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이야기
함형수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살아있을 때보다 사후에 더욱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것 같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런것 같다
문인들 중에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시인들을 찾아 보았다
이장희(1900.1.1 ~ 1929.11.3)
<靑天의 乳房>, <실바람 지나간 뒤> 등,윤동주(1917.12.30 ~ 1945.2.16)
<서시>,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등,박인환(1926.8.15 ~ 1956.3.20)
<세월이 가면>, <木馬와 숙녀> 등, 함형수(1914 ~ 1946)
<해바라기의 碑銘>, <형화> 등,김종한(1916 ~ 1945)<고원의 시>, <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 <살구꽃처럼> 등,박용철(1904 ~ 1938)<떠나가는 배>, <이대로 가랴마는> 등
김소월(1903 ~ 1935)<진달래꽃>, <초혼>, <엄마야 누나야> 등,이상(1910.9.14 ~ 1937.4.17)
<오감도> 등,기형도(1960.2.16 ~ 1989.3.7)
<입 속의 검은 잎> 등,요절한 문인들이 이렇듯 많았다
여기에 소개된 문인들 중에는 이름 석자를 대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의
사랑을 받아온 문인도 있고, 개인적으로 어릴적부터 좋아했던 김소월같은 문인은
구태여 소개하지 않아도 널리 알려진 문인이므로 이번엔 함형수를 알아보고 싶었다
시인 함형수는1914∼1946. 함경북도 경성 출생하여 고향에서 중등과정을 마치고
상경하여 중앙불교전문학교(中央佛敎專門學校)에 입학하였다.
이 때 서정주(徐廷柱)와 김동리(金東里)를 알게 되어 문학에
입문한 것을 계기로 ‘시인부락(詩人部落)’ 동인이 되었다.
초대 편집 겸 발행인은 서정주(徐廷柱)였고, 제2호는 오장환(吳章煥)이 맡았다. 국판 30~50쪽으로 시인부락사에서 펴냈다. 동인으로 제1호 때는 서정주·김달진·김동리·여상현·오장환·함형수·김광균 등, 제2호 때는 오화룡·이시복 등이 참여했다. 창간호 편집후기에서 "우리는 우리 부락에 되도록이면 여러 가지의 과실과 꽃과 이를 즐기는 여러 식구들이 모여서 살기를 희망한다"고 한 점과 이 잡지에 실린 시들의 경향으로 보아 특정한 사조나 경향을 내세우지 않고 순수문학을 심화시켜 인간 생명의 고귀함을 노래했다. 그래서 이 동인들을 '생명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정주의 〈문둥이〉·〈화사 花蛇〉, 함형수의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오장환의 〈성벽 城壁〉·〈정문 旌門〉 등이 실려 있다.
살았을 때 시집은 출간하지 못했고, 동인지 <시인부락 詩人部落>과
<자오선 子午線>에 〈해바래기의 비명(碑銘)〉·〈형화 螢火〉·〈홍도 紅桃〉·〈그애〉·〈무서운 밤〉·〈조개비〉·〈해골(骸骨)의 추억(追憶)〉·〈회상(回想)의 방(房)〉·〈유폐행 幽閉行〉·〈손있는 그림〉·〈부친후일담 父親後日譚〉·〈성야 星夜〉·〈구화행 求花行〉·〈신기루 蜃氣樓〉·〈교상(橋上)의 소녀(少女)〉·〈자전차상(自轉車上)의 소년(少年)〉·〈어떤 애사략(愛史略)〉 등 17편이 실려 있는데, 이 중 〈해바래기의 비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년행(少年行)’시편이다.
그밖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당선작 〈마음〉(1940.1.)과 〈개아미와 같이〉(人文評論, 1940.10.) 등이 있다. 내 무덤 앞에 빗돌을 세우지 말고 노란 해바라기를 심어달라는 〈해바래기의 비명〉은 그의 대표작으로 문학사에 자주 인용되고 있다.
다작<多作>을 남기지 못한 그의 몇편 안되는 시를 감상해보자
마음의 촛불
밤이 되면 밤마다 나의 마음 속에 켜지는
자그만 촛불이 있습니다.
어둠 속에 꺼질 듯
나의 외로운 영혼을 비춰 주는 희미한 불빛
그러나 나에게 반드시 깊은 묵상을 가져오고
한없이 먼 나그네길을 가리킵니다.
