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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중무진의 세계
나팔꽃이 피고 달맞이꽃이 피는 동안 서울은 그늘 속에서도 그늘 밖에서도 스팀처럼 뜨거웠다. 부산에 비가 자주 내려서 큰스님은 몸이 무거웠다고 하셨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암자에까지 산책을 가고, 비가 내리는 날엔 실내에서 러닝머신을 걷는다고 하셨다.
“오늘 아침에도 암자에까지 갔다왔지.”
더위와 아랑곳없이 문수선원은 쾌적했다.
“이곳이 극락”이라고 했더니 “에어컨을 틀었다”며 보살님들이 웃으셨다. 에어컨을 틀고 선풍기를 돌리고, 차가운 음료를 준비하고, 큰스님께 새로 만든 부채를 선물하시는 그 마음들이 문수선원의 온도를 청량하게 한다.
오늘 인사오신 스님들 중에는 특별히 이웃한 암자에 사시는 비구니스님들, 같은 지역에서 한 차를 이용해서 오신 스님들이 많았다. 큰스님께서 기뻐하셨다.
“이웃에 살면서 어려울 땐 서로 도와주고, 공부하러 같이 다니고, 참 좋다.”
“언제 스님들 사는 곳을 다 돌아봐야겠구나.”
두 번이나 말씀하셨다. 특히 양산에서 오신 비구니스님들을 반가와 하셨는데, 젊은 시절 큰스님께서도 암자자리를 찾아서 양산의 골짜기 골짜기를 다 다니셨다고 하셨다. 그곳 지리에 훤하셨다.
“양산에서 부산까지 30분까지 안 걸립니다. 스님, 저희들은 복이지요.”
“그렇지.서울에서 오는 스님들도 많은데.”
도반끼리 오신 스님들은 안온했고, 혼자오신 스님들은 청정했다.
구름같고 나무같고 꽃과 같은 수행자들이 스승에게 인사를 올리고 환담을 나누는 동안 방안의 공기는 피톤치드가 강하게 나오는 산림욕장처럼 숨쉬기가 가벼웠다.
“염화실 강의를 다 들었습니다.”태고종 스님이 합장을 하고 말씀하셨다.
큰스님께서 몸을 바짝 일으키시며 반가와 하셨다.
“그래? 무슨 이름으로 오지?”
염화실에 오는 사람들이 제일 사랑스럽다고 하셨다. 같이 오신 도반스님은 ‘컴맹이어서’아직 염화실에는 들어오시지 않는다고 하자 큰스님께서 정색을 하시며 꼭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목탁치는 일보다 쉬워요.”
<다음까페 염화실>에 올려진 지난 부처님 오신 날 영상에는 문수선원 특별법회에서 부처님 관욕식을 하는 내내 큰스님께서 손수 목탁을 치시고 염불을 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지난 번에 염화실 안산팀을 만났을 때 그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혜강거사님은 화면으로 보는데도 내내 마음이 송구하여 혼났다고 하셨다. “그런데 큰스님 염불은 힘이 있어요.” 큰스님의 제자이신 스님께서 말씀하시자 모두는 “그럼요 아주 환희로왔어요.” 하고 동시에 미소를 담뿍 지었다. 미소짓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는 저절로 더 큰 미소를 지었다.
오늘 법회 첫머리에서 큰스님은 <다음까페 염화실>이야기를 하셨다.
화엄법회가 이 자리에서 끝나지 않고 염화실에도 올려지고 또 이것을 복사하여 다른 까페나 블러그에 옮기는 이들이 있고, 그것은 또 다시 복사가 되니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중중무진의 세계.
가사 입은 청정한 스님들이 뿜어내는 부드럽지만 날선 빛들이 쟁강쟁강, 심해같고 태산 같은 방일과 교만을 허문다.
화엄산림 10년 결사의 첫여름, 문수선원은 뜨겁고도 서늘하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
그동안 문수경전연구회에서 법화경 공부를 하고 임제록 공부를 했다. 오늘 나눠드린 ‘임제록대강좌’ 씨디는 화엄경 직전에 임제록 강의를 했던 내용을 mp3용으로 만든 것이다. 이것은 모두 여러분들이 내신 회비로 만들었다. 매달 나가는 <염화실>이라고 하는 잡지도 역시 우리 스님들이 내신 회비에서 다 만든 것이다. 이런 자료들을 가지고 복습을 하면 공부가 훨씬 익숙해지실 것이다.
*
인터넷에 연결하여 한글로 <염화실>만 쳐도 <다음까페 염화실>이 뜬다.
우리가 공부한 이 모든 동영상은 <다음까페 염화실>에 다 올려지고, 올리자마자 녹취를 하는 분도 있다. 편안한 시간, 편안한 장소에서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얼마든지 다시 듣고 읽을 수 있다.
염화실에 올려진 강의는 문을 막아놓지 않아서 손님으로 들어와서도 들을 수 있다. 아무 조건 없이 들을 수 있고, 복사할 수 있고, 퍼갈 수 있다.
아까 어떤 스님이 오셔서 염화실에 올려진 강의는 싹 다 들었다고 하기에 얼마나 반가왔는지 모른다. 내가 제일 공을 많이 들이는 것이 < 염화실 까페>이다.
이 시간 강의를 염화실에 올려놓으면 300명 내지 400명이 항상 듣는다. 또 그것을 퍼가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우리가 여기서 한 200여 명이 공부하지만 그것을 복사해서 또 다른 곳에 전파를 하고 또 그것을 또 다시 복사하니까 그 숫자가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우리들만의 공부로 끝나지 않고 많은 분들에게 회향이 된다고 하는 것이 제일 좋은 점이다.
바야흐로 우리가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다.
21세기 최대발명품이 인터넷이라고 한다. 저의 강의 뿐만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스님들의 설법과 글과 경전이 그 속에 다 연결되어 있다.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이 시대에 ‘인터넷 못한다’‘컴퓨터 못한다’하는 말은 결코 자랑이 아니다. 중 승(僧)자가 사람인(人)변에 일찍증(曾)자 아닌가. 스님들은 세상 사람보다 한걸음 앞서 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것이 스님들의 의무와 책임이다.
인터넷이 목탁 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이러한 기회에 화엄경 공부도 공부지만, 인터넷도 능숙하게 익혀서 수많은 정보와 편리한 이점을 잘 활용하기 바란다. 인류사에 있어서 최첨단 발명품을 수용하고 활용하는 것도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의 바람직한 모습이다.
*
<유인물 앞>
(제5강 2010년 7월 6일)
* 1, 四法界
1. 사법계(事法界) 2. 이법계(理法界) 3.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
4.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화엄법계현경, 팔종강요, 종밀의 주화엄법계관문>
*2, 六相圓融--<總相, 別相> <同相, 異相> <成相, 壞相>--십지품 제1환희지에 운, 又 發大願호대 願一切菩薩行이 廣大無量하야 不壞不難하며 攝諸波羅蜜하야 淨治諸地하며 總相別相과 同相異相과 成相壞相의 所有菩薩行을 皆如實說하야 敎化一切하야 令其受行하야 心得增長호대 廣大如法界하며 究竟如虛空하며 盡未來際하야 一切劫數에 無有休息이니라
*3, 十玄門(十玄緣起)--<新十玄--제3조 賢首法藏의 탐현기>
1.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古十玄의 1
2. 광협자재무애문(廣狹自在無碍門)--古十玄의 7
3.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古十玄의 2
4.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古十玄의 3
5. 은밀현료구성문(隱密顯了俱成門)--古十玄의 6
6. 미세상용안립분(微細相容安立門)--古十玄의 5
7. 인다라망경계문(因陀羅網境界門)--古十玄의 4
8. 탁사현법생해문(託事顯法生解門)--古十玄의 10
9. 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異成門)--古十玄의 8
10. 주반원명구덕문(主伴圓明具德門)--古十玄의 9
*<古十玄--제2조 智儼의 一乘十玄門과 제3조 賢首法藏의 華嚴五敎章>
<제1조 杜順 제3조 義湘 제4조 淸凉澄觀 제5조 圭峰宗密)
1.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新十玄의 1
2.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新十玄의 3
3.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新十玄의 4
4. 인다라망경계문(因陀羅網境界門)--新十玄의 7
5. 미세상용안립분(微細相容安立門)--新十玄의 6
6. 비밀은현구성문(秘密隱顯俱成門)--新十玄의 5
7. 제장순잡구덕문(諸藏純雜具德門)--新十玄의 2
8. 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異成門)--新十玄의 9
9. 유심회전선성문(唯心廻轉善成門)--新十玄의 10
10. 탁사현법생해문(託事顯法生解門)--新十玄의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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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을 공부하신 화엄학자들은 대개 역사적으로 화엄경의 깊은 이치를 세 가지 법수로써 정리한다.
