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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혁주의 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이지명
제 43문: 우리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제물로부터 어떤 종류의 유익을 더 많이 얻습니까?
답: 그와 함께 그의 죽음의 능력을 통하여 우리의 옛 사람이 못박혀 죽었으며 장사지낸바 되고 그럼으로써 우리 안에서 육신의 악한 욕심이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하게 되고 우리가 스스로 그에게 감사로 희생을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Quid praeterea capimus commodi ex sacrificio & morte Christi?
-Quod virtute eius mortis, vetus noster homo una cum eo crucifigitur, interimitur, ac sepelitur, ne prauae cupiditates, & defideria carnis posthac in nobis regnet, sed nos ipsos ei hostiam gratitudinis offeramus.
(참고성경구절)
롬 6:6; 고후 5:15
(해설)
이 내용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신자들에게 적용되는 문제를 다룬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유익을 얻는다. 그 중에 하나는 소극적인 차원의 유익이요, 다른 하나는 적극적인 차원의 유익이다.
I. 옛 사람의 죽음
1. 옛사람이란 무엇인가?
‘옛사람’이란 우리가 자연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죄성향의 인간 실존을 가리킨다. 다른 말로 중생하지 않아 타락한 아담의 육신적인 탐욕을 지닌 인간을 가리킨다. 여기 ‘죽는다’(Absterben)는 말은 꺾어진 나무 가지가 점점 생명을 잃듯이 죽어버리는 그런 죽음이다. 이것은 성령의 중재사역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내게 적용됨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죄사함을 받고 사망의 상태 속에 있는 죄의 지배체제로부터 완전히 해방을 받는다. 이 일은 바로 이신칭의(以信稱義)를 통해 일어난다. 또 예수의 죽으심은 우리 속에 성화를 일으키는데 그 첫 단계가 바로 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예수를 믿기 이전에는 범죄하고 싶던 것이 이제는 하기 싫어지는 것은 이런 죽음을 뜻한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 4:22). 이 옛사람은 정욕에 눈이 어두워 그 자체 실족하여 부패한다.
2. 옛사람이 죽는 방법
이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일치한다. 제 43문은 다음과 같이 세 단계를 말한다: 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② 죽으시며 ③ 장사 지낸 바 됨.
-① 십자가에 못 박음. 이것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죄악의 성향을 차단시키는 것인데 여기에는 고통이 따른다. 범죄한 오른 손을 잘라 버리는 고통, 범죄한 눈을 빼버리는 고통으로 차단시켜야 한다(마 18:8; 눅 14:26; 요 12:25). 자연인에게는 이 차단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중생인들에게는 가능하다. 이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항상 예수께 붙어 살려는 마음이 있으면 가능하다.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십자가의 죽음은 가장 치욕의 죽음이다. 따라서 예수 때문에 수치를 당할 줄 알아야 한다. “(눅 21:17)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행 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고전 4:13)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② 죽임: 땅의 지체를 죽임. “(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 3: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골 3: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그리고 우리는 항상 우리가 죄에 대해 죽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즉 죄에 대해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③ 장사지냄: 이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의 옛 삶의 질서를 완전히 매장시킨다는 뜻이다. 만일 우리가 육체적인 죽음을 당하기 이 전에 옛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영원한 죽음을 당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자기의 옛사람을 죽이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 세상에서 아무리 출세해도 소용없다.
II. 옛사람은 어떻게 죽는가?
1. 사망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의 능력
옛사람은 우리 속에서 죽어야 한다. 자연적 출생을 통해 죄가 우리에게 전가(轉嫁)되었듯이 중생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망의 능력이 우리의 육신 속에 있는 죄를 이기기 위해 우리 위에 임해야 한다. 이것은 성령을 통해 일어난다.
2. 영적인 전투
육신의 악한 정욕은 중생한 사람 속에서도 요동한다. 그러나 이 정욕이 이들을 지배하지는 못한다. “(롬 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롬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즉 죄가 우리 마음에 압박을 가해 죄를 범하게 만들 때, 우리의 정욕을 자극시키는 것들이 오관을 통해 들어올 때, 감정에 따라 범죄하지 말고, 결단을 내리고 그것에 순종하지 않으면 육신의 정욕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3. 獻身의 삶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죽음에 내어주어 옛사람을 죽임에 대해 감사하여 그에게 우리를 제물로 드려야 한다. “(롬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가 교회의 지체로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영적인 승리의 삶을 사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4. 죄와 세상에 대해 죽음
죄와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죽은 자는 반응하지 못한다. 우리가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죄와 세상의 유혹에 대해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 유행에 민감하지 말라. 인터넷에 음란물이 쏟아져 나와도 그것에 반응하지 말라. 그것을 안 보면 된다.
