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
(고전 14:1-19)
“1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
자기 영의 사정을 하나님께 직고하는 기도 ‘방언’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모든 만물의 주관자’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주와 모든 만물이, 인간까지도 하나님에 의해 지음을 받았습니다. 우주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로 가득합니다. 삼라만상이 천태만태로 존재하지만 모두 하나님의 뜻 안에서 움직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주관하시고 역사하는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자연의 순환을 명하시고, 그 순환을 지속하십니다.
인간은 봄이면 씨를 뿌리고 가을이 면 결실을 수확합니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나타난 원리를 깨달아서 그것을 사용한 것일 뿐입니다. 모든 피조물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누군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의 일을 부인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자기 일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부족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운명으로 여기지 않는 신령한 사람입니다. 신령한 사람은 자신을 무능력하게 방치하지 않고 쉴 새 없이 역사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가 하시는 일의 작은 부분에라도 참여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앉은뱅이가 된 사람은 자신의 처지를 운명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일어나 걸어가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신령한 일에 참여하려고 한다면 운명을 극복하고 걸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어나 걸어가라!”하는 말씀을 듣고 그것을 입으로는 시인하지만 실제로는 행동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동참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신령한 체험을 할 수 없습니다.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내 뜻에 동참하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창조주께서 인류에게 공개적으로 계시하신 말씀’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려면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자기 마음 속에 무엇인가 떠오르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눈을 감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법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답시고 마음 속에 무엇인가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시간과 힘만 낭비하는 일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공개적으로 계시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순종하게 하셨고, 그 명령을 듣고 순종한 자들로 인해 오늘날 우리도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과거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만히 묵상만 하지 않고 즉시 순종하여 곳곳에서 예수님을 증거하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신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가 하시는 일을 특정한 사람에게 비밀스럽게 나타내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이 함께 듣고 순종할 수 있도록 공개하셨습니다.
‘성령은 오늘도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 인류 가운데 아무도 성령의 말씀을 직접 듣지 못했습니다. 그는 침례를 받으신 뒤 물 위로 올라오실 때 성령을 받으셨고, 그 이후 우리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성경을 통해 듣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으신 후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성령의 말씀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자들이 기록한 성경의 말씀도 결국 성령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령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성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령 받는 과정을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피조물이 아닌, 독생자처럼 하나님에게서 나오시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회개하고 예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은 자라도 성령을 받고 성령으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성도는 성령을 모신 하나님의 신령한 성전’
야곱은 벧엘에서 잠시 잠든 사이, 꿈속에서 천사들이 땅 위에서 하늘까지 닿아있는 사다리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창 28:10-19). 비록 꿈이었지만 야곱은 꿈에서 자신과 하늘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감개무량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나오시는 성령을 받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영적 문제를 직접 고하고 또 성령으로 응답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옛날 야곱이 꿈에서 본 것을 우리는 현실에서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꿈을 꾼 후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자기가 베고 잤던 돌을 쌓아 제단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임의로 만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나오시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우리를 성전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가 임의로 제단을 세웠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전을 세워주셨습니다. 야곱은 자신과 하나님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멀찌감치 본 것만으로도 놀라워했는데 항상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어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놀라운 일을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처럼 우리는 신령한 사람들입니다.
‘새 방언’은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시기 전 약속하신 하나님의 선물
마가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에 믿는 자들이 새 방언을 말하게 되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막 16:17). 일반적으로 ‘방언’이란 지역마다 달리 사용되는 언어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은 이러한 일반적 의미의 방언이 아니라 영이 하나님 앞에서 하는 언어를 일컫습니다.
방언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은 “랄랄랄랄……” 하는 소리로 어떻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방언은 인간이 육체로 사용하는 언어도 아니며 세상의 언어처럼 기호화할 수 있지도 않습니다. 방언은 사람이 도무지 알아 들을 수 없고 하나님만이 들으실 수 있는 신령한 언어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를 가리켜 ‘새 방언’(막 16:17)이라고 하셨습니다.
방언을 말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경은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라고 했습니다. 방언은 우리의 영이 하나님께 자기의 깊은 사정을 아뢰는 것입니다. 고전 14장 2절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또한 2장 11절은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라고 했습니다.
‘방언은 하나님만이 알아들으시는 신령한 언어’
우리는 가끔 자신에게 영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지내기도 합니다. 육체에게 무시를 당하는 영은 고통과 번민을 겪으면서도 그 사실을 육체에게 알리지 못합니다. 육신이 형통하여 행복해 하는 사람이라도 영혼은 심히 불행하여 탄식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아버지께 간구하신다고 했습니다(롬 8:26). 요한삼서 1장 2절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진정으로 평안한 삶을 살기 원하는 자는 먼저 자기 영혼이 잘 되게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세상의 방법으로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이전에 성령이 우리 영을 도우실 수 있도록 그가 하시는 일에 순종하고 동참해야 합니다.
‘방언으로 우리 영혼의 호소를 하나님 앞에 상달시키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방언을 말하게 하신 것은 우리 영혼, 곧 진정한 ‘나’를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으로 기도할 때에는 무성의하게 웅얼거리거나 짜증을 내듯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유익하게 하시려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을 사용하는 일에 최대한 성의를 갖추는 것은 우리의 영뿐 아니라 육신을 위해서도 현명한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또박또박 말하여서 영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게 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오순절에 방언을 말하자 사람들은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행 2:13) 하고 말했습니다. 또 고전 14장 23절은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이는 방언하는 모습이 사람들 보기에는 그리 아름답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방언을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습이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비록 방언을 알아듣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알아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우리는 잠자고 있던 영혼의 호소를 하나님 앞에 상달시켜야 합니다.
‘방언이 주는 유익 많아,
방언을 시작으로 더 많은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라’
병든 사람이 방언을 말할 때 그 사람에게서 병이 떠나가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위축되어 있던 영혼이 방언을 말함으로써 활력을 찾고 용기를 얻자 과거에 그 사람을 지배하고 있던 더러운 것들이 두려워 떠난 것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방언을 말할 때 그동안 가정 안에 역사하던 세력이 순식간에 달아날 수도 있습니다. 방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은사들 가운데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가장 귀한 것입니다. 방언을 시작으로 우리는 더 많은 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들을 모두 받기 위해서는 먼저 방언을 사용하는 일에 성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