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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향한 믿음의 모험(19)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 (창17:1)
여러분의 이름은 무슨 뜻입니까? 제 이름은 말씀 설(說)자에 샘근원 원(源)자를 씁니다. 말씀의 근원, 말씀이 솟는 샘이라는 뜻인데, 근원이라는 단어에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짐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 말씀의 샘에서는 끊어지지 않고 말씀이 솟아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주 그냥 빼도 박도 못하는 이름을, 그리고 평생토록 감당하기 어려운 이름을 지어주신 것이지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제가 중학교에 가서 한문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가운데 말씀 설 자가 세 가지 뜻과 음이 더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맙소사. 하나 하나가 엄청난 뜻들이었습니다. 기쁠 열, 달랠 세, 벗을 탈, 말씀의 근원, 기쁨의 근원, 위로의 근원, 용서의 근원의 삶을 살라고 아버지는 그 이름을 지어 주셨던 것이지요. 그때는 철이 없어서 내 이름 엄청좋네 그랬었는데.. 지금은.. 제 이름은 접할 때마다 거 이름 한번 참 거창하다는 생각이 들고.. 아버지는 도대체 뭘 믿고 이런 엄청난 이름을 지어주셨나.. 나라는 존재가 과연 이 이름의 뜻을 감당할만한 그릇인가 싶어 마음이 무거워지곤 합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제 이름을 자주 적어 놓고 읽어보곤 합니다.
그리고 문자나 카톡의 제일 하단에 어지간하게 정신이 없지 않으면 서설원 올림을 꼭 적습니다. 왜요? 모든 분들이 저보다 높은 분들임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분들 모두에게 오늘도 말씀을, 기쁨을, 위로를, 용서를, 기쁨을 함께 찬찬히 올려 드리고 싶어서 입니다. 또한 그렇게 제 이름을 적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지요. 하나님 정말 제가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 조금이라도 그렇게 될 수 있게 도와 주세요. 하고 말입니다..
자녀가 멋진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소원을 이름에 담는 것은 비단 한국의 부모들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지요? 옛날 히브리인들도 자식의 이름 속에 미래의 비전을 담았고, 그것은 꼭 예언과도 같고 축복과도 같아서 꼭 그 이름대로 그 인생이 이뤄지곤 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의 이름을 직접 지어주시거나 바꿔주시는 경우가 성경에 소개가 되고 있는데 놀랍게도 그 이름대로 그의 미래가 세워져갑니다. 변화되어 갑니다. 바뀌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을 만나셨을 때 그를 보시곤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너는 베드로라. 그랬더니 어때요? 그 새 이름대로 베드로는 반석같이 든든한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루에 삼천명이 회개하고 세례받고 돌아오는 위대한 설교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아브라함이라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지어주시는 이름 역시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향해 놀라운 뜻과 계획을 가지고 허락하시는 축복과 장래 그의 모습을 담은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그 축복의 장면을 오늘 저녁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아브람이 99세 되던 해,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지 13년째 되던 해입니다. 비록 이스마엘로 인해 사래와 하갈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고 온 집안이 뒤집어지는 소란이 일어났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브람 부부는 이스마엘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신 없이 들고 일어났던 문제들이 다들 제자리를 잡고 평화를 이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적인 편법으로 조급하게 얻은 아들이지만 대를 이을 자식의 문제는 이스마엘의 탄생으로 인해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습니다. 약속도 이뤄졌나부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이놈 잘 키우면서 살자고 말입니다. 오해할만 했던 것이 하나님은 그 뒤로 자녀에 관한 이야기를 아브람에게 한 번도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99세가 되면서 인간적인 힘으로는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브람에게조차도 불가능해지면서 이제 그 생각은 더욱 공고해져 갑니다. 이제는 나도 생산할 수 없으니 이스마엘이 내 후사인가보다 하고 말입니다. 성경은 하갈이 아브람가정으로 돌아간 이후, 이스마엘의 출생과 성장이 있었을 13년의 아브람의 행적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아브람도 이스마엘로 만족했고, 아브람도 사래도 하갈도 이스마엘도 이제 어떤 새로운 일도 일어나리라고 생각도 기대도 상상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이스마엘이 자라고 그렇게 대를 이어갈 그런 순조로운 일상이 진행되어가고 있던 그때,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다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
아브람은 오랜만에 찾아오셨어도 하나님을 단번에 알아보는 눈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음성이 들려지는 것입니다. 믿음의 삶이 아닌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행복하고 만족하던 그에게 하나님은 다시금 믿음의 삶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아브람의 믿음은 이스마엘이 태어난 이후 13년을 잠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25년 전 당신께서 직접 주셨던 약속을 한 번도 잊지 않고 계셨던 것이지요. 하나님의 때가 되었고, 다시 한번 잠자고 있던 믿음을 깨워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셨던 비전을 다시 붙들어야할 때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아브람의 영적인 회복과 각성을 위해 오늘 하나님은 그에게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사람은 까맣게 잊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때에 정확하게 일하십니다. 또한 우리의 믿음이 느슨하고 잠들어버리려고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하게 도전하시고 새롭게 깨워주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 상황 상황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가장 적합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나타나 당신을 소개하십니다. 뭐라고?
