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21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예루살렘을 향한 험하고 먼 길의 순례자의 길,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
1. 말씀배경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여정은 참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여정입니다.
중요한 유대 절기, 특히 하나님께서 일년에 세 번 절기를 지키라고 한 무교절(유월절), 맥추절(칠칠절, 오순절), 수장절(초막절)에는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각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출 23:14-17). 전 세계로 흩어진 디아스포라들 입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성령이 강림한 그때가 오순절 (맥추절)이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행 2:5)
행 2:8-11절을 보면, 천하 각국은 바대, 메대, 엘람, 메소보다미아,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브루기아, 밤빌리아, 애굽과 구레네, 그레데, 아리비아 등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때로는 몇 달이 걸려서 험한 산과 강을 건너 예루살렘으로 모여 오는 것입니다. 오고 가며 강도의 위험과 산과 강의 위험과 때로는 사막을 지나 왔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어떤 해를 당할지 모르는 순례의 길인 것입니다.
오늘 시편 121편은 그런 환경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노래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믿음 믿음생활은 이와 같은 순례자의 길이기도 합니다. 나그네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벧전 2:11. 히 11:13) 실제 영적인 순례의 길l은 이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길입니다. 사탄 마귀가 온갖 함정을 파고 기다립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금방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시 121편과 같은 고백의 노래를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바라보며 성전으로 올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2. 시편 121편
1절, 시편기자는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가는 순례의 길에서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 무엇을 바라보고 가는가가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명예의 산, 돈의 산, 정욕의 산을 바라보고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잡힌 것 같지만 손에 모래를 쥐는 것처럼 언젠가는 빠져 나가고 맙니다. 신기루처럼 사라지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순례자가 눈을 들어 보고자 하는 산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시온산일 것입니다. 그곳에는 성전이 있고 성전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향해 가는 순례길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시온산이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으로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험한 순례길에서 그 시온산 성전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1절에서, 순례자가 노래하기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보이지 않는 시온산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성전을 향해 힘든 순례의 여정을 가고 있는 순례자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이런 마음으로 성전에 오십니까?
우리들이 현실적인 역경을 이겨내는 방법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 목적을 잃어버리면 중간에 멈추기도 하고 헤메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들이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목적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러면 그 풍랑 속에 빠지고 맙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주변에 이는 풍랑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니 무서운 풍랑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바라보던 주님을 놓친 것입니다.
[마 14: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2절, 저자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순례의 길에 있어서 참으로 도우실 분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라고 고백합니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라는 것은 순례자를 도울 수 있는 분이 창조자이시며, 구원자가 되신다는 고백입니다. 조금 더 순례자의 마음으로 생각해 본다면, 창조자라는 것은 순례자가 오고 가는 험하고 위험한 길도 산도 강도 여호와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순례자를 안전한 길로 인도하실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밤과 낮을 창조하시고 해와 달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순례자들의 길을 밝혀주고 어둠으로부터는 지켜줄 수 있는 분도, 해와 달의 해로움으로부터 지켜 줄 수 있는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인간인 강도들의 마음도 주관할 수 있으므로 강도들의 위험으로부터도 보호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것은 모든 피조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모든 영적 환경으로부터도 지켜주신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고백이 3~8절에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구원”을 강조한 하나님의 성호이므로 그런 창조주 하나님이 자신의 구원자가 된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인간들도 일부 도울 수는 있겠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궁극적인 도움, 완전한 도울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3절, 1-2절까지는 “내가, 나의” 등으로 1인칭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3-8절부터는 “너를, 너의”로 2인칭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것은 먼저, 성전에 올라가면서 교창으로 부른 노래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나도 순례의 길에서 지키시고 보호하시지만 너도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며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도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성전에 올라가라고 초청인 것입니다.
먼저, 저자가 고백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①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실족은 발을 잘못딛어 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순례의 길이 오늘날 우리들의 걷는 길처럼 평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 그대로입니다.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걷기에는 너무 높고 가파르고 울퉁불퉁하고 때로는 좁은 협곡이요 물은 깊고 급류가 있어 위험합니다. 실족하기가 쉬운 험한 길인 것입니다. 실족하게 되면 넘어져 언덕을 굴러 낭떠러지에 떨어지기도 하고 강물에 빠지기도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로부터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넘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진리의 길을 떠나 넘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은 순례의 길과 같습니다.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는 그런 영적 환경에서 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실족하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②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한 순간도 졸지 아니하시고 순례자를 지켜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순례자는 하나님을 “너를 지키시는 졸지 아니하는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4절에서도 동일하게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하나님”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졸거나 주무시면 지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인간이 아니시므로 실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지만 항상 순간도 놓침이 없이 지킨다는 인간적인 표현입니다.
우리들은 오늘날 한순간에 일어나는 사고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 사고는 한순간에 일어납니다. 한순간에 죽음이 다가오고 팔다리가 짤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실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그렇게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잠을 자고 있을 때에는 사실 무방비 상태입니다. 영적인 잠을 잘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럴때에도 하나님은 마치 파수꾼처럼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이 파수꾼처럼 지킨다고 해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합니다.
