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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꽃의 전설<펌>
두견화(진달래)의 전설 -1-
진달래와 철쭉은 쌍둥이 형제입니다만 용모나 성격이 매우 달랐습니다. 진달래는 형인데도 왜소하고 허약했으며 동생인 철쭉은 딱 벌어진 어깨와 탄탄한 다리를 지닌 건장한 아이였습니다. 진달래는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이라서 늘 신경질적이었으며 동생을 미워하고 싫어했습니다. 가령 학교에 갈 때도, “얘. 나는 네가 싫다. 같이 걷기도 싫으니 너는 멀리 뒤 떨어져서 따리 오너라.” 하는 겁니다. 그러나 철쭉은 불평하자 않고 형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너그럽고 온화한 성격일 뿐만 아니라 형에게 순종하는 착한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형이 무슨 일을 당하여 힘들어하거나 어려움을 당할 때엔 골 잘 도와주었습니다. 개울에 물이 불어서 징검다리가 물속에 잠기면 업어서 건네주었고, 친구들한테서 괴롭힘을 당하면 말려주기도 하고 숙제도 도와주고 심지어는 선생님께 잘못하여 벌을 받을 때에는 벌을 대신 받아주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병을 앓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가 운명 하실때에 두 형제에게 당부를 하셨습니다. “너희 두 형제가 서로 돕고 아끼며 살아야하느니라. 진달래는 몸이 허약하니 철쭉이 늘 보호하고 도와주도록 하여라.”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철쭉은 몸이 튼튼하고 힘이 세었으므로 아버지 돕는 일을 했습니다. 소를 몰아 밭을 가는 들일도하고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들이기도 했습니다. 진달래는 빨래, 청소, 밥 짓기 등 어머니가 하시던 일들을 했습니다. 어느 따뜻한 봄날, 진달래가 도시락을 챙겨가지고 철쭉이 일하는 산으로 소풍을 나갔습니다. 둘이서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갓 피어난 진달래꽃을 봤습니다. “진달래꽃이 피는구나...” “그래 이제 완연한 봄이야. 곧 철쭉꽃도 필 테고, 농사철이 닥치겠지?”
그 얼마 후에 나라에 큰 재난이 닥쳤습니다. 이웃나라와 전쟁이 발발한 것입니다. 곧, 그들 형제에게도 군대에 입대하여 전쟁에 참가하라는 통지서가 전달되어, 아버지를 혼자 계시게 하고 형제가 같이 전장으로 떠났습니다. 두 형제는 전투 중에도 늘 같이 행동했습니다. 몸이 작고 힘이 약한 진달래를 철쭉이 늘 보살피고 거들어 줘야 했습니다. 어느 날, 적군과 큰 접전(전투)이 벌어졌습니다. 아군 병사들은 용감하게 항전했으나 결국 패배를 했으며, 많은 사상자를 남겨두고 사령(지휘)부는 퇴각해버렸습니다. 전투 중에 많은 병사가 죽거나 다쳤는데, 철쭉도 다리를 다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습니다. 다행히 진달래는 다치지 않았습니다. 적군이 사납게 짓쳐(쫓아) 오므로 살아남은 병사들은 황급히 피해야만 했습니다. 진달래도 급히 피하려고 했습니다만, 이내 생각을 바꿨습니다. 평소에 자신한테 늘 구박을 받으면서도 반항하지 않고 순종만 했으며 자신이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도와주고 지켜주던 동생을 버리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동생 곁에 남았습니다. 적군의 많은 병사들이 지나간 후에, 동생을 치료했습니다.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붕대로 싸매어서 일으켜 세웠습니다만, 동생은 자기보다 몸이 더 크고 무거웠기 때문에 업을 수는 없어서 어깨를 부축하여 끌었습니다. 철쭉이 말했습니다. “나는 다리를 다쳐서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으니 남겨두고 너 혼자가거라. 고향에 가거든 아버지에게 내가 이 곳에서 죽었다고 말해 주렴.” “아니야. 