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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2일 일요일, Xela, Familia Siliezar Gonzales 민박집
Xela에서 거의 2개월 머물면서 만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 오래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 몇 명을 소개한다.
캐나다 여행가 Jack, Ellen 커플
어제 캐나다 Toronto에서 온 Jack, Ellen 부부가 이곳을 떠났다. 2월 4일 과테말라에 도착하던 날에 그들을 처음 만나서 3주 반 동안 가깝게 지내다가 어제 헤어진 것이다. 과테말라 수도 Guatemala City에서 Xela로 오는 버스에 함께 타고 와서 알게 되었다. 50대의 부부인데 (나중에 보니 부부는 아니고 보이프렌드 걸프렌드 사이였다) 2개월 동안 과테말라를 여행하고 있는데 처음 1개월은 이곳 Xela에서 스페인어 공부를 했다.
Xela에 도착하던 날 하루 밤을 묵은 호텔도 나와 같은 호텔이어서 Xela 버스 터미널에 내려서 호텔까지 동행했고 스페인어 공부하는 계획도 나와 같아서 호텔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그들과 동행해서 학원 선정과 등록에 나섰다. 그들이 미리 조사를 해서 정해 놓은 세 군데 학원을 방문하고 세 사람 만장일치로 Celas Maya 학원을 정해서 등록을 하고 다음 날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40대 말로 보이는 Ellen은 키가 큰 편이고 Toronto 토박이로 현재 Toronto에 있는 컴퓨터 회사에서 technical writer로 일하고 있단다. 여행이 취미이며 언젠가는 여행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란다. 스페인어는 옛날 고등학교 때 잠깐 배웠으나 다 잊어버렸고 이제 새로 배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Jack은 20여 년간 캐나다 주정부 공무원으로 일을 하다가 이번 여행을 떠나기 바로 전에 조기은퇴를 하고 은퇴 파티 다음날 Ellen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Toronto에서 Ellen과 함께 사는데 Ellen과 마찬가지로 여행이 취미이고 그가 쓴 여행기는 Toronto의 대표 신문인 Toronto Star에 여러 번 실렸단다. Jack은 약간 작은 키로 살은 별로 안 쪘지만 배는 약간 나오고 (운동 부족?) 발을 약간 끌며 걷는 모습이 좀 특이했다.
Jack은 항상 옷을 적게 입고 다닌다. 이곳은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서 남들은 재킷이나 스웨터를 입고 다니는데 Jack은 반팔 티셔츠에 맨발에 샌들 차림으로 다닌다. 자기는 추위를 별로 안 타서 그렇게 다닌다고 하는데 Xela에 오자마자 감기에 걸려서 일주일 동안 고생을 했다. 같은 민박집의 다른 학생으로부터 걸렸다고는 하지만 내 생각엔 옷이 부실한 탓인 것 같았다.
Jack은 3주 전에 은퇴를 하자마자 이 여행을 시작했으니 이제 돌아가면 은퇴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데 은퇴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큰 숙제 꺼리란다. 일할 때 받던 월급의 60%정도를 연금으로 받고 Ellen은 아직 벌고 의료보험은 무료이니 생활하는 데는 전혀 문제없고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문제란다. 우선 여행을 많이 할 생각인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3년 전 니카라과를 여행하면서 그곳의 싸고 좋은 해먹을 발견해서 인터넷을 통해서 파는 부업을 시작했는데 그 동안 실적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미미하단다. Ebay도 시도해 보았으나 경쟁이 너무 심해서 별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대신 몇 개를 (침대 식, 의자 식) 사서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그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다고 한다.
나도 3년 전 중미 니카라과의 Corn Islands에 있는 방갈로에서 일주일을 보낼 때 해먹에서 낮잠도 자고 책도 읽으면서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너무 좋았다. 그물 같은 천으로 만들어서 몸이 배길 것 같으나 전혀 그렇지 않고 푹 파여서 불편할 것 같으나 그 반대였다. 해먹에 누어있으면 아래가 터져 있기 때문에 침대나 소파보다 더 시원하고 소파나 의자는 몸에 맞지 않아서 불편할 때가 많은데 해먹은 항상 내 몸에 꼭 맞추어서 만든 것 같이 너무 잘 맞는다. (지금 하나 사놓고 있는데 살고 있는 아파트에 거는 것이 마땅치 않아서 아직 사용은 못해봤다.)
