저녁 7시 반이다.
이제 출항이다. 마음을 굳게 먹고 해야한다. 사실 요트조종이라고는 열흘 전에 면허 획득을 위하여 실습 2일 한 것이 전부이다. 용기있게 키를 잡고 요트경기장을 출발했지만 파도가 만만치 않다. 더구나 이 배는 지난주 일본에서 올 때 딜리버리에 동행하면 많이 배울수 있지 않을까 하여 직접 일본에 가서, 딜리버리 하시는 고사카상과 함께 배를 운항하였는데 이분이 한국어나 영어를 전혀 못하신다. 그래도 어깨 너머 열심히 배울수 있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오래된 아이패드에 네비오닉스 해도를 설치하고 경로를 설정한 대로 오토파일럿을 설정하였다. 잔뜩이나 긴장된 상태와 높은 파도에 밀려 배가 원하는대로 나가지 않아 수시로 오토파일럿을 재설정 하였으나 계속 경로를 이탈하고 있다. 왜 그럴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 보다가 오토파일럿이 일본에서 올때와 다르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걸 어떻게 세팅해야 지정한 방위로 얘가 움직일 수 있을까? 오토파일럿을 보니 “Compas”라는 글자위에 불이 깜빡이고 있다. 어~ 일본에서 올때는 항상 들어와 있었는데… Setup 키를 길게 눌러주었더니 익숙한 설정으로 바뀌며 불이 항상 들어와 있다. 이제 좀 편하게 가겠구나~~~ 안도의 한숨을 쉰다.
수영만에서 출발할 때는 파도가 생각보다 높게 일고 조류도 강하여 당황스러웠다. 조류는 다행히도 진행 방향인 동북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고 파도는 높지만 뒤에서 밀어주는 파도라 배는 심하게 흔들렸지만 속도가 7~8노트 가까이까지 나가기도 하였다. 설마 이런 속도로 계속 나아가진 않겠지만 그래도 일단 출발은 좋다. 밤새워 운항을 하니 바람도 잦아들고 평온한 바다의 상태가 되어 상쾌하기까지 하였다. 배는 아침나절에 울산을 지나 포항까지 진행하였고 몇 일 동안 긴장하고 잠과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여 오늘은 저녁 해질 무렵쯤 되어 삼척 근처 적당한 항구에 정박을 하고 몸을 쉬어주기로 하였다. 처음 자동차 운전을 할 때에도 주행은 적당히 쉬운 편인데 차선을 바꾸거나 주차하는 것이 신경쓰였던 것처럼 배도 그러한가 보다. 정해놓은 항로를 항해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처음으로 혼자 배를 알지도 못하는 항구에 정박시키려니 괜히 긴장된다. 마침 적당한 항구를 인터넷 검색과 해도를 통해 정하고 주위에 정치망 그물이나 암초등이 있는지 수시로 확인해 가며 오늘의 목적지인 삼척 장호항에 입항하였다. 해경의 도움을 받아 적당한 배 옆에 붙여 정박을 하고 입항신고를 마친 후에 근처 횟집에서 시원한 물회를 소주와 곁들여 한잔 하니 몸이 금새 무거워짐을 느낀다. 정말 피곤하고 모험심 가득한 하루였지만 초보치고는 계획대로 순조로운 항해였다는 자부심을 가득 않고 잠을 청하였다.
