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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제4권ー4
22독, 광(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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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은 무량수불(無量壽佛) 또는 무량광불(無量光佛)로도 부릅니다. 이는 한자어로만 다른 게 아니라 이미, 인도 말(산스크리트)에서부터 다릅니다. amitāyus는 한역으로 무량수불이라고 옮깁니다. amita는 한량이 없다, 헤아릴 수 없다는 말이고, āyus는 생명, 수명의 뜻입니다. 무량광불에 해당하는 원어는 amitābhā입니다. ābhā는 빛, 광명입니다.
범본에 보면, 이 두 말이 다 나옵니다. 아미타유스도 나오고 아미타바도 나옵니다. 그렇지만 빈도를 볼 때, 아미타유스보다는 아미타바가 좀 더 많이 나옵니다. 무량수불보다는 무량광불이 더 많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범본의 제목을 옮기면 <<극락장엄경>>이지만, 강승개 역본 한역에서는 <<무량수경>>이라고 하였는데, 어쩌면 이는 중국 도교사상의 영향인지도 모릅니다. 이 목숨 ‘壽’에, 도교에서 추구하는 목표인 불로장생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강승개 역본 <<무량수경>>에서 도교 내지 노장철학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편, 범본에는 무량광불에 해당하는 용어로 아미타바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amitaprabhā도 나옵니다. 아미타유스, 아미타바, 아미타프라바가 함께 나오는데, 아미타프라바 역시 뜻은 무량광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더 무량광불의 뜻을 갖는 명칭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일단 한 번 「정신게」를 독송한 뒤에 다시 말씀드리기로 합니다.
자, 오늘의 1독을 다 같이 하겠습니다.
귀명무량수여래(歸命無量壽如來) ⟶
나무불가사의광(南無不可思議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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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보살인위시(法藏菩薩因位時) ⟶
재세자재왕불소(在世自在王佛所)
도견제불정토인(都見諸佛浄土因) ⟶
국토인천지선악(國土人天之善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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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무상수승원(建立無上殊勝願) ⟶
초발희유대홍서(超發希有大弘誓)
오겁사유지섭수(五劫思惟之攝受) ⟶
중서명성문시방(重誓名聲聞十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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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방무량무변광(普放無量無邊光) ⟶
무애무대광염왕(無碍無對光炎王)
청정환희지혜광(淸淨歡喜智慧光) ⟶
부단난사무칭광(不斷難思無稱光)
초일월광조진찰(超日月光照塵刹) ⟶
일체군생몽광조(一切群生蒙光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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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원명호정정업(本願名號正定業) ⟶
지심신요원위인(至心信樂願爲因)
성등각증대열반(成等覺證大涅槃) ⟶
필지멸도원성취(必至滅度願成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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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소이흥출세(如來所以興出世) ⟶
유설미타본원해(唯說彌陀本願海)
오탁악시군생해(五濁悪時群生解) ⟶
응신여래여실언(應信如來如實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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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발일념희애심(能發一念喜愛心) ⟶
부단번뇌득열반(不斷煩惱得涅槃)
범성역방제회입(凡聖逆謗齊回入) ⟶
여중수입해일미(如衆水入海一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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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취심광상조호(攝取心光常照護) ⟶
이능수파무명암(已能雖破無明闇)
탐애진증지운무(貪愛瞋憎之雲霧) ⟶
상부진실신심천(常覆眞實信心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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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일광부운무(譬如日光覆雲霧) ⟶
운무지하명무암(雲霧之下明無闇)
획신견경대경희(獲信見敬大慶喜) ⟶
즉횡초절오악취(卽橫超截五惡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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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선악범부인(一切善惡凡夫人) ⟶
문신여래홍서원(聞信如來弘誓願)
불언광대승해자(佛言廣大勝解者) ⟶
시인명분타리화(是人名分陀利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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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불본원염불(彌陀佛本願念佛) ⟶
사견교만악중생(邪見憍慢悪衆生)
신요수지심이난(信樂受持甚以難) ⟶
난중지난무과사(難中之難無過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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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서천지론가(印度西天之論家) ⟶
중하일역지고승(中夏日域之高僧)
현대성흥세정의(顯大聖興世正意) ⟶
명여래본서응기(明如來本誓應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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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여래능가산(釋迦如來楞伽山) ⟶
위중고명남천축(爲衆告命南天竺)
용수대사출어세(龍樹大士出於世) ⟶
실능최파유무견(悉能摧破有無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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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설대승무상법(宣説大乘無上法) ⟶