사종법계(四種法界) 또는 사법계(四法界)/ 육상원융(六相圓融)/ 십현문(十玄門) 또는 십현연기(十玄緣起) 이렇게 세가지 숫자로 된 낱말로써 화엄경의 높고 깊은 이치를 표현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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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상에서는 이 세상을 그대로 ‘진리의 세계[法界]’라고 한다. 세계는 불교용어로 시방법계이다. 불교적 안목에서 볼 때 이 세상은 그 어디든지, 이 지구에서부터 저 무한히 넓은 광대한 우주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대로 진리의 세계인 것이다. 법((法) 이라는 말이 진리라는 뜻이다. 그래서 세계를 법계(法界)라 부르는 것은 이 세상을 그냥 하나의 세계라 보는 것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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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계(四法界) : 법계(法界)라는 것을 좀 더 세분해서 보면 현상이 있고, 현상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법(理法)이 있다.
-1.사법계(事法界): 사(事)는 사상(事象) 즉, 사물과 현상을 말한다. 눈에 보이는 것,귀에 들리는 것이 다 포함된다. 눈앞에 벌어진 현상을 그대로 진리라고 본다.
-2.이법계(理法界): 그 이면에 숨어있는 진리의 세계다. 공(空)이든 불성이든 법성이든 그것을 그대로 하나의 진리의 세계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3.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진리의 세계[理]와 현상의 세계[事]가 걸림 없이 그대로 원만한 상태다. 이치의 면과 사상(事象)의 면이 서로 동시에 갖춰져 있는 모습이다. 이것이 서로 전혀 장애하지 않고 구애됨이 없이 그대로 굴러가고 있는 것을 표현한다.
사찰을 예로 들면 이판과 사판이 있다. 살림을 보는 소임자가 있고 선방이나 강원에서 공부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모두 조화를 잘 이뤘을 때 가장 이상적인 대중처소가 된다. 그것이 바로 무애다. 무애가 크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판은 이판대로 사판은 사판대로 서로 조화하고 융화해서 어떤 한 사찰, 어떤 한 단체가 제대로 굴러가는 것처럼 모든 존재가 이대로 원만하게 잘 가고 있다. 그러한 것을 이사무애법계라 이해할 수 있다.
사법계라든지 이법계 이사무애법계까지는 법계를 이해함에 있어서 무리함이 없다.
-4.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 : 사물과 사물, 현상과 현상이 걸리지 않는다. 이것이 제일 어려운 단계이다. 얼른 생각에 산하석벽의 장애가 없이 그냥 통과해서 지나가는 것으로써 착각하거나 오해할 수 있다. 절대 그런 것이 아니다. 현재의 모든 사물과 사물은 그대로 서로가 장애 없이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뜻이다.
호흡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여기에 가득 있는데 나 혼자만 내 호흡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의 호흡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내가 이 순간 이렇게 존재한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니고 사람과 물질도 그렇다. 예를 들어서 마이크,꽃,책상,시계,건물,시멘트,철근,저 흘러가는 구름,지나가는 바람, 이 모든 것은 사람과 함께 전부가 원융무애하게 아무런 걸림이 없이 조화롭게 살아간다.
전부 남의 것에 의해서 내가 살아간다. 남이라고 하는 그 또한 나를 포함한 모든 것에 의해서 살아간다. 꽃도 마찬가지이다. 꽃도 우리 사람과 기타 모든 존재를 통해서 살아간다.
사람 사람은 물론, 모든 존재가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이다.
이것이 화엄경의 안목이고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이다.
우리가 이것을 잘 이해했을 때, 그것이 나의 인격이 되었을 때, 우리의 삶은 지금 같지 않다. 참으로 다른 현상을 보게 될 것이다. 그 현상에 맞는 진리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상당히 난해한 이치이다. 두고두고 공부해야하고 상당한 사유를 필요로 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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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무애의 이치가 바로 화엄경의 안목이다. 화엄경에 구체적인 용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화엄경 게송의 구석구석에는 이 사사무애의 이치를 말한 것이 무수히 많다.
화엄법계현경(華嚴法界玄鏡) 또는 팔종강요(八宗綱要) 규봉종밀 스님의 주화엄법계관문(注華嚴法界觀門) 등의 서적에서 이러한 용어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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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원융(六相圓融): 십지품 제1환희지에 있는 글이다.
총상(總相)과 별상(別相)이 대(對)고, 동상(同相) 이상(異相)이 대고, 성상(成相) 괴상(壞相)이 대이다. 총(總),별(別),동(同),이(異),성(成), 괴(壞), 이것이 여섯가지 원융(圓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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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원(願)을 발(發)하는데,일체보살행(一切菩薩行)이 광대무량(廣大無量)해서 무너지지도 않고 섞이지도 아니하며, 모든 바라밀을 전부 포섭해서 온갖 보살의 지위를 잘 다스린다. 총상(總相) 별상(別相) 동상(同相) 이상(異相) 성상(成相) 괴상(壞相)의 존재하는 바 모든 보살행을 다 여실하게 설한다. 그래서 일체사람들을 다 교화해서 그로 하여금 받아 행하도록 해서 마음이 자꾸자꾸 발전한다. 얼마나 발전하는가 하면 그 넓고 크기가 이 우주의 진리의 세계와 똑같이 해서 구경에는 허공과 같고 시간적으로는 미래제(未來際)가 다 할 때까지, 일체의 시간속에서 쉬는 바가 없이 보살행을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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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옛날 사람들이 육상(六相)을 잘 이해하도록 집을 이야기 한다.
집은 총상(總相)이다. 그런데 집은 그냥 집이 아니다. 요즘 현대 건물을 예로들면 시멘트나 철근, 돌, 나무 등등 별별 자재가 다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별상(別相)이다.
집은 총상이고 창문이나 문틀 할 것 없이 여러 가지 자재는 별상이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이 다 그렇다.
우리가 지금 공부를 하고 있는 이 법회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서 ‘문수경전연구회 화엄산림’ 하면 이것이 총상이다. 그러나 개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살림살이가 따로 있으므로 이것은 별상이다.
동상이나 이상도 마찬가지다. 공동체라고 봤을 때는 동상(同相)이 되고, 개개인의 차별된 삶으로 봤을 때는 이상(異相)이다.
성상이나 괴상도 그렇다. 우리가 이 자리에 이렇게 많이 모였을 때는 하나가 성립된다. 성( 成)이다. 여기 동참한 스님들의 사찰에서 무슨 행사가 있어서 우리가 그 쪽으로 다 모였다 면 거기는 또 거기대로 하나의 성상이 된다. 이루어지고 성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이 있으므로 여기 법회에 모였다고 해서 늘 이대로 있는 것이 아니다. 늘 이대로 있으면 오히려 큰일이다. 이대로 늘 있지도 않고, 있어서도 안 된다. 흩어질 때는 다 흩어져야 된다. 이것이 괴(壞)이다.
모든 존재가 이렇게 상반된 원리속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 또 이미 그렇게 잘 이루어져 가고 있다. 그러한 상반된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잘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육신 하나를 두고도 그렇고, 단체를 두고도 그렇고,한 사찰을 두고도 그렇고, 집을 두고도 그렇다. 모든 것이 다 이렇게 총(總),별(別),동(同),이(異),성(成), 괴(壞)의 여섯 가지 입장으로 존재한다. 이것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고 살아가는 것과 이 여섯 가지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살아가는 것과 다르다. 이해하지 못하면 자기집착내지 고집이 생긴다.
‘우리는 단체인데 왜 혼자 개별적으로 노느냐?’나는 나인데 왜 내가 거기에 예속되어야 되느냐?’이렇게 말하는 것은 잘 못된 것이다. 단체일 수도 있고 개별적인 개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개인이면서 단체가 되고 단체이면서 개인이 되는 것, 이것이 정말 조화를 잘 이루고 원융하게 돌아갈 때,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 나온다.
