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산성의행주산성의 역사적인 교훈을 배워오다
(평화 누리길 기행 수필 제4차 1편)
루수/김상화
싱그러운 5월의 하늘이 맑고 푸르다. 파란 하늘에 점하나 찍어놓은 구름 한 점, 예쁘기도 하구나! 세상을 초록 물결로 변신해 놓고 살기 좋은 환경도 만들어 놓은 5월 당신이었는데, 역시 계절의 여왕답게 아름다운 장미까지 한 송이 피워놓았구나! 5월이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도 울적해진다. 청춘은 삶의 예찬을 부르며 5월을 불사르고, 황혼으로 접어든 자는 석양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물들여 아름다운 노을을 만들어 내듯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한다. 그리하여 그 아름다움을 세상에 펼쳐놓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입에선 감탄사가 쏟아지고 머리엔 황홀한 영상이 잠재해 있기를 바란다. 후세들이 영원한 아름다움의 향기를 뿜어내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게 하려고 몸부림친다. 그래서 고상하고도 예쁜 노을을 만들려고 5월을 불사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5월아! 떠나려는 당신이 아쉽다 한들 무슨 소용 있을까마는 그래도 조금이나마 더 붙잡아 놓고 싶구나! 아니다. 아쉬운 듯 헤어지는 것이 더욱 미련이 남는 아름다움일는지 모른다. 이런 것이 모두 우주의 섭리가 아닐는지요?
우리는 우주를 만들어 낸 신으로부터 아무런 부담 없이 선물을 받고 산다. 따뜻한 햇살과 숨을 쉬는 공기, 밤과 낮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 제일 큰 것은 사랑을 무료로 받고 사는 것이다. 그밖에 행복과 슬픔까지도 무료로 받고 산다. 오늘은 평화 누리길 제4차를 가는 날이다. 오늘도 예외 없이 신께서 내려주신 황금 햇살을 받으며 신선한 공기를 받아 마신다. 자연의 아름답고 향기로움을 오늘은 마음껏 눈에 담아 올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9명의 회원은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운다. 평화 누리길을 출발하기 시작했다. 전철을 타고 합정역에 내려 행주산성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행주산성은 30년 전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부부가 소풍 겸 다녀온 적이 있다. 이렇게 40여 년 만에 가는 곳이라 감회가 새롭다
버스 기사가 친절하게 가르쳐 주어 행주산성 입구 어느 마을 입구에 내렸다. 회원들은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걷다 보니 어느 집 텃밭에 목단 꽃이 빨갛게 피어 여름 햇살을 즐기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아름다운 꽃은 우리를 그냥 지나칠 수 없도록 유혹을 한다. 우리는 그 꽃의 웃음에 반해 덩달아 미소를 지으며 사진 촬영을 하였다. 약 1km를 걷다 보니 행주산성 대첩 문까지 왔다. 행주산성을 들리지 않을 수 없다. 행주산성에 대한 역사를 자세히 알고 싶다. 행주산성은 사적 제56호로 1963년 지정하였다. 1593년 2월 12일 권율 도원수가 이끄는 2,300여 명의 조선군이 왜군 3만 명을 물리친 행주대첩으로 유명하다. 삼국시대, 조선 시대 대표적인 토성 성곽으로 권율 도원수 동상과 영정을 모신 충장사, 3개의 대첩비, 대첩 기념관 등이 소재한다.
덕양산 기슭에 위치한 행주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고양시를 대표하는 산성 문화재이다. 현재 흙으로 쌓은 토성 유적으로 보호되고 있는 행주산성은 처음 삼국 시대와 남북국(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오래된 산성이다. 행주산성은 한강을 통해 서울로 출입하는 여러 세력을 볼 수 있고 전쟁과 같은 위급한 일이 있을 때는 전투를 치르는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실제로 선조 26년(1593년) 임진왜란 기간 중 권율 장군과 휘하의 관군, 의병, 여성, 승병이 힘을 합쳐 10배가 넘는 왜군을 물리쳐 임진왜란 3대첩의 한곳으로 기록되었으며, 왜병과의 전투에서 성안의 부녀자들이 치마에 돌을 날라 병사들에게 공급해 줌으로써 큰 승리를 거둔 당시 부녀자들의 공을 기리는 뜻에서 행주라는 지명을 따서 주방에서 입는 치마를 "행주치마"라고 하였다 한다.
팔각정 초소 전망대가 있다. 팔각정 초소 전망대는 민족 분단의 아픔을 보여주는 한강 변 철책선의 초소 건물로 사용되었던 역사적 산물이다. 이곳 팔각정 건물은 한강으로 들어오는 무장공비 등을 24시간 감시하던 초소 건물로 인근 초소 건물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작전상 중요한 곳이었다. 철책을 철거하면서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고 통일, 평화를 상징하는 교육 등의 목적으로 초소의 건물을 새롭게 보수하여 전망대로 사용키로 하였다. 이곳에서 보이는 한강의 풍광은 인근에서도 유명한데 특히 한강 일몰과 함께 비추는 붉은 노을이 아름답다고 한다.
