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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12(수)-17(월) 인도네시아 발리섬에 있는 아궁산(해발 3,142m)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산행은 경복산우회의 年例的인 해외원정산행의 일환이었습니다.
이번 해외산행에는 49명이 참여하였는데 아궁산에는 7.13-14, 2일간 11명이 등정하였습니다.
산행기를 아래에 올립니다(첨부파일로 올리니 복잡하다고 해서 바로 올립니다).
2006. 7. 24 孤 山 朴 春 慶
아궁산, 발리섬의 성스러운 산을 오르다
7.12(수) 18:00, 경복산우회 49명은 年例 行事인 해외원정산행의 일환으로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최고봉이며 休火山인 Agung산(해발 3,142m)을 등반하기 위하여 발리섬 Denpasar 행, KE 629便으로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다.
경복산우회의 해외원정산행은 2002년부터 일본 북알프스 오꾸호다까다께∙말레이지아 키나발루산∙몽골리아 체체궁산∙작년에는 중국 新疆 보그다산을 다녀왔는데 금년에는 원래 대만 雪山으로 계획하고 사전답사까지 했으나 산장에서의 숙식·포터고용은 물론 7월은 태풍이 자주 오는 계절 등, 문제가 있어 급히 目的地를 수정하여 사전답사를 마치고 아궁산으로 향하는 것이다.
모니터를 보니 제주를 거쳐 雲海가 깔려있는 대만상공을 지나 航路는 필리핀을 향하는데 창 밖으로 보이는 夕陽이 아름답다.
인도네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네덜란드領 東印度였으나, 1945년 8월 독립하였으며 國名은 19세기 중엽 영국의 언어학자인 J.R.로건이 命名한 것으로 '印度 島嶼(Indo Nesos)'라는 뜻이며, 현지인들은 'Nusantara' 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하는데 이는 中世 때 자바의 주민들이 사용한 명칭으로 역시 '많은 섬들의 나라' 라는 뜻이라고 한다.
면적 약 190만㎢(한반도의 약 9.3배)의 인도네시아는 이름이 말해 주듯 무려 17,508개(무인도 7,133개 포함)의 섬으로 이루어진 섬나라이다.
인도네시아의 중심지이며 수도 Jakarta가 있는 Java섬과 약 1.6km의 발리해협 건너 인접해 있는 Bali섬은 南緯 8도~9도, 東經 115도에 위치한 면적 약 5,600여㎢(제주도의 약 3배)로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인해 '마지막 신의 세계'·‘신들의 섬’·’지상에 존재하는 천국’·‘지구상의 마지막 낙원’ 등으로 불리며 세계적인 관광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불의 고리(Ring of Fire)’라고 불리는 環太平洋火山帶에 속하는 인도네시아는 화산과 지진활동이 왕성한 곳으로 2004년 12월 수마트라 앞바다에서 지진해일(쓰나미/津波)이 발생하여 22만 명이 사망하고, 발리에서는 폭탄테러로 2002년 10월에 202명, 작년 10월에도 26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고, 유명관광지로 다녀온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예상보다 20~30명이나 적은 해외원정대가 된 셈이다.
6시간 반정도의 비행 끝에 산스크리트語의 ‘祭物’을 의미한다는 ‘wali’에서 유래되었다는 발리의 州都 덴파사르 공항에 도착, 입국수속은 느리기도 하지만 심사요원 들의 표정이 무뚝뚝하다 못해 험상궂어 보인다.
공항을 나와 현지여행사에서 걸어주는 향내 짙은 레이를 목에 걸고 현지시각 00:50(한국시각 01:50) 공항을 출발, 발리힐튼호텔에 여장을 푼다.
7.13(목)
아궁산 등반 팀 11명은 07:00기상, 배낭과 포터가 운반할 카고백에 분리 수납한 장비·피복을 다시 확인하고, 식사 후 보는 호텔은 남국의 정취가 넘치는 야자수와 연못에는 한 마리 물새가, 식당 바로 앞에는 한 쌍 돌 할망의 물허벅에서 물을 계속 뿜어내고 있는데 언뜻 제주의 할망과 해녀가 연상되는데 왜 그럴까? 그 주변으로 높이가 다른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고 현관 앞 연못에는 龍이 조각된 분수대에서 물을 뿜고있다.