이렇게 보는 것이 화엄경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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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현문(十玄門) 십현연기(十玄緣起) : 경전에는 간혹 상식을 초월하는 이야기들도 나오는데, 이것을 교리적으로 정리하고, 옛날 스님들이 화엄경의 이치를 어떻게 하면 이해를 시킬까 해서 정리한 것이 사법계나 육도원융, 십현문이다. 십현문 역시 이야기하기로 하면 상당히 까다롭고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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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현문(十玄門)에는 고십현문과 신십현문이 있는데 고십현문이 먼저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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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십현(古十玄) : 화엄의 2조 지엄스님의 일승십현문(一乘十玄門)이라고 하는 글과, 3조 현수법장스님의 화엄오교장(華嚴五敎章)에서 고십현문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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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현수법장스님이 탐현기에서 다시 정리한 것이 신십현(新十玄)이다. 몇 개가 다를 뿐 큰 차이는 없다. 신십현이 나온 이후로는 주로 신십현을 가지고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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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조사(華嚴祖師)들의 역사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정리를 해드릴 것이다. 그런데 우선 여기 적힌 조사들의 이름만 보면 제1조가 두순스님,2조 지엄스님,3조 현수스님, 그리고 우리나라의 의상스님이 있다. 의상스님이나 현수스님이 2조인 지엄스님 밑에서 공부를 했다. 4조가 화엄경 소초를 내신 청량징관스님 5조가 규봉종밀스님이다. 이분들이 가장 두드러진 화엄조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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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현문 : 눈앞에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사사물물 전체가 원융무애의 관계에 있음을 열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고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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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십현
-1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 시간적으로 모두가 같은 시간에 갇혀져 있다. 그래서 서로 잘 맞아 떨어지고 있다. 상응하고 있다.
-2.광협자재무애문(廣狹自在無碍門): 공간적으로 넓은 것과 좁은 것이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자유자재하게 걸림이 없다.
-3.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 하나와 많은 것이 서로 용납되면서도 혼잡해지지 않는다.
-4.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 화엄의 안목에서 모든 존재의 이면을 표현한 내용이다.상즉상입(相卽相入)이라는 말은 화엄경을 표현할 때 잘 쓰는 말이다. 모든 존재는 그 깊은 이면을 보면 서로 즉(卽)해 있고 서로 들어가[入]있다. 이것은 손과 손가락의 관계다. 모든 존재가 손과 손가락처럼 다르면서도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또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밀접한 관계를 다 망각하고 지엽만 본다. 남도 북도, 진보도 보수도, 너도 나도 그 어느 관계도 엄밀히 따져보면 전부 손과 손가락의 관계이다.이렇게 밀접한 관계이건만 그 이치를 모르고 지엽만 보니까 남이다, 원수다, 나와 반대되는 존재다라고만 보는 것이다.
-5.은밀현료구성문(隱密顯了俱成門) :은밀은 숨은 것이고, 현료는 드러난 것이다. 그 두가지가 제대로 함께 갖춰져 있는 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함께 존재해야 모든 것이 제대로 성립된다. 눈에 보이는 것만 인정하고 보이지 않는 것은 무시한다면 틀어지기 시작하고 무너지기 시작한다. 어떤 분야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어느 사중을 두고 이야기하더라도, 사중에 열심히 법문하고 포교활동하며 앞에서 드러나는 행정을 하는 뒤로는 보이지 않게 하소임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생색도 못 내고 얼굴도 안 드러나고 무슨 행사 있어도 이름도 한 번 안 불러주는 사람들이 사실은 무수히 많다. 앞에서 드러난 사람과 뒤에서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 사실은 하나로 굴러가고 있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고 사실은 한 덩어리로 되어있다. 그 이치를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에 화엄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이다.
-6.미세상용안립분(微細相容安立門)
-7.인다라망경계문(因陀羅網境界門): 제석천의 궁전을 덮고 있는 인다라 신의 그물이다. 매듭 매듭마다 다이아몬드 같이 영롱히 빛나는 구슬이 하나씩 달려서 그 수가 무수하다. 수만 수천만의 구슬을 한 구슬이 다 반영한다. 구슬구슬마다 전체 구슬을 서로 비추고 비추는 관계다. 그러한 관계속에 우리가 놓여있다. 비유로써 인다라망경계를 자주 이야기 한다.
-8.탁사현법생해문(託事顯法生解門) : 현상에 의탁해서 보이지 않는 진리를 나타낸다. 그렇게 해서 진리에 대한 이해를 내게 하는 문이다. 이것은 사종법계에 연관된 이야기다.
-9.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異成門): 과거 현재 미래 3세(三世)에는 또 각각의 과거 현재 미래가 있어서 9세(九世)가 된다. 이것을 현재[現今] 이 순간이 하나로 통일하고, 함용한다. 현재 일념(一念)을 일세(一世)로 쳐서 구세와 합해 십세(十世)가 된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의상조사 법성게에‘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이라는 말이 나온다.
불교는 시간을 쪼개도 이렇게까지 아주 치밀하게 쪼개고 있다. 어느 종교 어느 철학에도 이러한 이치가 없다. 불교의 위대성이나 우수한 점을 따로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이러한 점들 역시 불교의 우수한 점이다.
-10.주반원명구덕문(主伴圓明具德門): 주(主)와 반(伴)이 원명하게 덕을 갖춘 문이다.
예를 들어서 내가 여기에서 강의를 하면, 나는 주가 되고 여러분이 반이 된다. 또 여러분 중에서 누군가가 어느 사찰에서 법문을 한다든지 행사를 주관하면 그 때는 그가 주인이 되고 우리는 모두 거기에 가서 반이 된다. 언제나 이런 관계 속에 놓여있다.
항상 주라고 생각해서도 안 되고, 항상 반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이 모든 것이 원만하게 서로서로 덕을 갖추고 있는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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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설명을 아주 간단하게 했지만 십현문(十玄門)을 가지고 화엄경의 이치를 정리한 것은 화엄경을 제대로 정리한 것이다. 그런데 어렵다. 이것은 두고두고 원문과 경문을 연관시켜 서 한 번씩 살펴볼 기회가 있을 줄 믿는다.
오늘 화엄경 2권을 끝냈으면 하는 계획이다.
나, 偈頌讚歎
爾時에 善化天王이 承佛威力하사 普觀一切善化天衆하고 而說頌言하사대
世間業性不思議를 佛爲群迷悉開示하사대
巧說因緣眞實理와 一切衆生差別業이로다
種種觀佛無所有여 十方求覓不可得이라
法身示現無眞實하시니 此法寂音之所見이로다
佛於劫海修諸行은 爲滅世間癡闇惑이라
是故淸淨最照明하시니 此是力光心所悟로다
世間所有妙音聲이 無有能比如來音이라
佛以一音遍十方하시니 入此解脫莊嚴主로다
世間所有衆福力이 不與如來一相等이라
如來福德同虛空하시니 此念光天所觀見이로다
三世所有無量劫에 如其成敗種種相을
佛一毛孔皆能現하시니 最上雲音所了知로다
十方虛空可知量이어니와 佛毛孔量不可得이니
如是無碍不思議를 妙髻天王已能悟로다
佛於曩世無量劫에 具修廣大波羅蜜하사
勤行精進無厭怠하시니 喜慧能知此法門이로다
業性因緣不可思라 佛爲世間皆演說
法性本淨無諸垢하시니 此是華光之入處로다
汝應觀佛一毛孔하라 一切衆生悉在中호대
彼亦不來亦不去니 此普見王之所了로다
그때 선화천왕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모든 선화천대중들을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세간의 업성(業性)이 부사의함을
부처님이 중생을 위해 다 열어 보이시니
인연의 진실한 이치와
일체중생의 차별한 업을 잘 설하도다
갖가지로 부처님을 관찰해도 있는 데 없고
시방에서 다 찾아도 얻을 수 없네
법신으로 보이심은 진실 아니니
이 법은 적음천왕이 보았도다
부처님이 오랜 세월 수행한 것은
세간의 어리석은 미혹을 소멸하기 위함이라
그러므로 청정하게 밝게 비추니
이것은 역광천왕의 마음에 깨달았네
세간에 있는 바 묘한 음성도
여래의 음성에는 비할 수 없어
부처님은 한 음성으로 시방에 두루하시니
이 해탈에 든 이는 장엄주천왕이로다
세간에 있는 바 모든 복력이
여래의 한 복에 미치지 못하고
여래의 복덕은 허공 같으시니
이것은 염광천왕이 관찰했도다
삼세의 한량없는 겁 동안
그와 같이 성(成)하고 패(敗)하는 갖가지 모양을
부처님의 한 털구멍에 다 나타내니
최상운음천왕이 아는 바로다
시방의 허공은 양을 알 수 있으나
부처님의 털구멍은 헤아릴 수 없어
이와 같이 걸림 없고 부사의함을
묘계천왕이 이미 깨달았도다
부처님은 옛적 한량없는 세월 동안
광대한 바라밀을 구족하게 깨달으사
부지런히 정진해서 게으름이 없었으니
희혜천왕이 이 법문을 능히 알았네
업의 성품 그 인연은 불가사의하나
부처님은 세간을 위해서
법의 성품이 본래 맑아 때가 없음을 연설하시니
이것은 화광천왕이 들어간 곳이로다
그대들은 부처님의 한 털구멍을 보라
일체중생이 다 그 속에 있어도
오지도 아니하고 가지도 않으니
이것은 보견천왕이 아는 바로다
*
그 때에 선화천왕(善化天王)이 부처님의 위력을 받들어서 일체선화천(一切善化天)의 대중들을 널리 살피시고 게송을 설해 말하대
*1
세간업성부사의(世間業性不思議)를 :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업의 성품이 불가사의하다. 얼마나 다종다양하고 많은지 모른다.