증환희지생안락(證歡喜地生安樂)
현시난행육로고(顯示難行陸路苦) ⟶
신요이행수도락(信樂易行水道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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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념미타불본원(憶念彌陀佛本願) ⟶
자연즉시입필정(自然卽時入必定)
유능상칭여래호(唯能常稱如來號) ⟶
응보대비홍서은(應報大悲弘誓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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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친보살조론설(天親菩薩造論說) ⟶
귀명무애광여래(歸命無碍光如來)
의수다라현진실(依修多羅顯眞實) ⟶
광천횡초대서원(光闡橫超大誓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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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유본원력회향(廣由本願力廻向) ⟶
위도군생창일심(爲度群生彰一心)
귀입공덕대보해(歸入功德大寶海) ⟶
필획입대회중수(必獲入大會衆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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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지연화장세계(得至蓮華藏世界) ⟶
즉증진여법성신(卽證眞如法性身)
유번뇌림현신통(遊煩惱林現神通) ⟶
입생사원시응화(入生死園示應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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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담란양천자(本師曇鸞梁天子) ⟶
상향란처보살례(常向鸞處菩薩禮)
삼장류지수정교(三藏流支授淨教) ⟶
분소선경귀락방(焚燒仙經歸樂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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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친보살론주해(天親菩薩論註解) ⟶
보토인과현서원(報土因果顯誓願)
왕환회향유타력(往還廻向由他力) ⟶
정정지인유신심(正定之因唯信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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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염범부신심발(惑染凡夫信心發) ⟶
증지생사즉열반(證知生死卽涅槃)
필지무량광명토(必至無量光明土) ⟶
제유중생개보화(諸有衆生皆普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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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작결성도난증(道綽決聖道難證) ⟶
유명정토가통입(唯明浄土可通入)
만선자력폄근수(萬善自力貶勤修) ⟶
원만덕호권전칭(圓滿德號勸專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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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삼신회은근(三不三信誨慇懃) ⟶
상말법멸동비인(像末法滅同悲引)
일생조악치홍서(一生造悪値弘誓) ⟶
지안양계증묘과(至安養界證妙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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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독명불정의(善導獨明佛正意) ⟶
긍애정산여역악(矜哀定散與逆惡)
광명명호현인연(光明名號顯因緣) ⟶
개입본원대지혜(開入本願大智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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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정수금강심(行者正受金剛心) ⟶
경희일념상응후(慶喜一念相應後)
여위제등획삼인(與韋提等獲三忍) ⟶
즉증법성지상락(卽證法性之常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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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광개일대교(源信廣開一代教) ⟶
편귀안양권일체(偏歸安養勸一切)
전잡집심판천심(專雜執心判淺深) ⟶
보화이토정변립(普化二土正弁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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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악인유칭불(極重惡人唯稱佛) ⟶
아역재피섭취중(我亦在彼攝取中)
번뇌장안수불견(煩惱障眼雖不見) ⟶
대비무권상조아(大悲無倦常照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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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원공명불교(本師源空明佛敎) ⟶
연민선악범부인(憐愍善惡凡夫人)
진종교증흥편주(眞宗教證興片州) ⟶
선택본원홍악세(選擇本願弘惡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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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래생사륜전가(還來生死輪轉家) ⟶
결이의정위소지(決以疑情爲所止)
속입적정무위락(速入寂靜無爲樂) ⟶
필이신심위능입(必以信心爲能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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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대사종사등(弘經大士宗師等) ⟶
증제무변극탁악(拯濟無邊極濁悪)
도속시중공동심(道俗時衆共同心) ⟶
유가신사고승설(唯可信斯高僧說)
빛 ‘광’이 많이 나옵니다. 신란스님이 얼마나 ‘광’을 중시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대표작 <<교행신증>> 제1권은 분량이 매우 적습니다. 경전 인용도 단 한 문장뿐입니다. <<무량수경>> 초입 부분에 보면, 오늘따라 부처님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문장을 인용하고서는, <<대무량수경>>을 소의 경전으로 삼는다는 내용이 제1권(<<교문류>>)의 주된 내용입니다. 말하자면, 누가 신란스님에게 “스님은 왜 그렇게 <<무량수경>>을 중시하고 의지하나요?”라고 물을 때, 그 대답은 “<<무량수경>> 앞부분에 보면, 부처님 얼굴에서 빛이 난다고 했잖아요?” 이런 정도일 것입니다.
