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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통일교회측의 폭력으로 인하여 출판되지 못한 신동아 조 기자의 기사 전문입니다. 필요하다고 느끼는 분들 스크랩 해 두시기 바랍니다.
바치고 또 바쳐라!… 멀고 먼 ‘지상천국’
“우리는 세계정부를 준비하고 있다”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20세기 들어 한국에서 탄생한 신흥종교의 상당수는 기독교를 모태로 한 것이다. 그중 통일교가 가장 성공한 종교로 꼽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통일교는 종교이자 기업이다. 그것도 평범한 기업이 아니라 국내외에 수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한일해저터널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국제적인 대기업이다. 또 종교색을 벗은 문화, 언론, 교육, 스포츠 분야에서의 다양한 활동으로 이단(異端) 시비를 잠재우면서 날로 사회적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세계선교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둬 일본과 미국 등지의 해외 신도가 수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통일교의 공식 명칭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다. 원래 이름인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는 재단만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 통일교는 일반인에게 참가정실천운동본부, 한국청소년순결운동본부 등의 사회단체로 다가가고 있다. 통일교의 상징이라 할 만한 합동결혼식(교차결혼식)은 독특한 문화 풍속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6월 중순, 경기도 가평의 장락산에 위치한 통일교 ‘청평성지’에 미국의 백악관을 닮은 대형 건물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박물관 용도로 건축허가를 받은 이 건물은 통일교에서 본전성지(本殿聖地), 본궁(本宮) 또는 본당(本堂)으로 불린다.
공식 명칭은 천정궁(天正宮) 박물관. 교주인 문선명(文鮮明·86)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가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어서도 머물 집이다. 6월13일, 3만여 명의 통일교 신도가 모인 가운데 문 총재가 황제로 즉위하는 대관식(戴冠式)과 입궁식(入宮式)이 있었다.
천정궁이 들어섬으로써 지난 30여 년간 진행돼온 통일교의 ‘청평 대역사’는 일단락된 셈이다. 통일교 타운으로도 불리는 이곳엔 초대형 수련원을 비롯해 최근 언론의 조명을 받은 국제중·고등학교, 신학대학원, 병원, 실버타운 등이 들어서 있다. 통일교가 가평군 일대에 사둔 땅은 이곳을 포함해 800만평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7월 중순엔 전남 여수에서 통일그룹 소속 (주)일상이 국제관광레저단지 개발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헌금이 수입원인 종교단체의 기업활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청평 통일교 왕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제1부 청평왕국
“메시아이신 참부모님은 영계와 육계를 모두 왕래하실 수 있는 영원한 분이세요. 다음에 참부모님께서 육신을 벗고 영계에 가신다 하더라도 참부모님께서는 지상에 와 계세요. 그렇다면 지상에도 메시아이신 참부모님의 본궁이 있어야 합니다.”(2005년 9월4일 대모(大母)님 말씀)
서울에서 춘천으로 가다 신청평대교를 건너 북한강을 옆에 끼고 30분가량 달리면 통일교 성지가 있는 장락산이 눈에 들어온다. 북한강 상류가 휘감아 돌고 있는 이 곳은 자연보전권 구역으로 개발이 제한되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다.
본궁 건축헌금 완납자, 기념사진 혜택
청평성지에는 천정궁 박물관을 비롯해 천주청평수련원, 청심국제중고등학교, 청심신학대학원, 청심유치원·어린이집, 청심병원·한방병원, 청아캠프(청소년수련원), 청심빌리지(실버타운), 청아빌라(직원 숙사)가 들어서 있다.
7월 하순, 장락산으로 향하는 도로 곳곳에는 통일교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나부꼈다. 청심국제중고등학교의 영어캠프, 청아캠프의 청심뮤직페스티벌, 청심국제병원의 통일의학국제학술대회….
천정궁은 일반인의 접근을 허용치 않고 있다. 통일교 신자라도 특별한 행사가 없는 한 어느 정도 위치에 있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대지 1만2000평, 연건평 9200평인 천정궁은 본관(지상 4층, 지하 2층)과 2개의 별관(지상 2층, 지하 2층)으로 구성돼 있다.
청평성지 시설 중 종교적 색채가 가장 뚜렷한 곳은 천주청평수련원이다. 매 주말 열리는 1박2일 집회를 비롯해 21일, 40일 수련회 등이 수시로 열리는 이곳에는 천성왕림궁전, 정심원, 친화관, 청수탕(목욕탕), 청심탑 등의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그중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은 지하 2층, 지상 3층의 천성왕림궁전. 대지 8600평, 연건평이 5700여 평에 이른다. ‘복귀한 에덴동산’으로 불리는 이 곳엔 한번에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성전과 1600명이 한 자리에서 식사할 수 있는 대형식당이 있다.
수련원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기다란 원통형의 청심탑(33m) 외부는 문 총재의 일대기를 9단계로 조명한 부조(浮彫)로 치장돼 있다. 첫 장면은 탄생 모습이고, 마지막 장면은 인류의 왕으로 즉위하는 모습이다.
탑 내부에는 ‘천성왕림궁전 건축 헌금자’ 명단이 벽면을 빙 돌아가며 새겨져 있다. 상당수는 한국인 이름이지만 영어권과 일본인 이름도 꽤 눈에 띈다. 헌금자는 합동결혼식 가정과 기성 가정(결혼한 후 입교해 다시 결혼축복을 받은 가정), 독신축복 가정으로 구분돼 있는데, 기업체 및 단체 이름도 표기돼 있다.
한가운데에는 ‘아버지의 기도’가 적혀 있다.
‘참부모라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아야겠사옵니다.…그 참부모의 사상을 몸에 지녀야 되겠사옵니다.’
참부모는 문선명 총재를 말한다. 부인 한학자(63)씨와 구분할 때는 참아버님으로 부른다.
7월 하순 주말 오후, 천성왕림궁전 1층 사무실 벽엔 ‘본전성지 헌금 기한 재연장’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전단지를 보니 본전성지 헌금 접수 기한을 9월30일까지 연장한다는 내용이다. 액수는 한국 신도의 경우 개인당 또는 부부당 160만원. ‘기타 나라는 헌금 기준이 다르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본전성지 헌금을 완납한 ‘식구’(통일교에서는 교인을 식구라고 부른다)에게는 본전성지에 이름을 새겨주고 기념사진 촬영이라는 혜택이 주어진다.
한편 지하 강당에서는 신도들이 줄을 서서 번호표를 받고 있었다. 자기 차례가 되면 조상해원(祖上解怨) 헌금봉투를 접수했다. 매 주말 청평수련원에서 열리는 조상해원식은 말 그대로 조상의 원통함을 풀어주는 행사다.
120~126대 조상해원식
조상해원 헌금은 금액이 정해져 있다. 최초 1~7대까지는 직계, 모계 각 70만원이다. 8대 이후는 7대마다 5만원 이상. 그와 별개로 7대마다 접수비 2만5000원을 내야 한다.
1991년 11월 문 총재는 “만약 조상해원식을 하지 않고 영계에 가면 조상들에게 참소를 당한다”며 조상해원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조상해원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9년 문 총재가 “새로운 성약(成約)시대에 입적하려면 반드시 1대부터 7대까지의 조상으로부터 120대까지 해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후다. 1999년 2~8월까지 첫 직계 7대 조상해원식이 치러졌다.
청평 집회에 참석하는 신도는 대부분 조상해원식에 참가한다. 조상해원식을 치른 다음에는 조상축복식을 해야 한다. 해원헌금을 완납한 지 100일이 지난 성도에게만 자격이 주어진다. 접수비는 7대마다 5만원. 통일교측에 따르면 해원을 했어도 축복을 받지 않은 조상의 영(靈)은 구원받지 못한다.
애초 120대 조상까지만 해당됐던 해원 대상은 계속 늘고 있다. 올해의 경우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120~126대 조상에 대한 해원식이 진행되고 있다. 축복식 대상은 113~119대. 계보 범위도 넓어졌다. 처음엔 직계와 모계 조상만 해당됐으나, 지금은 부의 모계(친할머니 직계), 모의 모계(외할머니 직계) 조상에 대해서도 해원식을 갖고 있다. 해원 대상은 앞으로 210대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참부모님께서 조상해원식을 210대까지 하라고 하셨습니다. 식구님들께서 210대까지 다 하시면 210대 이후는 영계의 참자녀님을 중심한 절대신령들이 아담 해와(하와)까지 하나님 혈통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준비해놓고 있습니다.”(대모님, 2006년 2월 제 761차 특별수련회)
210대면 얼마나 오래된 조상일까. 1대를 30년으로 잡으면 210대는 6300년 전의 조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대모님은 문 총재의 장모인 홍순애씨를 말한다.
그런데 홍씨는 산 사람이 아니다. 오랫동안 중풍을 앓다 1989년 74세로 승화(昇華)했다(통일교에서는 축복받은 신도의 죽음을 승화라고 한다). 대모님은 청평수련원에서 조상해원·축복식을 주관하고 있다.
통일교에 따르면 홍씨는 죽은 후 김효남이라는 여자 장로의 몸에 재림했다. 따라서 죽은 홍씨가 살아있는 김씨의 입을 빌려 신도들에게 전하는 얘기가 대모님 말씀인 셈이다. 통일교의 청평 역사는 대모님과 흥진님(문 총재의 차남으로 1984년 사망)을 빼고는 얘기가 안 된다.
1983년 12월22일 미국 뉴욕의 어빙턴고등학교 졸업반 학생이던 흥진씨는 자동차 충돌사고를 당했다. 사고 당시 문 총재는 한국의 8대 도시를 돌면서 승공강연을 하고 있었다. 흥진씨는 이듬해 1월2일 사망했다. 문 총재는 사탄이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빼앗아갔다며 그의 사망일을 애승일(愛勝日)로 선포했다.
흥진님은 영계에서 예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 사망 다음날 문 총재에 의해 영계총사령관으로 임명된 그는 청평수련원 집회를 통해 분립(육신에 붙어 있던 영인체가 떨어져나가는 것)된 영인들이 죄악을 벗을 수 있도록 교육하는 일을 맡고 있다. 대모님은 영(靈) 분립을, 흥진님은 영 교육을 맡고 있는 것이다. 대모님 역사로 분립된 영은 모두 흥진님이 운영하는 영계수련소로 보내진다. 거기서 100일간 교육을 받고 절대선령으로 거듭난 후 축복가정의 수련을 돕는다는 것이다.
청평 역사는 한마디로 악령 분립의 역사다.
통일교 교재 ‘성약시대 청평역사와 축복가정의 길’에 따르면, 해원된 영(靈)은 식구들의 선한 조상이 돼 참부모가 천국문을 열 때 흥진님과 함께 그 일을 돕는다. 이처럼 조상해원식은 청평 집회의 핵심이다.