불위군미실개시(佛爲群迷悉開示)하사대: 부처님은 여러 미혹한 사람들을 위해서 다 모두 열어서 보였다.
교설인연진실이(巧說因緣眞實理): 인연이라고 하는 진실한 이치와
일체중생차별업(一切衆生差別業): 일체중생들의 차별한 업을 아주 능숙하고 자세하게 설명했도다.
*
불교의 우수성을 이야기할 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진리로써의 우수성은 인연설이다.
옛날에 사리불과 목건련이 출가하기 전에 마승이라고 하는 비구를 만나서 처음 들은 내용도 인연설(因緣說)이다. 연기설(緣起說), 연기(緣起)라고도 하고. 연기과보(緣起果報)라고도 한다.
출가 전의 사리불과 목건련이 길을 가다가 아주 점잖고 품위 있는 마승이라는 비구를 만났다.사리불과 목건련은 그를 보자마자 궁금한 것을 쏟아붓듯 물었다.
“당신 옷은 왜 그런 색깔입니까?”
“당신은 어찌 그렇게 고결해 보이고 근사하고 품위가 있어 보입니까?”
“당신은 무엇을 배우며 당신의 스승은 누굽니까?”
마승비구는 점잖게 답하였다.
“싯달태자가 출가해서 깨달음을 얻었는데 나는 그 분을 스승으로 삼고 그 분의 법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그러자 사리불이 다시 물었다.
“그 분은 뭐라고 가르칩니까?”
“나는 초보자라서 별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우리 부처님 대사문께서 늘 자주 말씀하시는 단 한 마디는 일러줄 수 있습니다.”
그 때 마승비구가 일러준 말이‘제법종연생 제법종연멸(諸法從緣生 諸法從緣滅) 아불대사문 상작여시설(我佛大沙門 常作如是說)’이라고 하는 말이다.
“모든 것은 다 인연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고 또 모든 것은 다 인연에 의해서 소멸하는 것이다.라고 우리 부처님 큰스님께서 항상 이러한 이치를 말씀하십니다.”
그 말을 듣고 사리불과 목련존자는 눈이 확 밝아졌다. 인도에 수많은 성인들이 있고, 수많은 종교가가 있지만 모든 존재의 출발점을 연기, 즉 인연으로 보는 것은 생전 처음 들어본 것이다. 존재는 유일신이 만들었다느니 갑자기 어디서 생겼다느니 캄캄한데서 생겼다느니 별별 학설이 있는데 ‘인연에 의해서 생겼다’는 그 한 마디에 모든 의문이 다 풀려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당장 마승비구를 앞세우고 부처님께 가서 귀의했다. 이미 수백 명이나 되었던 이들의 제자들 까지 한꺼번에 부처님께 출가를 하게 된다.
*
불교에서는 인연 이야기를 많이 한다. 왜 차별된 업이 있는가? 각각 인연이 다르기 때문이다. 왜 얼굴이 전부 다른가, 이 역시도 인연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음의 인연 행동의 인연 일체 인연이 다르기 때문에 업이 차별한다. 이것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우리가 꼭 기억해야 된다. 어떤 주장도 그렇다. 따지고 보면 전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렇게 알면 문제가 없는데, 자기하고 다른 것은 틀리다고 하니까 거기에서 문제가 생긴다.첫 게송이 아주 좋다.
*2
종종관불무소유(種種觀佛無所有)여 : 가지가지로 부처님을 관찰해도 존재하는 데가 없다.
이것은 부처님이 아닌 이들이 불신(佛身)이나 여래나 세존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법화경은 부처님이 직접 법을 설한 경전이라면 화엄경은 보살이나 법회청중이 부처님을 설한 경전이다. 화엄경에서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것은 뒤에 작은 두 품뿐이다.
여기도 보면 부처님이 아닌 다른 입장에서 여러가지로 부처님을 뜯어보아도 부처님은 존재하는 데가 없다는 것이다.
시방구멱불가득(十方求覓不可得)이라 :시방세계 어디가서 찾아봐도 가히 얻을 데가 없더라.
법신시현무진실(法身示現無眞實)하시니 : 그 진리의 몸[法身]은 아무리 나타나도 진실성이 없다. 이 말은 곧 ‘고정불변 하는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왜 그런가? 앞서 인연진실이(因緣眞實理)라고 했다. 인연이야말로 진실한 이치이다. 부처님도 인연으로서, 연기로써 존재한다는 것이다. 법신도 연기로 존재하므로 고정불변 하는 실체가 없다. 이것이 무진실(無眞實)다.
차법적음지소견(此法寂音之所見)이로다 :이 법은 적정음광명천왕(寂靜音光明天王)이 얻은 법이더라.
*3
불어겁해수제행(佛於劫海修諸行)은: 여기에서도 또 부처님을 설한다. 유인물의 사법계나 십현문에서 보았듯이 부처님은 유형 무형 모든 존재속에 다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이다.
부처님은 아주 오랜세월 동안 여러 가지 수행을 했다. 어째서인가.
위멸세간치암혹(爲滅世間癡闇惑)이라: 세간의 어리석음의 미혹을 소멸하기 위해서이다.
불교는 한 마디로 지혜이다. 우리가 어떤 수행을 하든지 결국은 어리석음을 소멸하고 지혜를 얻자고 하는 것이다.
시고청정최조명(是故淸淨最照明)하시니: 그런 까닭에 아주 청정하게 가장 비춰서 밝히시니
차시력광심소오(此是力光心所悟)로다 : 이것은 역광천왕의 마음에 깨달은 바로다.
*4
세간소유묘음성(世間所有妙音聲)이 : 세간에 있는 아주 아름다운 음성이
무유능비여래음(無有能比如來音)이라 :여래의 음성과 비교할 수가 없다.
어떤 악기, 가수, 누구의 음성이 아름다워도 여래의 음성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불이일음변시방(佛以一音遍十方)하시니: 부처님이 하나의 음성으로써 시방에 두루하시니
입차해탈장엄주(入此解脫莊嚴主)로다 :이 해탈에 들어간 사람은 장엄주로다.
장엄주천왕(莊嚴主天王)이 얻은 것이다.
*5
세간소유중복력(世間所有衆福力)이 : 세간에 있는 온갖가지 복력이
불여여래일상등(不與如來一相等)이라: 부처님, 여래의 한 상(相)과 더불어 같지 않다.
세상에 아무리 복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많은 복을 한 데 다 모아도 여래의 수 많은 복상중에 한가지 상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래복덕동허공(如來福德同虛空)하시니: 여래의 복덕은 허공 같으시니
차념광천소관견(此念光天所觀見)이로다: 이것은 염광천왕이 관견한 바로다.