[시편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4절, 감탄사 “힌네”가 제일 앞에 있습니다. 이 뜻은 “보라”입니다. 순례자들을 지키시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에 감탄하는 외침입니다. 그리고 “너도” 이런 하나님을 보고 감탄하라는 것입니다.
▶ 어떤 자료를 보니까 고대 사람들은 그들의 신이 평상시에는 잠들어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급한 상황이 오면 요란한 행동과 소리로 깨워야 하기에 요란한 광란의 춤을 추고, 자해를 하여 피를 흘리기도 하고, 요란한 악기를 동원하여 노래를 부르고, 심지어 자녀를 불사르기까지 합니다.
엘리야와 갈멜산에서 대결을 펼쳤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이 자기들의 신을 부르기 위해서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면서 제단 주위를 뛰놀며 칼과 창으로 자기들의 몸을 상하게 하며 미친 듯이 떠드는 모습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왕상 18:26, 28, 29)
엘리야가 그들을 이렇게 조롱합니다.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왕상 18: 26-28)
정말로 자거나 묵상하고 있는 신을 깨우는 것과 같습니다. 엘리야가 이런 그들의 모습을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주무시지도 졸지도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121편의 동사는 대부분 미완료입니다. 이것은 지속, 계속을 나타냅니다. 영원히 지키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졸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3절에서는 일반적인 부정어 “알”을 사용하고 있지만 4절부터는 더 강한 부정 “로” (영어, NO)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단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5절, 여호와께서 지키시는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셔서 지키신다고 순례자는 노래합니다.
먼저, 그늘, 그림자는 보호를 상징합니다. 6절의 말씀과 같이 실제로 낮의 강한 태양 빛으로부터 보호인 것입니다.
광야나 사막에 그늘은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네 오른 쪽” (야드 야민)은 원어적으로 “오른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른손은 탁월한 힘과 능력, 권세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오른 쪽에서 그늘이 되신다는 것은 순례자가 험한 순례의 길에서 하나님의 권능의 오른손으로 강한 태양 빛과 같은 것으로부터 완벽하게 그늘이 되어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오른손으로 지친 순례자에게 힘과 능력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신 후에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마 26:64, 마 22:44, 행 2:35). 이것은 하나님의 오른손의 능력과 같은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오른손으로 각종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십니다.
6절, 순례자를 상하게 하고 해치는 것은 낮의 해와 밤의 달입니다.
낮의 해는 뜨거운 태양빛을 비추어 순례자들을 힘들게 합니다. 사막이나 광야에서는 죽음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밤의 달은 무엇으로 상하게 하고 해치는 것일까요?
실제로 밤의 달은 순례자를 해치지 않고 어둠을 밝혀 줍니다. 그러므로 낮의 해와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못한다는 것은 뜨거운 태양의 강한 빛으로부터 아주 미미한 달 빛에 이르기까지 완전한 보호, 어떤 크고 작은 것들로부터 완전한 보호를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모르지만 조금씩 조금씩 해를 끼치는 것들이 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것과 같이 달 빛이 미미하지만 아무 해가 없는 것 같은 작은 것이라도 지켜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음산한 달빛이 뇌에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영향으로부터도 다 지켜주시는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른 예를 들면, 크게는 호랑이에 물리 수도 있고, 작은 벌레에도 물릴 수 있는데 이 모든 크고 작은 위험으로무터 지켜주신다는 것이 낮의 해와 밤의 달로 부터의 보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들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거나 상함을 주는 것에 대해서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순례자의 길을 걷는 오늘날 모든 성도들에게도 이런 안전 보호를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안심한 마음으로 그 힘든 순례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7절,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키셔야 모든 환란을 면할 수 있습니다.
“환란” (히, 라)는 나쁜 것, 악한 것, 해로운 것을 말합니다. 이것으로부터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환란이 주변에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있음에도 지킴을 받는 것입니다. 미완료형이므로 게속적인 지킴입니다. 그리고 우리말 성경에 “면하게 하시며”는 원어에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모든 환란에서 너를 지키시며 네 영혼을 지키시리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육신 뿐만 아니라 영혼 (생명)까지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의 감정적인 상처, 정서적인 상처를 입히는 것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사탄에 의한 영적인 침범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로부터 지킴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영혼이 상처를 받으면 온전한 경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영혼이 강건해야 다 강건합니다.
8절, 이제는 결론적인 노래입니다.
그동안 여호와 하나님께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낮의 해와 밤의 달로부터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순례자의 “나가고 들어오는 모든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신다는 노래입니다.
나가고 들어오는 것은 좁게는 성전으로 오고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넓게는 그의 삶 가운데서 그 발걸음이 어디에 있든지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미완료형 동사를 사용하므로 계속입니다. 영원히 말입니다.
오늘날 믿는 우리들이 성전에 올라가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갈 때에 하나님은 이렇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완벽하게 영원히 말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성전을 등지고 내려가는 신앙에 있을 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또한 지켜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또 성전에 올라오기를 기다릴 것입니다.
이렇게 믿는 자들을 순례길의 위험한 환경속에서 완전하게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체험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