2014.07.25 (금)
다음날 아침 4시경에 출발 준비를 하고 동이 터오기를 기다렸다. 어제 장호항에 들어올때는 남쪽에서 항구 입구로 크게 선회하여 거의 직각 방향으로 진입한 덕에 정치망을 쉽게 피할 수 있었다. 출발전 대충 정리하고 주위에 사물이 분간이 될 수 있을 무렵 출항을 하였다. 오늘의 코스는 항구를 빠져나가 북쪽방향으로 크게 원을 그려 먼바다 쪽으로 진입하고 저녁 무렵 해지기 전에 양양 수산항에 입항하는 것이다. 내일부터는 계속 날씨가 안좋아져 항해하기 어려운 상태라 예상되어 더더욱 오늘 내로 수산항에 도착하여야 한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항구를 빠져나와 주위의 정치망을 피하기 위해 어제와 같은 항로로 조심스레 나아갔다. 어느정도 빠져 나왔다고 판단이 들 무렵에 이제 시선을 바다가 아닌 배쪽으로 돌려 계류줄과 휀더 등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약 10미터 앞쪽에 굵은 정치망 로프가 나타나는게 아닌가. 매우 놀라 재빠르게 조종간을 돌리고 후진기어를 크게 넣었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워 그만 정치망에 걸리고 말았다. 무식하게 단독항해를 시도하고 있는 초보에게는 너무나도 큰 사건이 터진 것이다. 머릿속은 매우 어지러웠고 황당함과 두려움이 교차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예측하지 못하였기에 갑자기 발생한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지 매우 난감하였다. 엔진은 꺼져 있었고 엔진 시동을 하면 중립기어에서는 엔진이 켜지는데 전진이나 후진 기어를 넣으면 이내 시동이 꺼지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추측컨데 샤프트나 프로펠러에 문제가 있어 엔진이 자꾸 꺼지는 것인가 보다. 엔진을 중립으로 회전시키면서 배 끝에 매달려 발로 걸려있는 정치망 로프를 몇 번 힘껏 바닷속으로 밀어 넣기를 반복하였다. 몇 번인가 그렇게 하니 배는 어느새 정치망 로프를 탈출했고 엔진을 전진기어로 바꾸니 조금씩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매우 다행스런 상황이라 생각했는데, 출력을 높이자 배는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속도는 기존보다 50%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 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구나… 아직 가야할 길이 먼데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까… 고민하다 여기서 가까운 묵호항 해경에 전화를 걸어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근처에 배를 수리할 수 있는 곳을 수배해 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몇 분뒤 친절한 해경이 현재 위치에서 가까운 조선소를 안내해주고, 나는 새벽 6시가 조금 지난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소 사장님께 전화를 걸 수 밖에 없었다. 상황을 설명 드렸더니 지금 조선소에 요트를 상거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있기는 한데 다른 배들이 모두 사용하고 있는지라 배를 수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큰일이다. 그렇다고 마냥 이런 상태로 양양까지 운항할 수도 없다. 일단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삼척시 근덕면에 위치한 덕산항에 들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덕산항은 요트계류시설이 설치되어 있지만 일반인들에게 오픈된 시설은 아니고 요트시험장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좀전에 통화한 조선소 사장님이 계신곳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요트들이 운영되고 있을테니 요트에 생긴 문제점을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기도 하였다. 천천히 운항하여 항구 입구에 도착하였고 가까이 폰툰시설이 보인다. 엔진을 중립으로 놓고 타력으로 천천히 정박할 수 있는 빈 폰툰을 찾은 후에 가까이 배를 정박하려 하였다. 배를 정박하려니 생각보다 속도가 있어 후진 기어를 넣고 속도를 줄일려고 하는 순간에 후진기어가 작동하지 않는다. 