오후 6시. 집회에 참석하려는 신도들이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사람이 많아 20분가량 줄을 선 다음에야 식판을 집을 수 있었다. 어림잡아 1000명이 넘어 보였다. 외국인으로는 일본인이 많았는데, 백인과 흑인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영(靈) 털기와 ‘단심가’
첫날 집회는 오후 6시40분에 시작됐다. 장소는 언덕배기에 있는 친화관. 사람이 너무 많아 일부 신도들은 신발장이 있는 마루에 걸터앉거나 밖에 서서 들어야 했다. 먼저 단상에 걸린 참부모(문선명, 한학자 부부) 사진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이어 8개항의 가정맹세문을 제창했다.
‘천일국(天一國) 주인 우리 가정은 참사랑을 중심하고 본향 땅을 찾아 본연의 창조이상인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을 창건할 것을 맹세하나이다.’(가정맹세문 제1조)
천일국은 통일교에서 말하는 태평성대의 지상천국을 일컫는다. 통일교측에 따르면 이미 천일국은 지상에 세워졌다.
제1강좌는 7시에 시작돼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강사는 통일교 간부로, 주제는 ‘4대 심정권(心情圈)과 3대 왕권(王圈)’이었다. 문 총재의 과거 강연 내용을 해설하는 식이었다. 4대 심정권은 부모, 자식, 부부, 형제를 말하는 것이고, 3대 왕권은 할아버지(과거), 부모(현재), 나(미래)를 뜻한다.
외국인 신도들은 동시통역으로 듣기 위해 라디오 수신기에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었다. 주제가 딱딱해서인지 청중의 집중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조는 사람도 있고 아이 울음소리가 나는 등 다소 산만했다. 하지만 8시부터 성가 찬송이 시작되자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성원의 은사’라는 노래를 한 시간 동안 계속 불러댔는데 엄청난 열기가 뿜어졌다.
찬양대 소속의 남녀 청년이 세 명씩 교대로 단상에 올라와 박진감 넘치는 율동으로 찬송을 이끌었다.
반주는 북과 전자오르간. 그냥 노래만 하는 게 아니었다. 신도들은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다 율동팀의 지휘에 따라 양손으로 상대방 어깨를 두드리거나 자신의 머리와 어깨, 목, 가슴, 팔다리, 배를 두들겨댔다. 이른바 영(靈) 털기로, 몸에 붙은 악령을 털어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한 시간 동안 그러고 나니 손바닥이 얼얼했다.
마지막엔 참부모님이 즐겨 부른다는 ‘단심가(丹心歌)’를 불렀다.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임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 분위기가 처연해졌다. 이어 하나님과 참부모님, 그리고 천일국의 안녕을 기원하는 억만세삼창을 했다.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참부모 문 총재에게 경배(큰절)하는 것으로 1부 순서가 끝났다. 신도들은 성전을 드나들 때 참부모 사진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청평성지를 소개하는 영상물 시청이 있은 뒤 제2 강좌가 시작됐다.
주제는 ‘천일국 시대의 청심국제병원’. 병원 이사장이 나와서 병원의 각 시설과 주요 영성(靈性)치료 사례를 소개했다. 흥미로운 것은 대모님이 의사들을 대동하고 회진과 진찰에 관여한다는 점. 환자의 몸속에 깃들인 악령을 끄집어 내 흥진님의 영계수련소로 보낸다는 것이다. 어쨌든 의학과 종교가 절묘하게 결합된 이 병원에서 일반병원에서 포기한 환자를 낫게 한다는 소문도 있긴 하다.
강당 벽면에 붙어 있는 ‘제106회 40일 특별수련회(2006.7.1~8.9) 참석자 라커 배정’ 도표가 눈에 띄었다. 한국인 참석자 261명(남 67명, 여 194명), 일본인 참석자 315명(남 67명, 여 248명)이었다. 그 밖의 나라를 가리키는 ‘국제’ 참석자는 111명(남 37명, 여 74명)이었다.
“로마시대 황제가 있었듯”
강연이 끝난 후 신도들은 정심원으로 옮겨 기도회를 가졌다. 단상 뒷면 중앙에는 문 총재 부부의 사진이, 그 왼쪽 아래로는 대모님과 흥진님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기도회의 처음과 마지막은 역시 참부모에 대한 경배로 끝났다.
밤 11시30분, 첫날 집회가 끝났다. 남자 신도의 잠자리는 지하 2층의 대강당 마룻바닥. 신도들은 강당 한쪽에 있는 창고에서 한두 장의 담요를 꺼내와 깔고 덮었다. 여자 신도 잠자리는 친화관 강당이었다. 하지만 이런 구분에 매이지 않고 지하 강당에서 부부 혹은 가족 단위로 자는 신도도 많았다.
둘째날 집회는 새벽 5시에 시작됐다.
기상시각은 4시 반. 이불을 개서 창고에 넣은 다음 세면장으로 갔다. 강에서 올라온 안개가 수련원을 뒤덮고 있었다. 정심원 앞마당에 있는 사랑나무(버드나무)에 한 청년이 경배하는 모습이 어릿거렸다.
훈독회(訓讀會·경전 강독)가 진행되는 동안 여기저기서 콜록거리는 소리가 났다. 연사는 유엔의 무능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국제연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말끝마다 ‘참부모님’을 언급하며 “우리의 혈통을 바꾼 참부모님 축복으로 결혼하는 게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했다. 그는 “로마시대에 황제가 있었듯이 참부모님도 황제”라며 문 총재를 ‘천일국의 성덕(聖德)황제’라고 했다. 첫날 연사들과 마찬가지로 예수 얘기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창 밖으로 동이 터오고 있었다.
오전 6~8시는 성지 기도 및 아침식사 시간. 성지는 수련원 뒤편 산 언덕배기에 위치한 작은 터를 말한다.
천정궁을 굳이 본전성지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수련원 성지와 구분하기 위해서다.
20분 가량 산을 오르니 성지에 닿는다. 전망이 탁 트인 성지엔 축복수(祝福樹)로 불리는 아름드리 잣나무가 서 있다. 땅바닥엔 엉덩이를 겨우 걸칠 정도로 작은 화강암이 촘촘히 박혀 있다. 신도들은 대체로 돌에 앉아 축복수를 향해 기도하거나 단상에 잠겼다. 한 외국인 여자는 땅바닥에 엎드려 눈물을 쏟으며 쉬지 않고 웅얼거렸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외국인도 있었다. 간간이 빗방울이 날렸다.
아침식사는 빵과 우유. 집회는 찬송으로 재개됐다. 첫날과 마찬가지로 한 시간 동안 같은 노래를 반복했다. 9시30분, 드디어 조상해원식이 시작됐다. ‘경축 직계·모계 120~126대 조상해원식’이라는 현수막이 단상 정면에 내걸렸다. 해원식이라고 특별한 의식은 없었다. 짙은 하늘색 양장 차림의 대모님이 나타났다는 것말고는.
대모님 말씀의 주제는 ‘천국 가는 길’이었다.
그에 따르면 아담과 해와의 타락 이후 모든 인간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없게 됐다. 그래서 하나님이 노아와 모세, 예수를 보냈는데, 하나같이 실패했으며 마지막으로 오신 참부모만이 메시아의 사명을 다했다는 것이다.
11시부터 조상해원 찬송이 시작됐다. 영 털기의 열기로 실내가 후끈 달아올랐다. 옆에 앉은 일본인 임산부는 불룩한 배를 두 손으로 열심히 문질러댔다. 수련원 간부로 보이는 세 사람이 무작위로 줄을 돌면서 신도들 머리를 두들겨댔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다. 통성기도에 이어 억만세삼창을 하는 것으로 모든 집회 일정이 끝났다.
“모두 통일교 산이야”
올해 청평성지에서 벌어진 주요 행사를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7월31일 천성왕림궁전에서 칠팔절 기념식이 있었다. 칠월칠석(음력 7월7일)에 해당하는 이 날은 문 총재가 1997년 음력 7월7일 오전 7시7분7초에 ‘천지부모천주안식권’을 선포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6월13일엔 천정궁 박물관 개관식 행사가 열렸다. 통일교 집계로는 약 3만명이 운집했다. 문 총재는 길가에 도열한 신도들의 경배를 받으며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공중에 색종이가 날리고 고적대가 앞장섰다. 문 총재의 대관식과 더불어 천일국기 게양, 천일국가(‘영광의 은사’) 제창, 천총관(天總官) 흥진님과 대모님에 대한 공로패 수여 등의 식순이 이어졌다.
하루 전인 6월12일엔 정심원에서 ‘천주평화연합 평화군 평화경찰 출정식’이 거행됐다. 통일교측에 따르면 예비역 군·경찰 간부 1500여 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6월6일엔 ‘천일국 태평성대 평화왕국 이상세계왕국시대 출범’을 축하하는 성주식(聖酒式)이 있었다. 5월8일 어버이날을 맞아서는 인기가수를 불러 ‘설악면민 효도잔치’를 벌였다. 5월3~7일에는 ‘천운상속 철쭉정화제 특별대역사’라는 특별집회가 열렸다. 집회에 참석한 신도들은 한 장에 5만~10만원 하는 천운상속 소원성취서를 써냈다.
3월29일엔 제47회 참부모님의 날 기념예배 및 평화군과 평화경찰 선발대의 출정식이 있었다. 참부모님의 날은 문 총재 부부가 결혼한 날로 음력 3월1일이다. 3월4일엔 올해 개교한 청심국제중고등학교 입학식이, 2월9일엔 제1회 청심신학대학원 학위수여식이 열렸다.
2월4~6일엔 천일국 지도자 대회가 있었다. 음력 1월6일인 2월3일엔 참부모님 탄신 경배식 및 기념식이 거행됐다. 문 총재와 부인 한 여사의 생일은 한 날이다.
1월3일엔 하나님왕권즉위식 5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하나님왕권즉위식 기념일은 원래 1월13일이었는데, 문 총재의 지시로 지난해부터 바뀌었다고 한다. 이날 예수님탄신 기념예배도 있었다. 통일교에서는 성탄절(12월25일)을 인정하지 않는다.
1월2일엔 교통사고로 죽은 문 총재의 차남 흥진씨를 추모하는 제23회 애승일 기념예배가, 1월1일엔 참하나님의 날 경배식 및 기념예배가 있었다.
청평 통일교 왕국은 과거 환경단체와 일부 언론의 공격으로 불법 건축 허가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기자가 가평군을 찾아가 한나절 동안 도시건축과, 산림과, 환경보호과 등 관련부서를 돌며 관련법 위반 여부를 따진 결과 불법 허가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엔 체육관(청심체육관) 건축 허가가 났는데, 최근 환경평가가 끝나 곧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통일교 건물에 대한 문제 제기에는 크게 다섯 가지 관점이 있다. 첫째는 수도권정비법에 따른 자연보전권 개발 제한. 둘째는 한강수계 상수원 수질개선 등에 관한 법에 따른 수변구역 개발 제한. 셋째는 산림법에 규정된 보전임지 전용 제한. 넷째는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른 환경영향평가 대상 여부. 다섯째는 환경정책기본법에 따른 사전환경성 검토 대상 여부.
