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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그거 눈속임 아냐?' 어른들은 시큰둥하다. 교묘한 장치를 이용해 기껏 사람들을 홀리는 기술 아니냐고 코웃음친다. 그 과정을 알고 나면 실망감은 더해진다. 그런데 말이다. '애들 장난'같은 마술이 때때로 묘한 공명을 울린다.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해리포터 시리즈'에 열광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원래 마술은 이런 존재다. 평소에 '마술이 뭐 별거냐'며 모른 척 하다가도 누가 한 번 툭 건드려주면 화들짝 놀라게 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꿈꾸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하물며 마술같은 인생에 귀가 번쩍 뜨이는 세상이 아닌가.
그는 마술사다. 불혹에 가까운 나이. 그는 왜 이 길을 택했을까.
퍼스트매직의 신진욱씨(38). 한국마술협회 대구시지부장이다. 그는 시쳇말로 가방끈이 길다. 대구 영진고 출신으로 고려대 경제학사와 고려대대학원 이학석사 타이틀을 땄다. 한마디로 학벌이 빵빵하다.
그는 천성적으로 조직생활을 싫어한다. 대학원 시절 대기업에 합격하고도 포기했다.
그의 첫 선택은 강사였다. 서울 강남의 잘 나가는 학원에서 영어와 수학 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강사 생활을 접고 대구에서 컴퓨터 사업을 시작했다. 미군들이 주 고객이었다. 그는 "달러를 많이 벌었다"고 웃었다. 왜관에 컴퓨터 사업체를 하나 더 차렸다. 영어회화 학원도 열었다. 순탄한 인생이었다.
2001년 무더운 여름. 그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태국 방콕으로 여행을 가면서 그의 인생은 변하게 된다. 방콕의 이태원으로 통하는 팟퐁 거리에서 그는 '넛'이라는 태국 마술사를 만났다. 영화배우급의 얼굴에 마술도구를 팔고 있는 넛을 보고 '이거다'라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당시 한국에서 마술은 TV에서나 볼 수 있는 먼나라 얘기였다. 당장 넛을 대구에 초대했다. 그는 넛과 함께 대구시내에서 마술도구를 팔았다. 마술쇼도 곁들였다.
신기한 마술도구와 마술쇼는 입소문을 타고 대구시내로 번졌다. 행사의뢰가 잇따라 들어왔다. 넛 한명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퐁'이라는 태국마술의 1인자를 초빙했다. 당시 그는 마술사가 아니라 공연기획자로 활동했다. 자신의 사업체도 함께 꾸려갔다.
마술을 배우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마술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대부분의 사업체도 정리했다. 집안의 반대가 심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처음 사업가로서마술을 접한 그가 마술사로 변하게 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마술쇼에서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전부 동심으로 돌아갑니다. 공연을 진행하다 관객들의 얼굴을 보면 표정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칙칙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밝아지죠."
마술의 비밀을 벗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마술사는 타고나는 게 아니다. 오로지 연습만이 특급 마술사로 오르는 비결이다. 기술만 좋다고 뛰어난 마술사가 될 수 없다. 그는 "비밀을 획득하는 능력과 연출력, 응용력이 결합돼야 근사한 무대가 된다"고 설명한다.
그의 피나는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문화관광부가 정식으로 인증한 마술 프로듀서와 마술 프로페서 자격증을 땄다. 대구·경북지역에서 마술 프로듀서는 그가 유일하다.
그는 요즘 응접실 마술(parlor magic)이나 일루전 마술(illusion magic)에 천착하고 있다. 일루전 마술의 대가는 데이비드 카퍼필드. 관객이 지켜보는 앞에서 미국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사라지게 한 매지션이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즐기고 싶은 열망이 그의 가슴에 불을 지른다.
이따금 누가 어떤 마술을 하고 싶냐고 물어오면 그는 "휴전선을 없애는 마술을 준비하고 있다"고 호탕하게 대답한다.
그는 지금까지 1천회 이상의 공연기록을 갖고 있다. 최근엔 구미 LG필립스의 사원을 대상으로 마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공연을 나갈 때면 3~4명이 한 팀을 이룬다. 카드마술의 달인 황혁진(24). 비둘기 마술의 김민석씨(26) 등이 그와 손발을 맞춘다.
제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배출했다. 대구 마술계의 개척자라는 소리가 늘 그에게 따라다닌다.
마술사로 활동하면서 인생의 동반자도 만났다. 한반도를 뜨겁게 달궜던 2002년 월드컵. 그는 수성구 범물동의 한 카페에서 15세 연하인 지금의 부인을 만나 '마술같은 결혼'에 성공했다. 부인 이효민 실장(24)은 꽃마술에 능하다.
그는 '마술사업가'의 길도 모색하고 있다. 상상력이 동원되는 마술은 교육적 효과가 뛰어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영어로 마술을 가르치는 '매직아카데미'를 구상 중이고, 대규모 콘서트도 계획하고 있다.
"기분이 안 좋아도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야 하는 책임이 마술사에게 있다"는 그는 "마술은 억지로 해서 안되고, 진정으로 좋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