“나는 전능한 하나님(God Almighty)이라."
하나님께서는 왜 굳이 오늘 오랜만에 등장하시면서 당신을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고비마다 딱 맞는 모습으로 가장 적합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와 주십니다. 낙망하고 있을 때는 소망의 하나님으로, 상처받아 괴로워할 때에는 치료의 하나님으로, 부족한 것이 있고 필요가 있을 때는 예비하시는 하나님으로, 일전에 하갈의 경우에는 브엘라해로이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으로 찾아와주셨던 것이지요? 또한 어떻습니까? 아브람이 4개국 연합군을 급습하여 일시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들의 보복이 두려울 때에는 나타나서 말씀하시지요? ”나는 너의 방패요“ 또 막대한 전리품을 포기하고 십일조까지 드린 뒤 그의 앞날에 대해서 염려하고 있을 때에는 뭐라고 하셨지요?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당신을 소개하며 찾아와 주시는 것이지요.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필요를 정확하게 아시고 그 모든 문제와 어려움의 해결책을 안고 우리를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언제나 당신에게 우리를 맞추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당신을 맞춰주시는 놀라운 낮아지심과 겸비하심의 눈높이 사랑의 거장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신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은, 아브람과 사래가 이제는 둘 다 노인이 되어서 인간적으로는 이제 더 이상 아이를 생산할 능력이 없어져버린 지금, 다시 한번 아브람과 사래에 맞춰 당신을 소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뭐라고 소개를 하십니까? “나는 전능한 하나님(God Almighty)이라.” 당신은 인간적인 조건과 상황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모든 것을 지으신.. 모든 것이 가능한.. 불가능이 없는 전능한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고? 아니! 너희는 나로 말미암아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라고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용기를 주십니다. 그리고 전능한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어떠한 환경에 계십니까?. 어떠한 처지에 계십니까? 오늘 우리를 만나주시는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은 꼭 우리의 필요, 꼭 우리의 형편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저녁에도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내 마음과 고민을 어떻게 아셨는지.. 이미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시는 복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게 13년 만에 아브람을 찾아오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다시한번 함께 읽어볼까요?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지금까지 아브람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과 조금은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여태껏 아브람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축복은 무조건적인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었지 조건부로 허락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완전할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너희 고향과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말씀을 주신 이후에 하나님께서 오늘 아브람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오늘 본문이 처음인 것입니다. 왜 갑자기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약속의 성취에 대하여 조건을 말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런 의미일 것입니다. 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은 세 가지로 생각해 봅니다.
첫째,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25년, 아브람은 이제 믿음의 유아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믿음이 어릴 때에는 은혜와 사랑만 듬뿍 받으면 되지만 믿음이 자라가면서 그 믿음에는 사명이, 허락하시는 은혜와 사랑에는 응답이 있어야함을 이제 가르치시는 것이지요.
