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동면(東面)의 남전시우회(藍田詩友會)
한석근 전 울산시인협회장·수필가
2013.01.16 17:30
울산매일 지면 18면
신라의 변방 동해안을 접한 울산은 예부터 문풍이 미약했다는 어느 논객의 글을 읽었다. 이 논객은 인문학을 매우 중시하는 인사로 지금의 발전된 공업도시에 비해 늘 문화예술의 초석이 될 인문학의 부흥을 염려해온 터이다.사실 그렇기도 하다. 뚜렷하게 학풍이 일어나고 학맥이 이어진 것은 1400년대에 이르러 비로써 주자학의 학풍이 효자송도에 의해 맥을 잇게 된다. 그 이전에는 뚜렷하게 어떤 유수한 학풍을 물려받은 근거가 미약하다.이런 가운데 조선 세종조에 들어오면서 울산의 방어진 목장이 들어서고 남옥(南玉)과 장기(長髟)엔 남목(南牧)과 북목(北牧)이 들어섰다. 이 두 곳 목장을 관리할 관목관이 한양의 사복시 소속으로 감목관으로 임명되어 현지로 내려온다. 이 들 많은 감목관(약 58인) 가운데 시문에 특출한 원유영(元有永)과 홍세태(洪世泰)가 이곳 동면에 많은 시문(詩文)과 명소바위에 7언 절구 시를 남겨 놓았다. 그 곳이 사라진 미포 낙화암과 동축사 뒤쪽 관일대(觀日帶) 혹은 망양대(望洋臺), 또는 동대(東臺)라 부르는 섬암(蟾岩)이다.이 목관들은 자연스럽게 지방토호(地方土豪)들과 어울렸고 술잔을 나누며 때로는 시를 읊으며 시흥(詩興)에 젖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시회(詩會)가 남전시우회 였다.남전시우회는 남목을 중심으로 동면, 전체(미포, 주전, 전하, 일산, 화정, 방어진 등)의 인사들이 참여한 모임이 되었다. 매년 3월 삼짇날이면 술과 음식을 빚어 인근 명소를 찾아 시회를 열었다. 시제(詩題)가 정해지면 모두가 참여해 시를 짓고 읊으며, 술과 음식을 나눠 먹고 즐겼다. 이때 장원이 결정되면 상금보다는 상품으로 막걸리와 종이, 붓, 먹 등으로 축하했다.이 남전 시우회는 대를 이어오다 해방되자 1946년 4월 울산 전체의 문사들이 모여들고, 심지어 경주, 부산 일원에서까지 찾아온 사람들이 참여한 남전시우회 주최로 방어진 대왕암공원에서 시 짓기 대회가 열렸다.이때 강원한 사람은 화정리의 천봉환(千鳳煥)이다. 차상 한 사람은 일산동 김태영(金泰榮)이었다.「항구 동쪽에 우뚝 선 저 등대에 오르니/아스라이 푸른 바다가 한눈에 바라보이네/푸른 소나무 층암절벽 한 폭의 그림 같고/술잔 주고받는 풍류객들 즐거워 하네/강남땅 명승지 물으니 오직 이곳인데/방어진 하늘에는 성서러운 구름 가득하다/삼월 야밤에 핀 벚꽃 등대 불빛에 아름답고/많은 사람 흥겨워서 술잔 권하며 노래하네」 -천봉환(千鳳煥)「누가 서북의 장성을 쌓았으면 된다했드냐/어찌 위협의 모진 바람에 이 겨례는 버티었나/외침도 빈번히 일어나 세상이 평안하기 어렵네/보국한단 달콤한 말 모두가 궤변의 술책이요/봉공한단 유세들에 허명이 그 얼마이뇨/하고자 하니 재력이 궁하여 허리엔 또 병나니/어느 하시에 회복하여 화평함을 보려나」-김태영(金泰榮)그 해 대왕암공원에서 해방을 기념하는 시회를 마치고 미포리 입구의 낙화암(落花岩)에서 정기모임을 가졌다. 돌아가면서 봄, 가을 판주(辦主)를 맡으므로 그 날은 명덕(明德:남목서부리)의 김도숙(金道淑)차례였다. 판주 맡은 사람이 시제(詩題)를 내고 운(韻)을 때면, 회원 가운데 연장자가 다음 연(連)을 이어 나가서 좋은 시가 만들어지면 모두가 시창(詩唱)을 읊으며 즐겼다.이 마지막 장소에 참석했던 김병식(金昞植)은 아버지 김원생(金元生)을 따라 이곳에 참석했다고 증언했다. 불행하게도 이 남전 시우회는 몇 년 더 이어져 오다 6.25동란으로 중단되었고, 당시 전해오던 시우회의 시문들과 회의록, 장부 일체가 보관부주의로 김도숙이 죽은 이후 행방을 찾지 못했다. 다만 마지막 남전 시우회를 열었던 낙화암에는 순조(29년:1829)때 감목관으로 부임했던 원유영(元有永)의 주옥같은 시문이 바위에 새겨져 있어서 현재까지 바위와 함께 전해져 오고 있다.1970년대 초 현대 조선소가 들어설 때 낙화암은 공장부지로 사라졌으나 문화재를 아끼고 관심 있는 김영주(2009작고)회장의 안목이 없었더라면 이 암각시가 새겨진 바위마저 사라졌을 것이다.이 외에도 동면의 여러 곳에는 목관들이 남겨 놓고 간 많은 암각 시와 시문들이 지금까지 전해오면서, 공업도시 울산의 인문학 불모의 텃 밭을 한층 비옥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출처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https://www.ius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