건축 용도와 시기, 면적이 불법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인데, 장락산에 들어선 통일교 시설 중 법에 저촉된 건 하나도 없었다.
가평군 관계자는 “실제로는 모두 통일교에서 운영하는 시설이지만, 책잡히지 않기 위해 각각의 시설물에 대해 각각 다른 사람과 다른 법인 이름으로 건축허가를 신청하고 그 시기도 다르기 때문에 법망에 걸리는 게 없다”고 했다.
가평의 통일교 소유 땅은 설악면 송산리에 그치지 않는다. 청평수련원에서 강 건너편에 보이는 청평면 고성리 일대(산14, 산4-1 번지 등)에도 상당한 임야를 갖고 있다. 특히 산14번지엔 통일교 신학대학인 선문대 학습장 부지가 있는데, 몇 년 전 터만 닦아놓고 건축을 하지 않아 가평군이 허가 취소를 검토하고 있다.
현장에 가보니 군데군데 고랑이 패 있고 토사가 쌓여 있다. 조경용인지 곳곳에 수십 그루의 나무가 떼로 묶여 있다. 인근 주민은 “주변 산이 다 통일교 것”이라며 “통일교측에서 원래 산에 있던 잣나무를 다 캐가고 거기에 소나무를 옮겨 심었다”고 말했다. 윗동네 정자에서 만난 노인들도 앞산(산4-1)을 가리키며 “다 통일교 산”이라고 했다.
제2부 메시아인가 사이비교주인가
“기독교인들은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고 하지요? 미친 사람들이에요. 죽어보라는 겁니다. 다 거꾸로 매달려 있다는 것입니다.”(천주청평수련원 홈페이지 ‘참부모님 말씀’, 1995년 11월3일)
문 총재는 1920년 평북 정주의 기독교 농가에서 8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통일교 재단에서 발행하는 ‘세계일보’ 기사(1995년 8월26일)에 따르면, 문 총재는 열다섯 살이던 1935년 4월17일 부활절 새벽 정주의 묘두산에서 기도하던 중 예수의 계시를 받았다. 예수의 미완성사업인 지상천국 건설을 책임지라는 권면이었다.
메시아(messiah)는 히브리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다. 구약(舊約)시대에는 대제사장이나 왕을 뜻하는 말이었는데, 신약(新約)시대 이후 구세주(救世主)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메시아는 물론 예수다. 통일교에서도 그 점은 인정한다. 다만 실패한 메시아로 간주한다. 예수의 실패를 만회하려 하나님이 다시 보낸 메시아, 곧 재림주가 바로 문선명 총재다.
실패자 예수, 승리자 참부모
그렇다면 예수의 실패란 무엇인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통일교의 경전인 원리강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이해가 따라야 한다. 원리강론은 일종의 성경 해설서인데, 성서를 기독교와는 상당히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통일교가 ‘유사 기독교’ 소리를 듣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일요일인 8월5일, 서울 청파동에 있는 통일교 본부교회를 찾았다. 예배 인원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100명 남짓할까. 성경봉독이라는 게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떤 교인도 성경을 갖고 있지 않다.
설교 주제는 ‘민족복귀의 선행조건’. 목사는 8·15광복의 원인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외적인 요인은 연합군의 승리와 원자폭탄, 내적인 요인으로는 참부모를 맞기 위한 준비가 끝난 점이라고 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시작된 우리 민족의 사탄분립 기간(40년)이 1945년에 끝났기 때문에 광복이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는 원리강론 ‘재림론’에 나오는 내용으로, 제1 이스라엘 선민(구약시대)이 애급(이집트)에서 400년을 고통당하고, 제2 이스라엘 선민(신약시대)이 로마제국의 통치를 400년간 받았기에 제3 이스라엘 선민인 한국도 40수에 해당하는 사탄분립 기대(基臺)를 충족하기 위해 40년간 일본 제국의 통치를 받아야만 했다는 논리다.
목사는 참부모에 대해 신도가 취해야 할 두 가지 자세를 강조했다.
참부모로 모실 때는 자식의 도리를, 천일국왕으로 모실 때는 신하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것. 다른 교회에 비해 청평수련회 참석률이 낮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이어 교구장(시·도 관할 목사)이 교회소식을 알리는 시간에 참부모의 근황을 알려줬다. 참아버님은 여수개발 현장에, 참어머님은 남미와 오세아니아 대륙을 순회하고 있다고 했다.
원리강론에 따르면 인류역사는 하나님이 원죄(原罪)로 인해 타락한 인간을 구원해 창조 본연의 이상세계를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통일교는 인간 타락의 기원을 사탄인 천사장 누시엘(뱀)과 해와의 불륜에서 찾는다(영적 타락). 불륜한 해와가 아담과 관계를 가짐으로써 인간의 피엔 원죄가 흐르게 됐다(육적 타락).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영적인 구원이다.
하지만 통일교의 구원은 영육(靈肉)을 아우른 구원이다. 인간의 몸이 영과 육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란다. 그 근거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흙으로 육신을 창조하고 거기에 생기(生氣)를 불어넣어 생령(生靈)이 되게 하셨다’는 성경의 ‘창세기’ 구절이다.
인간의 죄를 구속(救贖)해 하나님에게 복귀시키는 사명을 띠고 태어난 사람이 바로 예수다. 하지만 예수는 ‘뜻하지 않게’ 십자가에 못박힘으로써 영적 구원만 달성하고 육적 구원에는 실패했다. 예수의 육신이 사탄에게 침범당해 살해됨에 따라 예수를 믿는 신도의 몸도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됐다. 그러므로 인간의 육적 구원까지 이뤄 하나님의 창조 목적인 천상천국(天上天國·영이 거주)과 지상천국(地上天國·육신이 거주)을 실현할 참된 메시아가 다시 와야 한다. 그가 바로 문 총재라는 것이다.
그러면 육적 구원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육적 구원을 받으려면 육적 타락에서 비롯된 원죄를 없애야만 한다. 원죄를 없애려면 타락하기 전 아담의 혈통으로 복귀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안 되고 메시아에 의한 중생(重生)으로만 가능하다. 즉 메시아의 축복을 받아 거듭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재림주는 참부모다.
통일교의 합동결혼식은 바로 이 축복 중생의 원리를 실현하는 수단이다. 참부모인 문 총재의 축복을 받아 원죄가 없는 삶으로 거듭난다는 뜻이다. 통일교에서 기성 부부도 합동결혼식을 치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또 합동결혼식에서 성주를 마시는 것은 피를 새롭게 해 하나님의 혈통으로 복귀하는 것을 뜻한다.
합동결혼식을 치른 후에는 다른 쌍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서로에게 탕감봉(蕩減棒)을 맞아야 한다. 탕감봉 의식은 죄를 없앤다는 뜻으로 신랑이 먼저 치른다.
첫날·둘째날 여성상위, 셋째날 남성상위
통일교 신도는 결혼식을 치른 후 곧바로 함께 살지 못한다. 일정 기간 각자의 책임분담(3명 이상 전도, 헌금, 교회봉사활동 등)을 다한 후에야 비로소 합방할 수 있다. 이것을 통일교 용어로는 가정출발이라고 한다. 예전엔 3년으로 정해져 있었는데, 요즘엔 따로 기간을 정하지 않고 교구장이 부부의 사정을 감안해 몇 주 만에도 가정출발을 허용한다.
가정출발을 하기 전 반드시 치러야 하는 의식이 이른바 ‘3일 행사’다. 3일 행사에는 통일교의 핵심 교리인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뜻이 구현돼 있다. 전 통일교 목사 박준철(2001년 통일교 탈퇴기자회견, 2004년 사망)씨의 저서 ‘빼앗긴 30년, 잃어버린 30년’에는 3일 행사와 관련된 통일교 공문 내용이 소개돼 있다. 공문에는 성교시 준비물, 성교 횟수, 성교 방법 등이 명시돼 있다.
준비물은 참부모님 존영, 심정초 또는 통일초, 성건(포도주를 묻힌 수건), 성건을 담는 그릇, 성염(소금) 등이다. 부부는 3일간 하루 한 번씩 모두 세 차례 성교해야 한다. 체위는, 첫날과 둘째날은 여성상위, 마지막날은 남성상위다.
첫날은 타락한 아담의 복귀를, 둘째날은 예수님 처지에서의 탕감복귀를, 셋째날은 복귀된 신랑으로서 신부를 재창조함을 뜻한다. 첫날과 둘째날 여상상위를 취하는 것은 해와, 즉 아내가 먼저 복귀해 남편을 다시 태어나게 함을 상징한다. 셋째날의 남성상위는 남편의 주관성 회복을 뜻한다.
공문에는 ‘본 식대로 3일 행사를 하지 못했을 경우 협회 가정국에 상담한 후 성별의 탕감조건을 세워야 한다. 그 다음 축도를 받고 성건을 다시 지급받아 3일 행사를 실시한다’는 규정이 있다.
초기 합동결혼식의 경우 문 총재가 직접 짝을 맺어줬다. 하지만 건수가 늘면서 사진만으로 연결됐다. 사진 짝짓기도 처음엔 문 총재가 했으나 요즘엔 교구장이 대행한다.
통일교측에 따르면 1960년 이후 합동결혼식을 통해 결혼한 부부는 모두 5억여 쌍에 이른다. 이는 실제 결혼한 부부의 수가 아니라 목표치다. 현재 통일교측에서 대외적으로 주장하는 신도수가 30만~40만이라는 점만 봐도 허구의 숫자임을 알 수 있다.
또 합동결혼식은 공짜로 하는 게 아니다. 탈교자(脫敎者)들의 증언에 따르면 1인당 200만~300만원을 축복헌금 및 결혼비용으로 내야 한다.
합동결혼식은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화제가 됐는데, 최근 몇 년간 소송이 이어지면서 요즘은 주춤한 상태다. ‘아사히신문’ 한국지사의 협조로 확인한 대표적인 법원 판결 사례는 다음과 같다.
“작은 비치볼 탑, 5만달러에 팔려”
합동결혼식에 따른 혼인이 무효라는 최초의 판결은 1996년에 나왔다. 1996년 5월8일 도쿄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에 해당)는 34세의 전 통일교 여신도가 낸 혼인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합동결혼식에 의한 혼인은 무효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 판결 이후 혼인무효소송이 줄을 이었다.