5. 올레압누스(Olevianus)의 해석
“그리스도는 자기의 죽음으로 죄의 능력을 빼앗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들 속에는 죄가 죽는 것이다. 죄가 죽은 것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 속에 역사하는 죄의 힘이 매일 점점 약화되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능력이, 우리가 죽을 때까지,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임하여 역사하기 때문이다. 죽음은 우리 속에 있는 죄의 죽음을 방해하지 않고 진작시킨다. 이는 하나님께서 육체적인 죽음을 도구로 사용하여 우리의 부패한 육신이 완전히 제거되어 우리 몸이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한다”
(설교자료)
-옛사람을 죽여라
-승리의 삶을 사는 비결
제 44문: 왜 “음부로 내려가사”라는 문구가 뒤 따라 옵니까?
답: 그 가장 어려운 시험 가운데서도 나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안심할 수 있는 것으로 남기 위함입니다: 나의 주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자기의 지상 생애동안 그리고 더욱 한층 십자가에서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불안, 아픔 그리고 고통을 당하셨다는 것과 또 그것을 통해 나를 지옥의 모든 끔찍스러운 것들로부터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시 139:8; 고전 15:55).
-Cur additur, Descendit ad inferna?
-Ut in summis doloribus, & consolatione hac sustentem, quod Dominus meus Iesus Christus, inenarrabilibus animi sui an gustijs, cruciatibus & terroribus, in quos cum antea, tum maxime in cruce pendens fuerat demersus, me ab angustijs & cruciatibus inferni liberaverit.
(해설)
이 구절은 우리말 번역 사도신경에는 나오지 않으나 원문에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다룰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당한 지옥의 고통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1. 지옥의 의미(히브리어: 세올; 헬라어: 하데스), 성경은 세 가지 의미로 사용한다. -무덤(음부): 창 42:38(요셉이 없어진 후에 한 야곱의 말), 왕상 2:9(다윗이 솔로몬에게 자기를 모욕한 시am이에 대해 할 일을 예고할 때 언급함). -저주받은 자들이 모이는 곳: 마 11:27,눅 16:23(부자와 나사로). -지옥의 불안과 고통: 시 116:3; 30:4; 86:13: 삼상 2:6.
2. 그리스도가 영육간에 아울러 받은 지옥의 고통. 그는 십자가에서 육체적인 고통과 죽음을 당했지만 영적인 고통과(하나님이 그를 버리심) 죽음도 당하셨다. 사실 그날 지옥이 골고다에 임한 것이다. 개혁파 교회는 예수의 지옥가심을 이렇게 이해한다.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도 이 내용을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신 것을 지옥가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연옥 사상을 가능하게 하는 실제 예수의 영혼이 지옥이라는 공간으로 가셨다고 주장하는 로마 카톨릭이나 기타 주장들과는 구별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범죄한 아담의 자리에 서서 지옥의 고통을 당해야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진다면, 이 견해가 옳은 것 같다. 골고다에서 당하신 그의 고통은 최고에 달하는 것이다.
3. 그로 인해, -약속이 성취되고(호 13:14), -나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위로를 받는다. 거기서 우리를 건지시기 때문이다(살전 1:10; 고전 15:55,57).
제 45문: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답: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부활을 통해 죽음을 이기셨고 또 그로 인해 우리로 하여금 義 곧 그가 우리를 위해 자기의 죽음을 통해 벌어 놓으신 그 義에 참여하게 합십니다. 그리스도는 또한 우리를 (영적으로) 자기의 능력을 통해 새 생명으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창차 있을) 복된 우리의 부활을 위해 확실한 증인으로서 우리에게 보증이 되었습니다.
-Quid nobis prodest resurrectio Christi?
-Primum, 념 resurrectione mortem devicit, ut nos posset eius iustitiae, 벼므 nobis 념 morte pepererat, participes facere. Deinde nos iam quoq; eius potentia ad novam vitam excitamur. Postremo resurrectio Christi, nobis gloriae resurrectionis nostrae pignus est.
(참고성경구절)
벧전 1:3; 엡 2:5-6; 고전 15:20-21
(해설)
제 45문은 크게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대답하면 된다. ①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는 무엇인가? ② 이 부활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있는가?
I.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
1. 몸과 영혼의 다시 만남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영혼이 성부께서 영화롭게 해 주심을 통해 그의 몸과 다시 하나로 결합하여 이 몸이 생명을 얻고 영화롭게 된 사건을 말한다. 그리스도는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 나오시되 생명과 영광으로 나오셨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아담이 범죄하고 사망의 상태 속으로 들어간 사건의 반대엔 것이다.