Xela에서의 첫 번째 주말에 Fuentes Georginas 온천에 Jack, Ellen과 같이 갔었고 그곳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면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었다. Xela에 왜 왔나, 얼마나 오래 머물 것인가, Xela를 떠나면 어디를 여행을 할 것인가, 등등. 그 다음 주말에는 Momostenango 시장 구경을 같이 갔고 다른 주말에는 시간이 있을 때 (주중에는 공부로 항상 바쁘다) Xela 시내 커피 점에서 만나서 시간을 같이 보냈다. 이곳 학생들은 대부분 20대라 내 나이와 가까운 Jack과 Ellen 부부와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된 것이다. 나와는 거의 10년 차이지만 Jack과 Ellen은 나를 자기네와 비슷한 나이로 보는 것 같다. 내가 마라톤을 뛰고 티베트 여행을 했다는 말을 듣고 나서는 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은 전혀 나이 생각을 안 하는데 나 혼자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떠나기 전날 프랑스 부부가 경영하는 테이블이 4개 있는 아주 작은 프랑스 음식점에서 이별 만찬을 하면서 (더치페이로)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고 꼭 소식을 전하자고 약속했다. 내가 내년에 동남아를 여행할지도 모른다고 했더니 자기네도 내년에 동남아 여행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면서 가능하면 그곳에서 만나자고 했다. 내가 혹시 Toronto 마라톤을 뛰게 되면 좋겠다며 그렇게 되면 꼭 자기네 집에 머물고 마라톤을 뛰는 날에는 자기네는 얼음물과 수건을 들고 다니면서 내 시중을 들겠단다.
나와 나이와 취미도 비슷하고 이번 여행을 하면서 처음 사귄 사람들이라 서로 마음에 들었던 것 같고 앞으로 연락을 끊지 않고 사귈 것 같다. 잘하면 동남아나 Toronto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겠다. 그들을 만나서 Xela에서 보낸 날들이 더 소중하게 생각될 것이다.
(추신.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Jack과 가끔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그들도 나처럼 여행을 꾸준히 해왔다. 내가 그들을 만났던 다음 해에 그들은 동남아 여행을 했고 나는 계획을 바꿔서 남미 여행을 했다. Jack, Ellen 부부의 사진이 없는데 언제 하나 받아서 이곳에 올려야겠다.)
스페인어 선생 Ligia
나의 스페인어 선생 Ligia가 11년 동안 해온 스페인어 강사 일을 이번 주 금요일에 그만두었다. 30대 주부인 그녀는 아들이 둘 있는데 (6세, 8세) 성격도 명랑하고 가르치는 것도 잘 해서 내가 대 만족이었는데 하필 나를 가르치는 동안에 은퇴를 하다니. 11년 전 스페인어 선생을 시작했을 때 첫 학생이 키가 큰 (180cm 이상) 한국 청년이었단다. 그런데 마지막 학생이 키가 작은 한국 노인이니 Ligia는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남편은 식품회사에 다니는 영업사원인데 우리가 앉아서 공부하는 나무 의자를 가리키며 나무같이 무뚝뚝한 사람이란다. 어머니는 당뇨로 고생을 하고 있고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불구가 되었는데 그들 얘기를 할 때는 명랑하던 얼굴이 금방 수심이 가득 찬 얼굴로 변해 버린다.
큰아들이 영재라 2년을 월반해서 8살인데 4학년이란다. 두 아들에게 큰 희망을 가지고 산다는데 은퇴하는 이유도 그들의 공부를 더 돕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들들이 커서 무엇이 되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큰아들은 의사고 작은아들은 컴퓨터 엔지니어라 한다. 이 나라에는 컴퓨터 엔지니어의 위상이 매우 높은 것 같다. 과테말라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 질문은 첫째 이름, 둘째 국적, 셋째 직업이다. 내 은퇴 전 직업이 컴퓨터 엔지니어였다고 말하면 얼굴 표정이 갑자기 달라지며 "인텔리헨테! - 영어로 intelligent"라고 한다.
Ligia와 함께 끝가지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쉽다. 한국에서 가져온 월드컵 축구 열쇠고리를 선물하면서 서운하다고 했더니 눈시울이 빨개지면서 자기 볼을 내 볼에 대는 이곳 인사를 한다.
네덜란드 미남 청년 Herman
지난 주 일요일 Volcan Tajumulco화산을 오르던 날 Herman을 처음 만났다. 헌칠한 키에 (187cm 정도) 미남형의 30대 네덜란드 청년이었다. 아직 미혼으로 이곳 학원 여자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이번 주 금요일에 졸업을 했는데 담임선생이 졸업장을 주면서 공부를 잘해서 주는 것이 아니고 잘 생겨서 주는 것이라고 농담을 해서 사람들을 웃겼다.
내 선생 Ligia는 Herman이 액션영화에 주연 배우로 나오는 Jean-Claude Van Damme 같이 생겼다고 해서 다시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10여 년 동안 어느 선박회사의 엔지니어로서 선원 생활을 했다고 한다. 배가 한번 출항하면 2개월 내지 7개월 간 긴 배 생활을 했다고 한다. 한국을 (미포항) 포함해서 세계의 웬만한 항구는 다 가봤지만 배가 항구에서 오래 머물지 않기 때문에 구경은 별로 못했다 한다. 이런 생활을 10년 하니 지쳐서 그만 두고 이제는 고향에서 집 리모델링하는 사업을 하고 있단다.
