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오래 참는 것 (고전 13:4~8)
요즈음 사랑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면서도 쉽게 잘 헤어지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잘 헤어지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는데 헤어질 수 있을까요? 헤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와 영원히 헤어지지 않습니다.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옳은 사랑을 하지 않기에 연인마다 집집마다 헤어지는 일이 많은 것입니다.
참된 사랑은 오래 오래 참아줍니다. 그러기에 쉽게 헤어지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참을성이 부족한 시대입니다. 오래 참는 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부흥, 회복이라는 열망이 있습니다. 무엇을 부흥시켜야 하고 회복시켜야 합니까? 오래 참는 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단숨에 뿌리를 뽑아야 직성이 풀리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단숨에 성적이 오르고 단숨에 사업이 잘 되고 단숨에 건강해지길 바랍니다. 그래서 인스턴트 식품, 패스트푸드 식품이 유행합니다. 오래 기다리지 못합니다. 음식이 곧바로 나와야 합니다.
한국의 “빨리 빨리”라는 말이 온 세계에 유행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뭐가 그리 급한지 재촉합니다. 여유가 없습니다. 마음이 급합니다. 그래서 마음에 걸핏하면 병이 잘 듭니다. 시원시원하게 해결되어 나가야 하는데 자꾸만 꽉꽉 막힐 때 속도 막혀서 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빨리 빨리가 병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것은 ‘화병(hwa-byung)’입니다. 이 병명은 한글이름 그대로 영어사전에 올라가 있습니다.
한국의 빨리 빨리 문화가 급성장의 동력이 된 것은 긍정적입니다. 자동차든 휴대폰이든 티브이든 하루가 다르게 신모델이 등장합니다. 일본에서는 이 빨리빨리 경영을 배워야 한다고 할 정도로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세계인을 빠르게 움직이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경제적인 면에서 보면 60년대 불과 85달러의 최빈국에서 50년이 지난 지금 2만 달러를 넘어서서 세계 33위입니다. 경제규모로는 10위권입니다. 그래서 G20 국가가 되어 서울에서 회의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세계가 놀라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세계 역사에 이러한 역사는 없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겉으론 크게 성장한 것 같이 보여도 속으론 병이 든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모든 분야의 화병이 든 것과 같습니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내용적으로 보면 부실한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보면 실제적으로 사는 것은 훨씬 못합니다. 옛날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면 받을 수 있는 급여를 지금은 대학을 졸업해도 받기 어렵습니다. 그마저 자리도 잘 없습니다. 실속이 없습니다. 과거엔 공무원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인기직종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덩치는 커졌는데 내용은 부실합니다. 세밀하지 못합니다. 이번 천안함 참극도 마찬가지입니다. 분석한 결과 대응책으로 이제까지는 독도함 등의 거대한 전함을 만들어 왔으나 이제는 작고 세밀한 잠수정 등도 만들고 수중전에도 능하도록 대비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크기에 집중했지만 허당이었던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도 전면전보다 게릴라전과 같은 소규모 전투를 대비해나가고 있습니다.
복음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우 빠르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세계 구석구석에 안 들어가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정말 좋은 일이고 잘하는 일입니다. 세계 선교를 부지런히 그야말로 열심히 잘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의 평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닙니다. 왜요? 속도와 열정은 있는데 내용이 신통찮다는 지적입니다. 심지어 실적위주의 캠코더 선교라고 혹평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여기서 벗어나 보완해서 실제적으로 효과 있는 선교를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빠른 문화 덕분에 인터넷과 휴대폰 분야에도 1,2등하라면 서러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좁은 나라이지만 도로도 사방팔방 안 뚫린 곳이 없습니다. 강과 바다가 막으면 커다랗고 긴 다리를 놓아 길을 만듭니다. 산이 막고 있으면 사정없이 터널을 뚫어 만듭니다. 하늘이 막으면 경비행기, 개인항공사 등을 통해 하늘 길도 자유자재로 만듭니다. 바다든 강이든 하늘이든 지금도 계속해서 길을 만들고 있어 더욱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속도면에서는 과히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그런데 인간관계도 빠른 속도로 나가고 있습니다. 사이가 좋으면 금방 만났다가 싫으면 금방 헤어집니다. 하도 잘 헤어지기에 이혼율이 OECD 국가 중 1위입니다. 사는 것도 잘 참지 못합니다. 조금만 어렵고 힘들면 죽습니다. 역시 OECD 국가 중 1위입니다. 직장도 참지 못합니다. 당장 그만둬 버립니다.
이처럼 우린 너무 여유가 없습니다. 참을성이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일에 대해 사람에 대해 참을성이 있어야 합니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서로에 대해 참아주고, 여당과 야당 간에, 정부와 국민 간에도 참아주고, 교회와 성도 간에, 성도 간에, 가족 간에도 서로 참고 기다려줘야 합니다.
본문 4절 합독하겠습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오래 참는 것이 사랑입니다. 7절도 합독하겠습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이 무엇이라고 했지요? 사랑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오래 참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랑해주셨습니다. 참아주셨습니다. 만약에 참지 못하고 기다려주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모두 다 죽게 됩니다. 구원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참으시고 기다려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잘못해도 참고 기다려주셨기에 구원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5절입니다.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베드로후서 3장 9절에도 말했습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참아주셨기에 우리는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 오래 참아주시고 기다려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에 대해 참아야 하고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거역하는 사람에 대해 기다려줄 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3절입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서로 오래 참으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말했습니다. 에베소서 4장 2절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서로 오래 참고 서로 용납하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서로 나누어야 합니다.
갈등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통제하려는 욕망 때문입니다. 내 의지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더 큰 원인은 빨리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회도, 가정도, 나라도, 개인도, 교회도 너무 빨리 변화시키려고 서두르면 강압 등의 물리적인 수단으로 몰아칩니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이렇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대하면 부드러워 집니다. 사랑으로 대하면 신이 나고 흥이 나게 됩니다. 신바람이 납니다. 이렇게 사랑이 사람을 오히려 변화시키고 나라를 변화시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두를 것이 아니라 오래 참고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다 연약하고 허물이 많고 부족한 존재입니다. 서로 들추어내면 서로 상처투성이가 되고 서로 못난이가 됩니다. 그러므로 서로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오래 참고 허물을 덮어주고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덮어줄 수 있는 사랑과 용서란 커다란 겉옷을 많이 준비해서 덮어주고 참고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이든 오래 참아야 합니다. 참을성을 길러야 합니다. 참을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에 대해 오래 참아야 합니다.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러해야 합니다. 이렇게 오래 잘 참게 되면 참는 자의 복을 받게 됩니다. 관계를 좋게 만들고 일을 잘 되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