2. 그리스도의 부활체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은 십자가에서 죽어 생명 없이 무덤에 장사되었던 바로 그 몸인데, 이젠 강하고 죽지 않는 몸이 되었다(요 20:27; 눅 24:39-40; 계 1:48; 롬 6:9). 질병에 걸리거나 늙지 않는 몸으로 부활하시되 영광스러운 몸이 된 것이다. 늙은이들이나 병자들의 모습은 사망의 그림자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몸이 되었다. 부활 후에 제자들이 문을 잠그고 숨어 있었을 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시어 자기 몸을 보이시며 부활을 증거하셨다. 이로 볼 때 최후의 심판과 더불어 이루어질 육체의 부활은 이제 더 이상 과학으로 만든 교통수단이 필요 없게 됨을 암시하는 것이다. 더구나 승천함을 통해 그의 몸이 새로운 질서 속으로 들어갔음을 암시한다.
3. 그리스도의 부활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다.
① 성부 하나님이 그를 일으키셨다(행 2:32; 롬 6:4; 히 13:20)
② 그리스도는 성자 하나님의 신성의 능력으로 다시 사셨다(요 2:19; 10:18).
③ 성령하나님이 살리셨다(롬 8:10).
4. 사흘만의 부활
그리스도는 제 3일에 부활하셨다. 그보다 일찍 부활하시지 않는 것은 그의 죽음이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서이고 그 보다 더 늦게 하지 않는 것은 육체 즉 그의 시체가 썩임을 당하지 않기 위함이다(행 13:35,37; 시 16:10). 요한복음 11:39에 나사로의 부활 사건이 나오는데 죽은 지 사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났다고 했다.
5.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의미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육체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그 이유는 우리 기독교 모든 신앙, 우리의 복받음, 영생이 바로 이 부활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부활이 없다면 고난 속에서 진리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무의미 할 것이다. 성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는 예수의 부활을 보고 우리도 그렇게 부활할 것을 믿기 때문이다.
6. 그리스도의 부활의 확실성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 세상 모든 역사적 사건들 가운데 가장 잘 증명되었다. 사실 역사 가운데는 사관의 입장에 따라 날조된 것들이 많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그것을 증거하는 무리들 뿐 아니라 원수들도 증거했다.
a) 그의 부활은 이미 사전에 선포되었다: 구약성경은 물론 신약성경도 그러하다.(고전 15:4; 시 16:10; 사 53:8).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예표에서 이 부활이 간접적으로나마 선포되었다: 노아의 방주(창 8:16). 모든 사람들이 다 죽었으나 노아의 가족들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났다. 이삭의 제물(창 22:4,12).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건을 부활과 연관시킨다. “(히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히 11:18)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히 11:19)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요셉이 감옥에서 나와 총리대신이 되어 영화스럽게 된 것도 부활의 성경을 부분적으로 반영한다(창 41:37이하). 또 아론의 싹 난 지팡이(민 17:1-11). 요나 사건(마 12:40).
-그리스도 자신이 죽으시기 전에 여러번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어하셨다(마 16:21; 17:23; 20:19; 요 2:19).
b) 부활 사건 뒤에 부활증거
① 원수들을 통해 증거되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자기의 죽으심과 부활을 예언하신 것을 알았고 또 그것을 두려워했다(마 27:63-64). 예수의 무덤을 지키던 로마 군인들이 예수의 부활을 모두 보고했다(마 28:11-15).
② 천사가 예수의 부활을 증거했다(마 28:6; 눅 24:23).
③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막달라 마리아(요 20:11-18), 다른 여자들(마 28:9-11), 베드로(눅 24:34; 고전 15:4),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눅 24:13-39), 도마가 없을 때 제자들에게 나타나심(요 20:19-25), 8일 후 도마가 있을 때 제자들에게 나타나심(요 20:26-29), 디베랴 바다(요 21:1-14), 갈리리 산(마 28:16; 고전 15:6). 야고보와 주의 형제들(고전 15:6), 감람산 11제자(승천)( 막 16:19; 눅 24:50; 행 1:4-9).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영화스럽게 부활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었다. 그가 제자들 앞에서 음식을 먹은 것은 영양소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가 육체로 부활하셨음을 증거하기 위해서이다(눅 24:39-43; 행 10:41). 또 그는 갑자기 문이 닫혀진 방에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났다. 그의 영화로운 몸은 공간적 제한을 받지 않는다(요 20:21,14).
