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연 한창희 회장님의 개회사 및 인사말씀과 황학정 방한홍 사두님의 환영사에 이어 국문연 이동보 회원의
국문연 설립배경 및 취지와 2000년도부터 현재까지의 국문연 활동과 세미나에 대한 경과보고 순으로 실시
되었다.
▶ 국궁문화연구회 한창희 회장의 개회 / 인삿말씀
국궁문화연구회는 앞으로도 좌고우면 하지 않고 멀지 않은 미래에 국궁발전의 큰 발걸음을 남기기 위해
열심히 노력 하겠으며 앞으로도 많은 궁도인과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애정과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하셨다.
▶ 황학정 방한홍 사두의 환영사
앞으로 전국 각 정에서도 조직을 가지고 국궁문화의 활발한 발굴과 연구도 필요 하다고 하셨고, 활쏘기는
언제나 살아있는 현재라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기 위해서 연구자는 연구에 집중하여 과거를 현재에 접목
하고, 활쏘기로 체력과 기술을 연마하는 궁도인은 항상 기술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강조 하셨다.
▶ 이동보 회원의 국궁문화연구회의 연혁(경과보고)
2000년도 국문연이 설립된 배경과 취지에 대해 다시한번 상기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지금까지 총 24회에
걸쳐 세미나를 하였고 중국과 일본 그리고 몽골등 동아시아에서 전통적인 활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
들과 교류한 것이 총 10회가 있었음을 분석 발표하였다.
제 2부는 기조강연으로 이윤희 국문연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 첫번째 강연은 나영일 서울대학교 교수님께서 "국궁문화연구의 방향과 역할"에 대해 말씀 하셨다
국문연의 방향과 역할은 그동안의 연구업적을 정리하여 관계기관과 연계하고 제언하며 국궁인들과 협력
하고 소통의 역할을 하여야 할것이며, 나아가 국궁문화의 지향점은 어디인지 국궁문화의 비전을 제시하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셨다. 또한 각 정별로 최소 한명이상 회원가입을 독려하여
국문연의 위상과 저변확대에 노력을 하여야 한다고 하셨다.
⊙ 두번째 강연은 백인학 경북궁도협회 고문 께서 "궁술과 선비정신"에 대하여 말씀 하셨다.
중국과 국내의 역사들을 통해 활과 궁술에 관한 고사와 철학을 풀이해주셨으며 직접 수기로 작성한 원고를
즉석에서 해설을 하여 고문님의 활에 대한 지식과 철학의 깊이를 보여주었고 우리 활쏘기가 뿌리를 두고
있는 지점들이 어디에 있는지 되 짚어보는 깊이있는 강연이었다.
⊙ 세번째 강연은 조영석 무등정 고문 께서 "기초동작 구성을 통한 一家형성 제안"에 대하여 말씀 하셨다.
우리 활쏘기의 현실에서는 射法이라는 명분으로 말하는 의견이 百人百色 이므로 활쏘기의 기본을 종잡을
수 없는 활쏘기의 현재 입장 이며 안타까운 부분이다. 하여 우리 활쏘기의 기본 동작과 형세를 추려내는
활동을 지금이라도 관심 속으로 품어 새로 입문하는 후학들에게 기본을 공부할 기회를 주어서 자기발전의
기틀을 세우도록 하여야 한다며 一家 통일의 의미와 法과 유불리의 이해, 法과 유불리의 경계분석 등을
직접 활을 잡으시고 몸소시범을 보이시며 설명을 해주셨다.
제 3부는 학술발표로 이동보 회원의 사회로 진행이 되었다.
⊙ 첫번째 발표는 국문연 홍보위원인 서울 살곶이정의 김세랑 접장이 "조선의 궁술로보는 각궁의 구조와 활용"
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였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각궁은 많은 면에서 심각하게 그 원형이 변형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옛날의
활이 지금의 활과 비교시 얹었을때와 부렸을때의 길이가 별 차이가 없음을 강조 하였고, 윗장과 아랫장의
길이가 지금의 활과는 달리(현재 : 아랫장이 더길다?) 아랫 윗장의 길이가 같음을 분석 설명 하였다.
또한 잘 길들여진 활은 매번 불을 보일 필요가 없고 줌과 목소를 밟을 필요도 없음을 강조 했다.(본인경험)
오히려 이런 활이 수명이 짧아 오랫동안 사용 할수 없음을 얘기했다.
⊙ 두번째 발표는 서울대학교 박근 교수께서 "활 속에 내재된 道學의 전승에 관한 연구 : 조선의 명궁이자
성리학자인 一齋 李恒선생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였다.
일재 이항의 생애와 사상을 통하여 당시에 복원된 도가 기묘사화를 거치면서 활로 변형 도었을 가능성 즉,
사이재도의 가능성을 확인해 보았고, 일재가 文을 통해 道를 견고히 한 이후에도 활을 수련하였음이 입증
되었으며, 그가 유일하게 스승으로 서긴 송당 박영 또한 당대 최고의 명궁임은 두 인물간의 활을 통한
교류가 있었음을 암시한다고 하였다. 즉, 활 속에 도학적 전승이 내재하였다는 것을 입증 하는 것이다.
이는 조선후기 장언식의 정사론으로 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으로 본다고 하였다. "정사론은 그 만큼 중요한
사법서인데 사이재도의 결정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 세번째 발표는 국문연 대외/사업위원인 정용석께서 "Saracen Archery에 나타난 터키각궁과 한국각궁의
비교" 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였다.
한국의 각궁 제작방식과 이슬람의 터키(아랍)각궁 제작방식은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제작됨을 상호 비교
하여 설명을 하였고, 현재도 많은 국가들이 예전의 전통 활을 재연하고자 노력을 하고 있음을 얘기했다.
또한 14세기에 쓰여 진 사라센제국의 잊혀 진 각궁기법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각궁기법과
너무나 닮아있다는 것은 전 세계의 각궁의 발달과정을 연구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임을
강조 하였다.
⊙ 네번째 발표는 국궁문화연구회 최석규 부회장님께서 "國弓組織化·大衆化에 대한 社會·文化史的樣相 :
일제강점기 신문記事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였다.
일제강점기 신문기사에서 드러난 국궁의 조직화, 대중화에 대한 논의를 통해 일제강점기의 사회문화적
양상들을 유추해 내기위해 매일신보와 조선, 동아, 시대일보의 기사를 분석하여 제시 하였다.
첫째, 국궁대회장은 식민지 백성의 독립의지를 표출할 수 있는 기회의 장 이었으며, 조선시대로부터
활쏘기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남녀가 함께 공유했다.
둘째, 일제강점기에 존속한 사정들은 射契를 중심으로 사원 간의 연결고리가 조직화된 사설사정형태.
세째, 매일신보 등은 친일 기관지로 역할을 했음을 유추할 수 있고, 당시 사정간의 관덕회는 사정을
선택적으로 친일조직화하기 위한 수단 이었고 국궁대회의 참여와 후원을 통해 대중화하여 대중들로
하여금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조성과 동조 및 독립에 대한 의지를 겁박하기위한 정책
방편임을 강조하셨다
◈ 세미나 참석자 명단
◈ 단체 기념촬영
◈ 저녁식사
첫댓글 이번 세미나에 장안편사놀이에서 후원해주신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세미나 잘 마쳤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국궁문화연구회의 발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