「정신게」에 나오는 ‘광’ 자 중에 최초로 나오는 것은 제2구 “나무불가사의광”입니다. ‘불가사의광’은 <<무량수경>>에 나오는 많은 ‘광’불들을 다 한 마디로 포섭하여 말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난 편지에서 그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정토진종 본사에 가면 신란스님을 모시는 법당이 있는데, ‘고에이도(御影堂)’라 합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 절에 가면 영각이나, 조사전에 해당하는 성격의 전각이라고 하겠습니다. 다만 우리의 경우 도량의 좀 외진 곳, 한 구석(?)에 위치하지만 정토진종에서는 제일 큰 건물로, 제일 중심에 위치합니다. 그 이유는 그 영당으로부터 정토진종이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 고에이도 중심에는 신란스님을 모시고 있고, 신란스님의 왼편(참배자가 볼 때 오른쪽)에는 지난번에 말씀드린 10자 명호, 즉 “귀명진시방무애광여래”(세친의 <<정토론>>에 나옵니다)를 세로로 쓴 족자를 걸고 있습니다. 신란스님의 오른쪽(참배자의 왼쪽)에는 9자 명호가 있습니다. 바로 “나무불가사의광여래”가 그것입니다. 「정신게」 의 ‘나무불가사의광’에 ‘여래’를 덧보태어서 9자명호라 부르고, 고에이도에 내걸어서 모십니다. 「정신게」 제1구가 “귀명무량수여래”이므로, 한 편에는 ‘수’의 명호를 내걸고 한 쪽에는 ‘광’의 명호를 내걸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양쪽 다 ‘광’의 명호를 내걸었습니다. 즉 신란스님만큼 아미타불을 ‘무량광불’로 인식하는 경우도 드물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무불가사의광’이라는 구절은 제게는 특별한 체험을 안겨준 구절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편지 제2권 12 「올해의 책」(1,2권 합본 237)에서 한 번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2018년 봄, 교토의 류코쿠(龍谷)대학에서 공부할 때입니다. 오전에는 류코쿠대학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는 동본원사 신란교류관에 가서 ‘정례법회’에 참석합니다. 그 신란교류관에는 작은 ‘열람실’이 딸려 있어서, 법회 전후에 책을 빌려 읽을 수 있습니다. 그때 제가 읽은 책이 <<진종칠조개론>>( 常本 憲雄/츠네모토 노리오 著)이라는, 아주 오래되고 작은 책을 읽다가 거기서 이 ‘나무불가사의광’이라는 「정신게」의 제2구가 신란스님의 창작이 아니라 담란스님의 말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담란스님에게는 <<찬아미타불게(讚阿彌陀佛偈>>라는 장편 정토시가 전해져 옵니다. 그 속에 나오는 구절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웬일인지 저는 환희심에 휩싸였습니다. 집으로 가는, 20여분 정도 골목길을 걸으면서 저절로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염불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이후 신란교류관을 왕복하는 길에서 내내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신명나게 외던(외웠다기보다는 염불이 저절로 제게서 흘러넘쳤다고 표현해야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도 “신란스님의 정토사상이 보편성을 가졌구나”라는 확인을 한 데서 오는 환희심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보방무량무변광(普放無量無邊光) ⟶ 무애무대광염왕(無碍無對光炎王)
청정환희지혜광(淸淨歡喜智慧光) ⟶ 부단난사무칭광(不斷難思無稱光)
초일월광조진찰(超日月光照塵刹) ⟶ 일체군생몽광조(一切群生蒙光照)
이 6구 1송은 십이광불을 말하는 게송입니다. <<무량수경>> 상권에서, 이들 십이광불이 곧 무량수불의 다른 이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량수불은 무량광불, 무변광불, 무애광불, 무대광불, 염왕광불, 청정
광불, 환희광불, 지혜광불, 부단광불, 난사광불, 무칭광불, 초일월광불이라 부른다.