아마도 좀전에 정치망에 걸렸을때 같이 손상된 것인가? 큰일이다. 이대로는 제대로 정박하지 못하고, 속도에 의해 폰툰 앞부분의 바위에 충돌할 것이다. 순간적으로 배의 옆부분을 폰툰에 부딪혀 배를 긁어나가면서 속도를 줄여야 겠다는 판단과 함께,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과감하게 배를 폰툰의 옆부분과 충돌시키며 배의 속도를 감소시켜 나갔다. 더불어 배에서 뛰어내릴 만한 거리에 도달했을 때 계류줄을 잡고 폰툰에 뛰어 내려 클리프에 계류줄을 걸어 배가 바위에 충돌하지 못하도록 힘껏 잡아당겼다. 손과 팔이 어디에 긁혔는줄도 모르고 힘껏 잡아당긴 덕에 배는 간신히 제어가 되었고 이내 안전하게 정박시킬 수 있었다. 배의 옆 모서리가 폰툰과 일으킨 마찰로 손상이 있는지 확인하였는데 다행히도 흠집하나 없어서, 초보였지만 이런 위급한 순간에도 뭔가를 재빠르게 판단하고 조치를 했다는 내 자신이 조금은 대견하기도 하고 우쭐하기까지 하였다. 이제는 여기서 뭔가를 해결해야 한다. 조용한 어항에 낯선 배가 들어오니 근처의 해경파출소에서도 근심섞인 표정으로 이쪽을 주시한다. 어항에 들어왔으니 해경에 입항신고를 우선적으로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먼저 배의 상태가 걱정되어 배 밑바닥을 살펴보아야만 한다는 생각만이 들뿐이었다. 다행히 물은 맑아 물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배의 밑바닥 상태를 확인할 수 있을것 같아,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이른 아침에 도움을 구할수 있는 곳은 해경사무실 밖에 없었다. 사무실을 방문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수경이 있으면 잠시 빌려달라고, 직접 배 밑으로 들어가 샤프트나 프로펠러에 어떤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했다. 잠시후 빌린 수경은 내 생각에는 실내 풀장에서 사용하는 잠자리 모양의 까만 수경이었는데 이것을 써보니 내 눈을 심하게 압박하였다. 수경 줄의 텐션을 몇 번 조정하고 그래도 상태가 호전되지는 않았지만 할 수 없이 고통을 참고 입수를 하였다. 처음으로 확인하는 내 배의 밑바닥. 그런데 봐도 모르겠다. 배 밑을 확인해 보니 샤프트와 프로펠러가 보이는데, 프로펠러가 회전의 힘에 의해 펼쳐지고 닫혀지는 방식(이름은 모르겠다)으로 되어 있다. 정박이 되어 있어 프로펠러 한쌍이 샤프트 축과 나란한 방향으로 닫혀져 있는게 확인되었지만 뭔가 이상하다. 샤프트와 일자로 평행하게 되어 있어야 할 닫혀진 프로펠러가 배 아래방향으로 약 10~15도 정도 꺽여 있는것이 아닌가. 순간 아~~ 샤프트가 휘어졌구나… 생각이 들었고 이걸 수리하려면 배를 상거하여 전문 기술자가 오랜 작업을 해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일단 초보의 눈으로 상황 파악은 되었으나 수리전문가의 진단과 처방을 다시 듣고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어 아침 일찍 통화한 조선소 사장님이 출근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해경사무실에서 커피 한잔과 시원한 생수로 목마름을 해결하고 배에서 짐을 정리하면서 대기하였다. 혹시라도 배 수리가 안되어 배를 여기에 오랜시간 계류시켜야 할 수도 있어 메인세일과 집세일을 모두 잘 묶어두었다. 집세일은 펄링방식에 의해 접고 펴는 것을 쉽게 할 수는 있었지만, 메인세일은 올리고 내리는 것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잠시 테스트를 할 겸 구조를 익히기 위해 여기저기를 만져보고 있었다. 메인헬려드는 세일 어디에 걸어야 하고 어떤 로프를 사용해야 하며 축범을 할 때는 어떻게 해야하고 등등… 나름의 방법으로 이것저것 만지다가 그만 메인헬려드 와이어가 스프레더 끝에 걸려 잘 이동이 되지 않는다. 와이어를 반동으로 플려고 시도해 봤으나 잘 되지 않아 고민하다가 그만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게 화가 된 것이다. 일단 "헬려드를 마스트 탑까지 올리면 엉켰던게 자연히 풀이지겠고, 풀어지면 다시 내리면 되지” 라는 생각에 별 의심없이 로프를 당겼는데 메인헬려드가 마스트 끝에 올라가서 도르레에 걸쳐진 채 내려오지 않는 것이었다. 아~~ 바보, 멍청이, 또라이… 당연히 안내려오지 그게 자동으로 내려올 것이라 생각했다니… 너무 바보같은 행동이다… 이젠 배를 수리했다 하더라도 나중에 메인세일을 사용하려면 그전에 마스트 꼭데기에 올라가 보는 간떨리는 경험도 해야 할 것이다.
