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 시인의 시창작법
사물의 내면과 상상력을 찾아 떠나는 여행 -흰 눈이 내릴 때 빨간 고무신은 어디로 갔나 –시詩 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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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二十二, 진리는 얻을 것 없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신 것은 얻으신 것이 없는 것이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수보리야.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함은 내가 어떤 진리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지 않은 경계에서 아무 것도 얻는 것이 없는 것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하였을 따름이니라.』
* 금강반야바라밀경 / 요진 삼장법사 구마라집 역 / 선문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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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가 모처럼 야외 수업을 하는 날입니다. 범어사역 5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며칠 전부터 카카오톡으로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카카오톡은 언제부터 있었던 것일까요? 언제부터 톡을 하지 않으면 우리 생활은 좀 불편한 것으로 되어 있었을까요? (물론 예외인 사람들도 있지만요) 톡을 하려면 테이터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테이터에 사용량에 따라 휴대폰 요금이 달라집니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려면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Social Network Services)와 사람에 대한 관계의 그물에 의문을 던지는 것,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과 자연의 관계, 사람과 사물의 관계, 사물과 사물의 관계 (자연과 사람의 관계. 사물과 사람의 관계) 모든 관계의 형성과 소멸에 대한 의심을 갖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 속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생각과 섬세하고 역설적인(패러독스paradox) 문장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를 공부하고 있지만 결국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를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는 여기에도 없고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없고 저기에도 있습니다. 그물은 그물이고 그 물은 그 물이고 그물은 그 물이고 그 물은 그물입니다. 그늘은 그늘이고 나무늘보는 나무늘보입니다. 항상 사물을 있는 그대로 명확히 보면서 그 속에 스며있는 슬픔과 고독, 외로움, 기쁨, 행복 등 생의 진정성을 볼 수 있는 잠자리의 천 개의 눈과 달팽이의 느리고 재빠른 미끈미끈한 구천 구백 구십 개의 더듬이를 키워나가야겠습니다.
⁍ 사물과 사람이 서로 스며들다
* 컵에 생수를 가득 따르다
-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컵은 거대한 입을 벌려 생수를 (굴떡굴떡) 삼킵니다.
* 서랍을 열다
- 새벽 내내 바닷물에 젖어있던 서랍은 감빛 저녁놀이 갈매기 등에 올라탈 때 즈음 배고프다고 혀를 움직였다.
<스스로 문장을 만들어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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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쓰기 시 한 편>
새소리를 듣고 생각하다
송 진
아파트 부엌 뒤쪽 베란다 창의 직사각형 망을 열어 키가 삼십 미터 정도 되는 구불구불한 굵은 밧줄처럼 생긴 점 많은 소나무 가지에 검은 새 한 마리가 앉아있다는 걸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은쟁반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리는 신비로운 새소리를 따라가서 알게 되었습니다. 새는 자신을 알린 적이 없지만 새가 지저귀면 우주에는 듣는 귀들이 있습니다. 제각기 아는 만큼 듣고 아는 만큼 깨닫습니다. 높고 낮음의 차이가 없습니다. 모두 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새입니다.