대첩 문을 지나 산모퉁이를 돌아가니 어마어마하게 큰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호기심이 생겨 가서 자세히 보니 추강 남효온 시비였다. 선생은 생육신이자 시인이셨다. 역사 시간에 배웠는데 잊은 것인지 배우지를 않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곳에 와서 처음 대하는 것만 같았다. 시인이라 자부했던 필자가 이렇게 훌륭하신 시인님을 여기 와서 알게 되었다는 것이 한없이 부끄럽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선생님을 알아보지 못한 잘못을 용서하옵소서! 선생님의 역사적인 배경과 훌륭하신 업적을 간략하게 적어 봅니다.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선생은 조선 단종(端宗) 때의 문신으로 사육신(死六臣)의 충절을 후세에 알린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백공(伯恭)이며 추강(秋江) 행우(杏雨) 최락당(最樂堂) 등의 호를 영의정 남재(南在)의오대손(五代孫)이고, 생원(生員) 남전(南佺)의 아들이다.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등과 함께 수학하고 주계정(朱溪正) 이심원(李深源) 안응세(安應世) 등과 친교를 맺었다. 김종직(金宗直)은 늘 존경하는 마음에 우리 추강 이라 호칭했다. 1478년 성종이 천재가 잇따른 데 대한 군신들의 직언을 구하자 25세의 추강은 장문의 상소를 올렸다. 그는 상소문에서 지방 수령들의 신중한 등용과 비리에 빠진 내수사(內需司)의 혁파(革罷) 등8개항을 진언했다. 특히 단종의 생모인 현덕왕후(顯德王后)를 모신 소릉(昭陵)의 훼철을 개탄하고 이의 복위를 주장하여 세조(世祖)를 옹립(擁立)한 정난공신(靖難功臣)들의 분개를 사서 한 때 국문 위기에 몰렸다. 추강은 27세 때 어머니의 뜻에 따라 생원사에 응시하여 합격했다. 그러나 과거에는 나서지 않았다. 김시습(金時習)이 그의 재능을 아껴 과거를 보도록 권유했지만 소릉의 복위 전에는 응할 수 없다며 끝내 벼슬을 하지 않았다. 대를 이어 고양(高陽)에서 농사짓고 살아온 그는 이총(李摠) 이정은(李貞恩) 홍유손(洪裕孫)하고 남포(南浦)에서 낚시질 하며 울분을 삼켰다.
추강은 풍류와 산수를 좋아하여 뜻 맞는 벗들과 행주 강가에서 시작(詩作)을 즐기고 틈만 나면 전국의 명승지를 답사했다. 그리고 단종을 위해 사절(死節)한 박팽년(朴彭年) 성삼문(成三問) 하위지(河緯地) 이개(李塏) 유성원(柳誠源) 유응부(兪應孚)등 6인의 충절을 담은 "육신전(六臣傳)"을 저술했다. 추강에 대한 핍박은 사후에도 이어져 1498년 무오사화(戊午士禍) 때는 외아들이 국문을 받아 사망했다.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는 난신(亂臣)으로 낙인 찍혀 부관참시(剖棺斬屍)의 수난을 겪었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치않아 1511년 이세인(李世仁)의 건의로 추강문집이 햇빛을 보게됐다. 1513년 소릉의 추복(追復)이 실현되면서 좌승지에 추증되고 고양의 문봉서원에 배향되었다. 1782년엔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문정(文貞) 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저서로는"육신전(六臣傳)"외에 연산군(燕山君)의 학정 등을 수록한 "추강냉화(秋江冷話)"가까웠던 사우(師友) 50명의 언행과 일화 등을 담은 "사우명행록(師友名行錄)"등이 있고 문집으로는 "추강집(秋江集)"이 전한다. 자랑스런 고양인(高陽人)이자 진정한 선비였던 추강선생이 세상을 떠난지 515년 그의 때 쪽 같은 충절과 주옥같은 시문을 기리고자 고양시 후학들은 한 위대한 선인에 대한 추모의 뜻을 돌에 새겨 이 비를 세운다. 추강 남효온 시비((秋江 南孝溫 詩碑)에 올린 글 2편을 적오봅니다
[강나루 주막에 묵으니]
宿江浦遽廬
紈袴飽肉者 安知西山蕨
飛走不同穴 我獨恥干謁
?畝尋要術 漁舟費日月
人生適意耳 何用終歲?
강나루 주막에 묵으며
비단옷 두르고 고기반찬 배부른 자들이여
수양산 고사리 맛 그 어찌 알겠는가
날짐승과 길짐승은 보금자리 달리하듯
나만은 벼슬을 부끄럽게 여기노라
시골에 묻혀 밭고랑을 일구며
뱃전의 낚시질로 세월을 보낸다네
한세상 삶이야 뜻 대로면 그만이지
어찌하여 한평생 아등바등
지낼 것인가
[행주 성황당에 올라]
登幸州城隍堂
城隍堂下落花明
鴨島南頭潮水生
繫馬叢林坐靑草
隔江聞唱午鷄聲
白水蓮天動我前
漁舟來泊孔巖邊
山蔬白酒登臨處
病客明眸骨欲仙
성황당 아래 떨어진 꽃잎 선연한데
압도 남쪽 언저리엔 밀물이 밀려오네
수풀에 말 매고 푸른 풀 깔고 앉아
강 너머 들려오는 닭 울음 듣노라
하늘 잇닿은 행주강 흰 물결 내 앞에서 찰랑이고
고깃배 저어온 사공 공암가에 닻 내린다
풍광 좋은 곳에 올라 산나물로 막걸리 즐기니
병든 이내몸 눈 밝아져 신선이나 되었으면
평화 누리길 제4코스는 행주산성을 통과하게 되어 있다. 행주산성에는 역사적인 유물과 왜적을 물리친 대첩으로 유명한 곳이다. 평화 누리길로 인해 이곳을 들여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의 눈부신 활약과 부녀자들이 나라를 구하겠다는 뜨거운 활약상을 다시 알게 되었다. 또 추강 남효온 선생에 대한 알지 못했던 것을 이곳에 와 알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큰 수확이었다. 2편에서는 행주산성 주위의 역사적인 것과 농촌의 풍경 자연의 아름다움을 적어볼까 한다
2017년 05월 20일
첫댓글 감사합니다
국보 이양순 시인
고맙습니다
6월엔 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양순 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