호텔을 출발(09:15), 시내를 빠져나가는 데 중앙분리대가 있는 편도 2차선의 좁은 도로의 2차로는 거의 오토바이가 차지하고 요리조리 잘도 빠진다.
한국식당에서 도시락을, 슈퍼마켓에서 물을 싣고 아궁산으로 향하는 주변에는 여기저기에서 새 모양 등, 여러 가지 모양의 연들을 많이 날리고 있다.
매표소(해발 약 800m)를 지나 12:00, 해발 900m의 아궁산통제소에 도착하니 바로 앞 寺院에서 나온 힌두교儀式行列이 앞을 지나간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 雨裝을 갖추고 통제소를 출발한다(12:30).
여러 가지 색깔의 솟대가 솟아있는 사원을 지나 널찍한 광장에 들어서면 수십 段의 계단 위에 石塔을 반으로 쪼개 양쪽으로 세워놓은 모양의 문 기둥 사이로 높게 치솟은 多層塔이 보이는 데 브사끼(Besakih) 寺院이다.
이슬람교도가 대다수(87%)인 인도네시아에서 발리섬에 4,600여 개의 힌두교 사원이 있는 것은 中世에 동부 자바를 중심으로 하는 마자빠힛 王朝가 이슬람에 의해 멸망하자 많은 주민들이 발리로 피신하여 이곳만이 유독 힌두문화를 간직하게 되었으며 브사끼사원은 섬의 중심사원으로 王家 代代로 내려오는 聖所로 발리-힌두교 최고의 聖地이며 總本山이라고 한다.
사원으로 올라가는 중앙계단은 기도하는 信者 이외에는 출입금지, 옆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중앙계단 양쪽에는 여러 개의 石像이 층층이 늘어서 있고 담 너머로 보니 예배의식이 거행되고 있다.
사원 안에 거대한 탑들이 여러 基 늘어서 있는 담장사이 통로를 따라가 사원 경내를 벗어나 한 사람 다닐 정도의 좁은 길에 보도 블록을 깔아놓은 길을 따라가면 마지막 사원(13:30), 큼직한 탑 1기가 있고 1층은 기도 장소이다. 이 10여 층 되는 탑은 木塔으로 屋蓋는 초가지붕처럼 두껍게 덮었는데 특정나무의 국수처럼 길게 늘어지는 부분을 사용한다고 한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않아 후미와 포터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니 제법 싸늘하고 도시락으로 식사 후 출발한다(14:45).
등산로의 경사가 점점 급해지더니 출발 25분 후에는 밀림지대에 들어선다.
가랑비는 계속 내리고 길은 약 20-30cm정도 패이고 바닥은 미끄럽고…, 방수바지를 가져오지않은 것을 후회하여도 소용없고 ‘꿩 대신 닭’으로 스패츠를 착용하니 무릎 아래는 젖지않고 등산화 안으로 물도 들어가지 않는다.
후미에서 뒤따라 올라가려니 내 페이스를 찾을 수 없어 추월해서 올라간다.
군데군데 길 가운데는 흙은 씻겨 내려가고 나무뿌리만 남아 1m이상의 턱이 생기고 빗물과 진흙으로 기름칠한 것처럼 미끄럽고 손으로 잡아야 할 부분도 미끄러워 신경이 많이 쓰이는데 이런 곳이 자주 나타나 애를 먹인다.
급한 등산로의 경사는 낮아지는 곳 없이 계속 올라 채니 더욱 힘이 드는데 가끔은 바닥이 화산재로 미끄러지기도 하고…그래도 이런 어려움은 지나가고 내려올 때를 머리 속에 그리며 올라 채는데 국내에서와 마찬가지로 ‘급경사는 1시간에 고도 200m 올리기’의 기준이 거의 비슷하게 맞아 떨어진다.
밀림 속의 나무에는 습기가 많아서인지 이끼가 길게 주렁주렁 매달렸는데 네팔 안나푸르나 미니트레킹 때 밀림 속에서 본 모습과 흡사하다.
햇빛도 비구름에 가렸으니 경치구경은 애당초 포기하고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호흡 조절을 해가며 그저 묵묵히 올라갈 뿐이다.
해발 1,800m에 올라서니(17:00) 햇빛을 보게 되고, 해발 1,900m에서는 내가 구름 위에 올라서 있고 햇빛은 밝으나 보이는 곳은 雲海 뿐, 나무가 우거져 보이는 것이 별로 없다.