강승개 역본에 이렇게 나옵니다. 이 부분을 「정신게」에 가지고 간 것입니다. ‘염왕광불’만 ‘광염왕’이라고 바꾸어서 했는데, 어쩌면 계속 ‘광’으로만 나가는 것보다는 한번 변화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일 수도 있겠습니다.
범본 <<무량수경>>에는 사실 이 부분은 ‘십이광’이 아니라 ‘이십광(二十光)’불입니다. 「정신게」의 천친 찬탄에 나오는 ‘귀명무애광여래’ 역시 이 십이광에 나오는 ‘무애’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게송의 제6구에 나오는 ‘일체군생몽광조’입니다. 모든 중생들은 다 그 부처님의 빛이 비춰주심을 입는다는 뜻인데, 이 내용이야말로 법장보살의 48원 중에서 제33원의 내용입니다
가령 제가 부처가 된다고 하더라도, 시방(세계의) 한량없으며 생각할 수도 없 이 (많은) 모든 부처님 세계의 중생들 무리가 저의 광명이 그 몸에 접촉함을 입 어서 몸과 마음이 안락(柔軟)하기가 인간이나 천상세계보다 더 할 것입니다. 만 약 그렇지 않다면, 정각을 얻지 않겠습니다.
강승개 역본을 옮겨보았습니다. 이 원(願)의 뜻을 ‘일체군생몽광조’라고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섭취심광상조호’라는 말은, 아미타불께서 중생을 섭취하여 늘 비추어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데 쓰이는 빛이 ‘신광’이 아니라 ‘심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학자들 이야기에 따르면, 「정신게」에서 찬탄하는 7조들은 ‘신광’을 말씀하시는데, 신란스님은 ‘심광’을 말씀한다고 합니다.
‘비여일광부운무’는 “비유하자면 햇빛이 운무에 덮이는 것과 같아서”라고 번역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뜻을 알고 그렇게 하는 것이고, 실제로 한문만으로는 그런 번역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한문만을 보고 옮긴다면 “비유하자면 마치 햇빛이 운무를 덮는 것과 같아서”라고 하게 됩니다. ‘부(覆)’는 여기서 덮는다는 뜻으로 쓰였는데, 그것이 수동으로 쓰인다는 문법적 표지(標識)는 그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뒤의 구절 ‘운무지하명무암’, 즉 “운무 아래는 밝아서 어둡지 않다”고 하는 것과 호응이 안 됩니다. 그래서 수동으로 옮길 수밖에 없습니다.
천친보살 찬탄에 나오는 ‘귀명무애광여래’는 앞서 설명했습니다만, ‘광천횡초대서원’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광천’이라는 말은 <<무량수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무량수경>> 앞머리에 ‘光闡道敎’라는 용례가 있습니다. “도에 이르는 길을 널리 천명하시고”라는 뜻입니다. 이때 ‘광’은 ‘넓게’라는 뜻으로 쓰임을 알 수 있습니다. ‘闡’이라는 동사를 수식하는 부사입니다.