9시가 조금 지나 조선소 사장님을 만나고 우선 배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전문적으로 다이빙을 하는 분의 도움을 받아 다시 배 밑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사장님 말씀이, 배를 육지로 상거하여 수리해야 하지만 보다시피 상거시설이 꽉 차 있어 물 위에서 수리할 수 밖에 없고, 그러려면 물위에 떠있는 배위에서 엔진과 샤프트를 분리하고 배 밑에서는 분리된 샤프트를 배에서 빼 내어, 공장에서 수리한 후에 다시 배 밑에서 샤프트를 삽입하고 엔진과 연결하고… 대충 이런 작업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하신다. 다이버의 일정과 조선소 작업이 겹치지 않도록 요트 수리는 오후 두시 경에 시작할 수 있었다. 아~ 이렇게 하면 오늘 중에 수리를 마치고 낼 아침까지는 양양에 도착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안도가 되었다. 수리를 시작하고 샤프트를 엔진에서 분리하는 작업에 사장님이 애를 먹는다. "와우~ 이거 잘못 걸렸는데…” 하시면서 연신 땀을 흘리고 계신다. 물속에서는 다이버가 샤프트가 분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러분들의 수고로 인해 샤프트와 프로펠러가 배에서 분리되고 옆에 있는 조선소 공장에 이동되었다. 분리된 샤프트의 상태가 심하게 휘어 있었다. 저 상태로 묵호항까지 운항했다면 틀림없이 배 전체에 큰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여러번의 망치질로 굽었던 샤프트가 점차 펴지고 있었고 오늘 출항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힘이 나는 듯 했다. 운좋게 여기서 이런분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배를 여기에 몇 일을 두고 마음을 졸여야 했을 것이다. 매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의 수리가 마무리 되고 해경에 출항신고를 했다. 파출소장님께서 내일부터는 날씨가 안좋아질꺼라고 귀뜸을 해주신다. 그리고 혹시라도 무슨일이 생기면 꼭 전화하라고 몇 번을 당부하신다. 오늘 밤에 양양까지 나아가서 내일 아침 동 틀 무렵에 양양 수산항에 입항하고 이 긴 여행을 무사히 마치리라 다짐한다. 배의 진동도 처음 상태로 되돌아 오고 출력도 정상이다. 기분 좋게 출항을 한다. 출항을 한지 30분 정도 경과했을까 약 100미터 주위로 뭔가 이상한 것들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돌고래 무리들이다. 떼를 지어 다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여기저기 두 세마리씩 수면위를 점프하며 질주한다. 아마도 여기는 물 반 돌고래 반 지역인가보다. 정말 멋있다. 평소에 돌고래쇼도 보지 못했던 내가 바다에서 직접 돌고래와 마주하다니… 보람을 느낀다.
어김없이 밤이 찾아왔다. 예상보다 일찍 날씨가 험악해지고 있다. 바람은 점점 강해지고 그에 따라 파도가 배보다 빠른 속도로 배를 지나쳐간다. 뒤에서 치는 파도라 배가 떠밀려 속도가 제법 많이 나고 있다. 하지만 큰 파도의 흔들림에 오토파일럿이 방향을 계속 잃어 무리하게 방향을 잡다가 과부하로 인해 손상이 가지 않을런지 걱정이 밀려온다. 만약 오늘밤 운항중에 오토파일럿에 문제가 생긴다면 이건 나에게는 상상도 하기 싫은 대 재앙이 될 것이다. 파도가 점점 높아지고 바람이 강해진다. 주위로 시커먼 파도가 배를 심하게 흔들고 있었고, 혼자라는 외로움과 바다의 두려움을 처음으로 직면하게 되었다. 이 상태로 어떻게 내일 아침까지 견딜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더욱 두렵고 힘이들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도 없다. 어차피 내일은 날씨가 더욱 안좋아 질테고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밤에 목적지 근처까지 운항하여 낼 아침에는 최종목적지인 양양마리나에 들어가야 한다. 바람과 파도의 두려움, 혼자서 이겨내야 하는 외로움, 육체적인 피곤함, 허기짐(그러고 보니 오늘 거의 아무것도 먹지도 못했다…)… 이런 것들이 오늘밤 내가 극복해야 하는 것들이다. "어찌 되었든 이겨내고 나아가보자… 적어도 요트는 배가 뒤집어지지는 않는다잖아.” “동력을 잃어 표류를 한다 하더라도 배가 뒤집혀 물에빠져 죽는 일은 없겠지.” 스스로 최면을 걸고 위안을 해본다.
