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카 장수 2
“어라, 배가 왜이래 ?”
아침 일찍 리어카 보관소에 가서 리어카를 찾아보니 어제 팔다 남은 배가 새카맣다. 노란 배가 밤 사이 검은 색이 되었다. 그게 남는 건데....
다른 선배 리어카 과일 장수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배는 과피가 약합니다. 기스가 나면 금새 검게 변하기 때문에 부드러운 종이로 쌓아서 진열해야 하고 조심해서 다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가마니를 펴서 깔은 위에 싣고 뒤굴뒤굴 글리면서 다녔으니 배의 표피가 온통 긁혔고, 긁힌 자욱은 밤 사이에 검게 변한 것이다.
팔아먹긴 틀렸다. 나중에 과일을 많이 산 사람에게 덤으로 주는 수밖에 없다.
“리어카에 깐 가마니를 치우고 왕겨를 깔고 배를 진열하는 게 좋습니다”
결국 리어카에 깐 가마니를 걷어내고 왕겨를 수북하게 깔았다.
보기가 한결 좋았다. 하나 하나 배울 게 많다.
이틀째 장사가 시작 됐다.
그날은 을지로 4가 중부시장에서 배 두 상자를 사서 진열하고 밖으로 나왔다. 중부시장에서 먼저 장사를 시작한 선배들이 새롭게 나타난 나를 호기심을 가지고 힐끗거리지만 반기거나 아는 척 하는 사람은 없었다.
첫날과 같이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남부끄럽지는 않았지만 어색하기는 했다.
한 자리에 있기도 무엇해서 종일 리어카를 끌고 골목 골목을 다녔다.
그런데 골목은 왕래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이미 단골로 다니는 리어카 장수가 있어서 뜨내기는 쳐다 보지도 않았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제대로 장사를 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어쩌다 사는 사람을 만나면 팔고, 지치면 그늘에서 리어카를 세워 놓고 쉬고, 어렵기도 하였지만 내 마음대로 하는 자유업, 마음은 편했다. 적성에 맞는 것이다.
임시 직업이지만 제대로 구한 것이다.
하루 하루 지나면서 이것 저것을 보기도 하고 묻기도 하며 물건을 구입하는 법, 진열하는 법 등 요령을 배워 나갔다. 나름대로 노하우가 깊었다.
우선 과일 값을 얼마씩 받아야 할지가 궁금했다. 처음에 나는 과일 한 상자 값을 과일 수로 1/n하여 과일 한 개마다 그 값의 한배 반을 받았었다.
즉 1000원에 50개 짜리 배 한 상자를 샀다면 본전은 배 한 개에 20원이다.
그러면 나는 배를 한 개에 30원씩 받았다.
그러다 보면 손님이 골라가고 난 나중에는 기스난 것, 못난 것, 작은 것 등 치리기만 남는 게 문제였다
며칠 장사 후에 알게 된 나이 지긋한 선배가 알려준다.
“과일 값은 과일 장수 맘이다. 자기는 아침나절에서 점심 시간까지는 1/n한 값의 두 배를, 점심부터 저녁 무렵까지는 한배 반 값을, 그리고 늦은 저녁 시간에는 이미 본전은 건진 이후이니 본전으로 팔고 밤늦게는 떨이로 넘긴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핵심 비밀은 있어서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입문 과정을 거쳐 중부 시장에서 리어카 장수를 하는 사람들과 서로 안면이 트일 쯤 되니까 나만의 요령이 생겼다
우선 장사의 근거지를 을지로 4가의 중부시장으로 정했다.
근처에 광장 시장도 있고, 청계전 옷 도매시장이 있어 유동인구가 많았다.
그래서 중부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한 후 경매장 공터에서 진열을 하고 시장을 나와서 을지로 5가 쪽으로 이동한다. 광장 시장을 거쳐 조금 더 지나면 국립의료원이 있다.
맞은 편에는 미군 부대가 있고 그 길은 상당히 넓었다.
그 공터 나무 밑에서 앉아 쉬다 보면 지나는 사람들에 과일을 판다.
그 길을 왕래하며 팔다가 어두워지면 옛날 서울 운동장 맞은편 평화시장 상인들이 통행하는 골목으로 간다.
여기가 잘 팔렸다. 그 당시에는 자가용이 거의 없었다. 퇴근 후에 교외에 있는 집까지 버스를 타야했는데 대개가 시간이 촉박했다. 밤 12시 통행금지가 있으니 서둘러야 했다.
길 가에 있는 과일장수를 보면 집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는 아이들 생각이 나게 마련, 지친 몸과 마음 때문인지 값을 깎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아침 8시부터 시작하여 밤 11시 리어카 보관소에 리어카를 맡길 때까지 장사를 하면 하루 1000원이 벌린다.
내가 첫 발령을 받고 첫 달 받은 월급이 3만 8천원 정도 였으니 적은 돈은 아니었다.
얼마라도 돈이 벌리니 신이 난다. 열심히 했다.
식사는 시장 귀퉁이에 노점으로 늘어 놓고 파는 국밥. 한 그릇에 50원짜리로 때우고, 잠은 청계천 부근 하루 100원짜리 쪽방에서 잘 때가 많았다.
그 당시에도 술은 좋아했지만, 소주는 한 잔에 5원씩하는 잔 술 두 잔, 안주는 리어카에서 오징어 다리를 데쳐주거나 해삼, 멍게를 옷삔으로 찍어 먹는 안주로 10원어치만 먹었다. 돈 귀한 줄 알았던 때이다,
그러면서 장사의 영역을 배, 사과, 감 등 과일 전체로 넓혀 나갔다.
어느 정도 지나니 도매상에서 물건을 사는 요령도 알게 되고, 물건을 진열하고 나면 오늘 얼마의 돈을 벌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과일 장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령은 좋은 과일을 싸게 사는 것이다’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