<생각 쓰기 시 한 편 실천하기>
제목:
이름:
내용:
시는 강원도 산자락에 내린 하얀 눈처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눈을 바라본 마음은 “와! 아름답다.”라는 환호성을 내지르기도 하고 말없이 눈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말을 해도 말, 말을 하지 않아도 말이 되지요 눈이 내려도 눈, 눈이 내리지 않아도 눈이 되듯이. 눈이 수증기로 떠다닐 때는 아무도 눈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비가 내릴 때 아무도 비를 눈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눈으로 내릴 때 사람들은 ‘눈이 내린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린다.’라고 듣고 자라왔습니다. ‘눈이 내린다.’라고 하지 않고 ‘비가 내린다.’라고 하면 사람들은 비가 내리는 걸로 듣습니다. 비는 비고 눈은 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한 가지입니다. 시를 쓰자 그러면 시를 쓰면 됩니다. 시를 쓰기 전에 시를 쓰는 재주가 있어서 잘 쓰니 재주가 없어서 못 쓰니 그런 말들은 죽은 말들입니다. 시는 쓰기 시작하는 그 순간, 언어는 알아서 기표와 기의가 충돌을 일으키기도 하고 적당한 합의점을 이끌어 내거나 불화를 표출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전복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시를 쓰고 싶으면 쓰면 됩니다. 가장 단순하게 한 점을 바라봅니다. 그러면 가장 단순한 그 한 점이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다양한 언어의 세계, 시의 세계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시>
속이 쓰려 평촌 요구르트 하나 쭉 빨아 먹습니다. 새끼손가락 거스러미가 거슬려서 앞니로 물어뜯습니다 오른쪽 눈알이 하나 툭 터져서 주르르 흘러내립니다. 까짓것 갈테면 가라지요 이제 이 몸도 삭아 정신을 떠날 때가 되었나 봅니다 몸이 떠나면 떡국을 담을 그릇이 없으니 새해 떡국은 없는 손바닥에 담아 먹어야겠습니다 아 뜨거, 그런 말도 못하지요 아직 정신이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니까요 얼른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나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얼른 안으로 들어오고 싶다고 들어올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호흡을 한 번 내쉬면 달이 뜨고 호흡을 한 번 들이마시면 구름이 흩어집니다 새 두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날아갑니다 요놈들아 불러봅니다 요놈들이 뒤돌아보며 뽀르릉 뽀르릉 요상한 소리를 냅니다 요상한 소리가 그리워 따라가기에는 너무 먼 강을 건너 왔습니다 나귀도 없고 말도 없고 구름도 없고 달도 없는 폭설의 오후 강원도에서 얼룩덜룩 연보랏빛 스카프가 달려옵니다 이제 저 보랏빛 스카프를 타고 지붕 위로 날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노을이 흰빛입니다 흰소리 그만하고 가라고 까치가 까악까악 까마귀가 까막까막 참 저 녀석들 요물입니다 어찌 알고
송 진 _ <초혼招魂>
강원도에 함박눈이 펑펑 내렸으니 시인의 마음으로 한 번 가볼 만도 할 텐데 현실은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마치 ‘나’ 하나가 없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눈에도 비에도 현실에도 현혹되지 말고 ‘나’ 가 이미 탐진치를 다 버린 텅 빈 그릇임을 알고 항상 자신을 들여다보고 집중하여 시를 열심히 쓰고 있는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 이미지 따라가기
예) 눈
눈雪-눈目-눈동자-빨간 사슴의 눈동자-화살-우물-왕관-집터-문무대왕-용-동해 바다-바다에 내리는 하얀 눈-동해 바다는 눈 오면 오는 대로 눈 그치면 그치는 대로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고 늘 그대로 가부좌 틀고 합장하고 앉아있다-만파식적萬波息笛-아, 푸른 피리 소리여!
‣ 직접 이미지를 따라가 봅니다.
1) 비
2) 피아노
시詩 멀미를 자주 하시기 바랍니다. 욕심을 좀 많이 부리자면 시 멀미를 늘 하시기 바랍니다. 시 멀리를 하지 말고 시 멀미를 하시길 바랍니다. 꿈속에서조차 시 멀미를 하시길 바랍니다. 간절히 바랍니다. 왜 그렇게 간절히 바라느냐구요. 그건 여러분이 시를 잘 받아쓰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시는 내가 쓰지만 사실 그것은 내가 쓰는 것이 아니지요. 내 몸은 시를 받아쓰기 위한 총체적으로 구조화된 몸일 뿐이지요. 시간과 공간 밖에서 살던 시가 힘겹게 혹은 자연스럽게 시간과 공간 속의 몸속으로 들어오면 온몸은 혼신을 다해 시를 받아쓰고자 발버둥 칩니다. 버둥버둥거리다 시가 더 멀리 도망가기도 합니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시를 받아쓰고 나면 몸은 다시 이전의 몸으로 돌아가 무덤처럼 무덤덤해집니다. 언제 시를 썼냐는 듯이 말없는 무덤처럼 서 있습니다. 누군가 와서 절을 하고 술(소주든 막걸리든 청주든 맥주든 위스키든)을 따르고 꽃(조화든 생화든)을 놓고 너털울음과 너털웃음이 번갈아가며 한 벌의 수의를 짓습니다. 배롱나무꽃 사이의 귀리밥 같은 하늘을 붉어진 눈동자로 바라봅니다. 써도 써도 목이 마르는 시의 갈증을, 토해도 토해도 다 토해지지 않는 시의 멀미를, 뜨거운 중복의 태양 아래 서 있는 우포늪 거룻배의 아랫배처럼 훤히 들여다보지 못하는 시각의 중증을 앓고 있습니다. 시 멀미는 멀리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경향이 짙습니다. 시의 말미는 언제쯤 잘 짜여진 한 벌의 수의를 보여줄까요. 거룻배 속의 한 벌의 수의가 훨훨 불타고 있을 때쯤일까요. 시는 우연과 우연히 만나서 내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우연도 그러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임을 이제 알 것 같기도 합니다. 그날그날의 상상이든 생각이든 또는 그 무엇이든 떠오르는 것을 놓치지 않고 날마다 쓴다며 활활 불타는 한 벌의 수의 같은 시의 멀미가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찾아올 것 같기도 한 7월 28일입니다. 배롱나무 밑에 뿌려진 귀리 껍질이 시의 본질을 껴안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은 왜 일까요. 그러나 시의 본질이라는 것도 그저 이름뿐인 헛된 망상일 뿐입니다.