둘째, 약속의 자손이 실제로 태어날 날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그러니 이제 준비가 필요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군인들이 작전지역에 들어가기 직전에 장비를 최종점검하고 각오를 단단히 하듯 그토록 기다려왔던 순간이 다가 왔으니 아브람으로 영적이고 육적인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도록 하신 것이지요. 축복을 감당할만한 그릇이 되어야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지금까지의 삶이 완전하지 못함을 도전하시는 것입니다. 아무 말 안했더니 지금 13년 동안 너가 살아온 삶이 어떤 삶인지 확인하고 이제는 하나님 앞으로 거룩한 삶으로 돌아오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나 없이 나 없는 것처럼 행하는 온전치 못한 삶을 버리고, 내 앞에서 행하는 완전한 삶을 살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심을 기억하고 매순간을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만 잘 피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두 번 하나님 아무 말씀 안하시고 참아주시는 경험을 하면서, 이래도 괜찮네 뭐~ 하며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죄인된 삶을 그치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한 마디 한 마디 모든 말과 생각과 감정과 행동을 살펴보고 계십니다. 저울에 대어보고 계십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왕께서 저울에 재어 밑 뵈었다는 뜻이요, 하나님께서 왕의 나라를 둘로 나누실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 손가락이 나타나 적은 글씨를 해석했던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고 여러분 오늘 이 하나님의 지켜보심이 부담이나 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매사 주님께 여쭙고 행하는, 순간 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 되는 것이지요.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하나님을 늘 찾고 의식하며 하나님보다 앞서지도 말고 뒤처지지도 말고 항상 그분과 동행하며 교제하며 그분의 템포와 걸음걸이에 박자를 맞추어 나아가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내게 들려주시는 말씀과 오늘 내게 주시는 감동과 나를 이끄시는 소원을 따라서 살아가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욕심과 체면, 주변의 눈치에 따라 움직이지 말고 말입니다.
13년 만에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 언뜻 듣고나면 기가 질릴 정도로 무리한 요구처럼 들려집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행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성경이 말씀이 우리의 정체를 증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누구도 하나님 앞에 완전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셔야만 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 완전하라고 하시는 말씀은 하나님의 기준에 털끝만큼도 흠없고 티없이 살라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마음이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늘 정직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아마도 13년 전의 성급한 우회, 하나님이 금하신 인간적인 선택, 하갈 사건과 관련하여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행하여, 하나님을 신뢰하여서 다시는 조급한 마음으로 다시는 인간적인 편법을 동원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말씀인 것이지요.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함의 기준을 쉽게 타협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나도 잘 아시지만 그럼에도 동시에 완전할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광야에서 모세를 떨기나무 불꽃 아래로 부르실 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던 명령과 똑같은 말씀입니다. 오늘 내 인간적인 모든 신을 하나님 앞에서는 다 벗어 내려 놓으라는 말씀이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 시대의 아브람,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너는 이제 변해야 한다. 과거의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능력을 담지할 수가 없다. 교만이 깨어져야 한다. 죄의 습관을 버려야 한다. 너는 새로워지고 거듭나야 한다. 헛된 욕망과 더러움으로 가득 찬 과거를 다 버리고, 새 마음으로 내 앞에 서라. 거룩한 집중력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라.”