2002년엔 배상판결까지 나왔다. 8월21일 도쿄지방법원은 불법 유혹과 자신들의 의지에 반하는 강제결혼 등을 이유로 제소한 전 통일교 신도 3명(여자 2명, 남자 1명)에게 통일교측에서 920만엔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히로쯔구 판사는 “신도들이 통일교가 정해준 상대방에 대해 거절할 자유가 없으며 합동결혼식에 불참할 경우 신도 자신은 물론 선조들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으로 믿게 만들었다”며 “통일교는 신도들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주입시켜 탈교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판시했다. 2004년 2월26일 최고재판소가 원심을 인정함으로써 통일교의 패소가 확정됐다.
합동결혼식과 더불어 일본에서 큰 물의를 일으킨 것이 영감상법(靈感商法)이다. 영감상법이란 항아리나 도자기 등에 하나님의 영, 또는 선조의 원혼이 들어 있다며 수천만원대의 고가에 판매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판매 물품은 항아리, 도자기, 구슬, 염주, 도장 따위다.
영감상법은 문 총재의 전 며느리 홍난숙(40·1997년 이혼)씨가 1999년에 펴낸 ‘In the shadow of Moons(문 목사 일가의 그늘에서)’라는 책에도 소개돼 있다. 홍씨가 1992년 한학자씨의 일본 10개 도시 순회방문길에 동행했을 때의 목격담이다.
“그들은 수천명이나 되는 사람에게 이것을 사면 죽은 가족도 반드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며 종교적인 항아리와 구슬, 회화를 팔아 수백만달러를 거둬들였다. 작은 비치볼 탑이 놀랍게도 5만달러에 팔렸다.”
1987년 일본 변호사 300명은 ‘전국 영감상법 대책 변호사연락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영감상법 피해자에 대한 법적 지원에 나섰다. 월간 ‘현대종교’(2005년 12월호)에 따르면 신자 가족은 2003년 ‘전국 통일협회피해자가족 모임’이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1987년부터 2004년까지 18년간 2만5213건의 피해상담이 있었다고 한다.
역시 ‘아사히신문’ 기사를 통해 살펴본 주요 판결 사례다.
1999년 12월16일 후쿠오카지방법원은 영감상법으로 피해를 보았다는 주부 2명이 통일교측에 600만엔을 청구한 소송에서 통일교는 원고에게 590만엔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들이 구입한 물건은 도장, 항아리 등이었다. 이는 영감상법에 따른 물품 판매에 대해 통일교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다.
2002년 10월25일 도쿄최고재판소는 이른바 ‘다보탑 소송’에서 통일교의 패소를 확정지었다. 원고인 79세의 여성은 “통일교 신자가 소개한 ‘영능자(靈能者)’로부터 협박을 당해 다보탑 등의 구매를 강요당했다”며 통일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최고재판소는 통일교의 사용자 책임을 물어 7590만엔을 지급하라는 원심을 그대로 인정했다.
헌금과 관련한 소송도 제기되고 있다. 종교단체의 헌금이 법적 분쟁의 대상이 된 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일이다.
日 법원, ‘헌금 돌려주라’ 판결
2000년 1월21일 최고재판소는 주부 두 사람에게 820만엔을 지급하라는 오사카고등법원의 판결에 불복한 통일교측의 상고를 기각했다. 오사카에 사는 이들은 질병과 불행이 조상과의 인연 때문이라는 통일교측 권유로 모두 합쳐 890만엔을 헌금했다. 최고재판소는 “(헌금) 권유의 위법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통일교는 기독교와는 달리 십일조(十一租)가 아닌 십의 삼조(三租)를 낸다. 문 총재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통일교 내부 문서에 따르면, 문 총재는 2000년 4월20일 미국에서 40회 성혼기념식을 갖는 자리에서 “모든 축복가정은 10분의 3을 헌금해야 한다”고 말했다.
헌금의 과다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은 특별헌금의 종류다. 통일교에는 갖가지 명목의 특별헌금이 있는데, 액수가 매우 크다.
1999년 12월1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각급 교역자에게 ‘새 시대 새 천년맞이 특별정성’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내 헌금을 강조했다. 공문에 명시된 헌금 종류는 다음과 같다.
▲총생축(總生祝)헌금 : 가정당 1만6000달러(한화 1920만원) ▲천주(天主)승리축하헌금 : 1개월분 수입 ▲총탕감(總蕩減)기금 : 가정당 1만달러(한화 1200만원) ▲구국(救國)헌금 : 1인당 160만원 ▲정주평화공원조성기금 : 1인당 8만원 ▲건국(建國)기금 : 가정당 매월 17만원.
정주평화공원은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문선명 총재의 생가 주변에 조성하는 공원을 말한다. 공문은 또 문 총재의 80세 탄신을 기리는 예물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 각국별로 상징적으로 축복을 다시 받는 기준에서 축복기금(한국은 가정당 140만원)을 하기로 세계지도자회의에서 결정됨.’ 납부기한은 1999년 12월31일이다.
그밖에 액수가 큰 특별헌금으로는 입적(入籍)헌금(1000달러), 브라질 40일 교육헌금(1만6000달러), 성전건축기공식 헌금(320만원) 등이 있다. 헌금을 강조한 또 다른 공문에는 ‘사정이 어려우면 분납도 가능’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실제로 한국인 신도 중에는 지로납부방식으로 특별헌금을 분납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펴낸 ‘하나님 왕권 즉위식’은 2001년 1월13일 청평수련원에서 거행된 ‘하나님 왕권 즉위식’을 전후한 문 총재의 말과 기도를 정리한 책이다. 헌금과 관련된 주요 대목이다.
“지금 갖고 있는 자기 소유(물), 자기 가정에 속하고 나라에 속한 모든 것이 사탄 편입니다.”(2000년 12월7일)
“이제는 교회시대가 지나갔습니다. 나라를 위해 일해야 될 때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세금을 바쳐야 합니다. 몽땅 바쳐야 되는 것입니다. 총생축헌납물을 바쳐야 합니다.”(2000년 12월10일)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일본인의 헌금이 한국인보다 10배가량 많다는 점. 합동결혼식 비용(축복헌금과 교통비)만 하더라도 일본인은 한국인의 10배를 낸다. 말하자면 한일 간의 환율 차이만큼 더 내는 것이다. 조상해원헌금도 직계 1~7대의 경우 한국 신도는 70만원, 일본 신도는 70만엔을 내는 것으로 공식 규정돼 있다.
일본 쪽 헌금이 통일교의 젖줄이라는 얘기는 오래된 소문이다. 일본 통일교 교단의 헌금액이 2조엔을 웃돈다는 얘기도 있다(월간 ‘현대종교’ 2005년 12월호). 1992년 1월21일 ‘워싱턴포스트’지는 “문선명의 돈줄은 일본의 통일교 신도”라며 일본변호사협회 보고서를 인용해 “통일교 신도들이 통일그룹에서 만든 종교 관련 물건을 판매하는데, 엄청나게 높은 가격을 매겨 강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홍난숙씨도 저서에서 1980년대 한 통일교 간부가 자신에게 들려준 얘기라며 “통일교가 일본 한 곳에서만 1년에 4억달러의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블랙 흥진’의 몽둥이질
통일교에 대한 비난의 한 켠에는 문 총재 가족의 우상화 시비가 있다. 먼저 부인 한학자씨. 한씨는 17세이던 1960년 40세의 문 총재와 결혼해 14명의 자식을 낳았다. 통일교에서는 문 총재의 자식들 이름 뒤에 모두 ‘님’자를 붙여 부른다.
현재 세계평화여성연합 총재를 맡고 있는 한씨는 통일교에서 참어머니로 불리며 신도로부터 참아버지에 준하는 경배를 받는다. 원리강론 ‘중생론’에 따르면 참어머니=성신(聖神)=후(後)해와다. 한씨의 어머니인 홍순애씨는 사후 대모님으로 ‘지상에 재림해’ 청평수련원의 영적 역사를 이끌고 있다.
문 총재의 어머니 김경계씨는 충모(忠母)님으로 추서됐다. 신도들은 김씨 사망일에 추모예배를 드린다. 통일교 교재 ‘성약시대 청평역사와 축복가정의 길’은 충모님을 기독교의 마리아에 비유하면서 ‘앞으로 온 인류는 참아버님의 어머니이신 김경계 여사를 흠모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족 우상화 시비의 정점에 있는 인물은 1984년 교통사고로 죽은 차남 흥진씨다. 문 총재는 흥진씨가 죽은 직후 박보희씨의 딸 박훈숙씨와 영혼결혼을 시켰다.
앞서 언급한 대로 흥진님은 영계총사령관으로 활약하고 있다. 2005년 1월2일 애승일(흥진님 추도일) 행사에서 문 총재는 “예수님도 영계 대표자가 아니다”라며 “천총관 흥진군이 영계를 대표해 참부모에게 직접 보고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흥진님이 2005년 9월18일 한가위를 맞아 참부모님에게 보낸 편지(영계 메시지)의 일부 내용이다. 편지에 따르면 5대 성인과 그 제자들, 그리고 역대 왕들이 흥진님을 통해 참부모님께 다음과 같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평화의 왕 천지인 참부모님!
…사실 저희는 2005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지상재림을 준비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천지인 참부모님께서 중추절을 통해 지상재림을 허락해주시니 감격과 감사의 마음뿐이옵니다. …천총관 흥진님을 모시고 지시를 받으면서 천지인 참부모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세계 만국과 만백성이 참부모님을 왕의 자리에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천주청평수련원 홈페이지 ‘흥진님 메시지’)
1980년대 후반에 있었던 에지프트 사건은 통일교 신도들에게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에지프트는 짐바브웨의 흑인 청년인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몸에 흥진님이 재림했다며 통일교 신도들 앞에 나타났다.
‘블랙 흥진’은 참부모의 허락을 받아 한국을 비롯해 일본, 유럽 등지를 돌며 통일교 신자들에게 고백식을 강요했다. 누구든 예외 없이 그 앞에 불려나와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했다. 신도들은 간통, 성추행, 공금횡령, 부부싸움, 문 총재 욕한 것 따위의 죄를 털어놓았고 에지프트로부터 탕감봉을 맞았다. 죄질에 따라 맞는 횟수가 달랐다.
문 총재 장남 문○○(44)씨의 장인인 홍성표 당시 일화사장과 통일교의 2인자로 불리던 박보희 당시 한국문화재단 이사장도 에지프트의 몽둥이를 피하지 못했다. 홍성표씨의 딸인 홍난숙씨는 저서에서 박보희씨 구타사건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에지프트)가 박보희씨를 너무도 세게 때려 박씨는 일주일간 조지타운병원에 입원하지 않으면 안 됐다. 박씨는 의사들에게 계단에서 굴렀다고 말했다. 후에 머리의 혈관을 수술하기 위해 외과수술이 필요했다.”
세계적인 미디어그룹인 타임워너 한국지사장을 지낸 박씨의 아들은 “부친에 대한 폭행이 통일교 내부 파워게임의 산물이라는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오래된 사건이고 저로선 언급하기 뭣하다”며 “그간 통일교 내부에서 많은 사건이 있었다. 그에 관한 자료와 책을 참고하라”고 했다.