<시>
밤 열한 시 마을버스 6번을 타고 수상한 꽃동네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서너 정류소 갔을까요 위胃 저 깊은 곳에서 밤 향기도 아니고 매미 향기도 아니고 고양이 향기도 아니고 개 향기도 아닌 향기들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곧 닭발처럼 웅성거리기 시작합니다 쏴아 밥알들이 씻겨 내려가는 소리가 흰 파도처럼 들리더니 쏴아 말매미들이 밥내놔라밥내놔라밥내놔라 귀청을 찢습니다 오전에는 구청 어린이 보호구역 김순록 주무관에게 안전에 관한 열일곱 번 째 전화를 드렸습니다 방학 중인 어린 말매미들이 개학 후에는 사차선 도로를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도록 경찰서 보호소에 머물고 있는 ‘횡단보도’를 데리고 오는 입양길이 열리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아직 경찰서 보호소에 머물고 있는 ‘횡단보도’를 데리고 오는 일은 힘이 듭니다 이름 모를 향기는 속을 긁고 나는 입덧을 하듯 토하려고 합니다 기사아저씨! 우억우억 마을버스를 잠시 세웁니다 토악질을 하기도 전 마을버스는 바이바이 떠나갑니다 말매미는 더욱 요란하게 울어댑니다 떠나지마떠나지마떠나지마 마지막 마을버스는 덩치는 작아도 기운이 센 막차입니다 토한 자리에 이삼순 외할머니가 자주 끓여주시던 토란국 한 송이 피어있습니다
송 진 _ <어린이 보호구역 김순록 주무관 썰매를 타고>
⁍ 매미와 잠재적 기억들과의 만남 그리고 충돌 그리고 부서짐 그리고 다시 재회의 따듯한 입김들
매미는 따듯한가요 매미는 추운가요 매미는 쓸쓸한가요 우리 매미를 기억해봐요 상투적인 삶의 방식 말고 말이에요 전투적인 시간의 방식 말고 말이에요 격투기 같은 공간의 방식 말고 말이에요 우리 전통적 매미는 어디 있는지 우리 그것부터 기억해봐요 따듯한 오렌지빛 조명삿갓의 날개를 허물처럼 뒤집어 쓴 매미, 나이키 깃털을 가진 비둘기 옆에 죽어있는 갈색매미 우리 매미야 어디 있니 쏴아- 분수대의 음악조명이 빵빠르르르르 아들은 권총놀이를 해요 딸은 칼놀이를 해요 세상이 어찌되려나 봐요 그러나 그렇지요 곧 세상은 금방 둥글둥글 꿀과 올리고당이 잘 발라진 치즈핫케이크처럼 돌아가고 있어요 사람들은 땅에 머리를 딛고 있어요 전철의 먼지는 멀고 먼 바다 앵무조개껍질마다 가득하지요
송 진 _ <오렌지 매미>
<직접 쓰기 시간입니다>
‣ 매미와 잠재적 기억들과의 만남 그리고 충돌 그리고 부서짐 그리고 다시 재회의 따듯한 입김들에 대하여 <오십 개의 단어, 스물 개의 문장, 그리고 한 편의 시> 순으로 쓰기
• 오십 개의 단어:
• 스물 개의 문장:
• 그리고 한 편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