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주제18구간(이화령-조령샘-조령산-문경새재)
2002.01.26일 날씨 비 온 뒤 눈으로 바뀜
번잡스럽고 지루한 도시 생활를 벗어 던지고 오후 3시20분 문경행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에서의 고생이 기다리고 있지만 떠날 때 만큼은 기대와 해방감으로 마음은 언제나 출렁거린다.도심을 벗어나니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하늘에서 하얀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이런 날씨는 본능적으로 사람들에게 집시에게서나 흐를 법한 방랑벽을 충동질하는 것 같다.
창밖으로 눈은 내리고 고속도로에는 차들로 가득하다.
얼마 전에 새로 뚫었다는 엄청 긴 이화령 터널을 지나 문경읍 터미널에 도착했다.
오후 7시20분.
길 쪽에 있는 동화장(25,000원)보다는 안쪽에 있는 중앙장(20,000원)이 좀더 저렴한 만큼 허름하다.
배낭을 내려놓고 저녁을 먹으러 여관 옆 식당으로 들어갔다.
김치찌개랑 이 지방 특산물이란 것이 막걸리밖에 없어
그와 더불어 이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을 시작하게 되었다.
소 도시건 대 도시건 어디나 특산물이 없어져 버리고
음식 맛도 거의 평준화(통일화)되 가고 있는 것 같다.
교통이 발달하고 문물 교환이 쉬우니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옛날에는 여행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었던 특권이었는데 말이다.
폐일언하고 내일의 산행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2시에 일어나 산행 준비를 마치고 터미널 앞에서 졸고 있는 택시 기사를 깨워 이화령으로 향했다. 점점 고도가 높아지면서 눈의 양도 많아지고 눈발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택시(8,800원)는 눈밭에 긴 바퀴 자국만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화령(580m)도착. 오전3시. 눈발이 세차게 내리 꽂힌다.
산불 감시 초소를 지나 등산로 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늘 내가 이산 최초의 선등자로서 겪어야 할 고초가 말이 아닐 것이라는 예감이 뇌리를 스친다.
어디가 길인지 도대체 분간이 가질 않는다.
몇 번 좌충우돌하면서 개활지(헬기장)에 도착했다. 3시50분.
눈이 오는데다 러셀(눈길을 내는 것)도 안되 있고 초행길이라 자신 있게 길을 잡아 전진할 수가 없다. 눈에 얼어붙어 잘 보이지도 않는 표지기를 확인하며 그것도 안 보이면 거기서 맴맴을 돈다.
다시 내려가기는 아까우니까.
조령샘 도착 4시30분.
한겨울 산중 샘물치고는 얼지도 않고 고요한 산중 정적을 깨고 힘차게 솟구쳐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 능선길을 찾아 한동안 헤매다 주능선 길을 잡았다.
능선 갈림길 도착 4시58분.
왼쪽으로 촛대바위 길이고 절골까지 80분 소요, 조령산까지 10분 거리라고 푯말에 써 있다.
조령산 도착 5시20분. 무주 공산이다.
오직 나 하나 뿐인 산.
단지 뛰어난 조망을 주었더라면 금상첨화였는데 안타깝게도 날씨가 도와주질 않는다.
어디가 어딘지 분간도 안되고 단지 정상 표지석만이 이곳이 조령산(1,017m)이란 것을 알려줄 뿐이다. 제일 관문 용사골구간은 위험하다는 경고 푯말을 분명 읽고도
눈이 계속 내려 조급한 마음에 그냥 직진을 해 버렸다.
직벽에 가까운 길(죽기 직전까지)을 계속해서 내려가고 있는데 푯말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화살표가 뒤로 표시된 제3관문 푯말이.
그나마 푯말을 일찍 발견해서 되돌아올 수 있었지,
보질 못했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체력도 탕진하고 시간도 까먹고는 제3관문 가는 길과 제1관문 가는 갈림길로 되돌아와
머리를 쥐어뜯었다.
제3관문 길을 잡아 가다 보면 신풍으로 빠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신풍(왼쪽) 2.9km, 오른쪽으로는 새재 주막 2km고 여기서 제3관문까지 4km다.
도착 시간 6시39분.
여기까지는 그런 데로 길이 양호한 편이나 937봉을 오르는 길부터 치마바위 갈림길까지는 그야말로 지옥을 오가는 난코스다.
눈 덮인 암능은 계속 이어지고 우회로가 있을 법도 한데 눈이 덮여 보이지를 않는다.
천상 날등을 계속 타다 보니 위험 천만한 구간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거기다가 조령산에서 길을 잘못 들어 눈밭에서 헤엄을 쳐, 장갑이 온통 얼어 붙어 제 기능을 상실했는데 곳곳이 자일 밭이다.
언 장갑에 언 자일이 궁합이 맞겠는가?
정말로 목숨이 손과발 끝에 달려 있었다. 아린 손을 털면서 937봉 7시13분 도착.
30분 간격으로 조난 신고 푯말이 붙어 있는데 내게는 맞질 않는 말이다.
사고나면 누가 신고한단 말인가? 떨어지면서 전화하란 소린가? 무조건 조심하자고 다짐을 재차 했다.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다시 암능으로 된 923봉까지는 오르내림이 심한 암능 구간이다.
문바위봉 도착 9시38분.
마당 바위를 지나 깃대봉 갈림길까지는 지나온 구간에 비하면 천당이나 마찬가지다.
깃대봉 갈림길 도착 11시12분.
깃대봉(30분)1km, 조령산(3시간)4km, 제3관문(20분)1km 거리다.
여기서 우측 길을 잡아 내려서고 한 고비 봉우리를 넘으면 제3관문에 도착한다.
도착 시간 12시.
눈 덮인 암능을 오르내리며 너무 체력과 시간을 허비해서 하늘재까지 가려는 계획을 수정하고 하산키로 했다.
산신각을 지나 조령샘에서 라면 2개를 끓여 먹었다.
소백산에서 속 썩인 그 놈(콜맨442)이었는데 화력이 끝내 준다.
그때의 조작 미숙을 복수라도 하듯이 라면 2개를 게눈 감추듯 뚝딱 해치웠다.
조령샘은 조령성 구축시 새재에서 발견되어 과거보러 한양을 넘나 들 때 타는 목을 식혀 주는 명약수(백수령천)라고 한다.
마패봉 가는 길은 3관문 뒤쪽에 표지기가 달려 있다.
조령 3관문에서는 왼쪽 길을 잡아야 탈출이 쉽다.
오른쪽 길(제일관문, 제이관문)은 1시간30분 걸리고 왼쪽 길(소조령)은 30분 걸린다.
소조령 도착 1시40분.
소조령에서 수안보까지는 봉고를 얻어 탔다.
수안보에서 온천하고 걸어서 10분 거리인 수안보 터미널에서 문경읍 터미널로 버스(2,100원)로 이동하여 3시20분 인천행 버스에 오름.
귀가 시간 오후 7시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