너를 부축하고 집에까지 가겠다. 나 혼자서 돌아가면 아버지가 매우 슬퍼하실 거야.” 그러나 힘이 약한 진달래가 철쭉을 부축하고 걷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얼마 걷지를 못하고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잠시 쉬었다가 일어나서 다시 걷기를 계속하여 마침내 고향마을 가까이에 이르렀습니다. “아~! 이제 저 산만 넘으면 고향이다. 아버지가 우리를 보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그러나 불행히도 그 곳을 지나가던 적군 병사들에게 그만 들키고 말았습니다. “우리를 죽이지 말아다오. 동생이 부상당하여 내가 어렵게 부축하고 여기까지 왔다. 저 산을 넘으면 나의 고향인데, 늙으신 아버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진달래가 적군 병사에게 간곡히 사정을 했습니다만, 적군 병사는 매정하게도 진달래를 칼로 찌르고 말았습니다. 진달래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철쭉의 손을 잡았습니다. “아~ 아 아버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텐데...” 그러나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진달래가 숨을 거두자 철쭉도 이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진달래는 죽어서 두견새(소쩍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철쭉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아버지한테 날아가서 우리(시체)가 이 곳에 있다고 말하고 올께.” 하며 날아갔습니다. ‘아~ 아 그리운 고향집.’ 집 마당에 있는 팥배나무( 흰 꽃이 피는 돌 사과나무)에 앉았습니다. 아버지가 마루에 앉아 계셨습니다. “아버지. 제가 왔어요. 저 진달래예요.” 그러나 아버지의 귀에는 “소쩍 소쩍”하는 새의 울음소리로 들립니다. 진달래는 이제 사람이 아닌 새 이니까요. 진달래가 다시 말했습니다.(울었습니다.) “아버지. 동생이 다리에 부상을 당해서 제가 부축해 오다가 적병에게 들켜서 그만 살해되고 말았어요.” 그러나 아버지의 귀에는 역시 소쩍새의 울음소리로만 들립니다. 진달래가 날아가 아버지의 어깨위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따라 오시라는 의미(신호)를 전달했습니다. 다행히 아버지가 그 뜻을 알아차리셨을까요? “이 놈의 두견새가 날 어디로 데려가려나?” 하시며 일어섰습니다. (두견새가 되어버린) 진달래가, 아버지를 철쭉과 자신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인도해 갔습니다. 아버지가 아들들의 시체를 보셨습니다. “오~ 오 내 아들들아! 그 머나먼 전장에서 이곳까지 와서 죽어있구나. 그래 이 아비를 만나려고 이곳까지 왔었더냐? 그렇담 살아서 조금만 더 오지, 죽어서 이 곳에 있느냐...” 하시며 슬프게 울었습니다. 그리고 머리 위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두견새를 보시면 말했습니다. “그래! 두견새야. 네가 바로 내 아들 진달래의 넋(혼)이로 구나 그래서 날 이곳까지 데려오려고 내 집 마당 팥배나무 가지에서 울었었구나.” 한탄하시며 다시 눈물지었습니다. 그 후, 진달래의 넋(혼)이 두견새가 되었다하여 진달래꽃은 두견화라고도 한답니다.
-유래-2 옛날 촉나라 임금 두우가 억울하게 죽어 그 넋이 두견이가 되 었고 두견이가 울면서 토한 피가 두견화가 되었다고 한다. 만약 누군가가 아침에 그 새의 첫 울음 소리를 듣는다면 그것은 곧 그의 연인과 헤어지게 됨을 의미한다고 한다.
-유래-3 신라 성덕왕 때 미인 수로 부인은 강릉 태수로 부임해가는 남편 순정공을 따라 강원도로 가고 있었다. 따뜻한 봄날에 일행은 가다가는 쉬고 쉬다가는 가는 것이 어느덧 한낮이 되자 냇가에서 점심을 먹게 됐다.
그때 절벽에 현란하게 핀 진달래를 보고, 수로 부인은 따라온 하인에게 그 꽃 한 송이를 따오라고 명했으나 발을 디딜 곳이 없는 절벽이라서 누구도 엄두를 못냈다.
