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륜·혜화동 일대 맛집
혜화동 로터리를 중심으로 남쪽의 대학로는 연극과 콘서트 등의 다채로운 문화와 길거리 공연 등 활기찬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거리다. 그에 비해 로터리 북쪽 혜화동과 명륜동 지역은 여전히 한적한 느낌의 골목과 시간의 향기가 느껴지는 먹을거리들을 만날 수 있다. 번거로운 도심이 품은 고즈넉한 골목 속에서 만나는 고풍스러운 맛집들 그리고 뜻밖의 즐거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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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러스트=구영아 power3595@lycos.co.kr
◆오동통한 면발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국수 한 그릇
요 며칠 사이 부쩍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오동통한 면발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국수 한 그릇이 생각난다. 명륜동과 혜화동 일대는 인근의 미식가들 사이에서 '국수 전문점의 메카'로 불릴 만큼 소문난 국숫집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23년간 자리를 지킨 명륜손칼국수(02-742-8662)는 전통 손칼국수(6000원)맛을 제대로 전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사골을 푹 고아 색이 뽀얀 육수에 칼국수와 호박 등을 넣어 끓여내는데 담백하고 깊은 맛과 향이 일품이다. 주인 정을연(55)씨는 "웃기로 얹는 고춧가루와 파를 버무린 양념을 풀어 먹으면 얼큰하고 깔끔하게 먹을 수 있다"고 말한다. 윤기가 도는 두툼한 수육과 문어(각 2만5000원) 또한 인기. 두 수육을 함께 맛보고 싶다면 반반씩 섞어 주문할 수도 있다. 오전 11시 30분부터 점심 장사를 하다가 재료가 떨어지면 일찍 문을 닫기도 하니 미리 전화로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성균관대학교 정문에서 유림회관 쪽 길을 따라 명륜동 안쪽으로 100m 정도 들어가면 오른쪽에 커다란 '민속손칼국수' 간판이 보인다. 깨끗한 사골국물 맛이 일품인 민속손칼국수(02-765-0880)에서는 기계로 뽑은 국수가 보편화된 요즘 '손'으로 썬 칼국수(5500원)를 낸다.
◆아련한 어린 시절 추억 떠오르는 자장을 맛보다
85년 된 가게가 있다. 손으로 빚은 군만두와 자장면으로 유명한 중국 음식점 진아춘(02-765-5688)이다. 웬만한 사람의 천수와 맞먹는 연륜을 가진 이곳을 이끌어온 주인 형원호(56)씨는 "진아춘은 서울대학교 동숭동 캠퍼스 시절 문리대와 의대생들의 단골 모임장소였던 중국음식점으로 지금 위치는 애초에 터 잡았던 곳이 아니지만 아직도 그 추억의 맛을 잊지 못하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고 소개한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단연 자장면(4500원). 진한 암갈색을 띠고 아삭아삭 배추가 씹혀 뒷맛이 깔끔하고 개운하다. 향수를 느끼고픈 사람들이 반길 만한 예스러운 맛이다. 겉은 부드럽고 안은 바삭하게 튀겨진 통통한 새우가 새콤달콤한 소스와 어우러진 새우칠리(2만5000원) 또한 인기. 진아춘은 10월 초까지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곳에 있었으나 현재 맞은편 골목 안으로 이전해 영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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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음식점 진아춘의 새우칠리와 자장면.
혜화동 로터리에서 짚풀박물관 골목으로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오리전문점 또오리(02-762-5292)는 1만원으로 맛있고 배부르게 오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참숯 생구이(3만3000원)는 넷이서 구워 먹고 서비스로 주는 뚝배기오리탕에 공깃밥 두어 그릇 시켜 나눠 먹으면 배가 든든하다. 훈제오리도 숯불에 살짝 구워 먹는데 약간 단맛이 돌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다. 들깨향이 구수하게 퍼지는 뚝배기오리탕과 한약재를 넣은 한방 오리백숙도 별미.
◆스페인의 정열적인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다면
스페인 음식점 알바이신(02-741-5841)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먼저 스페인 노래가 손님을 맞는다. 벽면을 온통 장식한 강렬한 원색의 그릇들이 정열적인 스페인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이곳은 플라밍고와 스페인의 문화 등을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으로 느끼게 해 마치 스페인의 한 식당에 온 기분이다. 인기 메뉴는 빠에야(1만5000원). 고기, 해산물, 쌀 등을 함께 볶은 스페인 전통 요리로 샤프란이란 향신료를 넣어 밥 색깔이 노란 것이 특징이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주걱을 뒤로 해서 냄비 아래 붙어 있는 누룽지를 박박 긁어먹는 것도 별미다. 닭가슴살, 치즈, 토마토 등을 넣어 끓여낸 스튜 종류의 마르미타코(2만5000원)도 인기 메뉴인데 치즈가 적당히 굳어지면 잘 구운 또띠아에 싸 먹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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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명륜동과 혜화동은 세월의 향기를 풍기는 낡은 집들이 많다. 그 낡은 집들 사이에서 풍겨오는 맛깔나는 냄새에 발길이 머문다. 사진은 스페인 음식점 알바이신. / 스페인 음식점 알바이신의 빠에야.
혜화동 골목 사이로 그윽한 커피 향이 풍긴다. 지난해 7월에 문을 연 커피천국(011-9099-1554)에서는 40여 가지의 핸드 드립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조용하고 아늑해 여느 카페와 비슷해 보이지만 찬찬히 둘러보면 뭔가 다른 것을 느낀다. 카페 안이 '헌혈'과 연관된 물품으로 가득한 것. 이곳은 오랜 시간 헌혈 관련 온라인 카페를 운영해온 주인 탁효상(39)씨가 헌혈의 필요성과 소중함에 대해 묵묵히 알리는 곳이기도 하다. 헌혈 티셔츠와 모자, 헌혈 증서, 헌혈 배지, 적혈구와 백혈구 인형, 헌혈 공로 표창장 등 다양한 기념품이 곳곳에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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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으로 내린 커피와 케이크, 초콜릿 등이 마련된 카페 커피천국.
◆성균관대에는 성균관이 있다?
명륜동에 성균관대학교가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정작 성균관이 이곳에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성균관은 성균관대학교 정문으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있다.
성균관(02-760-1472)을 시작으로 감사원 뒷길로 오르는 길은 호젓한 산책로로 좋다. 성균관 안은 궁궐이나 사찰과 달리 호화로운 단청을 하지 않아 소박하고 정갈한 느낌이다. 조상이 짚과 풀로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우리 생활 속에 활용했는지를 연구하는 짚풀생활사박물관(02-743-8787~9)도 명륜동 일대에서 둘러볼 만하다. 짚풀문화 관련 자료, 민속자료, 민속학자료 등 7000여 점의 문화자료를 소장하고 있으며 건물 지하 전시장에서는 새끼나 풀을 꼬아서 만들 수 있는 생활 짚풀 재료 등을 전시하고 있다. 1927년에 지어진 등록문화재인 혜화동성당(02-764-0221)도 가볼 만하다. 혜화동성당은 명동성당 등 대부분 고딕 양식을 취한 천주교회에 익숙한 눈으로 볼 때 생경한 모습이다. 종탑은 벽돌로, 외벽은 화강암으로 마감한 것이 특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