‘횡초’는 가로로 초월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 자체는 <<무량수경>>에서는 ‘횡절(橫截)’이라는 말로 쓰였습니다. 「정신게」에서도 ‘즉횡초절오악취’라고 할 때, ‘횡’과 ‘절’이 다 나왔습니다. 이 ‘횡절’을 ‘횡초’로 쓴 것은 선도대사입니다. 그분의 <<관경소>> 제1권 현의분에, ‘귀삼보게(歸三寶偈)’ 또는 ‘권중게(勸衆偈)’라 이름 하는 정토시가 나옵니다. 그 중에 ‘횡초단사류(橫超斷四流)’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로로 초월하여 네 가지 흐름을 끊는다”는 뜻입니다. 신란스님의 설명에 보면, ‘횡’은 ‘수(竪)’에 상대하는 것입니다. ‘수’는 세로입니다.
자, 여기 중생이 있습니다. 저 위에 부처님의 깨달음이 있습니다. 거기까지 52개의 계단이 있다고 화엄경에서 말하지요. 그것은 수평이 아니라 수직입니다. 그 수직을 ‘수’라고 말합니다. 그 수직의 단계를 하나하나 걸어서 올라가면 ‘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초’는 건너뛰는 것입니다. 단계를 초월합니다. ‘수’는 성도문의 불교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수초’라고 하면, 성도문 중에서 돈교(頓敎)를 말합니다. 그 반면에 ‘횡초(橫超)’는 아미타불의 서원, 즉 타력에 의지하여 일체의 단계와 지위를 단박에 건너뛰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횡초의 대서원’이라 말합니다. 이렇게 신란스님이 생각하는 성불론은 횡초입니다. 그런 까닭에 정토신앙은 일종의 돈교(頓敎) 내지 돈법(頓法)이라 할 수 있는데, 정토문 중의 돈교이므로 ‘횡초’라고 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신란스님의 교판(敎判)인데, 여기서는 더 자세한 고찰은 생략합니다.
담란스님 찬탄에 나오는 ‘필지무량광명토’는 “반드시 무량광명토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무량광명토’는 ‘정토’의 다른 이름입니다. 『무량수경』의 이역본(異譯本) 중에 지루가참(支婁迦讖) 번역의 『무량청정평등각경(平等覺經)』(이하, 『평등각경』으로 약칭함)에서는 극락정토를 ‘무량광명토’라고 하였습니다. 빛 ‘광’을 중시하는 신란스님 입장에서는 정토를 ‘무량광명토’라고 하니,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 니다.
마지막으로 선도대사 찬탄에 나오는 ‘광명명호현인연’은 “광명과 명호는 (왕생의) 인연이 됨을 나타낸다”라고 옮겨야 합니다. 이런 번역도 어렵습니다. 한문만으로는 “광명과 명호가 인연을 나타내고”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선도대사는 <<왕생예찬(往生禮讚)>>이라는 저서에서 아미타불께서는 “광명과 명호로써 시방세계를 교화하신다”고 했습니다. 신란스님은, 이 구절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상으로 「정신게」에 나오는 ‘광’자의 쓰임을 대략적으로 말씀드렸습니다.
다음 편지에서 살펴볼 글자는 ‘본원(本願)’입니다.
나무아미타불
(2021년 1월 22일)
김호성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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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성 선생의 편지 제4권--4, 광(光)에
「정신게」 제4송에 해당하는 아래 6구
보방무량무변광
무애무대광염왕
청정환희지혜광
부단난사무칭광
초일월광조진찰
일체군생몽광조
에 대한 풀이가 아주 자세하게 나와 있어
댓글로 옮겨 둡니다. 참조하십시오.
* 진한 글씨로 처리한 것은 동행이인의 개인적, 주관적 판단입니다.
김호성 선생의 '편지 제4권ㅡ4' 원문에는 이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