‘베들레헴 예수 드림’
이영선씨는 남편 박준철 목사가 죽은 후 그 뒤를 이어 통일교대책협의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이씨 부부가 에지프트 앞에 선 것은 1988년 12월18일이었다. 장소는 서울 청파동에 있는 통일교 본부교회. 1975년에 합동결혼식을 한 1800가정이 다 모였다. 모든 가정이 죄를 고백하고 탕감봉을 맞았다. 맞지 않은 사람은 박 목사와 또 다른 목사뿐이었다. 두 사람은 ‘의인’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이씨는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당시 신도들은 에지프트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거짓말하면 죽는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광풍과도 같은 고백식이 끝난 후 에지프트는 통일교를 떠나갔다. 홍난숙씨에 따르면 폭력사태의 후유증을 걱정한 문 총재가 내보냈다는 것. 신도들 사이에선 에지프트가 죄와 상관없이 주관적으로 몽둥이질을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었다. 통일교 지도부는 에지프트가 떠난 데 대해 “흥진님의 영이 에지프트의 신체를 떠나 영계로 돌아갔다”고 공표했다. 홍난숙씨에 따르면, 에지프트는 아프리카로 돌아가 ‘가루트’라는 새 종파를 만들어 메시아 행세를 하고 있다고 한다.
통일교에서는 유난히 영적 세계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2000년에 출간된 ‘영계의 실상과 지상생활’은 이 분야의 고전으로 신도의 필독서다. 이 책은 1997년에 사망한 이상헌씨가 영계에서 보내온 메시지를 김영순씨가 정리한 것이다. 이씨는 1990년대에 세계일보 주필, 사장 및 부회장을 지냈다.
이 책에 소개된 흥진님 메시지 중 일부다.
“아버님, 저 문흥진입니다. …효진 형님, 예진 누님! 우리는 아버님과 어머님을 모시고, 정말 천지에 둘도 없는 메시아를 모시고 살아가는 가족이 아닙니까. 우리는 지금 고난의 자리에 있지만 영원한 세계의 영원한 황족(皇族)입니다.…”
예수, 소크라테스, 마호메트, 공자, 석가 5대 성인이 영계에서 참부모님에게 보냈다는 편지와 영계 보고서도 눈길을 끈다. 문 총재는 1998년 6월13일 미국 뉴욕 메디스 스퀘어가든에서 거행된 1억2000만쌍 축복식을 통해 이들 모두에게 지상인인 한국여성 한 명씩을 짝 지워줬다. 이들은 편지에서 그 사실을 언급하며 참부모에게 감사를 나타냈다.
“참부모님, 저는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난 초라한 예수입니다.…예수는 지상에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살아왔사오나, 이제 이곳에서 하나님 앞에 참부모님 앞에 후회 없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지상에서 저의 아내로 맺어주신 장 여사께서… 베들레헴 예수 드림. 1999년 12월29일.”
석가는 1999년 12월30일 불교계 영계권을 대표해 올린 보고서에서 참부모님에게 “다시 지상인으로 태어날 수만 있다면 저의 발바닥이 닳도록 땅끝까지 걸어다니며 통일원리를 전파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일성은 2000년 1월3일 공산권을 대표한 영계보고서에서 자신을 “지상의 북한 땅에서 며칠 동안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던 김일성”이라고 소개한 뒤 “김정일을 만나 원리교육을 시켜달라”고 애원했다.
이상헌씨는 5대 성인 외에도 인류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을 영계에서 만난 얘기를 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유관순은 요즘 ‘가는 곳마다 참부모님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영웅이라고 외치고 있다’. 또 박정희는 “문선명 선생님께서 이 나라 오실 때 모든 것에 대해 사죄를 드리겠다”는 인사말을 전했다.
통일교 교리에 따르면 참부모의 사명은 타락한 인간을 원죄 없는 자녀로 다시 낳아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것이다.
문 총재가 공식적으로 낳은 자식은 모두 15명. 첫부인 최선길씨 사이에서 낳은 1명을 빼고는 전부 참어머니 한학자씨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다. 문 총재는 1957년 최씨와 이혼했지만 그 자식은 호적에 올렸다.
음주운전, 마약, 구타
그런데 참어머니가 낳은 14명 중 3명이 죽었다. 차녀 혜진씨는 낳은 지 두 달이 채 못 돼 죽었고, 차남 흥진씨는 1984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6남 영진씨는 1999년 10월 미국의 한 호텔에서 추락사했다. ‘자살’이라는 언론보도(1999년 11월11일 ‘연합뉴스’, AP통신 인용보도)가 있었으나, 통일교측은 이를 부인한다.
문 총재 자식을 둘러싼 논란의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이 장남 문○○씨다. 그는 19세 때 네 살 아래인 홍난숙씨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미국 뉴욕의 문 총재 집에서 함께 살았는데, 심각한 가정불화를 겪었다. 홍씨는 1995년 5남매를 데리고 집을 뛰쳐나와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1997년 미국 법원은 두 사람의 이혼을 허락했다. 문씨가 홍씨에게 현찰로 60만달러를 주고 매월 9000달러의 양육비를 지급한다는 조건이었다.
홍씨는 미국 TV방송에 두 번 출연해 문 총재 일가의 ‘비리’를 폭로했다. 첫 인터뷰 매체는 WBZ TV의 ‘뉴스 4’. 이혼소송이 한창이던 1996년 7월 방영됐다. 두 번째 인터뷰는 책(‘문 목사의 그늘에서’)을 낸 직후인 1999년 8월 CBS TV ‘60minutes’에서 방영된 것이다.
‘신동아’는 취재과정에서 두 프로그램이 녹화된 CD를 입수했다.
첫 번째 인터뷰에서 홍씨의 이름은 문난숙으로 나온다. 이혼 전이었기 때문이다. “다섯 아이의 어머니인 한 여성이 수년 동안 폭행 및 학대를 당했다며 이곳 메사추세츠주에서 도움과 은신처를 구하고 있다”는 앵커의 다소 들뜬 목소리로 시작되는 이 방송에서 홍씨는 남편 문씨가 술과 마약(코카인)에 절어 있었고 자신을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방송에는 홍씨에게 협박성 편지를 보내 법원의 금지명령(restraining order)을 어긴 문씨가 재판받는 장면도 나온다. 판사는 문씨에게 18개월간의 ‘보호관찰’을 선고하면서 마약 및 알코올 남용에 대한 상담을 받을 것을 지시했다. 방송에 따르면 문씨는 두 건의 음주운전으로 ‘보호관찰’이 선고된 상태에서 정지된 면허증을 갖고 운전하다 체포되기도 했다.
홍씨는 인터뷰 끝에 문 목사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50~60명이나 되는 경호원, 하녀, 요리사, 개인 시녀… 그리고 늘 1등석으로 여행합니다. 개인용 제트기를 살 생각도 하고 있었습니다.”
CBS 방송의 ‘60minutes’는 훨씬 더 길고 자세하게 홍씨의 얘기를 다뤘다.
홍씨는 통일교에서 강조하는 참가정이 정작 문 총재 집안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문 목사 가족의 사진을 보고 늘 동경하며 성장했어요. 행복해 보이는 가족사진을 보고 그것이야말로 이상적인 가정이라고 생각했죠.”
“문 목사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완전무결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가 선택한 부인도 완전무결한 인간이 된다는 논리를 폅니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도 완전무결한 인간이 되는 거죠.”
홍씨는 시부모인 문 총재 부부에게 남편의 구타 사실을 알릴 때마다 오히려 꾸중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제가 그이에게 좋은 아내가 돼주지 못한 탓이라면서 저는 문씨 일가에 못 미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맞고 사는 것도 운명이라고 했어요. 남편의 매질도 참고 살아야 한다고 했죠.”
그분은 그냥 제 아버지일 뿐”
홍씨의 이 얘기를 받아 어떤 여자가 방송에 등장해 “많이 듣던 소리군요” 하고 장단을 맞춘다. 놀랍게도 문 총재의 넷째 딸인 은진씨다. 은진씨는 문 총재 부부가 자신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며 자신은 통일교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분은 그냥 제 아버지일 뿐이에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되겠죠.”
은진씨는 홍난숙씨에 대해 “매우 정직하고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친근감을 드러냈다.
홍씨는 또 “문 목사는 영어를 못하고 어린 자녀들은 한국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모 자식간에 대화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씨는, 앵커가 ‘문 목사 일가의 그늘에서’라는 책을 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순수한 이상주의에 빠져 있었는데, 저 같은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이 통일교의 희생양이 되기 쉽죠. 저도 그중 한 사람이었고요.”
홍씨가 “문 목사는 결코 메시아가 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하자 앵커가 묻는다.
“그렇다면 가짜 메시아란 말인가요?”
“사기꾼이죠. 문 목사 일가와 15년간 생활하면서 얻은 결론이에요.”
앵커는 방송 끝부분에서 “문 목사 내외는 인터뷰 대신 다음과 같은 짧은 서신을 보내왔다”고 덧붙였다.
“우리 아들의 비극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난숙의 고통을 가엾게 여긴다.”
문 총재 장남의 ‘비극’과 관련해 관심을 끄는 것은 후계구도다. 문 총재의 자식 11명 중 6명이 아들이다. 따라서 그의 사후 후계구도를 두고 분란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선지 통일교 관계자들은 문 총재 사후 통일교를 이끌어갈 인물로 부인 한씨를 꼽고 있다.
장남 OO씨는 아무런 공식 직함 없이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아들 6명 중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은 3남 현진(37)씨다. 통일그룹 세계회장인 그는 세계대학원리연구회(월드카프) 세계회장, 세계평화청소년연합 세계회장을 맡고 있다. 통일그룹 한국회장으로 그동안 기업 쪽 일만 했던 국진(36)씨는 얼마 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이사장에 취임했다. 나머지 두 아들은 아직 나이가 어려서인지 공식 직함을 갖고 있지 않다.
자식들 외에 통일교 실세로 꼽히는 사람으로는 곽정환 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 세계회장과 황선조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회장이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회장이기도 한 곽 회장은 가정당 총재와 ‘워싱턴타임스’ 회장, UPI통신 회장을 겸하고 있다. 황 회장은 현재 여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주)일상 회장을 겸하고 있다. 문 총재의 조카사위인 그는 문 총재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다.
통일교 내에서 ‘대신자(代身者)’로까지 불리는 곽 회장은 문 총재와 겹사돈을 맺었다. 문 총재에게 딸을 주고 며느리를 받은 것. 3남 현진씨가 그의 사위다. 통일교 간부 중 문 총재와 겹사돈을 맺은 사람은 모두 세 명이다. 나머지 두 사람은 전 일화 사장 홍성표씨와 박보희씨다.