9월의 시(詩)
하늘 끝없이 멀어지고
물 한없이 차지고
그 여인 고개 숙이고 수심(愁心)지는 9월.
기러기떼 하늘가에 사라지고
가을잎 빛 없고
그 여인(女人)의 새하얀 얼굴 더욱 창백하다.
눈물 어리는 9월.
구월(九月)의 풍경은 애처러운 한 편의 시(詩).
그 여인은 나의 가슴에 파묻혀 우다.
교상(橋上)의 소녀(少女)
못견디듯미풍(微風)에하느적거리든실버들가지.
달콤한초조(焦燥)에떨며소녀(少女)는분홍(粉紅)빛양산(陽傘)을쉴새없이돌렸다
그러나다리아래의흐르는물이그급(急)한소년(少年)의걸음보다도쉬지않는것을소녀(少女)는몰랐다
귀국
그들은 묻는다 내가 갔었던 곳을
무엇을 하였고 무엇을 얻었는가를
그러나 내 무엇이라 대답할꼬
누가 알랴 여기 돌아온 것은 한 개 덧없는 그림자 뿐이니
먼하늘 끝에서
총과 칼의 수풀을 헤엄쳐
이 손과 이 다리로 모든 무리를 무찔렀으나
그것은 참으로 또하나의 육체(肉體)였도다
나는 거기서 새로운 언어(言語)를 배웠고 새로운 행동(行動)을 배웠고
새로운 나라(國)와 새로운 세계(世界)와 새로운 육체(肉體)와를 얻었나니
여기 돌아온 것은 실(實)로 그의 그림자 뿐이로다
그 애
내만 집 안에 있으면 그애는 배재밖 전신(電信)ㅅ대에 기댄 채 종시 들어오질 못하였다. 바삐 바삐 쌔하얀 운동복을 갈아입고 내가 웃방문으로 도망치는 것을 보고야 그애는 우리집에 들어갔다.
인제는 그애가 갔을 쯤 할 때 내가 가만히 집으로 들어가 얼굴을 붉히고 어머니에게 물으면 그애는 어머니가 권하는 고기도 안 넣은 시라기 장물에 풋콩 조밥을 말어 맛있게 먹고 갔다고 한다.
오랜만에 한번씩 저의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우리 집에 오든 그애는 우리집에 오는 것이 좋았나? 나뻤나?
퉁퉁한 얼굴에 말이 없든 애 ― 그애의 이름은 무에라고 불렀더라?
나는 하나의 손바닥 우에
나는 하나의 피투성이된 손바닥 밑에 숨은 천사(天使)를 보았다
시간(時間)의 마술(魔術)이여 물질(物質)이여 먼지 같은 감상(感傷)이여
천사(天使)의 빛[光]이여 어두운 침상(寢牀)이여 돌[石]이여 눈물이여
나는 하나의 피투성이된 손바닥 우에 이상(異常)스러운 천사(天使)를 보았다
무서운 밤
사나운몸부림치며밤내하늬바람은연약한바람벽을뒤흔들고미친듯울음치
며긴긴밤을눈보라는가난한볏짚이엉에몰아쳤으나굳게굳게닫히운증오(憎
惡)의창(窓)에밤은깊어도깊어도한그루의붉은순정(純情)의등(燈)불이꺼질
줄을모르고 무서웁게무서웁게어두운바깥을노려보는날카로운적-은눈동자
들이빛났다.