17:15, 선두가 도착하여 저녁자리를 마련하고 있는 해발 2,200m의 제1캠프장에 도착한다(편의상 캠프 #1∙#2∙#3으로 호칭하기로 했다).
기온은 14℃(새벽에는 10℃까지 내려갔다)인데 싸늘해 동계용 폴라 티를 입고 그 위에 남방, 또 방수 재킷까지 입었는데도 서늘하게 느껴진다.
후미가 도착한 후 밥과 찌개 그리고 양주로 푸짐한 저녁 식사 후, 42회 이후 대원들은 캠프 #2로 올라가고 4명(27회,34회,39회;2명)이 비박, 매트를 깔고 침낭 속에 들어갔는데 양쪽에는 여유공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비좁다.
나무가 없어 마당크기만큼 뚫린 바로 위 하늘에는 별들이 쏟아질 듯 밝게 빛나는데, 밤 12시쯤 깨어 누운 채로 하늘을 보니 음력 열 이렛날 조금 일그러진 달이 휘영청 밝아 랜턴이 없어도 다닐 만큼 밝게 비추고 있다.
다시 한잠 자고 나니 랜턴불빛이 올라오는데 다른 팀의 포터인가 했더니 성스러운 아궁산에 기도하기 위하여 올라가는 현지 주민들이다.
7.14(금)
07:00 기상, 비나 이슬 등에 대비하여 침낭커버까지 씌웠었는데 습기에 젖지도 않았고, 바람도 많이 불지않아 예상보다 따뜻한 하룻밤을 지내고 침낭 등을 정리하여 카고백에 넣어 포터에게 맡기고 캠프 #2로 출발한다(07:45).
오늘의 첫걸음이니 페이스 조절에 신경을 쓰며 올라가는데 길 옆에 금매화 비슷하게 탐스럽게 생긴 노란 꽃과 자리공 닮은 흰 꽃을 보며 조금 올라가 나무가 쓰러져 가로 놓인 공간(캠프 #2)에 작은 야생원숭이가 흘린 음식 주워먹느라고 정신이 없더니 얼른 나무 위로 올라간다.
조금 뒤, 뒤쪽이 잘 보이는 해발 2,350m의 전망대에 올라서니(08:15/20) 길게 뻗은 능선이 구름 사이로 보이고 능선을 따라 우회전하여 조금 올라가 아침식사 예정지이며 후배들이 비박한 캠프 #3에 도착(08:30), 후미가 도착한 후, 밥과 라면으로 식사하고 취사장비와 침구를 두고 가 포터에 여유가 있어 배낭은 포터가 지고 빈몸으로 정상으로 향하니(09:40) 날아갈 것 같다.
조금 올라가면 바위 밑에 4-5명이 비박할 수 있는 공간(캠프 #4)이 있는 바위의 수직면에는 온갖 글씨(아마도 이름인 듯)가 씌어 있는데 우리나라는 바위에 陰刻했는데 여기서는 페인트로 쓴 것이 다를 뿐이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올라가야 할 길은 경사가 너무 급해 바로 올라가지는 못하고 ‘갈之 字’로 올라가는, 바닥이 울퉁불퉁한 岩盤 길을 올라서면 저 위에 아궁산 제1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또 울퉁불퉁, 그 경사 또한 만만치 않다.
옆으로 보이는 산비탈은 50°이상의 경사로 삼각형의 빗변처럼 직선으로 뻗었고 그 너머에는 흰 구름과 그 사이로 조금 낮은 다른 능선들이 보인다.
제1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도 급하려니와 바닥은 불규칙한 熔岩으로 작은 돌들이 있어 미끄러지기 쉬운데 전 구간을 통하여 낙서한 바위(캠프 #4)에서 제1봉까지의 경사가 가장 급한 구간이다.
이제는 들꽃 한 구루 본 다음에는 熔岩地帶로 해발 2,800m를 넘어서 풀도 나무도 없는 것을 보니 樹木生長限界線을 넘었나 보다.
