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금메달 수여식이 있었습니다. 바로 <국민감동 금메달> 입니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뛰어난 기량 뿐만 아니라 감동과 큰 즐거움,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선수에게 선사하는 뜻깊은 금메달입니다. 금메달의 주인공은 스피드스케이팅의 이규혁 선수와 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유망주 곽민정 선수입니다. 문화부에서 이 메달 관련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많은 국민들의 참여와 관심이 모아졌는데요. 올림픽파크텔 백제관에서 메달 증정식이 있었습니다.
▲ 스피드 스케이팅의 이규혁 선수
▲ 피겨 스케이팅의 곽민정 선수 아버님 (캐나다 전지훈련으로 아버님께서 참석하셨습니다^^)
▲ 관계자, 곽민정 선수 아버님, 이규혁 선수 단체사진
이번 수여식에 참석한 것은 뜻 깊은 금메달을 받게 된 곽민정 선수를 축하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곽 선수는 현재 훈련을 위해 캐나다에 머무르고 있지요. 곽민정 선수를 대신해 아버님께서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아버님을 뵙는 순간, 민정 선수가 왜 그렇게 밝고 화사한 소녀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자상하고 따뜻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으니 환하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가진 숙녀로 성장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곽민정 선수와 함께 금메달을 받은 이규혁 선수 역시 자리에 함께 했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이규혁 선수의 생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관계자 분들께서 케이크를 준비해오셨습니다. 생일축하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듯 이 선수는 당황+쑥스러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 예상치 못한 생일축하에 당황한 이규혁 선수 (귀엽네요ㅋㅋㅋㅋㅋㅋ)
금메달 수여식 후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작은 인터뷰도 함께 진행되었지요. 오토바이 면허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에서부터 20대와 30대 선수 생활을 아우르는 멘트까지 이야기의 폭은 넓었습니다.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작은 자리여서 상대적으로 캐주얼한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올림픽 후 일상으로 돌아간 이 선수의 근황과 선수 생활 전반, 올림픽 출전에 대한 생각과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질문들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이규혁. 그가 스케이트를 탈 때마다 기록이 갱신되었고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20대, 전성기의 그는 어떤 지배 속에서 20대를 보냈을까요. 이 선수는 '(경기에서) 지는게 싫었고, 지게 되면 너무나 화가 났다'고 짧게 회상했습니다. 30대가 되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 하는 시점에서 출전한 올림픽을 끝내고 돌아온 지금, 그는 "이기고 지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하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20년의 시간은 그의 마음을 아주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들을 지나 그는 선수복을 옷장에 넣어야 하는 시간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의 직업은 세상에서 가장 원초적이고 정직하고 전투적인 직업입니다. 얼음 위에서 가장 빨리 질주하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던 사람이 "승패가 전부가 아니다" 라는 진리를 깨닫기까지 얼마나 외롭고 고된 시간들이 있었을까요. 대단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조근조근 말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훈련으로 인해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해야 했던 것에 대한 질문도 전달되었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가족과 떨어져 생활한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서 그런지 독립해서 생활하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시크해보였습니다.^^; 수여식 초반에는 긴장하고 쑥스러워하다가,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나서는 특유의 유머러스함으로 즐거운 분위기를 주도했던 이규혁 선수! 허심탄회한 대화와 얼음 위의 대선수 카리스마와는 다른 털털한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생일 진심으로 축하해요! ^^
▲ 빛나는 아름다움과 무한한 가능성으로 우리를 기쁘게 했던 민정 양을 위한 금메달 입니다.
밴쿠버 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 13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민정 선수.
여왕으로 커나갈 어린 피겨 공주의 모습을 올림픽을 통해 볼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영광이었습니다.^^
<국민감동 금메달>의 사랑스러운 여주인공, 곽민정 선수를 대신해 자리에 참석해주신 아버님과의 대화도 훈훈했습니다. 슬쩍 내려다본 아버님의 핸드폰 화면에는 민정 양이 환하게 (정말 귀엽고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16세 소녀 특유의 발랄하고 귀여운 모습이 매력인 민정 선수에겐 금메달 수여식같이 기쁜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합니다. 하지만 1위가 아니면 실력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깐깐한(?) 사람들이 많은 한국에서 운동선수로 자라나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힘든 일입니다. 밴쿠버 올림픽 해단식 의자 에피소드에서도 이것은 여지없이 드러났지요. 세계 13위는 아무나 하는게 아닌데! 마음도 아팠고, 어린 선수에게 몰상식한 모습을 보이는 어른들이 창피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민정 선수가 <국민감동 금메달>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민정 선수를 대신해 참석한 아버님과의 인터뷰는 그야말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말씀을 하진 않으셨지만, 뼈가 있는 말씀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셨지요.