신기루(蜃氣樓)
멀―리안개낀나루끝에어느날인가소년(少年)들이보았다는그이상(異常)한
혼례(婚禮)의행렬(行列)은그후한번도나타나지않았다
우두머니모래불에섰다가도하―얀파도가밀려와서발을벗으면
그만아모것도잊어버리고소년(少年)은물에뛰어들었다
조가비
뜨거운모래벌을하로종일헤매며이것도저것도하고주워넣고는어두운저녁
저자에소년(少年)은이것도어느것도모조리던져버렸다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 청년화가 L을 위하여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 1936. 시인부락. 창간호>
그의 대표작 해바라기의 비명에 대한 작품세계를 알아보기로 하자
1936년 11월 시전문지 《시인부락》(창간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청년 화가 L을 위하여'라는 부제(副題)가 달려 있다. 정열적인 삶을 추구하는 젊은 화가를 시적 화자로 내세워 생명에 대한 강인한 의지를 단호하고 힘찬 어조로 형상화함으로써, 《시인부락》 동인들의 생명파적 특징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전5행 단연으로 이루어진 자유시로 내재율을 지니고 있다. 시의 제재는 해바라기이며, 주제는 정열적인 삶에 대한 열정 또는 죽음을 초월한 예술혼의 추구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이 넘치는 해바라기를 소재로 강렬한 생명에의 의지를 낭만적이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표출한 열정적·낭만적 성격의 서정시이다. 표현상의 특징으로는 각 시행의 길이가 점차적으로 길어진 점과 모든 시행에 명령형 종결어미를 사용해 강렬하고 절실한 호흡을 느끼게 함으로써 주제의식을 강하게 부각시킨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 밖에 해바라기의 노란색과 보리밭의 푸른색을 대비시킨 강렬한 색채효과를 통해 더욱 생생하고 풍성한 생명의식을 느끼게 한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미 죽은 청년 화가 L이 자신의 죽음을 노래하는 형식을 취한 5행의 짧은 이 시는 '청년 화가 L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전제되어 있으므로, 시적 화자는 죽은 청년 화가 L이라고 할 수 있다. 제1행에서 시적 화자는 죽음과 인습에 대한 강한 거부의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자신의 무덤 주위에 노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고 노래한 제2행은 후기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해바라기》라는 그림을 연상시키는 구절로, 정열을 상징하는 해바라기를 통해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제3행에서는 풍요로운 생명력을 표상하는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달라고 노래함으로써, 생명의 충일함을 통해 죽음을 초월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제4행에서는 자신의 무덤가에 심어진 해바라기를 '늘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으로 생각해줄 것을 당부한다. 마지막 제5행에서는 보리밭 사이로 날아오르는 노고지리를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며, 꿈을 키우며 살던 자신의 삶이 영원하기를 소망한다.
묘지의 모습을 한폭의 그림처럼 연상시키는 이 시의 제목 '해바라기의 비명'은 죽음(생명의 부재)을 의미하는 차가운 비석 대신 불멸의 생명감을 상징하는 해바라기로 비문(碑文)을 대신한다는 뜻이다. 이 시는 사변적(思辨的)이며 소년적인 감상과 애수를 주조로 하는 개성적인 시인으로 평가되는 함형수의 대표작으로, 1930년대 후반기의 시문학사에 자주 인용되고 있다.
함형수의 약력을 보면
1914 함북 경성 출생
1935 함흥고보 재학시벌 학생운동에 가담. 그로 인해 퇴학,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
1935 시 <마음의 단편>을 동아일보에 발표
1936 서정주, 김동리, 김달진 등과 함께 동인지 <시인부락>창간
1939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마음> 당선
1946 해방후 북한에서 심한 정신착란증으로 시달리다 사망
해방후에 정신착란증으로 시달리다가 사망한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참으로 암울하고 어렵던 시대에 살면서 그래도 한편의 시를 통해서
참 맑은 세상을 꿈꾸었을 시인 함형수가 정신착란증으로 사망했다는 것은
지금의 나로선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금처럼 글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면서 글에대해 갈증없이
호사하고 있는것을 생각하면 그 시대의 많은 문인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까지 갖게된다
다 그들의 굽힐줄 모르는 글사랑과 나라 사랑으로 이어져 온것이기에 그렇다
현실이 고통이고 살아가는 일이 고통이었던 시대에 살면서도
시집이나 동인지를 만들면서 글에 대한 강한 애착을 잃지많은 문인들에게
이 지면을 통해서 다시한번 겸허한 마음으로 힘찬 박수를 보낸다
시인 함형수를 알아가면서 그의 작품이나 약력등을 알수는 있었지만
어떤 정신세계를 갖고 살았으며 그 짧은 생을 살면서의 인간적인 사생활등을
제대로 알수 없어서 아쉬웠다
찬바람 부는 창가 앞에서 만난적도 없는 까마득한 시대에
글을 사랑해 쓰고 활동했던 한 남자의 짧은 생을 안타까워하며
그의 대표작 해바라기의 비명을 읊조려 본다
그리고 눈앞에 노랗게 펼쳐진 해바리기의 무더기속에서
어느 시인의 껄껄 웃어 재끼는 웃음소리를 듣는다
ㅣ작가 소개ㅣ
김선숙
월간 한비문학 수필 부문 등단
한국한비문학 작가협 사무국장
월간 한비문학 수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