우리가 속된 안목으로 알고 있는 복과 출세간적인 복의 안목이 천양지차로 다르다. 우리가 화엄경을 조금이라도 맛을 보면 진정한 복은 우리가 그동안 계산하던 복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6
삼세소유무량겁(三世所有無量劫)에 : 과거,현재, 미래에 있는 한량없는 세월에
여기성패종종상(如其成敗種種相)을: 성하고 패하고 또 성하고 패하는 것과 같은 여러 가지 모습들을. 앞서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이라는 말을 했다. 무한한 과거 무한한 미래 그리고 현재에서 일어나는 성패의 여러 모습들을 다 말한다. 성패는 성주괴공성패를 모두 포함한다.
불일모공개능현(佛一毛孔皆能現)하시니 : 부처님의 한 모공속에 그것을 능히 나타내시니.
그야말로 우리가 잘 아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다. 한 미진속에 시방세계를 다 나타내고 있다. 처음에 삼세속에 무량겁이라고 하였으니 여기에는 시간이야기도 나왔다.한 찰나에 모든 시간을 다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부처님의 일모공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을 등장시켜 놓고 우리들과 모든 존재를 제대로 이해시키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여기에 꽃 한송이가 있다. 우리는 기껏해야 이 꽃이 한달 안에 이루어졌다고 안다. 그러나 꽃이 존재하기 이전의 역사는 얼마나 됐는가. 씨앗이나 흙이나 거름의 역사도 좋다.
간단하게 우리가 알기 쉽게 흙이라고 본다면 꽃을 피우기 위한 그 흙의 역사가 얼마나 되었겠는가. 어찌 한 달뿐인가, 1년인가, 10년인가, 100년인가, 그것은 이 우주의 역사와 맞먹는 것이다. 똑같은 것이다.
그래서 알고 보면 꽃잎 하나 속에 온 우주의 역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꽃 한 송이의 역사에서 온 우주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이것은 대단한 이야기다.
최상운음소료지(最上雲音所了知)로다 : 최상운음이 능히 깨달은 바로다.
*7(득법의 8번 묘계천왕)
시방허공가지량(十方虛空可知量)이어니와 : 시방의 허공을 가히 알아서 헤아릴 수 있는가,
불모공량불가득(佛毛孔量不可得)이라 : 부처님 모공의 양은 가히 헤아릴 수가 없다.
*
염불 속에 이런 말이 있다.
찰진심념가수지(刹塵心念可數知)
무한히 많고 많은 우리들의 한 생각 한 생각을 다 헤아려서 알 수 있다 하더라도
대해중수가음진(大海中水可飮盡)
저 태평양 넓은 바다의 물을 다 마신다 하더라도,
허공가량풍가계(虛空可量風可繫)
저 드넓은 허공이 아무리 넓어도 전부 부여잡고 헤아릴 수 있다고 해도,
흘러가는 바람을 내 손으로 부여잡을 수 있다고 해도
무능진설불공덕(無能盡說佛功德)
부처님 공덕은 헤아릴 수가 없다. 능히 설명할 길이 없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
여시무애부사의(如是無碍不思議)를:이와 같이 걸림이 없는 불가사의한 도리를
묘계천왕이능오(妙髻天王已能悟)로다 : 묘계천왕이 이미 능히 깨달았더라.
*8(득법의 9번 희혜천왕)
불어양세무량겁(佛於曩世無量劫)에 :부처님이 아주 오랜 세월, 한량없는 겁에. 오랠 양(曩)자이다.
구수광대바라밀(具修廣大波羅蜜)하사 : 광대한 바라밀을 갖춰서 닦았다.
근행정진무염태(勤行精進無厭怠)하시니: 부지런히 정진을 행해서 싫어하거나 게으름이 없으시니
희혜능지차법문(喜慧能知此法門)이라: 희혜천왕이 능히 이 법문을 알았더라.
*9 (득법의 10 화광계천왕)
업성인연불가사(業性因緣不可思)나 : 업성의 인연을 가히 생각할 수 없으나
불위세간개연설(佛爲世間皆演說)이라 : 부처님은 세간을 위해서,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다 연설하셨다.
법성본정무제구(法性本淨無諸垢): 법성은 본래 청정해서 모든 허물이 없다.
업성과 법성을 대비해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다. 업성인연은 물론 많고 불가사의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러나 법의 성품에서 보면 본래 텅 비어서 청정하기 때문에 어떤 허물도 없다.부처님은 우리의 업성을 근거로 해서 법성을 설한다. 우리가 늘 업성에 매어있을 것이 아니라 부처님을 통해서 법성에 눈을 뜨라는 것이다.
차시화광지입처(此是華光之入處)로다: 화광천왕이 들어간 곳이더라.
*10
여응관불일모공(汝應觀佛一毛孔)하라 : 그대는 부처님의 일모공(一毛孔)을 관찰하라.
일체중생실재중(一切衆生悉在中)이라 : 일체중생이 전부 그 속에 들어 있다.
피역불래역불거(彼亦不來亦不去)니: 그러면서 일체중생은 또한 옴도 없고 감도 없다.
*
우리 모두가 부처님의 한 모공 속에 들어있다. 하나의 이치, 하나의 원리 속에 다 존재한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모두가 하나의 이치, 하나의 원리 속에 들어있다는 이 말은 우리가 늘 외우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과 같다.
유인물에서 보았던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이다.
하나와 많은 것이 그 속에 있지만 서로 용납되고, 서로서로가 개개인으로서의 존재를 살려주는 입장으로 존재한다. 우리는 부처님의 한 모공 속에 있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당당한 우리의 삶을 살고 있다. 현재 존재하고 있는 이대로의 모습을 화엄경의 차원, 화엄경의 안목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차보견왕지소료(此普見王之所了)로다: 이것은 보견천왕의 깨달은 바로다.
(8) 第三地의 知足天王
가, 天王衆의 得法
復次知足天王은 得一切佛出興世에 圓滿敎輪解脫門하고 喜樂海髻天王은 得盡虛空界淸淨光明身解脫門하고 最勝功德幢天王은 得消滅世間苦淨願海解脫門하고 寂靜光天王은 得普現身說法解脫門하고 善目天王은 得普淨一切衆生解脫門하고 寶峰月天王은 得普化世間하야 常現前無盡藏解脫門하고 勇健力天王은 得開示一切佛正覺境界解脫門하고 金剛妙光天王은 得堅固一切衆生菩提心하야 令不可壞解脫門하고 星宿幢天王은 得一切佛出興에 咸親近觀察하야 調伏衆生方便解脫門하고 妙莊嚴天王은 得一念에 悉知衆生心하야 隨機應現解脫門하시니라
또한 지족(知足) 천왕은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여 교법을 원만하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고, 희락해계(喜樂海髻) 천왕은 온 허공계의 청정한 광명의 몸인 해탈문을 얻었고,
최승공덕당(最勝功德幢) 천왕은 세간의 고통을 소멸하는 청정한 원력의 해탈문을 얻었고,적정광(寂靜光) 천왕은 널리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는 해탈문을 얻었고,
선목(善目) 천왕은 모든 중생의 세계를 청정하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고,보봉월(寶峯月) 천왕은 세간을 널리 교화해서 항상 눈 앞에 나타내는 무진장해탈문을 얻었고,
금강묘광(金剛妙光) 천왕은 일체 중생의 보리심을 견고하게 해서 무너지지 않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고, 성숙당(星宿幢) 천왕은 모든 부처님이 출현함에 다 친근하고 관찰해서 중생을 조복하는 방편의 해탈문을 얻었고, 묘장엄(妙莊嚴) 천왕은 한생각에 중생들의 마음을 다 알아서 근기를 따라 나타나는 해탈문을 얻었다.
*
제3지를 표한 도솔천의 지족천왕이 찬탄하다
*
도솔천 천왕들이 얻은 법
*
부차지족천왕(復次知足天王)1은 : 도솔천을 지족천이라고 한다.