이중 가장 먼저 ‘왕족’으로 편입된 사람은 홍씨다. 문 총재는 먼저 홍씨의 아들을 사위로 삼은 다음 딸(난숙)을 며느리로 삼았다. 홍씨는 딸 부부가 이혼한 후 통일교를 떠났다.
박씨는 ‘워싱턴타임스’ 회장, ‘세계일보’사장, 국제승공연합회장, 금강산국제그룹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동안 2인자 소리를 들었으나 중국 자동차사업과 대북사업에서 별다른 실적을 내지 못한 이후 밀려났다. 2004년 7월 부동산 매매와 관련해 사기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5년형을 선고받았는데,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박씨의 아들은 “최근 피해자측과 합의했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부친의 탈교 가능성에 대해선 “평생 믿어온 종교를 버린다는 얘긴데…” 하고 말끝을 흐렸다.
제3부 탈교자(脫敎者) 증언
“하나님은 이미 이 땅위에 인생과 우주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게 하기 위해 한 분을 보내셨는데, 그 분이 바로 문선명 선생이시다.”(원리강론 ‘총서’)
한 장의 전단지가 A씨(40대)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1999년 미용실에서 만난 50대 여성이 건넨 그 전단지에는 결혼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순결한 결혼’ ‘이상적 배우자를 소개합니다’ 따위의 문구와 참가정실천운동본부라는 사회봉사 단체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당시 사업에 실패해 30대 중반이 되도록 결혼을 못한 A씨는 전단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상담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담자의 안내로 역 근처의 한 건물로 갔다. 참가정실천운동본부라는 간판이 보였다.
참부모 사진 앞에 하루 100번 절해
얼마 지나 그는 참가정실천운동본부가 통일교회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통일교라는 걸 알고 발을 빼려다, 결혼하고 싶은 마음에 몇 번 나가면서 조금씩 세뇌돼 갔어요. 발목부터 서서히 물에 잠긴 거죠.”
몇 차례 교육을 받은 후 그는 세 살 어린 일본 여자를 사진으로 소개받았다. 참부모님이 계시를 받아 맺어준 짝이라고 했다. 2000년 2월12일 처음 대면했는데, 목사의 지시에 따라 다음날 곧바로 결혼했다.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4억쌍 1차 합동결혼식이었다.
원래는 축복비로 200만원을 내야 했는데 돈이 없어 100만원만 냈다. 꽃과 장갑만 지급됐고 예복은 스스로 준비해야 했다. A씨와 같은 교구에 소속된 합동결혼식 대상자들은 전날 지방의 모 회관으로 집결해 짝을 맞춰보고 사전교육을 받았다. 그곳에서 숙박한 후 당일 전세버스로 식장으로 향했다.
식장에서 그들은 남녀 구분해 두 줄로 섰다. 문 총재가 입장하면서 양쪽으로 늘어선 신랑신부들에게 성수를 뿌렸다. 황선조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회장이 사회를 봤다. 결혼선서문과 결혼서약서 낭독, 문 총재의 성혼 선포, 만세삼창 순으로 이어졌다.
식이 끝나고 버스를 타고 집결지로 되돌아갔다. 거기서 탕감봉 의식을 치렀다. 원죄와 지은 죄, 연대(連帶) 죄를 탕감한다는 뜻에서 세 대씩 주고받았다. 약하게 때릴 경우 다시 해야 했기에 다들 힘껏 쳤다. A씨는 창피한 마음에 순간적으로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했으나 ‘신부가 예뻐’ 참았다.
식은 치렀지만 함께 살 수 없었다. 결혼 후 3년간 떨어져 각자 전도 생활을 마친 다음에야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A씨는 그 사실을 식을 올릴 무렵에야 알았다.
A씨의 배우자 B씨는 7년차 신도로 신앙이 좋은 편이었다.
결혼식을 치른 후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1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는데, 선물을 사러 가서는 참부모에게 바칠 것을 가장 먼저 챙겼다. 그 다음이 시부모, 남편 순이었다.
B씨는 A씨가 다니는 교회에서 또 다른 일본인, 필리핀인 주부와 함께 숙박하며 몇 달간 전도생활을 한 후 일본으로 되돌아갔다. A씨는 부인이 한국에 와 있는 동안엔 생활비로 교회에 월 30만원씩 냈다.
A씨는 B씨와의 빠른 결합을 꿈꾸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집에 걸린 참부모 사진(교회 달력) 앞에 하루에 50~100번씩 큰절을 했다. 집을 나설 때는 “아버님 다녀오겠습니다”, 귀가해서는 “아버님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했다. 원리강론도 10번가량 읽었다. ‘영계의 실상과 지상생활’의 경우 처음엔 기가 막혀 믿지 않았지만 자꾸 읽으니 ‘은혜’가 되는 듯싶었다.
“5년 동안 먼지만 실컷 먹었다”
그가 청평수련원에서 열리는 조상해원식에 처음 참석한 것은 2001년 후반이다. 일본에서 건너온 B씨가 “참석하지 않으면 가정출발을 하지 않겠다”고 종용했기 때문이다.
집회는 천성왕림궁전 대성전에서 열렸다. 주말 저녁 7시에 시작됐는데, 대성전이 가득 찰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조상해원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해원헌금을 내야 했다. A씨는 신청서에 직계 1~7대 조상의 이름을 적어내고 부인 것까지 합쳐 140만원을 냈다.
참부모님 둘째아들 흥진님의 영이 옮겨 붙었다는 대모님이라는 중년 여인이 조상해원식을 주관했다. 대모님은 식이 진행되는 동안 유체이탈로 영계로 가서 신도가 해원을 원하는 조상의 영을 데리고 온다고 했다. 또한 해원한 영들은 흥진님이 운영하는 영계수련소로 보내 100일간 특별교육을 받게 한다고 했다. 흥진님은 영계총사령관인데, 그 바로 밑에 예수를 비롯한 4대 성인이 있고, 그 뒤로 이순신, 유관순 등 위인들이 포진하고 있다고 했다.
영 털기가 시작됐다. 북 소리에 맞춰 같은 노래를 계속 부르며 선도자의 구령에 맞춰 머리와 어깨, 가슴, 팔다리를 두들겨댔다. 어느 순간 답답해서 밖으로 나가려 하자 뒤에 앉은 부인 B씨가 등을 후려쳤다.
해원한 지 100일이 지난 조상의 영은 축복을 받아야 했다.
축복식에선 ‘조상의 영이 깨끗해진다’며 신도들 머리 위로 성수를 뿌렸다. A씨는 축복식에도 열심히 참석했다. 부인이 하도 졸라 대모님과 일대 일 상담을 하기도 했는데 특별한 느낌은 못 받았다고 한다.
A씨는 “청평수련원에서 하는 얘기를 다 믿었느냐”는 질문에 “믿음이 없었다면 (조상해원을) 100대까지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5년간 그 짓을 하며 먼지만 실컷 먹었어요. 특별한 은혜도 없었고.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인 B씨는 열성이었다. 40일 수련회에 다섯 번이나 참석했다. 그때마다 수련비로 60만원씩 냈다. 돈이 떨어지면 일본으로 돌아가 헌금할 돈을 마련해 되돌아오곤 했다. 벌이가 시원찮았던 A씨는 헌금 공포증에 시달렸다.
“뭔 헌금이 그리 많은지, 주일헌금과 십일조는 기본이고 8대 명절 헌금을 비롯한 특별헌금을 수시로 내야 했어요. 예컨대 참부모의 결혼기념일인 참부모님 날엔 1인당 1만2000원씩 냈어요. 게다가 저 같은 경우 한 달에 한번 꼴로 청평에 갔으니….”
참부모님 탄신일엔 교인들에게 따로 돈을 거둬 떡을 했다. 예배당 단상에는 빈 의자 2개를 놓아뒀다. A씨는 통일교측 발표와는 달리 실제로는 교인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일반 교회의 경우 수십명이고, 도 단위 교구본부가 있는 교회쯤 돼야 100명이 넘는다는 것.
“문선명은 내 아들이요”
A씨는 “참부모가 30~40대 피를 갖고 있기 때문에 150세까지 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지난해 행사 때 보니 건강이 좋지 않아 보였다”고 했다.
“1월13일 왕권즉위식 기념일이었어요. 단상에서 말씀집을 읽는데, 발음이 분명치 않고 말투가 느릿느릿해 뭔 말인지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옆에 있는 목사들이 ‘영계를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저렇다’고 속닥거렸어요. 힘든 기색이 역력하자 중간에 곽정환 회장이 나서서 대신 읽었어요.”
A씨의 신앙심이 흔들린 데는 문 총재 ‘우상화’가 한몫했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청평에서 열린 ‘왕권즉위식’ 기념일에 일어난 일이에요. 매년 이 날엔 왕관을 쓴 참부모가 자식들과 함께 황족 도포 차림으로 등장해요. 참부모가 병풍 뒤에서 나온 직후였어요. 사회자가 ‘모두 조용히 하십시오. 하나님 오셨습니다’ 하더라고요. 5분쯤 지나자 병풍 뒤에서 나오는 굵직한 목소리가 대형 스피커를 통해 장내에 울려 퍼졌어요.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문선명은 내 아들이요, 참부모요, 구세주이니라.’ 아주 엄숙한 분위기였는데, 속으로 ‘이건 아니다’ 싶었죠. 무슨 하나님이 마이크를 잡고 말합니까.”
2005년 7월 그는 통일교에서 빠져나왔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신앙에 대한 회의였다. A씨는 인터넷을 통해 문 총재 장남과 이혼한 홍난숙씨의 수기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참부모 자식한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통일교회에서 30년간 목회생활을 하다 탈퇴한 박준철 목사의 책을 읽으면서는 ‘내가 속고 살았구나’ 하고 탄식을 거듭했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는 일본인 부인 B씨의 경직된 태도였다. B씨는 A씨의 믿음이 약하다는 이유로 가정출발을 기약 없이 늦췄다.
“결혼한 지 5년이 지나도록 잠자리 한 번 같이 못했어요. 은혜도 안 오고 결혼도 안 되고… 주변에서 결혼식만 하고 헤어진 부부가 많다는 얘기를 듣고 난 후로는 점점 자신이 없어지더라고요. 목사도 (B씨를) 열심히 설득했는데 역부족이었어요. 결국 제가 ‘너무 지쳤으니 헤어지자’는 편지를 보냈어요.”
혼인신고를 한 터라 소송하지 않고 이혼하려면 여자측이 동의해야 했다. A씨가 이혼을 요구하자 목사가 포기각서를 요구했다. 이혼에 대해 어떠한 이의제기도 하지 않고 소송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A씨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각서를 써줬다. 그 직후 협의이혼이 이뤄졌고 그는 통일교에 발길을 끊었다.
“참가정을 지키기 위해 5년간 바람 한 번 안 피우고 기다렸습니다.