제1봉(해발 약 3,000m)에 올라서면(10:55) 저 위에 제2봉과 그 오른쪽에 정상인 제3봉이 보이는 데 활처럼 구부러진 길은 칼등을 타고 올라가는 길이 희고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양 옆은 경사 60° 정도의 화산재비탈로 굴러 떨어지면 아무것도 걸릴 것이 없어 수백m는 굴러 떨어질 직선 비탈이다.
화강암처럼 딱딱하지도, 무르지도 않은 바닥은 거북이등처럼 갈라지고 미끄럽지도 않아 걷기 좋은 구간을 지나면 다시 화산재가 깔리고 자갈도 있는 조심스러운 길,그런데 현지 주민들은 맨발로 내려오고 그 뒤따르는 복스럽게 생긴 소녀는 카메라를 향하여 손가락으로 V자 표시를 하니 만국공통어인가?
오른쪽 계곡의 움푹 패인 곳은 벽돌 색이 뚜렷하고, 제2봉에서 왼쪽 능선은 약 60°의 일정한 각도로 직선으로 뻗어 내렸다.
드디어 해발 약 3,130m의 제2봉에 올라서니(11:05) 앞쪽의 정상은 깊숙한 안부를 거쳐 다시 올라 채 삐죽한 봉우리를 이루고 그 너머 멀리 보이는 큰 산은 무슨 산일까? 등산지도는커녕 발리지도도 없으니 알 길이 없고…사방을 둘러보아도 雲海, 그 사이로 능선들이 가끔 보인다.
후미가 올라오기를 기다려 등정기념사진을 찍고 4명(34회,42회,48회;2)은 왕복 30분은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정상으로 향한다(12:05).
일행이 기다리고 있어 내려갈 때는 속도를 빨리 하고 올라갈 때는 고산 지대이니 속도를 낼 수 없어 숨을 가다듬으며 아궁산 정상에 올라선다(12:15).
정상의 바위에는 얇고 작은 철판에 [AGUNG ±3142 Mdpl/PIHNIK SBY]라고 조잡하게 써 붙였는데 그나마 아궁산에서 본 유일한 표지판이다.
바로 한 발짝 앞에는 수100m의 절벽을 이룬 커다란 噴火口, 난간 같은 안전시설이 아무것도 없어 바닥을 내려다보려면 엎드려야지 서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아찔하고 바닥의 황토색부분에는 뜨거운 물이 솟는다는데 오늘은 말랐고 표지판 바로 앞에서는 발리주민 여러 명이 祭需를 차리고 있다.
발리주민들은 아궁산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여 아궁산 쪽을 남쪽, 그 반대쪽을 북쪽으로 통칭하며 건축물을 지을 때도 아궁산 쪽으로 향할 정도로 ‘神聖한 山’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火山帶에 속한 아궁산은 1963년 3월 폭발하여 2,000명 이상이 희생되었는데 마침 100년에 한번씩 거행하는 발리-힌두에서 최고의 祭禮式을 준비하던 중에 산이 폭발하여 발리 사람들은 ‘神聖한 곳이 不淨타서 神이 怒하였다’고 6개월 후에 다시 제례를 올렸다고 하며 100년 후인 2063년에 정기적인 제례식을 올린다고 한다.
10여m 낮은 제2봉이 더 높아보이는 제2봉으로 향하는데(12:20) 안부 왼쪽의 깊은 협곡을 보며 제2봉으로 다시 돌아와 하산 길에 들어선다(12:30/35).
제2봉에서 제1봉까지는 비교적 무난한 하산길, 그러나 제1봉에서 캠프 #4까지는 경사도 급하고 길도 미끄러워 신경을 쓰며 내려와 캠프 #3에 도착(13:20)하여 본대는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데 후미가 1시간 정도 뒤에 도착한다.
식사준비 하는데 대기했던 포터들이 물을 써버려 밥도 겨우 해먹고 커피는 이틀 동안 맛도 보지 못하고 식사 후 배낭을 지고 출발(14:55),지난 밤 비박 했던 캠프#1에 도착(15:25), 후미가 도착한 후 4명이 먼저 출발한다(15:55).
해발 1,700m에 내려오니 雲霧에 가리고 부슬비가 내려 다시 雨裝을 갖추고 내려가는데(16:50/55), 길은 올라갈 때보다 더 미끄러워 다리와 스톡을 짚은 팔에 힘이 실리는데 진흙을 잘 못 밟아 엉덩방아로 아궁산에 도장을 찍고 바지엉덩이에는 흔적을 남겼다.