그리고 그 뒤는 당신께서 책임지시겠다는, 말씀한 것을 이루는 여호와, 약속을 성취하는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시는.. 오늘 우리의 최선에, 믿음에, 수고에 참 평강을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결과에 자유할 수 있는 은혜 말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부르심이 들리십니까? 여러분, 하나님 앞에 행하여 완전하시길 소원합니다.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완전한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도 어느새 13년 동안 잊고 있었던 놀라운 약속을 이루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놀라운 기대와 두근거림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가득하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너는 행하여 완전하라” 완전하게 행하지 않으면 국물도 없어!! 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행할 능력, 완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인 것이지요.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러한 말씀을 들으면, 어우 왜 또 이런 말씀을 허신댜~ 그냥 이대로 있음 안된되유? 지금 정도가 딱 좋은디? 여전히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초청과 부르심과 사명의 말씀을 부담스럽게만 생각합니다. 내 형편과 처지만 바라보며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그렇게 무능한 존재로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 편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절망할 때 모든 꿈과 희망을 내려놓을 때, 오늘 당신의 전능한 이름을 소개하면서 찾아와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께서 우리에게 힘이 되시고 능력이 되실 것을, 오늘 당신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실 것을, 능력을 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지난 번 모세처럼 반려하고 아니라고 미루고 거절하고 하나님 잘못 보셨다고 다른 사람 찾아가시라고 말하면 되요 안되요? 오늘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신뢰하고 그분의 역사가 내 삶에 이뤄지기를 소원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치 마리아가 천사에게 고백했던 내용처럼 말입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
주님, 제가 부족하지만 능력주시는 주님 말씀 믿고 주님 말씀대로 이뤄지길 소원합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행하겠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완전한 삶을 시작해보겠습니다. 진심으로 고백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백하고 그렇게 행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덮으실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인생이 될 수 있도록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후패한 육신을 고치시고 우리를 통해 생명을 잉태하게 하시고 생명의 역사를 나타내시는 것이지요. 눈을 지으신 분이, 귀를 지으신 분이, 입술을 지으신 분이, 우리와 천지의 모든 것을 지으신 분, 세상에 능치 못하실 일이 없으신 그분이 일하여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하일교회 성도님들,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완전하라고 하시는 이 말씀이 전혀 부담이나 짐이 아닌, 나를 위한 날개요, 디딤돌이 되게 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오늘 인간의 지식으로는 세상의 상식으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가득 나타나게 되실 줄로 믿습니다. 이 축복이, 이 놀라운 은혜가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에 풍성하게 임하게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래 전 하나님 우리에게 주신 비전과 하나님 주신 약속을, 나이들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양육하며,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과 후패해져가는 육신 가운데 까맣게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아니 이제는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봐 하며 우리 편에서 그 놀라운 약속을 내려놓고 있는 우리로 하여금..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여전히 오늘도 하나님은 그 약속을 생생하게 붙들고 계심을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고, 다시금 그 약속 앞에 설 것을, 그 약속을 오늘도 잊지 않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행하여 완전할 것을 말씀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아브람이 늙고 사래가 나이 많은 것처럼, 하나님 오늘 우리도 많이 연약해져 버렸습니다. 세상에 살며 때 묻고 얼룩지고 힘도 지혜도 많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러나 오늘 100세 아브람을 통해 90세 사래를 통해 놀라운 일을 계획하시고 마침내 이뤄주신 하나님의 신실함을 보게 하셨사오니, 하나님 오늘 우리 안에도 다시금 하나님 주시는 비전과 약속, 그 꿈과 열정이 우리 안에 샘솟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적으로는 세상 상식으로는 불가능하며 어디가서 말하기 민망하며 조롱받을만한 일이 되어버렸을지라도 오늘 전능하신 하나님 역사하여 주시면, 100세의 아브라함도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줄로 믿사오니 주여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 능력의 옷깃으로 덮어주시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모든 것이 새로워지게 하사 하나님 주셨던 놀라운 꿈과 비전을 마침내 성취할, 온전히 준비된 저희가 될 수 있도록 은총 베풀어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 모두에게 아닌 것 같지만 속으로 감춰둔, 꿈을 잃고 살아온, 하나님 없이 살아온, 잃어버린 13년이 있는 줄로 압니다. 주님 오늘 이 밤에 이 모든 것을 되찾고 회복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옵소서. 우리의 무지와 미련함과 고집, 지난 날의 오만과 게으름과 영적태만을 버리고 오늘 일부러 찾아오시는 하나님 앞에 새롭게 설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저희들 모두 주님 앞에 행하여 완전하기를 소원합니다. 새로운 축복의 세상이 열려지기를 소원합니다.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는 통로가 되기를 사모합니다. 주님 이 시간 주님 앞에 서있는 우리 모두를 기억하여 주옵소서. 모두가 아브라함, 사라, 열국의 아비,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온 세계를 품고 역사를 품는 이 시대 복의 근원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우리를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주님,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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