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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생모 세번 째 아내 산후유증 사망, 두 번째 아내는 동성애 스캔들까지
재위 기간 겨우 2년, 치명적 등창으로39세에 세상 등져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가정 없는 역사인식이란 기술하고자 하는
의욕자체를 꺾기 마련이다.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는 ‘가정’의 씨줄 날줄을
끊임없이 교차시키며 ‘팩트’를 엮는 과정이 역사서술이 아니던가.
오늘 이런 말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문종이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나지만 않았더라면 단군 이래 최고의 성군이라는
아버지 세종을 이어 우리 역사의 물줄기가 다르게 흘렀을 거라는
아쉬움이 너무나 큰 탓이다. 문종은 성정으로나 재능으로나 오랜 왕자 시절 익힌
정치력으로나 세종을 빼닮았기에 조선 땅에 최고의 치세를 다시 한번 펼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원래 세종에게 내리려고 했던 묘호가
문종이었던 것만 봐도 부자의 정치 스타일이 얼마나 닮았는지 짐작이 간다.
문종이 즉위 2년 3개월 만에 세상을 뜨자 세종의 승하 때보다
백성들이 더욱 안타까이 목놓아 울었다는 실록 내용이 그것을 뒷받침하고도 남는다.
문종(1414~1452 : 이름은 이향)은 조선의 제5대 왕으로 37
세에 왕위(재위 1450∼1452)에 올라 불과 2년을 통치한 후 39세에 세상을 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연 이후 다섯 번째 아들 태종 이방원, 이방원의
세째 아들 세종 이도가 왕위를 이은 것과 달리, 조선 왕조 최초의 적장자이자
세자로서 30년 간 세종을 보필하며 왕의 수업을 닦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허무하게 간 것이다. 세종 치세 후반기 8년은 섭정기간이었기 때문에
문종의 치세와도 겹친다고 해도 본인의 직접적인 뜻을 펼쳐보이기에는
너무나 빠른 퇴장이었다. 마치 일생일대의 무대를 위해 온 청춘을 바쳐
연습에 몰두한 배우가 막상 무대에 오르자마자 대본이 바뀌면서
배역을 놓아버리게 되는 황당한 상황처럼.
문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질환은 종기였다.
지금이야 ‘그깟 종기’라 할지라도 당시는 왕의 크고 작은 종기가
결국 어린 아들 단종과 숙부 수양대군의 권력 투쟁으로 ‘화농’하는
결과를 빚게 된 것이다. 문종의 종기는 ‘뾰루지’ 정도가 아니라
길이가 30센티미터 너비가 15센티미터를 넘고 창근의 크기가
엄지 손가락만한 것이 여섯 개나 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동의보감>에는 특히 등에 난 종기의 경우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문종은 왜 그렇게 자주 등창에 시달렸을까.
흔히 등창은 과음및 육식 위주의 무절제한 식습관과 과도한 성생활,
급한 성정 등이 원인이라고 하지만 문종은 그런 것에서 멀어도 한참 먼 사람이었다.
그의 천성은 너그럽고 어질며, 효성스럽고 우애 깊고 온화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등창에 시달렸던 이유는 아버지 세종처럼
지나친 성실성과 업무 과중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 안질로도 고통 받았던 문종은 재위 기간 2년을 거의 병석에서 정무를 보았다.
문종의 등창 원인을 불행했던 부부관계와 가정불화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즉, “종기는 억울함이 있고 분한 일을 당해서 억눌린 채 자기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할 때 생긴다.”는 동의보감의 설명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그를 그토록 스트레스 상황으로 몬 것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문종은 처복이 없었던 것이다.
문종의 아내 셋 중 14세 세자 시절에 혼인한 4세 연상
휘빈 김씨와의 불화가 그 첫 번째이다. 아마도 아내의 용모나 자태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던지 도무지 남편이 가까이 하지를 않자
김씨는 그 사랑을 되찾고자 세자가 자주 찾는 궁녀의 신을 태워
술이나 차에 섞어 남편이 마시게 하고, 교미하는 뱀을 잡아 가루로 만들어 먹는 등
해괴한 일을 꾸미다 발각되어 소박을 당했다.
두 번째 부인 봉씨는 역시나 문종의 무관심으로 외로움에
시름하다 궁녀와 동성애에 빠지게 되어 폐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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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강남자생한방병원으로 이어집니다. 재미있는 글이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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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타까움이 절절해요. ㅉㅉㅉ 근데 두번째부인의 행태는 또 ......
문종의 역사에는 가정이 꼭 있어야되죠. 뒤이어 닥쳐올 세조의 악랄한 왕권찬탈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있어서는 안될 역사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문종은 참으로 불행한 분이군요. 등창이라는 치명적인 병으로 죽음에 이르다니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원시시대정도로 느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