최근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인기는 '한일전(韓日戰)'의 양상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바로 '라이벌'에 대한 질문입니다. 시니어 무대에 입성한지 얼마 되지 않은 곽민정 선수에겐 벌써부터 라이벌 선수의 이름이 연관 검색어로 뜨고 있습니다. "현재 민정 양과 동갑인 일본 선수가 라이벌로 지목되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민정 선수 아버님께서는, "라이벌은 '실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라이벌(에 대한 것들)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답변을 주셨습니다. 라이벌에 얽매이지 않되,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상적인 답변이었습니다. 곽민정 선수의 실력과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답변이었기 때문입니다. 라이벌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여기시는 것도 보기 좋았습니다. 감동과 감탄을 동시에 이끌어내는 답변이라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일 라이벌 구도를 반기지 않지만, 현재 한국에서 여자 피겨 스케이팅이 이 정도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에는 한일 양국 선수 간의 불꽃 튀는 라이벌 신경전도 한몫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현재 곽민정 선수의 라이벌로 조심스레 언급되고 있는 일본 선수는 무라카미 카나코 입니다. 이 선수는 2010 주니어 월드 챔피언입니다. 이제 시니어 데뷔를 앞두고 있지요. 사실 어찌보면 무라카미 카나코와의 대결은 아직 섣부른 일일 수도 있습니다. 두 선수가 얼음 위에 스케이트를 내딛은 시기도 다르고, 무라카미 선수는 현재 주니어 세계선수권자 입니다. 그러나 곽민정 선수는 이 선수보다 먼저 시니어 무대로 진출했고 가파른 성장세와 '올림픽'이라는 큰 경험을 먼저 축적했다는 점에서 이 라이벌 구도는 무의미해질 수 있습니다. 이는 앞으로의 곽 선수의 독보적 행보에도 상당한 무게감을 더해주고 있지요.
김연아 선수는 아사다 마오 선수와는 더이상 비견할 수 없는 실력을 증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아사다 마오 선수와 관련된 수많은 질문을 받습니다. 언론은 비정상적으로 라이벌 구도를 조성해 분위기를 과열시킵니다. 차세대 피겨 여왕의 자리를 향해 달려가는 곽민정 선수에게도 언론의 공세가 비켜 가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곽민정 선수에게 앞으로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이런 외적인 부분입니다. 자신의 실력과 상관없이 겪어야 하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곽 선수의 아버지는 이에 대해 "이것 또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고 선수가 감당해야할 여러가지 것들 중 하나"라는 답변을 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최대한 가공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스포트라이트를 의식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브라이언 오서 감독을 만나면서 피겨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한 김연아 선수의 케이스처럼, 곽민정 선수도 외국인 코치와 훈련을 해볼 의향이 없는지 여쭤보았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잘 모르는 부분이지만 (웃으시며) 본인이 원한다면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이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지금 곽민정 선수는 캐나다에서 김연아 선수와 함께 브라이언 오서 감독의 코칭을 받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곽 선수가 감정 표현이 다양하고 자상한 외국인 코치와 함께 훈련을 하길 바라는 마음이 커서 그런지, 민정 양도 한번쯤 깊게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알아서 잘 하겠지만...)
또 하나 드린 질문은 "훈련을 하다보면 피곤하고 힘든 시간이 많이 찾아올텐데, 그런 민정 선수에게 아빠로서 어떤 역할을 해주시는지" 였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쑥스러우셨는지 "아이와 함께 많이 놀아줍니다.*^^*" 라고 말씀하시며 꽃미소를 뿜어내셨습니다. 사실 이 질문은 해놓고 후회했습니다. 물어볼 필요가 없을 것 같았거든요. 자상하고 다정다감한 아버지란 건 민정 선수의 미니홈피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이 질문 덕분에 아버님의 꽃미소를 볼 수 있었네요! ^^
참, 민정 선수는 평소에 '힘들다, 피겨를 그만 두고 싶다' 등의 비관적인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되고 힘든 환경 속에서 운동하고 있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로 생활한다는 것이 아버님의 말씀이네요. 민정 양이 대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어요.
▲ 캐나다 전지훈련을 간 딸을 대신해 자리에 참석하신 민정 양의 아버님.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메달을 보고 기뻐할 민정 양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스포츠는 단순히 선수만 잘 한다고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의 '메달 휩쓸이'는 이변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선수들은 다시 열악한 환경과 지원 시스템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상황을 살펴볼까요? 국내에서 국제규격용 스피드스케이팅 롱트랙은 태릉스케이트장 단 한 곳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국가대표 전용시설이 아니므로 어린 중고등학생 선수들과 함께 사용합니다.
피겨스케이팅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최정상 여자 피겨 선수를 배출한 국가라는 위엄이 무색하게도, 우리나라에는 피겨 전용링크가 아직 없습니다. 실내 빙상장들은 쇼트트랙, 아이스하키, 피겨 선수들이 다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위험부담도 큽니다. 일반인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하기 때문에 선수들은 한밤과 새벽에 연습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많은 위험과 고된 시간들을 지나 탄생한 메달입니다. 금, 은을 따지기 전에 선수들의 노력과 운동에 대한 애정을 우대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국민들은 바뀌고 있습니다. 2등과 3등을 축하할 줄 알고,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내줍니다.
<국민감동 금메달> 역시 이러한 변화가 고스란히 녹아든 메달입니다. 오늘 전달된 금메달은 밴쿠버에서 따지 못한 금메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많은 국민들이 두 선수의 스케이팅에 진심 어린 성원을 보냈다는 증거로 간직하길 바랍니다. 새로운 비상을 위한 작은 선물이 전달된 날, 좋은 기운이 선수들과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취재 및 작성 : 균미
첫댓글 훈훈한 소식도 반갑지만 생생한 인터뷰가 확 끌어당깁니다. 역시 배선생님 따님이십니다. 배선생님이 NGO 활동 한창 하실 때 인터뷰 많이 하셨고 책자도 많이 만드셨던 기억이 나서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랑 좀 하고 싶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