득일체불출흥세(得一切佛出興世)에 :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함에
원만교륜해탈문(圓滿敎輪解脫門)하고 : 원만한 교의 바퀴, 원만한 가르침의 해탈문을 얻었다. 부처님은 세상에 출현해서 원만한 가르침을 폈다. 이 화엄경을 교리적으로는 일승원교(一乘圓敎) 또는 대승원교(大乘圓敎)라고 한다. 교학적으로는 원만한 가르침이라고 한다.
해인사는 화엄사찰로 건립되었기 때문에 원종대가람(圓宗大伽藍)이라고 하는 원(圓)자를 쓴다. 경전에 이렇게 원만교륜(圓滿敎輪)이라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화엄학자들이 화엄경을 원교라고 하는 데에 전혀 이의가 없는 것이다.
*
희락해계천왕(喜樂海髻天王)2은
득진허공계청정광명신해탈문(得盡虛空界淸淨光明身解脫門)하고: 온 허공계가 청정한 광명신의 해탈문을 얻었다.
*
최승공덕당천왕(最勝功德幢天王)3은
득소멸세간고정원해해탈문(得消滅世間苦淨願海解脫門)하고: 일체 세간고를 해탈하는 정원의 해탈문을 얻었다. 세간의 고통을 소멸하는 청정한 원력의 바다, 훌륭한 원력의 바다 해탈문을 얻었다. 이것은 중요한 대목이다.
*
세상에는 고통이 많다. 생로병사가 고통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장애들이 다 고통이 된다. 사찰운영이든 개인의 인생이든 인간관계 있어서든 무엇이라도 좋다. 불교에 있어서 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바로 원력이다.
불교에 대한 청정한 원력, 공부에 대한 원력, 기도를 열심히 한다든지 참선을 줄기차게 한다든지 경전공부를 열심히 하든지, 포교를 열심히 한다든지 하는 것은 불교적인 원력이다.
이것이 정원(淨願)이다. 그것만 있으면 어떤 세속적인 고통, 어려움, 병고까지도 다 극복할 수 있다. 이것이 참 중요하다. 불교에서 이런 것을 배워서 신도들에게도 가르쳐야 된다.
*
현대 승려생활은 아주 자유로와서 자기 취미생활에만 매진하는 스님들도 많다. 처음에는 ‘아 이거 중이 할 게 아닌데’ 싶으면서도 차츰차츰 하다보면 그만 익숙해지고, 중이 해도 되는 건지, 안해야 되는 건지, 분별력이 없이 그냥 간다. 습관화 되면 평생을 그렇게 산다. 이것은 큰 문제이다.
스님들은 어디가서 돈벌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시주로 살아간다. 그렇다면 순전히 불교를 해야된다. 죽으나 사나 불교를 해야된다.
불교가 무엇인가. 상사는 참선하고 중사는 간경하고 하사는 탑사경영 하는 것 이 세 가지다. 간단한 것이다. 스님들이 할 일은 그 세가지로 딱 못 박혀 있다. 그 범주에서 벗어나면 이미 중노릇은 아닌 것이다. 내용이 아니라면 절에 살아도 무늬만 중이다.
이런 것은 다 불교적인 원력을 가지고 해야할 일이다. 좀더 부연하면 공부하는데 있어서는 참선도 있고 기도도 있고 포교도 있고 경전공부도 있다. 공부하는 사람들을 공부하게 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기도하게 하고 복짓는 사람들을 복 많이 짓게 하는 탑사경영, 사찰경영은 인과법에 근거하여 해야 된다.
*
적정광천왕(寂靜光天王)4은
득보현신설법해탈문(得普現身說法解脫門)하고 : 몸을 널리 나타내서 설법하는 해탈문을 얻는다. 어디 한 곳에서만 설법하거나 자기 절 신도들만 가르치지 말고 인연이 되면 교도소도 가고 경찰서에도 가고 한 사람한테도 가고 두 사람한테도 가고, 곳곳에 가서 설하는 보현신설법이 중요하다.
*
선목천왕(善目天王)5은
득보정일체중생해탈문(得普淨一切衆生解脫門)하고 : 일체중생을 널리 청정하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
보봉월천왕(寶峰月天王)6은
득보화세간(得普化世間)하야: 세간을 널리 교화해서
상현전무진장해탈문(常現前無盡藏解脫門)하고 : 항상 무진장을 현전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무엇이 무진장인가. 우리가 다 무진장 속에 살고 있고 무진장을 가지고 있다. 여러분들이 가진 것 외에 달리 다른 무진장은 없다.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무진장은 누가 빼앗아 가지도 못한다. 바닥도 안난다. 그야말로 무진장이다. 불교상식이 조금만 있어도 이런 소리는 다 알아듣는다.
*
용건력천왕(勇健力天王)7은
득개시일체불정각경계해탈문(得開示一切佛正覺境界解脫門)하고 : 일체 부처님이 바른 깨달음을 얻으신 경계를 개시한다.
‘부처님은 이렇게 깨달았다. 이렇게 깨달았다’ 하는 것을 자꾸 설명해줄 줄 아는 해탈문을 얻은 분이다.
*
금강묘광천왕(金剛妙光天王)8은
득견고일체중생보리심(得堅固一切衆生菩提心)하야: 일체중생의 보리심을 견고하게 해서
영불가괴해탈문(令不可壞解脫門)하고 : 무너지지 않게 훼손되지 않게 불퇴전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보리심은 지혜와 자비다. 불교는 지혜와 자비를 빼면 없다.
*
성숙당천왕(星宿幢天王)9은
득일체불출흥(得一切佛出興)에 : 모든 부처님이 출흥함에,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했으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함친근관찰(咸親近觀察)하야 : 다 가서 친근하고 관찰해서
조복중생방편해탈문(調伏衆生方便解脫門)하고: 중생들을 조복하는 방편의 해탈문을 얻었다.
*
묘장엄천왕(妙莊嚴天王)10은
득일념(得一念)에 : 한순간에, 가장 짧은 시간을 경전에서는 일념이라고 한다.
실지중생심(悉知衆生心)하야 : 중생들의 마음을 다 알아버린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가
수기응현해탈문(隨機應現解脫門)하시니라 : 그들 한사람 한사람의 근기에 맞추어서 나타내는 해탈문을 얻었다.
한순간에 중생들의 마음을 다 알아버려서 거기에 딱맞는 방편을 쓴다. 좋은 일이다. 인등켜는 사람은 인등 켜게 하고, 불공하는 사람은 불공하게 하고, 천도할 사람에겐 천도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도 일념에 봐야지 시간을 오래 끌면 ‘저 주지스님이 뭘 아는가 모르는가’ 의심한다. 어름해도 한 마디로 그냥 해버리고, 뭐라고 하거든 그게 옳다고 밀어붙이는 것이다. 그래야 주지스님 권위가 선다.(웃음)
*
불교는 뭐라고 해도 창작이 아니다. 이미 있는 이치이다. 기존의 이치와 기존의 원리를 깨달음의 혜안, 깨달음의 안목으로 드러낸 가르침이다.
화엄경에 있는 기상천외하고, 우리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이야기가 있다손 쳐도 그것은 내 안목과 내 소견이 아직 부족해서 납득이 안 될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코 깨달은 분이 말장난을 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엉터리로 중생을 한 번 떠보려고 한 것도 아닌 것이다. 당신들의 마음에 그렇게 비춰오는 것을 사람들에게 일러주고 싶어서, 정말 일러 주고 싶어서 이렇게 화엄경이라고 하는 경전을 통해서 설해놓은 것이다.
우리의 지혜가 못미치는 것을 늘 자책해야지 무슨 이치가 이런 이치가 있을까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시방허공을 다 안다고 해도 부처님의 모공의 양은 가히 알 수가 없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우리로서는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알려고 해야지 그것을 부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말 이미 있는 이치이고, 이미 존재하는 원리이다.