손해배상청구를 한다면 한 5억원은 가능할 겁니다. 그동안 갖다 바친 헌금이 각종 경비를 포함하면 2000만원이 넘어요.”
A씨는 “나 같은 피해자가 더 안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인터뷰에 응했다”고 밝혔다.
“저는 5년간 직접 겪었기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거짓말했다면 벌 받을 겁니다. 교리는 좋은데 수뇌부가 그걸 악용해 신도들을 착취하는 게 문제입니다. 언론도 겉만 보지 말고 속을 잘 살피고 기사를 쓰면 좋겠습니다.”
“예배시간에 교구장 목사가 하는 말이, 유관순이 태극기 흔들며 만세 부른 게 문선명 총재 탄신을 축하하는 것이었다는 거예요. 어이가 없었죠. 끝난 후 우리끼리 모여 배꼽 잡고 웃었어요. 우리가 역사를 잘못 배웠나보다 하면서.”
“열심히 안 나오면 가정출발 늦어진다”
2002년 2월16일 20대 후반의 C씨는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4억쌍 3차 합동결혼식의 주인공 중 한 명이었다. 상대는 교구장이 특별히 신경 써서 골라준 미모의 일본 여성 D씨. 그보다 네 살 아래였다.
합동결혼식 참가자는 대부분 상대방 사진만 본 상태에서 결혼한다. 하지만 교회에서 모범청년으로 인정받은 C씨는 교구장의 배려로 식을 치르기 몇 달 전 일본에 건너가 D씨와 그 부모를 만났다. D씨의 부모는 6000가정(1982년 합동결혼식) 출신으로 독실한 신자였다.
C씨는 결혼비용으로 200만원을 교회에 냈다. 결혼식 전날 서울 근교 펜션에 합동결혼식 참가자가 다 모여 짝을 맞추고 준비상태를 점검받았다.
결혼식 하객은 가족당 4명으로 제한됐다. 당일 아침 C씨는 부모와 함께 식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식장 입구에 서 있던 통일교 관계자가 C씨의 부모에게 신랑신부와 같은 복장을 할 것을 권유했다. “사람이 많아 입장 인원이 제한되고 있으니 그 옷을 입어야 입장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주변에 놓인 여러 개의 상자에 웨딩드레스가 쌓여 있었다. C씨의 어머니는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아버지는 입고 온 양복 윗주머니에 꽃을 꽂았다.
C씨가 식장에 들어가 보니 자신의 부모처럼 나이 든 ‘신랑신부’가 많았다. 하객으로 온 신랑신부의 부모들에게 전부 같은 수법으로 예복을 입혔던 것. C씨에 따르면 합동결혼식 참석자 수에 부모들도 포함됐다고 한다.
결혼식은 3일에 걸쳐 진행됐다. 첫날은 식을 올렸고, 둘째날은 경기도 구리 수택동에 있는 중앙수련원으로 가서 결혼교육과 더불어 탕감봉 의식을 치렀다. 마지막날엔 올림픽공원의 한 경기장에서 축하공연이 있었다. 문 총재의 3남인 현진씨가 행사를 주관했다. 현진씨는 노래와 함께 춤을 췄고 영어로 강연도 했다.
당시 C씨의 교회가 소속된 교구에서 탄생한 합동결혼식 축복가정은 모두 20쌍. C씨는 특별한 경우였고 대부분 30대 중반을 넘긴 노총각이었다. 신부는 거의 다 일본인이었다. 그런데 결혼한 그 해 절반이 넘는 쌍이 깨졌다.
“예전엔 먼저 교인으로 만든 다음 결혼을 시켰어요. 그런데 요즘은 합동결혼식 참가자가 줄다보니 실적을 의식해 먼저 결혼부터 시킨 후 교인을 만들려 합니다. 그러니 부작용이 크죠. 예배는 기본이고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다 십일조를 비롯해 내야 할 헌금도 많으니 못 견디는 거죠. 신앙이라도 있으면 어느 정도 견딜 텐데….”
교회에서는 “원리를 모르면 가정출발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 여성들이 신앙심이 좋기 때문에 그 수준에 맞추지 못하면 같이 살아도 곧 깨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목사는 “교회에 열심히 안 나오면 그만큼 가정출발이 늦어진다”고 ‘겁’을 줬다.
하지만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C씨도 예배에 참석하고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회의가 깊어졌다. 예수는 실패자이고 참부모가 재림주라는 사실이 선뜻 믿기지 않았다.
예배에 몇 차례 빠지자 교구장이 일본에 있는 그의 짝 D씨에게 편지를 보냈다. 곧 장모가 입국해 그의 신앙상태를 점검하고 돌아갔다.
신발로 맞으면서도 환호
장모는 참부모가 나타나는 행사에는 꼭 참석하는 열성 신도였다. 딸 D씨도 만만찮았다. 한국에 왔을 때 C씨가 혼인신고를 하자고 제의하자 ‘하와이 수련회에 참석해 참부모를 만나야 한다’며 거절하고는 하와이로 떠나버렸다. D씨는 하와이에서 6개월간 봉사생활을 했다.
C씨는 여자측 집안의 강권에 못 이겨 청평수련원에 세 번 갔다. 한 번은 문 총재가 집회 현장에 나타났다. 장모와 부인, 처제가 함께 참석한 자리였다.
“난리도 아니었어요. 특히 일본 여성들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어요. 한 시간 이상 설교를 했는데 대부분 무슨 소린지 알아듣기 힘들었어요. 욕밖에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이 쌍년들아’ 하고 대놓고 욕을 했어요. 앞자리에 앉은 신도들은 신발로 맞기도 했죠. 그래도 좋다고 환호성을 질러댔어요. 문선명 총재의 몸짓 하나하나에 열광했습니다. 그 와중에 처제가 졸자 장모가 뒤통수를 세게 때렸어요.”
2002년 7월 C씨는 통일교에서 탈퇴한 박준철 목사를 만난 후 자신의 회의가 옳은 것이었음을 확인했다. 일본의 D씨에게 박 목사 관련 자료를 보내줬다. 그걸로 두 사람 관계는 끝났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에 협의고 뭐고 할 필요도 없었다.
“남자들은 대체로 신앙보다는 결혼이 목적이기 때문에 교회에 열심히 나가지 않아요. 경제 형편이 좋지 않고 홀어머니를 모시는 등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사람이 많죠. 한국 남자는 절박해서 결혼하는데, 일본 여성은 합동결혼식을 참부모님의 행사 중 하나로 생각해요. 깨지면 다시 할 수 있는 걸로. 저도 나중에야 제 짝이 저와 맺어지기 전에 일본 남자와 축복결혼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제 주변에도 몇 번씩 합동결혼식을 하는 여자가 많았어요.”
그는 경기도 모 교구 소속 교회에 다니는 E씨의 사례를 들려줬다.
노총각인 E씨는 합동결혼식을 세 번이나 했다. 세 번째 깨진 다음 1년을 기다렸다가 다시 합동결혼식에 도전했다. 그런데 식장에서 전에 자신의 짝이던 일본 여자가 다른 남자와 맺어지는 것을 목격하고는 웃음이 나왔다고 한다. C씨는 “합동결혼식의 의미가 점차 퇴색하고 있다”고 했다.
“예전엔 깨지면 창피하게 생각했대요. 참부모의 결혼축복을 받으면 새사람이 되는 것이니 깨지면 실패작이라는 얘기거든요. 그런데 참부모 아들부터 깨졌잖아요.”
그는 탈퇴한 후에도 합동결혼식 동기들과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쌍 중 7쌍만이 가정출발에 성공했다고 한다.
“결혼하고도 바로 합치지 못하고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니 다들 질려버리는 거예요. 어떻게 어떻게 해서 가정을 이뤘어도 헌금 때문에 힘들어해요. 가정출발한 형들 만나보면 다 그래요. 그런데 그런 얘기를 일본인 부인한테 못 한다는 거예요. 곧바로 교구장에게 보고되거나 여자가 일본으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죠. 요즘은 일본인 여성은 별로 없고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 여성이 많다고 해요.”
F씨(30대 중반)는 세계일보를 배달하던 일본 주부의 권유로 통일교회에 나가게 됐다. 서울 강남교구 수련원에서 주말마다 교육을 받았는데, 처음엔 통일교와 관련된 곳인 줄도 몰랐다. 그저 강연이 좋아 빠져들었을 뿐이다. 정해진 교육이 끝날 즈음 “한국에 메시아가 이미 출현했다”는 강사의 얘기를 듣고서야 비로소 통일교라는 걸 알았다.
“JMS 일부 목사, 통일교로 옮겨갔다”
그는 군에 입대하기 전 교구 수련원에서 1주일 동안 교육을 받고, 구리 중앙수련원의 21일 수련회에도 참석했다. “메시아 위해 내 청춘 바치겠다”고 다짐하며 친구도 전도했다.
전역 후 잠시 식당을 운영했는데, 교구장이 사진으로 일본 여자를 소개해줬다. 몇 개월 후인 1999년 2월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3억6000만쌍 합동결혼식에 참가했다. 결혼헌금으로 300만원을 냈는데 일본 여자는 300만엔을 냈다.
“식장에 친구는 한 명도 안 왔어요. 다들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짓을 한 거죠.”
F씨와 결혼한 일본 여자는 신앙이 깊지 않았다. 독실한 신자인 어머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합동결혼식에 참가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식이 끝난 후 곧바로 일본으로 돌아가 다니던 직장에 계속 다녔다.
전문대를 나온 F씨는 교구장의 보증으로 6개월간 순전단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마치자 목회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나중에 신학대학에 진학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첫 임지는 지방 소도시의 농촌교회였다.
거기서 노총각 교인 열댓 명을 합동결혼시켰다. 신부는 주로 필리핀 여자였는데, 남자와 열 살 이상 나이 차가 나는 경우가 많았다. F씨는 “결혼소개소장 노릇을 한 셈”이라며 웃었다.
“교인들을 심방해보니 대부분 찢어지게 가난하더라고요. 필리핀 부인들에게 ‘왜 같이 사느냐’고 물어보면 ‘한국이 신앙의 종주국이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에게 “목사는 헌금을 얼마나 하느냐”고 묻자 “통일교 내부를 잘 몰라서 하는 질문”이라며 “교인들에게만 강조하지 목사나 교구장은 잘 안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통일교는 김일성·김정일 체제와 똑같다”며 문 총재 우상화를 비판했다.
“예배당에 문선명 총재 사진을 걸어놓고는 시작할 때와 끝날 때 늘 경배를 드렸습니다. 교인들은 집에 사진을 모셔놓고는 수시로 절했고요.”
어느 날 통일교는 신도들에게 천일국 백성을 뜻하는 국민증이라는 걸 발급했다.
