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위대한 질문> -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
배철현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7장 너는 입맞춤으로 나를 넘겨주려고 하느냐?
열 두 제가 가운데 하나인 유다라는 사람이 앞장서서 그들을 데리고 왔다. 그는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왔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유다야, 너는 입맞춤으로 인자를 넘겨주려고 하느냐?” 하셨다. (누가복음 22, 47~48)
악의 화신이 된 유다
시몬의 아들 카리옷 출신 유다는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저주받은 인간이자 배신자의 상징이 됐다. 유다는 과연 배신자, 도둑 혹은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인가?
요한복음의 기록에 따르면 유다는 마지막만찬장에서 예수가적셔주는 빵을 받아먹고 예수로부터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라는 말을 듣고는 바로 홀로 만찬장을 나가서 유대교 제사장들에게 ‘은전 30냥’을 대가로 예수를 팔아먹는다. 그 후 예수가 체포된 후 유다는 제사장들에게 받은 은전을 돌려주려다 거절당하자 은전을 바닥에 내던지고 예수가 처형되기 전에 먼저 목을 매 자살한다.
왜 유다는 이러한 운명을 져야 했을까? 만일 이 행동이 인류를 구원할 그리스도 수난 과정의 시발점이라면 예수의 수난사를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유다복음의 발견과 재평가
1978년 이집트의 한 무덤에서 보물을 찾던 농부들이 오래된 ‘코덱스(codex)’ 하나를 발견한다. 코덱스는 두루마리와는 달리 페이지 번호가 적혀 있는 일종의 책이다.
이 코덱스는 그것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의 이름을 따서 ‘차고스 사본(The Codex of Tchacos)’이라고 한다. 이 중 한 문헌이 26쪽으로 이루어진 <유다복음(The Gospel of Judah)>이다. 이 코덱스를 누가 기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유다는 예수의 지상 임무를 완벽하게 이해한 유일한 제자다.
차코스 사본은 다른 ‘나그함마디 문헌’들처럼 영지주의파로 알려진 한 그리스도 종파의 글이다. 기원후 2세기는 그리스도교 내 여러 종파들이 등장해 각자 자신들만이 정통성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특정한 신학적 노선과 달리하면 이단으로 정죄하던 시기였고, 그리스도교도 유대교의 한 분파 혹은 이단으로 취급받았다.
영지주의자들은 히브리 성서를 무시하며, 악이 존재하는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도 악의 화신이라 생각하는 독특한 세계관을 지녔다. 그럼으로써 히브리 성서에 등장하는 우주를 창조한 신을 악으로 규정한다. 그들에게 구원은 믿음이나 행동이 아니라 그들에게만 특별히 계시된 ‘그노시스(gnosis)’라 불리는 비밀 지식이다.
유다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육체를 지닌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다. 영적인 예수는 죽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부활할 필요도 없다. 영적인 존재인 예수는 유다에게 인간의 육체에 감금되어 있는 자신의 영을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유다는 예수의 이 요구를 따랐을 뿐이다. 유다복음은 지난 2000년 동안 배신의 상징이었던 유다를 예수의 12제자 중 유일하게 예수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을 이해한 제자로 묘사한다.
유다복음은 예수와 제자들의 대화 그리고 예수의 우주 창조에 관한 강의로 구성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창세기 1~2장에 등장하는 내용과 전혀 다르다. 유다복음에서 신은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 신은 한 명의 천사를 창조했고 그 천사가 다른 수많은 천사를 창조한다. 거기에는 열두 개의 ‘이온들’(‘세대’라는 의미를 지닌 시간)과 72개의 별이 생긴다. 72개의 별에는 각기 다섯 개의 창공이 있어서 모두 360개의 별이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이 우주가 모두 ‘오염’이며, 특히 지구는 난폭한 조물주인 ‘네브로(Nebro)’와 그의 멍청한 조수인 ‘사클라스(Saklas)’가 만든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이상한 문헌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20세기 이후 그리스도교는 자신들만의 성을 쌓고 자신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교리에 그리스도인들을 구속시킨다. 교회를 떠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교가 종교적으로 개방되어 삶에 깊은 성찰과 용기 있는 행동을 유발시키는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영지주의 문서들과 함께 유다복음은 고정된 교리란 있을 수 없으며, 그리스도교가 탄생할 당시 신학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다양한 문헌들이 존재해 그리스도교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증명한다. 오늘날 종교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가치인 ‘다양성’을 증언하는 것이다.
유다복음은 이 다양성뿐만 아니라 또다른 중요한 가치를 전달한다.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미움 받는 인물이 이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수제자로 언급된다. 유다에 대한 재평가는 곧 그리스도교가 지난 2000년간 억압해온 집단들, 특히 사회적 약자인 여성, 노인, 식민지 등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
유다는 예수를 배신한 제자일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반유대주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예수 사후에 유다는 유대인들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동료를 배신하고 돈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하는 인종의 상징이 바로 유다였다. 따라서 유다를 재발견하는 과정은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에 대한 집단 죄의식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정통 유대인들로부터 무시당하던 예수 공동체 사람들은 유대인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로마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유대교와 구분된 ‘로마 종교’의 하나로 포장하고, 유대인들의 경전과 다른 신의 새로운 약속이자 증언인 신약성서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유대인 경전을 더 이상 ‘토라’로 부르지 않고 ‘오래된 약속’, 즉 ‘구약성서’로 불렀다.
1세기에 들어와 유대인들의 경전인 ‘토라’는 예수가 메시아라는 신의 약속의 성취인 ‘구약’의 되었으며, 구약성서는 예수의 탄생, 가르침, 십자가 사건 그리고 부활을 예언하는 증거 자료로 전락했다.
예수공동체가 유대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 자신들만의정체성을 확립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예수는 일생을 충실한 유대인으로 살았으며, 제자들도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예수 공동체가 유대 공동체와 자신들을 구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유다다. 그는 이 두 공동체를 분리하는 촉매제가 됐다.
그리스도교는 2세기에 이미 유다를 유대교와 일치시켜 반유대주의와 반셈족주의를 시작했다. ‘불가타’성서를 완성한 히에로니무스는 유다를 유대인을 상징하는 인물로 묘사하며 “유다는 돈을 좋아하여 예수를 배신하였다”고 말한다. 또 초기 그리스도교 교부이자 유명한 설교자인 크리소스톰도 “유대인들의 노략질, 그들의 시기심, 그들이 장사를 할 때 훔치고 사기 치는 것에 대해 설교하고자 합니다”라고 외쳤다. 유대인들이 수전노라는 잘못된 전통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반셈족주의는 20세기에 들어와 인류 최대의 비극인 홀로코스트를 초래했다.그리스도 감성을 지닌 유럽인들에게 유다의 이미지는 나치가 유대인 인종 청소를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나치 독일은 반유대주의를 고양시키기 위하여 <유대인 쥐스>라는 영화를 만들어 돈과 계약을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유대인을 묘사한다.
유다는 예수가 세상에 보여줄 ‘연민’이라는 가치를 충격적이며 감동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존재한 악마가 아니라, 유다복음의 주장처럼 예수의 위대한 마지막 길을 밝혀준 존재는아니었을까? 단테가 『신곡』 「지옥편」에서 유다와 브루투스가 지옥의 맨밑바닥에서 사탄에게 비참하게 잡아먹히는 장면을 묘사하는 반유다 감정은 지난 2000년 동안 그리스도교의 정체성 확립과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최대의 비극을 낳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날 유다복음을 통해 유다를 새로운 각도에서 다시 조망하고, 종교의 다양한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