나, 偈頌讚歎
爾時에 知足天王이 承佛威力하사 普觀一切知足天衆하고 而說頌言하사대
如來廣大遍法界하사 於諸衆生悉平等하시며
普應群情闡妙門하사 令入難思淸淨法이로다
佛身普現於十方하사 無着無碍不可取나
種種色像世咸見하니 此喜髻天之所入이로다
如來往昔修諸行에 淸淨大願深如海하사
一切佛法皆令滿케하시니 勝德能知此方便이로다
如來法身不思議여 如影分形等法界하사
處處闡明一切法하시니 寂靜光天解脫門이로다
衆生業惑所纏覆로 憍慢放逸心馳蕩이어늘
如來爲說寂靜法하시니 善目照知心喜慶이로다
一切世間眞導師여 爲救爲歸而出現하사
普示衆生安樂處하시니 峰月於此能深入이로다
諸佛境界不思議여 一切法界皆周遍하사
入於諸法到彼岸하시니 勇慧見此生歡喜로다
若有衆生堪受化하야 聞佛功德趣菩提하면
令住福海常淸淨케하시니 妙光於此能觀察이로다
十方刹海微塵數인 一切佛所皆往集하야
恭敬供養聽聞法이여 此莊嚴幢之所見이로다
衆生心海不思議여 無住無動無依處어늘
佛於一念皆明見하시니 妙莊嚴天斯善了로다
그때 지족천왕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모든 지족천의 대중들을 널리 살피고 게송으로 말했다.
여래는 광대하여 법계에 두루 하사
모든 중생들에게 다 평등하시며
온갖 유정(有情)들에게 널리 응하여 미묘한 문을 여시사
생각하기 어려운 청정법에 들게 하였네
부처님의 몸은 시방에 나타나사
집착도 없고 걸림도 없어 취할 수 없으나
갖가지 색상으로 세상에서 다 보니
이것은 희계천왕의 들어간 바로다
여래가 지난 옛적 여러 가지 행을 닦으신
청정한 큰 위력 바다처럼 깊으사
모든 부처님의 법을 다 차게 하시니
승덕천왕이 이 방편을 알았네
여래의 법신 부사의함이여
그림자처럼 형상을 나누어 법계와 같게 하사
곳곳에서 모든 법을 열어 밝히시니
적정광천왕의 해탈문이로다
중생은 업과 미혹으로 얽히고 뒤덮여서
교만과 방일하여 마음이 방탕하거늘
여래가 위하여 적정법을 설하시니
선목천왕이 알고 마음에 기뻐하도다
모든 세간의 참다운 도사(導師)시여
구원하고 귀의처 되려고 출현하사
중생들의 안락한 곳을 널리 보이시니
봉월천왕이 여기에 깊이 들어갔네
부처님의 경계 부사의함이여
모든 법계에 다 두루하사
모든 법에 들어가서 피안에 이르시니
용혜천왕이 이것을 보고 기뻐하도다
만약 어떤 중생이 교화를 받아서
부처님의 공덕을 듣고 보리에 나아가면
복의 바다에 안주하여 항상 청정케 하시니
묘광천왕이 이것을 능히 관찰했도다
시방세계의 미진수 같은
모든 부처님 처소에 모두 모여서
공경하고 공양하고 법문 들음은
이것은 장엄당천왕이 보았도다
중생의 마음바다 부사의함이여
주(住)함도 없고 동(動)함도 없고 의지도 없거늘
부처님은 한 생각에 다 밝게 보시니
묘장엄천왕이 이것을 잘 알도다
*
그때에 지족천왕(知足天王)이 승불위력(承佛威力)하사 보관일체지족천중(普觀一切知足天衆)하고 게송을 설해 말씀하사대
*1
여래광대변법계(如來廣大遍法界)하사: 역시 여래를 이야기 한다. 여래는 넓고 커서 법계에 두루한다.
어제중생실평등(於諸衆生悉平等)하시며: 모든 중생에게 다 평등하다.
법계에 두루하니까 모든 중생중생에게 다 스며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중생 그대로가 여래이다 중생 빼놓고 여래가 따로 있다면, 바로 이웃에 있다고 해도 변법계(遍法界)가 아니다. 내 몸속, 내 창작속까지를 다 포함해서 변법계이다. 그렇다면 여래는 무엇인가, 결국 나이다. 여래는 이 컵이고, 물이고, 이 허공이다. 여래는 흘러가는 바람이고 저 청청한 나무들이고 이 모두이다. 그래야 여래광대변법계(如來廣大遍法界) 어제중생실평등(於諸衆生悉平等)이라, 모든 중생에게, 뭇생명들에게 다 평등하다. 이럴 때는 중생을 글자 그대로 뭇생명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딱 맞다. 뭇삶, 뭇생명들에게 다 평등하다.
보응군정천묘문(普應群情闡妙門)하사 :정(情)자 참 좋다. 많고 많은 유정들에게 맞추고 응해서 진리의 문을 여시사
영입난사청정법(令入難思淸淨法)이로다 : 불가사의한 청정한 법에 들어가게 했도다.
불가사의를 줄여서 쓰면 난사(難思)라고 쓴다. 난사를 펼쳐쓰면 불가사의(不可思議)다.
생각하기 어려운 청정한 법에 들어가게 했도다.
*2
불신보현어시방(佛身普現於十方)하사: 부처님은 시방에 널리 나타나시사
무착무애불가취(無着無碍不可取)나 : 집착도 없고 걸림도 없어 가히 취하지 못하나
종종색상세함견(種種色像世咸見)하니 :집착도 없고 걸림도 없다. 어디 취할 길이 없다.
책을 보고 불신(佛身)인가 하니 책이고, 마이크가 불신인가 하고 보니까 마이크이고, 꽃이 불신인가 하고 보니까 꽃이지 불신은 아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모든 색상과 모든 세상에서 불신을 다 본다. 꽃에서 보고 마이크에서 보고 종이로 된 책에서 보고 테이블에서 본다.
이렇게 보게한다는 것이다.
차희계천지소입(此喜髻天之所入)이로다 : 이는 희계천왕이 들어간 바로다.
*3
여래왕석수제행(如來往昔修諸行)에 : 여래가 옛날 여러 가지 수행을 닦음에
청정대원심여해(淸淨大願深如海)하사 : 청정한 큰 원이 깊기가 바다와 같다.
우리 보문품에도 ‘홍서심여해(弘誓深如海)’라는 말이 있다. 크고 큰 서원의 깊이가 바다와 같다는 말이다.
일체불법개영만(一切佛法皆令滿)케하시니 :일체불법을 거기에 가득차게 하시니
승덕능지차방편(勝德能知此方便)이로다 : 승덕천왕이 능히 이 방편을 알았다.
*4
여래법신부사의(如來法身不思議)여 : 여래의 법신이 불가사의함이여.
여영분형등법계(如影分形等法界)하사 :그림자가 형상을 나누는 것과 같이 법계와 같아서.
모든 존재 그대로가 여래의 법신이다, 라는 말이다.
처처천명일체법( 處處闡明一切法)하시니 : 곳곳에서 일체의 법을 천명한다.
다 거기에 들어있다. 꽃한송이에서 일체법을 이야기 하고 마이크 하나에서 일체법을 이야기 한다. 연필 하나에서 일체법이 전부 이야기 되고 시계하나에서 일체법이 다 이야기 된다. 손톱 발톱 손가락 발가락 머리카락 모든 존재 하나하나에서 다 일체법을 드러낼 수가 있다.
적정광천해탈문(寂靜光天解脫門)이로다 : 적정광천의 해탈문이로다.
*5
중생업혹소전부(衆生業惑所纏覆)로 : 중생은 업과 미혹으로써 뒤덮여 있어서
교만방일심치탕(憍慢放逸心馳蕩)이어늘 : 교만방일해서 마음이 쏘다니며 방탕하게 논다. 달릴 치(馳) 방탕할 방(蕩)이다. 중생이 이러한 것은 업 때문이다. 업이 아니면 염불이나 하고 참선이나 하고 경이나 보면서 그저 조용히 사는 것이다.
여래위설적정법(如來爲說寂靜法)하시니 : 여래께서 그러한 병, 교만방일해서 심치탕하는 그 병을 고치려고 적정법을 설한다. ‘다 무상한 거야. 아무 소용없는 거야 좀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어. 나부대지 말고 가만히 있어’ 하면서 적정법을 설하시니
선목조지심희경(善目照知心喜慶)이로다: 선목천왕이 비춰 알아서 마음에 기뻐하고 기뻐했도다. 구절구절이 참 좋은 내용이다.
*6
일체세간진도사(一切世間眞導師)여 : 일체 세간의 참다운 도사여
위구위귀이출현(爲救爲歸而出現)하사 : 우리의 구제함이 되고 우리가 귀의할 바가 된다. 그래서 부처님이 출현했다. 참 좋은 구절이다.