지루하게 내려가는 길, ‘밖에는 가는 비, 밀림 속은 굵은 빗방울’을 맞으며 땀이 밸 정도로 걸으니 경사가 조금 완만해지고 어려운 길은 다 지나 조금 내려가 마지막 사원의 탑을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마지막 사원에서 잠시 쉬고 출발(17:50/18:05), 벌써 어두워진 좁은 보도블록 길을 걸어 브사끼사원을 지나 통제소에 도착했다(18:40).
벌써 계획보다 2시간이나 늦었으나 후미가 도착하려면 21:00는 되야 할 것 같아 가게에서 맥주 한잔씩 하는데 날씨가 싸늘하여 다시 긴 팔 티로 갈아입고 기다리지만 예상시각이 되어도 소식이 없어 혹시 사고가 나지않았나? 걱정이 되고 가게 문도 닫아 밖에서 어슬렁거리는데 22:00 넘어서 도착한다.
아무 사고 없이 도착했으니 그래도 다행인데 일행 중에 헤드랜턴과 등산용 빅토리녹스 칼이 없어져 시간이 조금 더 지체되는데 네팔과 달리 아궁산에는 외국 등반 객이 1년에 100명 정도밖에 되지않으니 포터들이 조직화되지도, 교육도 되지 않은 것 같다.
바뚜르산(해발 1,760m) 등반 팀과 합류 장소인 바뚜루호수의 온천캠프장에 23:00지나서 도착하니 동문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맞아 주는데 전원이 같이 식사하기로 계획되었었으나 차질이 생겼고, 저녁식사장소의 애저∙생선∙바비큐는 다 식은 데다 배고픈 시간도 지나 입맛도 없어 먹는 둥 마는 둥, 수압도 낮아진 샤워로 몸을 대략 씻고 캠프 화이어 장소에서 담소하다 새벽 05:30에 배정된 텐트에서 조금 눈을 붙인다.
[아궁산 등반시간]
*제1일(7/13 목)
브사끼사원(12:30)-1:00-마지막사원(13:30/14:45)-0:25-밀림지대(15:10)
-1:50-해발 1800m(17:00)-1:15-캠프#1/비박 장소(18:15) : 5:45/4:30
*제2일(7/14 금)
캠프 #1(07:45)-0:45-캠프 #3(08:30/09:40)-1:15-제1봉(10:55)-0:10-
제2봉(11:05/12:05)-0:10-아궁산 정상(12:15/20)-0:10-제2봉(12:30/35)
-0:45-캠프 #3(13:20/14:55)-0:30-캠프 #1(15:25/55)-1:55-마지막사원(17:50/18:05)-0:35-브사끼사원/통제소(18:40) : 10:55/6:40
*등산∙하산 소요시간(순 산행시간 ; 대기 및 식사시간 제외)
#등산 ; 통제소-4:30-캠프 #1-2:20-아궁산 정상 : 6:50
#하산 ; 아궁산 정상-1:05-캠프 #3-3:15-통제소 : 4:20
[아궁산 등반인원 ; 11명]
전병식(27회), 박춘경(34회), 박규태(39회), 김성선(39회), 이두익(42회),
노윤종(48회), 송주필(48회), 김창성(56회), 정철헌(62회),
우철석(어택캠프 고문), 손성모(북한산 경찰산악구조대장)
2006. 7. 22 孤 山 朴 春 慶
[그 후의 일정]
7. 15(토)
겨우 2-3시간 자고 일어나 보니 해발 약 1,000m의 바뚜루호수 온천캠프장의 바로 옆 바뚜루호수와 그 너머에 있는 산이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은데 텐트 바로 위의 파란 물의 야외 풀 장과 뒤의 건물이 잘 어울려 아름다운 모습이다.
늦잠 자다 아침식사도 못하고 호텔로 향하다 샤부샤부로 점심 식사 후 다시 힐튼호텔에 여장을 풀고 해변으로 나가 잠시 인도양 푸른 물에 몸을 담근다.
저녁은 호텔비치에서 민속악단과 춤을 관람하며 만찬을 즐긴다.
7. 16(일)
오늘은 기본관광 이외에 데이 크루즈 또는 바다낚시의 선택관광이 있는 날이다. 데이 크루즈, 일명 발리 하이를 선택했다($80).
