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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가 외
송 진
어김없이 그의 방 피아노 위에는 앵무새가 앉아있었다 양파와 쥐들은 앵무새가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본적 없다고 눈짓을 했고 나는 그런 말뜻을 곧잘 알아듣는 다리 없는 말이었다 그 방을 드나들던 이발사는 앵무새가 곧 이 집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앵무새처럼 떠들었으나 그 말을 믿는 하인은 없어보였다 앵무새처럼 떠든다는 말의 기원은 그의 앵무새 백작 할아버지 더 이 전의 이 전의 이전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목이 거북이처럼 늘어진 집배원이 풀들이 무성한 풀밭에 우편물을 두고 가며 말했다 어, 이 편지 여기 주소가 아닌 데요 좀 성급하게 들렸을지 모르지만 사실이었다 적어도 그 우편물이 귀찮다는 뜻은 아니었다 우편배달부가 가래가 쌓인 건조한 자전거의 목에 빗방울 스카프를 두르는 사이 앵무새가 앉았던 횃대가 인간의 연인들이 앉았던 그네처럼 전진과 후진을 거듭하며 고개를 징글벨처럼 징그럽게 흔들어댔다 제발 썩! … 그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미 유전의 피가 목구멍마저 틀어막고 있을 거라는 그의 마지막 경고가 떠올랐다 마지막이라니 … 흐흐 대단한 행운이야 나는 조용한 액자처럼 고요히 홀로 절망하기를 간절히 갈망한다고 하는 문장의 끝이 흰 아기말의 꼬리처럼 왼쪽으로 휘어지며 생성되는 것을 생생하게 CCTV로 전달하기 위해 천장 위에 모셔둔 거무스름한 잉크병 뚜껑을 급하나 급하지 않게 열었다
그리고 한편의 시를 남겼다
나의 혀는 죽은 새처럼 안으로 휘말려 있다
나의 발톱은 죽은 아이처럼 부드러워져 있다
나의 손수건은 한 번도 지상의 인간에게 얼굴을 내민 적이 없다
왜 사는 가 왜 사는 가
더 절실한 비가 가뭄처럼 움츠리며 검은 동공 속을 찾아들었다
앵무새가 누구의 소유가 아닌 스스로의 생명체임을 증명하기위해 앵무새는 앵무새의 다리의 수를 더 늘여야했고 하늘의 청포도를 간신히 물고와 건조한 거울을 더 만들어야 했다 허물과 인정이 없는 건물이 반성 없이 번성하는 계절이었다
• 이 시를 낭독할 때 미샤 마이스키(Mischa Maisky)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No.1’ 을 배경음으로 하면 시인의 느낌을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습니다. ------------------------------------------------------------- 소쉬르를 사랑하다
그가 소쉬르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오년 전 여름 7윌 23일 대서大暑 뙤약볕 아래 동료들과 맨홀 공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잠이 들었는데 꿈에 키우던 개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나타나 대가리를 그의 입안에 들이박고 목젖을 뜯어먹는 것이었다 그는 소리를 지르고 발버둥을 쳤지만 온 몸은 피투성이가 되고 곧 축 늘어져 시체가 되는 꿈이었다 꿈에서 깬 그의 이마는 땀투성이였다 피를 보고 시체를 보았으니 길조 쪽으로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지만 마음 구석 한 가운데는 별안간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듯 했다 휴대폰이 울렸다 박 군이라고 떴다 박 군은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데려온 고아다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 아들이라고 수군거렸다 여보세요? 그런데 그의 목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여보세요? 목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여보세요? 목소리를 잃은 사람이 된 사실이 점점 명확해져 갈 무렵 비가 내리고 닭들이 무더기로 푸른 트럭에 목소리가 실린 채 사라졌다 그가 자신의 목을 자신의 손등에 등나무처럼 휘어 감고 소쉬르의 집을 찾아갔을 때 소쉬르의 서랍 속에는 메모가 한 장 놓여 있었다
‘어서 목소리를 찾아 나에게 오게’
• 이 시를 낭독할 때 미샤 마이스키(Mischa Maisky)의 첼로 연주곡 ‘청산에 살리라’ 를 배경음으로 하면 시인의 느낌을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습니다.
송 진 -1999년 <다층> 제1회 신인상으로 등단. -요산협성창작기금 수혜 -SPA 창작연구소 소장 -계간 ‘사이펀’ 책임 편집인 -시집 『지옥에 다녀오다』, 『나만 몰랐나봐』, 『시체 분류법』, 『미장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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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