우리가 부처님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고 얼마나 많은 혜택을 보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귀의를 하는가. 그러므로 부처님은 일체세간진도사이다.
보시중생안락처(普示衆生安樂處)하시니 :중생들의 안락처를 널리 보이시니.
불교의 우수성을 오늘 조금 거론을 하지만, 스님들은 불교안에서도 불교의 중심에 있는 프로이다. 그만치 책임과 의무가 있다. 불교공부를 깊이 해서 불교에 대한 이해와 안목이 있어야 하며 그만치 긍지를 가져야 된다.
‘불교는 이런 것이야, 이런 것이야’ 하고 그 우수성을 끊임없이 주장해야 한다.
한사람만 앉아도 '불교는 이런 것이다,' 두 사람만 모여도 '불교는 이런 것이다', 무슨 날도 무조건 '불교는 이런 것이다'하고 좋은점을 공부해서 자꾸 소개를 해야 한다.
우리가 백화점에 가서 좋은 물건만 보고와도 그 자리에서 도반들에게 ‘어디에 가면 무슨 물건이 있다’고 자랑을 한다. 하찮은 세속의 물질 가지고도 좋은 것을 보면 자랑을 하는데 불교안에 들어와서 불교의 우수한 점을 발견을 해서 열심히 전파하는 일은 그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그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봉월어차능심입(峰月於此能深入)이로다 : 봉월천왕이 여기에서 능히 깊이 들어갔도다.
*7
제불경계불가사의(諸佛境界不思議)여 :부처님의 경계가 불가사의 하고
일체법계개주변(一切法界皆周遍)하사 : 또 일체법게 진리의 세계에 부처님의 경계가 그대로 다 두루두루 했다.
입어제법도피안(入於諸法到彼岸)하시니: 제법에 들어가서 저 언덕에 이르시니
용혜견차생환희(勇慧見此生歡喜)로다 : 용건력천왕의 지혜로써 이것을 보아서 환희를 내었도다.
*8
약유중생감수화(若有衆生堪受化)하야 : 만약에 어떤 중생이 능히 교화를 받게 되어서
문불공덕취보리(聞佛功德趣菩提)하면 : 부처님의 공덕이 이렇다, 부처의 세계는 이렇다 하는 것을 듣고 보리 즉 지혜와 자비로 나아가게 될 것 같으면
영주복해상청정(令住福海常淸淨)케하시니 : 그들로 하여금 복의 바다에 머물게 해서 항상 청정케 한다.
불교를 제대로 믿고 제대로 공부하면 어디 딴 데 갈 데가 없다. 그냥 복의 바다에서 그저 출렁이는 것이다. 복의 바다속에서 헤엄치는 것이지 다른 것은 없다. 불교를 믿고 불교에 귀의하고 불교인이 되어서도 복을 느끼지 못하고 복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불자라고 할 수가 없다. 그 복이 세속적인 복이 되었든지 아니면 청정한 청복이 되었든지 무슨 복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특히 청복이라고 하는 불법의 복을 마음껏 수용하고 그것을 자기 삶으로 해야한다.
묘광어차능관찰(妙光於此能觀察)이로다: 묘광이 여기에서 능히 관찰했더라.
*9
시방찰해미진수(十方刹海微塵數)인 : 시방찰해가 작은 먼지숫자같이 많은데
일체불소개왕집(一切佛所皆往集)하야 : 그런 많고 많은 부처님 처소에 다 모여서
공경공양청문법(恭敬供養聽聞法)이여 : 공경하고 공양하고 법을 청문한다.
차장엄당지소견(此莊嚴幢之所見)이로다 : 이 장엄은 성숙당 천왕이 본 바로다.
우리가 지금 그런 상황이다. 부처님 처소에 이렇게 먼데서 모여왔다. 오늘도 서울에서 많이 오셨고 충청도 전라도 먼 곳에서 와주셔서 너무 고맙다. 그래서 제가 역경원장 소임도 다 던져버리고 이 법회에 공을 들이고 있다. 월간지 내는 것도 관심을 쓰고 한 구절이라도 제대로 이해해서 여러분들에게 좋은 해석으로써 전해 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10년 결사를 다짐하면서 이 법회에 주력하고 있다.
*10
중생심해부사의(衆生心海不思議)여 : 중생들의 마음의 바다가 불가사의함이여
무주무동무의처(無住無動無依處)어늘 :머뭄도 없고 움직임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거늘
불어일념개명견(佛於一念皆明見)하시니 : 부처님은 한 순간에 그것을 다 보았다.
중생의 마음의 바다가 불가사의하다. 사실은 부처님의 마음 바다도 불가사의하다.부처님의 마음바다도 무주무동무의처다. 그래서 결국은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이다’ 화엄경의 중요한 구절이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 ’는 것이다.
중생심해나 제불심해나 불가사의 하기는 다 똑같다. 부처님이 한순간에 그것을 다 보신다. 묘장엄천사선요(妙莊嚴天斯善了)로다 : 묘장엄천왕이 여기에서 잘 깨달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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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巧說因緣眞實理와 一切衆生差別業리로다..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진실한 이치와 일체중생들의 차별한 업을 아주 능숙하고 자세하게 설명했도다..혜명화 님! 더위도 잊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_()()()_
불교를 믿고 불교에 귀의하고 불교인이 되어서도 복을 느끼지 못하고 복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불자라고 할 수가 없다. 그 복이 세속적인 복이 되었든지 아니면 청정한 청복이 되었든지 무슨 복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특히 청복이라고 하는 불법의 복을 마음껏 수용하고 그것을 자기 삶으로 해야한다. 혜명화님,고맙습니다_()()()_
불일모공개능현(佛一毛孔皆能現)하시니...부처님의 한 모공속에 그것을 능히 다 나타내시니(꽃잎 하나 속에 온 우주의 역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慧明華보살님~~ 거룩한 불사에 두 손을 모읍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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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을 주신 혜명화님_()()()_
가사 그 위의가... 보는 것 만으로도 기쁨이 _()()()_
큰스님 모습이 더욱 편안해보이십니다. 혜명화님 언제나 그곳소식 따끈따끈하게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_()()()_
令住福海常淸淨....화엄의 바다에 마음껏 유영하는 청복~~ 고맙습니다. _()()()_
나 혼자만의 호흡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의 호흡을 주고 받으며 이순간 존재한다 사람 관계 뿐 아니라, 흘러가는 지나가는 바람 등등이 전부 원융무애하게 아무런 걸림이 없이 살아가는 것이 화엄경의 안목이고 사사무애법계이다....혜명화님 수고 많으셨어요 더위에 건강 조심하세요 ..._()()()_
불교를 믿고 불교에 귀의하고 불교인이 되어서도 복을 느끼지 못하고 복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불자라고 할 수가 없다. 그 복이 세속적인 복이 되었든지 아니면 청정한 청복이 되었든지 무슨 복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특히 청복이라고 하는 불법의 복을 마음껏 수용하고 그것을 자기 삶으로 해야한다./ 처처천명일체법( 處處闡明一切法)하시니 : 곳곳에서 일체의 법을 천명한다. 혜명화 님, 고맙습니다._()()()_
혜명화님 고맙습니다._()()()_
相卽相入......혜명화님 고맙습니다_()()()_
혜명화님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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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명화님, 뜨겁고도 서늘한 문수선원의 정경이 눈에 선합니다. 항상 수고하시는 덕분으로 잘 공부하게 되니 너무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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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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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 그대로가 여래의 법신이다, 처처천명일체법( 處處闡明一切法)하시니 : 곳곳에서 일체의 법을 천명한다....나무대방광불화엄경
꽃잎 하나 속에 온 우주의 역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꽃 한 송이의 역사에서 온 우주의 역사를 볼 수 있다._()()()_
고맙습니다._()()()_
_()()()_
고맙습니다...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고맙씁니다_()_()_()_
관세음보살()()()
世間所有衆福力이, 세상에 아무리 복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많은 복을 한 데 다 모아도
여래의 수 많은 복상중에 한가지 상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大方廣佛華嚴經 - 5-1. 世主妙嚴品 第1의2. 大衆의 得法과 讚佛(十地位衆 第4地 偈頌讚歎-第3地, 油印物-事法界,六相圓融,十玄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