지난 일주일 동안 커피전문점에 가서 같이 커피도 마시며 가깝게 지냈는데 고작 일주일 사귀고 하직이다.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여행하는 동안 이렇게 만났다 헤어지는 사람들이 많다. 나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1999년 중국을 여행할 때 만났던 독일 남자가 좋은 예다. 그 친구 때문에 나는 마라톤을 뛰게 된 것이다.
미국 자원 봉사자 Pat
지난 금요일 10시 휴식 시간에 미국 Maine 주에서 온 Pat과 얘기를 나누었다. 50대의 이 친구는 건장한 체격인데 장발에 귀걸이까지 했다. 자기는 이곳에 매년 2월에 와서 한 달 정도 머물다 간다고 한다.
올해로 4년째 오는데 자기 직업은 Maine 주에서 많이 사용하는 난방용 벽난로 공사를 하는 것이란다. 가격이 $5,000 정도 하는 이 벽난로는 나무를 때는데 한국의 온돌과 비슷해서 하루에 2시간정도 때서 벽을 데우면 24시간 난방이 된다고 한다. 원래 북유럽에서 옛날부터 쓰이던 난방 시스템인데 나무는 많고 인구는 적은 Maine 주에 (남한의 3배의 땅에 인구는 고작 130만) 안성맞춤인 난방 시스템이란다. 이 벽난로의 특징은 나무가 완전 소각되어서 최대의 열량을 낼뿐 아니라 연기가 나지 않아서 환경에는 전혀 해가 안 되단다. 자기네 주는 이 난방 시스템 때문에 외부에서 비싼 돈 들여서 사와야 하는 석유나 가스는 난방에는 전혀 사용을 안 한단다.
자기는 Maine 주뿐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 전역으로부터 주문을 받아서 출장공사도 다니는데 (피자를 굽는 화덕도 한단다) 일거리가 없는 겨울에는 이곳에 와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무료로 벽난로를 만들어 주는 봉사활동을 한단다. 처음에는 혼자 시작했는데 이제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여럿 생겨서 같이 하고 후원금도 제법 많이 받는단다. 2월이 지나면 미국으로 돌아가지만 현지 사람들을 훈련을 시켜서 이곳 벽난로 공사는 일 년 내내 계속되는데 지금까지 약 1,000 가구에 벽난로 공사를 했다고 한다.
이 지역의 가난한 Maya 원주민들은 아직도 밀폐된 공간에서 3-stone stove를 (돌 셋을 놓고 나무를 태우는) 사용해서 난방과 취사를 하는데 건강에 아주 나쁘단다. 이 지역에는 이와 같은 자원봉사 활동이 매우 활발하게 되고 있단다. 전부 외국인들이 하는 것이란다. 몇 주 동안 스페인어를 배우러 왔다가 이곳에 정착해서 10년, 20년씩 살면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참고로 Pat의 연락처를 적어 놓는다.
J. Patrick Manley III 15 Nelson Ridge South Washington, ME 04574 (207) 845-2440 jpmanley@midcoast.com mha-net.org
노르웨이 미녀 Mette
배우 Ingrid Bergman을 연상시키는 20대의 북유럽 미녀다. 캐나다에서 온 50대의 David는 Mette를 볼 때마다 "gorgeous! 매혹적!"를 연발한다. 정말 그렇다. 항상 배꼽 나오는 옷만 입고 기회만 있으면 일광욕을 즐긴다. 해가 귀한 곳에서 와서 그런가? 해를 향하는 그녀의 얼굴 표정은 희열 그대로다.
네덜란드 무용수 Marioline
네덜란드 출신의 운동선수처럼 생긴 25세 처녀다. 나와 같은 민박집에서 머물고 있는데 명량하고 씩씩한 여성이다. 키가 180cm도 더 되는 것 같은데 직업은 dance therapist란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무용으로 정신을 치료하는 일종의 정신 물리치료사라고 할 수 있겠다. 별 직업이 다 있다.
1년 예정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멕시코에서 1개월을 보냈고 이곳에서 1개월 묵으면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난 후에 니카라과의 고아원에서 9개월 동안 한 달에 80불식 받고 일할 예정이라 한다. 고아원에서는 하는 일은 애들과 춤을 추는 것이란다. 그래도 그런 기술이라도 있으니 숙식 제공에 월 $80을 받는 것이다. 고아원에서 일하는 도중에 자기 어머니가 다녀 갈 것이란다.
7세부터 15세까지 축구를 하다가 무용으로 바꾸었는데 축구를 아주 좋아하고 지금도 축구를 가끔 한단다. 내가 봐도 아주 잘하게 생겼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결선에 네덜란드가 나가지 못해서 섭섭했지만 자기나라 사람인 Hiddink가 한국 팀 코치로 나가서 좀 위안이 되었다 한다.
내 스페인어 선생 Ligia는 나를 가르치던 중에 은퇴를 했다
네덜란드 키다리 Marioline과 미국 대학생 Cris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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