2014.07.26(토) 밤새 바람과 파도, 외로움과 허기짐을 달래가며 양양 근처에 다다랐다. 이제부터는 정치망그물과 신경전을 벌여야 할 때다. 파도는 어제보다 더 높고 바람도 더 세어졌다. 오늘부터 태풍의 영향권에 있다고 하는데 정말인가 보다. 풍랑주의보도 내려져 있다. 지난밤에 바람과 파도의 영향으로 배가 잘 달려줘서 그런지 생각보다 양양수산항 앞바다에 일찍 도착했다. 새벽 세시반, 지나가는 어선도 한대 없고 아주 저 멀리서 오징어잡이 배 몇 대의 불빛만 희미하게 보일뿐이다. 이거 무지 난감하다. 수산항 앞바다는 온통 정치망 밭이라는데 날이라도 밝아야 눈으로 확인하면서 정치망을 피해 들어갈텐데, 이건 오도가도 못하게 생겼다. 그렇다고 더욱더 심해지는 바람과 파도앞에서 날이 밝을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위험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몇일전인가 수산항에 진입할때 정치망을 피해 진입하는 방법을 간략히 읽은 내용이 생각났다. 항구의 북쪽 방향에서 진입하라는… 그 방법대로 오토파일럿에서 수동으로 틸러를 조작하기로 하고 천천히 방향을 잡는 순간… 뭔가 쿵~~ 하고 충격이 다가왔다. 순간 "아~~ 또 걸렸구나” 어제 아침처럼 또 샤프트나 프로펠러가 나가는건 아닐까 하고 잽싸게 기어를 중립으로 이동하였다. 상황을 파악하려 러더를 이리저리 돌려 보았더니 증상이 분명히 로프에 러더가 걸려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불행중 다행이다. 로프에서 러더만 빠진다면 동력계통에는 이상이 없을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파도가 높아 배 위에서 몸을 지탱하고 서 있기도 힘들다. 게다가 바람과 파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주위는 아직도 컴컴한 상태다. 실망감과 피로감이 몸을 급격히 힘들게 만든다. 로프에 배 뒷꽁무니가 걸린 상태로 배 앞머리는 바람이 불어나가는 방향으로 돌아가 있고, 배 뒷전으로는 계속 높은 파도가 때려주고 있다. 마치 거대한 자연이 오만한 초보 인간한테 함부로 까불지 말라고 회초리 때리듯이…
뭐라도 해야한다. 백스테이를 잡고 배 뒤로 내려가 물속 깊숙히 발을 담궈 걸린 로프를 밀쳐내 보지만 파도에 밀려 팽팽해진 로프는 빠져나갈줄 모르고 자꾸 위험한 상황만 연출된다. 파도와 바람, 감겨진 로프와 싸운지 약 한시간 즈음… 이젠 힘도 없고 지쳐서 포기 상태다… 날은 조금씩 밝아오고 있지만 그만큼 파도는 높고 바람은 강해진다. 더이상 지체하면 정말 위험해질 것 같아 속초해경에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구조를 기다렸다. 양양수산항에서 어선을 수배하여 현장으로 보내주겠단다. 잠시 후 어선이 도착했고 나를 구해줄 줄 알았던 어선은 내 배가 조타기가 고장나서 표류중이라고 잘못 알고 예인 준비만 해 온 상태였기에, 다시 항으로 돌아가서 잠수부를 수배해서 같이 오겠단다. 헐~~ 이런… 신고가 잘못 접수되어진 것이다. 위험한 상황에 나 홀로 남겨진 채로 멀리 항으로 돌아가는 어선을 바라보고 있자니 실망감이 밀려온다. 파도는 계속 배 뒷전을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배가 가벼워졌다는 느낌을 받고 주위를 보니 몇 미터앞에 지금까지 걸려있던 로프가 떠있는게 보인다. 높은 파도에 의해서 탈출되어진 것인가? 엔진을 저속 전진으로 밀고 조금씩 앞으로 나가 보았다. 배가 움직인다. 와우~~ 다행이다… 다시 해경상황실에 급하게 전화를 걸어 현상황을 탈출했다고 전하고 들어왔던 코스를 잘 더듬어 일단 정치망 구역을 잘 벗어나 보겠다고 했다. 