Tanjung Benoa港에서 09:15에 출발, Nusa Penida섬으로 향하는 길이 39m, 350인 승 雙胴船 Quicksilver호에 乘船하는데 발리 전통의상을 입은 젊은 남녀가 양쪽에 서더니 사진을 찍는다(돌아 올 때 사진 값 $5 지불).
선상에서는 간단한 음료가 제공되고 소규모의 歌舞도 이어진다.
동쪽으로 누사 페니다 섬으로 가는 인도양 바닷물이 유난히도 검푸른데 파도는 2~3m, 선체가 쌍동선인데도 롤링이 심해 뱃멀미에 시달리는 가족을 거느린 현지주민이나 선원은 뒤치다꺼리 하느라고 바쁘게 움직인다.
데이 크루즈와 누사 페니다섬을 ‘발리 하이’ 라고도 부르고 또 발리섬에는 ‘발리 하이’라고 이름 붙은 호텔∙음식점 등, 商號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발리 하이’는 발리섬과 아무 관계도 없는, 영화 ‘南太平洋’에 등장하는 假想의 섬 이름일 뿐이다.
영화 남태평양은 1961년(단기 4294년) 4월 대한극장에서 개봉한 70mm영화로 2차 대전 당시 미 해군 소령으로 남태평양의 뉴헤브리디즈섬에 근무했던 제임스 미치너가 쓴 소설 집 ‘남태평양 이야기(Tales of the South Pacific)’에 실린 단편 ‘4달라(Four Dollar)’를 1958년에 뮤지컬로 만든 영화이다.
Rossano Brazzi와 Mitzi Gaynor가 주연한 영화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주연이 아니라 원주민인 뚱보 여걸 Bloody Mary역으로 나와 “발리 하이, 발리 하이…” 하고 노래 부르던 흑인배우(Juanita Hall) 뿐이다.
남태평양은 발리섬이 아닌 모레아섬에서 찍었으나 이름이 비슷해서 상업적인 목적으로 상호로 많이 사용하고있으며, 발리섬에서 찍은 영화들은 ‘빠삐용’에서 주인공 빠삐용(스티브 맥퀸)이 절벽으로 몸을 던지는 마지막 장면은 울루와뚜절벽 사원에서, 그리고 ‘엠마뉴엘 부인’ 등, 많은 영화들을 발리에서 촬영하였다고 한다.
퀵실버호는 산호섬인 누사 페니다섬 300m앞의 바지선에 繫留하는데 2층의 바지선에서는 워터 슬라이드, 스노쿨링, 바나나보트 등을 탈 수 있고 식당에서는 새우구이∙바비큐 등의 뷔페식사를 하고 누사 페니다섬으로 이동하여 야자열매 시식,거북이∙닭싸움∙토산품 등을 구경하고 半潛水艇에서 熱帶海底와 물고기들을 구경한다.
다시 항구로 돌아와 발리커피공장에 들리고, 잠발란 비치의 시원한 바닷가 백사장에서 생음악을 들으며 바다가재∙왕새우∙생선구이 등, 맛있는 식사로 마지막 저녁을 즐긴다.
갤러리아 면세점을 둘러보고 시간의 여유가 있어 시내 중심가로 들어가니 2002년 10월 12일, 관광객을 목표로 한 차량 폭탄 테러로 202명이 사망하고 209명이 부상 당한 장소는 아직 복구되지않았고 그 맞은 쪽 慰靈碑에는 당시 희생된 202명의 명단을 새겨놓았는데 한국인도 2명이 포함되어 있다.
현지가이드의 안내로 현지인들이 이용한다는 발맛사지($6)도 하고 공항에 도착하니 경복 특설카운터(KE 630…/K.B.GROUP)가 설치되어 있다.
7. 17(월)
03:15, KE 630편으로 발리를 떠나 인천공항에 도착, 서울로 들어 올 때는 올림픽대로가 침수되어 우회할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려 ‘물 폭탄’이라고 표현할 정도의 폭우를 피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우리가 떠나던 날 오후에 자카르타 남서쪽에서 震度 7.7의 强震으로 지진해일이 일어나 105명이 사망하고 127명이나 실종되었다고 하니, 이번 여행은 天災地變을 계속 피해 다니면서 무사히 모든 일정을 마쳤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