마침 암소를 끌 고 지나가던 한 노인이 부인의 말을 듣고 위험을 무릅쓰고 절벽을 기어올라가 진달래를 꺾 어다 주고 다음과 같은 헌화가를 지어바쳤다고 한다.
"자줏빛 바위 끝에 잡아온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두견주" 진달래 꽃잎을 섞어 담는 향기나는 술로 진달래꽃을 두견화라고도 하므로 두견주라고 부른다.
두견주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복지겸(卜智謙)에 얽힌 전설이 있다. 그가 병이 들어 온갖 좋다는 약을 다 써도 병이 낫지 않자, 그의 어린 딸이 아미산에 올라 100일 기도를 드렸다.
신선이 나타나 이르기를 아미산에 활짝 핀 진달래꽃으로 술을 빚되 반드시 안샘(지금 면천초등학교 뒤에 있는 우물)의 물로 빚어 100일 후에 마시고 뜰에 2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어 정성을 드려야만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딸이 그대로 하였더니 아버지의 병이 나았다고 한다.
술의 색은 연한 황갈색이고 단맛이 나며 점성이 있는데 신맛과 누룩냄새가 거의 없고 진달래 향기가 일품이다. 알코올 도수는 21도 정도이다.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피로회복에도 효과가 있으며, 특히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주어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진달래꽃의 꽃술에는 독성분이 있으므로 술을 담글 때 꽃술이 섞여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전통민속주 제조기능을 보존, 전승하도록 하기 위해 면천의 두견주 제조기능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지아비의 무덤을 지키던 여인의 피맺힌 슬픔이 꽃잎에 닿아 붉은색이 되었다는 진달래는 '이별의 한'을 상징한다고 해서 두견화 또는 귀촉화라고도 한다. 보통 성인 남자 키만큼 자란다.
가장 굵은 가지의 두께가 어른 손가락보다 굵게 자라지 못하면 잔가지들이 꾸불꾸불하게 나는 습성이 있어, 오목눈이나 붉은머리 오목눈이 같은 작은 산새들이 많이 모여든다. 이른 봄 잎이 나기 전에 꽃이 먼저 피는데, 통꽃으로 끝이 5갈래 정도 갈라지고 꽃잎에 보라색 점이 있다.
잎은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어 밋밋하며, 가운데 잎맥이 유난히 두드러진다. 뿌리가 실처럼 가늘고 땅 표면을 따라 얕고 넓게 뻗어 쉽게 캘 수 있다. 진달래는 햇빛을 유난히 좋아한다.
그래서 큰 나무가 없거나 헐벗은 산에서도 진달래 군락을 쉽게 볼 수 있다. 60~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야산이 진달래로 뒤덮여 있었던 것은 산 자체가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었기 때문이다. 진달래 철쭉의 군락지로 유명한 산은 대구 비슬산, 여수 영취산, 강화 고려산, 거제 대금산, 합천 황매산, 남원 바래봉, 단양 소백산, 태백산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 산에 진달래가 피지 않는 산은 없다.
80년대 이후 점차 산에서 진달래를 보기 어려워지는 것은 그만큼 산림이 우거져간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먹을 수 있는 식물에 '참' 자를 붙이고 먹지 못하는 것에는 '개' 자를 붙였는데, 진달래는 먹을 수 있어 ‘참꽃’이라 부른 반면 철쭉은 먹지 못한다고 해서 '개꽃'이라고 불렀다.
봄이면 찹쌀가루 반죽에 진달래 꽃잎을 올려 지져낸 화전이나 오미자즙 또는 꿀물에 진달래를 띄운 화채를 먹었으며, 진달래의 꽃잎을 따서 두견주라는 술을 빚었다.
한방에서는 두견화 또는 안산홍이라 하며 진해 조경의 효능이 있고 혈액순환을 활발하게 한다고 하여 기침, 고혈압, 월경불순 등에 처방하였다. 민간에서는 관절염, 신경통, 담이 걸릴 때 진통제로 사용한다. . . . ♥.진달래 시첩/ 하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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