뱃머리를 돌려 진입한 자취를 더듬어 조금씩 밖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밤에는 안보였던 정치망 그물들이 정말 여기저기 뺵빽히 배를 포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심스레 파도를 헤치며 바깥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항으로 들어갔던 어선이 다시 돌아와 나를 항구로 에스코트 해 주겠다고 한다… 이제 살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항구로 들어와 마리나에 겨우 정박을 하고 폰툰으로 내려와 큰대자로 쭈욱 뻣었다. 땀으로 온 몸이 다 젖어 있었고, 입에선 단내가 나고 있었다. 나로서는 정말 힘든 첫 항해를 마친 것이다.
해경에 입항 신고를 하러 갔더니 간밤의 상황에 대해 파출소장님은 계속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무사히 입항을 축하한다고 시원한 음료를 건네시면 따뜻한 말씀을 해주신다. 저도 앞으로 여기를 모항으로 삼아야 하니 잘 부탁드린다고… 첫 신고를 너무 거창하게 해서 죄송하다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주위 해경분들과 마리나 관리직원들과 잠깐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첫 항해를 부산에서 양양까지, 야간항해를 그것도 혼자서 하는 것은 굉장히 x N 위험한 일이라고, 앞으로 그런 무모한 도전은 하지 마시라고...
어쨌든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목적한 배의 이동을 끝마치고 나니 여러가지 생각이 마구 교차한다. 도전, 겸손, 무모함, 성취감, 지금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만족 등등… 지금까지 내가 정말 목숨이 위험하다고 느낄 정도의 일을 해 본적이 있었던가?
이번 항해에 대한 후유증이 당분간 남아있을 듯 하다. 하지만 그동안 반복된 일상에 지쳐 자신을 잃어가던 모습에 반전의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한 듯 하다.
조금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고, 이제부터 조금 더 나 자신과 배, 그리고 바다와 날씨에 대해 준비된 자세로 임해야겠다.
배를 알선해 주시고 항해 내내 염려 전화를 주신 윤태근 선장님과, 관련지역 해경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14.07.26 첫 항해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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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하셨습니디. 그리고 소중한 경혐..... 첫항해에 혼자... 대단한 용기였다고 생각됩니다!!!
다시 읽어도 짜릿짜릿 하네요.
퓨처호 선장님 글을 윤선장님 카페에서 읽고 저도 참조하여 통영에서 양양까지 왔답니다.
퓨처호 선장님의 글이 제 이정표였던 거죠.
이번 기회를 통해서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읽으면서 매우 공감이 갔습니다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경험들이 더 유능한 세일러를 만드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생많으셨겠어요 ㅎㅎ
저는 올라올때 날씨좋은날 낮에만 항해를 해서 꽃놀이 하듯 올라와서 별 에피소드가 없어 조금은 아쉽네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