II. 부활이 주는 세가지 유익
A. 첫 째 유익은 우리의 칭의이다.
1. 속전(贖錢)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죄에 대한 속전(贖錢)을 지불하셨다. 속전이란 노예상태에 있는 사람을 몸값을 지불하고 살 때 쓰이는 돈인데 이와 더불어 이 노예는 노예상태를 벗어나 자유롭게 될 수 있다. 이 노예의 운명은 그를 위해 몸값을 지불한 사람에게 달려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바로 이런 속전과 같은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이런 속전을 지불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의 종이 되어 있을 것이고 동시에 사단의 지배 아래에 있을 것이다.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 우리가 지불해야할 빚을 지불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는 우리의 의가 되신 것이다. “(히 7: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히 7:27)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2.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심
그런데 죽으심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 죄와 사망의 권세와 사단의 권세를 깨드리시기 위해 부활하셔야 한다. “(딤후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그가 만일 부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 “(롬 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요컨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한편으로는 속전을 지불하셨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것이다.
3. 올레비아누스의 주장
“첫째 유익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증거 곧 그의 몸이 우리 모두의 죄 때문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 앞에서 너무나 공의롭게 처리하심에 대한 확실한 증거라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의 말과 일치한다: ‘(고전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신자들은 이제 더 이상 죄 가운데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신자들 속에 죄가 더 이상 없다는 말이 아니고 죄가 용서함을 받았고 계산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불해야 될 죄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 만일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지 않으셨다면, 부활하지 않았을 것이다.
B. 둘째 유익은 우리를 생명있게 만들고 성화시키는 것이다
1.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단순한 법정의 재판과정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효능을 체험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의 죽으심과 부활의 열매인 의에 참여하게 하신다면, 우리는 이 의의 능력을 내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영적인 부활에 이르게 한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이 생에서 죄악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상태가 바뀌어지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성령 안에서 생명력 있게 만들고 또는 중생 그리고 성화를 통해 일어나는 것이다. 즉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는 ‘닦음’ 2000.8.15 16:00 불교 방송의 동양철학 강의. 강의자는 동양철학의 근본을 ‘닦음’에 뿌리를 박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매우 적절한 지적이다. 이것은 '밑에서'(von unten her) 인간의 노력으로 완전한 데로 올라가려는 시도이다. 반면에 기독교는 '위에서'(von oben her) 하나님이 오셔서 인간을 죄악에서 그집어 내어 생명있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사실 기독교와 일반 종교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기독교 지도자들이 종교다원주의 운동을 다루거나 참여할 때 상당한 반성이 요구된다.에 뿌리를 박고 있는 동양 철학 내지 일반자연종교화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것이다.
옛사람이 죽는 것(HK43)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능력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성화의 첫 단계이다. 또 새사람의 중생은 그의 부활의 능력을 통해서인데 이것은 성화의 둘째 단계이다.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빌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 3: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골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 2:13)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2. 예수의 부활을 통해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아론의 싹난 지팡이처럼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엡 2:4-10). 생명이란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연결되어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상태를 말한다. 인간은 이런 상태에 있을 때 비로소 인간으로서 그 역할을 해 낼 수 있는 것이다.
C. 셋째 유익은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것이다.
1.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보증으로서 우리를 위해 속전을 지불하신 것처럼, 그의 부활 또한 우리의 몸이 죽었다가 그의 부활의 능력으로 먼지 상태에서 다시 살리시고 영화롭게 하심에 대한 보증이 되신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영화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셨듯이 우리도 그렇게 되는 것에 대한 보증이 된다는 말이다. 이것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첫 열매’ 사상과 일치하는 것이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이 내용은 신 26장에 나오는 첫 열매에 근거하여 부활을 해석한 것이다. 첫 열매를 거두었다는 것은 나머지 곡식도 거둘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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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열매 나머지
2. 세상 끝 날에는 두 가지 종류의 부활이 있다. 하나는 영생의 복락을 위한 부활이고 다른 하나는 저주를 받기 위한 부활이다. 그날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성령 곧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실 것이다.(롬 8:11). 따라서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성령을 근심시키거나 훼방해서는 안 된다.
올레비아누스가 지적했듯이 우리의 몸과 영혼이 그리스도의 지체이므로(고전 6:20), 우리는 나중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이 두 과정을 경험한다. 그리스도의 몸이 치욕을 받았으므로 그의 지체인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몸도 썩임에 내어 준바 되고,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님이 그의 몸을, 죄와 사망을 완전히 정복하신 몸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듯이 우리를 그와 똑같이 완전한 의와 거룩으로 부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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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고난의 몸 / 부활의 영광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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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 죽어 썩음 / 영광의 몸으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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