주민등록증과 모양이 비슷했는데, 주민등록번호와 사진, 주소, 소속교회 이름을 적게 돼 있었다. 말하자면 교인 확인증이었다. 그것을 지니고 있으면 어느 교회에 가더라도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F씨가 시무한 교회에서도 30장 안팎의 국민증이 발행됐다.
2년 후 그는 지방 대도시 교회로 발령 받았다. 다진 기반도 있고 일본에서 부인도 아직 들어오지 않아 농촌교회에서 좀더 근무하겠다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자는 직장생활을 핑계로 입국을 자꾸 늦췄다. 결국 헤어지기로 합의했다.
새 임지에 가보니 교인 사정은 농촌교회보다 나았다. 50명가량 됐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목사인 자신의 신앙이 자꾸 옅어지는 것이었다.
“청평수련원 목회자 모임 등을 통해 몇 번 문선명을 봤어요. 80대 노인이 체력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문 총재가 꿈은 참 원대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무슨 메시아가 전용비행기를 타고 다니나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치유 능력 같은 것도 없고.”
F씨는 청평 목회자 모임에서 JMS(기독교복음선교회) 출신 목사들을 만난 얘기도 들려줬다.
“정명석 교주가 쫓기게 되면서 그쪽 목사들 일부가 통일교로 옮겨왔어요. 제가 그들한테 직접 들은 얘기입니다. 그들은 ‘정명석 교주도 엄청난 분’이라며 ‘그런 분이 아닌데 오해 때문에 핍박을 받고 있다’고 했어요. 메시아 개념도 통일교와 비슷하더라고요.”
통일교에 회의가 생기면서도 밥줄이라는 생각에 좀처럼 그만두지 못하던 그를 교회 밖으로 끌어낸 것은 장로들과의 잦은 충돌이었다. 2003년 그는 목회를 그만둠과 동시에 10여 년간 몸담았던 통일교와 인연을 끊었다.
“문선명 며느리 얘기를 목사들은 다 알고 있어요.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못 나오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교인들은 그런 자료나 책을 아예 안 보려 하죠. 그걸 보면 사탄이 역사한다고 믿기 때문에.”
제4부 황선조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회장 인터뷰
“인류의 부모 되신 예수님이 한국으로 재림하시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분은 틀림없이 한국말을 쓰실 것이므로 한국어는 바로 조국어가 될 것이다. 따라서 모든 민족은 이 조국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리하여 온 인류는 한 나라 말을 사용하는 한민족이 되어 한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이다.”(원리강론 ‘재림론’)
8월10일, 황선조(51)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회장은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11시에 메리어트호텔에서 ‘2006피스컵여자축구대회’ 조 추첨이 있기 때문이었다.
“기업이란 평화를 위한 도구”
황 회장의 표정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종교와 기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는 통일교의 실무책임자. 통일교 내에서 황 회장은, 기업식으로 표현하자면 2세대 가신그룹의 리더로 평가받는다.
-통일교는 종교로서는 드물게 큰 기업을 일구었고, 여러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단으로 몰리면서도 창시한 지 50년 만에 이토록 성장한 종교는 세계사에서도 드문 것 같습니다. 그 비결이 뭔가요.
“출발은 분명히 종교로 했지만, 언론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고, 통일운동 순결운동 참가정운동 구호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 활동무대가 전세계라는 점도 중요한 특징입니다. 한마디로 문선명 총재의 리더십에 의존해 성장, 발전했다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그 리더십의 근간은 첫째, 그분이 가르치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둘째, 그분의 리더십은 철저하게 삶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셋째, 과학적인 범위를 넘어선 영적인 리더십이에요. 넷째는 역사를 보는 특별한 혜안입니다.”
기업활동의 성쇠에 대해 묻자 황 회장은 “우리가 하는 일을 기업논리로만 보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기업이란 결국 평화를 위한 도구예요. 우리가 기업활동 하는 목적은 기술의 평준화를 이뤄 제1세계와 제3세계를 평등화하는 것입니다. 대북통일사업도 기업이 통일의 도구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경제논리와 상관없이 꾸준히 하고 있는 겁니다.”
최근 몇 년간 통일교의 기업활동 중 가장 돋보이는 것으로는 용평리조트 인수, 센트럴시티 운영, 화양프로젝트(여수 국제관광레저단지 개발), 여의도 개발 등을 꼽을 수 있다.
-여수사업은 기독교계에서 반대한다는데 잘 추진되고 있나요.
“상식을 넘어선 그들의 행동에 대해 상식적으로 답변할 가치를 못 느껴요. 경제자유구역과 관광특구지역 두 군데서 동시에 진행하고 있습니다. 경제자유구역 개발은 300만평의 땅에 향후 10년간 1조5000억을 투자해 해양문화관광단지를 만드는 겁니다. 4단계로 진행되는데 올해 안에 1단계 사업에 착공합니다. 관광특구지역의 경우 40만평 규모의 부지에 특급호텔과 콘도, 골프장, 워터파크 등을 세울 계획입니다. 바로 지난주에 건축허가가 났으니 9월부터 건물이 올라갈 겁니다.”
여의도에 국제타운
- 여의도(여의도 22번지, 1만4000평, 현재 주차장)에 세계선교센터를 만든다는 계획은 어떻게 됐나요.
“땅은 우리가 대고 개발은 외국회사가 하기 때문에 제가 말하기 적절치 않아요. 여의도에 가장 현대화된 국제 규모의 타운이 개발될 것이다, 여기까지만 말하죠.”
통일교 관련 주요 국내 기업체는 다음과 같다. 통일스포츠, 세일여행사, 정진화학, 일성레저, 일흥조선, 아시아포럼, 월드 메탈, 통일항공, INP중공업, 애생, 세일로, 선원건설, 우리몰, 피스월드메디칼, 성원, 통일중공업, 한국티타늄공업, 일신석재, 일성종합건설, 일화, 태안, 동인해운, 일상, 현문, 청심병원.
국내외 문화예술단체로는 리틀엔젤스예술단, 유니버설발레단, 국제문화재단, 선버스트경음악단, 새소망합창단, 고 월드 브라스밴드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선문대, 선화예술중고, 경복초등, 선정여자실업고, 미국통일신학대학원 등이 꼽힌다. 언론 쪽도 만만찮다. UPI통신과 ‘워싱턴타임스’를 갖고 있으며 한국의 ‘세계일보’를 비롯해 8개국에서 일간신문을 발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부동산이 상당히 많죠? 태안반도에 20만평, 제주에 40만평, 파주에 공원묘지 50만평… 이거 다 맞나요. 항간에서 ‘부동산 제국’이라고 하는데요.
“저희가 부동산을 비교적 많이 갖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국내에서 부동산바람이 불기 수십년 전에 매입한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는 부동산을 산 다음 한 번도 매매한 적이 없어요. 그 힘든 IMF 금융위기에도 안 팔았어요. 우리는 부동산을 경제적 이익과 사업적 기반으로 삼지 않는다는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우리는 꿈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 꿈은 모든 인종과 국가와 이념과 종교를 초월해 인류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에요.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부동산을 준비했던 겁니다. 한 예로 이천에 80만평의 땅을 마련한 것도 세계 최대의 대학을 짓기 위해서였어요. 정부가 허락하지 않아 결국 짓지 못했지만.”
- 평안북도 정주에 평화공원 짓는 사업은 마무리됐나요. 한 30만평 되지요?
“정주는 문 총재님의 생가가 있는 곳이에요. 1991년 문 총재께서 김일성 당시 주석을 만났을 때 김 주석이 문 총재의 생가를 잘 보존하라고 지시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한창 추진되다가 남북관계의 복잡한 사정으로 현재는 사업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 땅은 여전히 소유하고 있나요.
“그쪽에서 ‘만약 공원을 조성한다면 그 정도 규모는 줄 수 있다’고 해서 나온 얘기지 우리가 산 적은 없어요.”
황 회장은 북한에 진출한 평화자동차사업을 설명하면서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가장 오랫동안 가장 다양하게 대북사업을 해온 게 우리”라며 “이런 점을 제대로 평가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교인 수가 얼마나 됩니까. 제가 들은 바로는 한국에 3만5000명, 일본엔 그보다 약간 많고, 다른 외국은 합쳐봐야 얼마 안 된다는데…. 대외적으로는 40만이라고 주장하시죠?
“대략 30만이라고 얘기하고 있죠. 근거가 있어요. 외교통상부에 등록된 국제가정 수입니다. 한국으로 시집온 외국 여자의 가정이죠. 우선 한일 가정이 1만입니다. 제3국 가정을 합하면 1만8000가정쯤 됩니다. 가족을 포함하면 이것만 해도 3만5000명은 넘지 않겠습니까.”
“종교는 사회평화 실현에 적극 참여해야”
그러잖아도 그런 질문을 하려던 차였는데, 황 회장이 “왜 통일교는 종교이면서 영역 밖의 일을 많이 하느냐는 질문을 해주면 좋겠다”고 선수를 쳤다.
“종교의 위상을 평가하는 기준은 양이 아니라 질이어야 합니다. 얼마만큼 사회에 공헌했는지, 얼마만큼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는지…. 이 기준으로 평가하면 우리만한 종교가 없어요. 첫째, 우리는 다른 종교에 대해 문을 열고 있어요. 우리는 세계적인 종교연합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둘째, 종교의 생명성이란 사회참여입니다.
기존 종교는 종교적 영역과 사회적 영역을 분리했어요. 종교는 영적이고 정신적인 분야로 여겼죠.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는 달라요. 인간에게 정신과 육체가 있듯이 정신과 물질은 한 존재의 양면이기에 종교는 사회 속에서 영적이고 정신적인 작용을 해야 한다, 사회 평화를 실현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거죠.
평화운동이나 참가정운동, 순결운동은 전도활동이 아니에요. 종교의 목적은 참된 인간됨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종교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죠. 불교는 불교대로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유교는 유교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목적이 있어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모든 종교가 서로 만나야 하고 화합해야 합니다. 그리고 목적이 달성되면 모든 종교는 문을 닫아야 합니다. 종교 없는 시대가 오는 거죠.
인류의 꿈은 평화입니다. 지금까지 이것을 이루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분야에서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결론은 안 됐지 않았습니까. 그걸 우리가 이뤄가고 있어요.
예컨대 한일간에 결혼한 사람들에게는 한국도 없고 일본도 없어요. 세계가 있을 뿐이에요. 우리는 자식에게 윤리교육을 철저하게 시키고 있어요. 그들의 수가 계속 늘어 세계 각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에서 활동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엄청난 효과가 있겠지요. 이것은 과학적인 증거가 됩니다.”
- 기업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평화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라는 거죠?
“그렇죠. 지금까지 종교는 죽어서 구원받자, 천당 가자, 복 받자를 주장했어요. 우리는 그렇지 않아요. 이 땅에서 네가 메시아가 돼라, 성인이 되라는 겁니다. 이 땅에 평화를 실현한다는 게 얼마나 원대한 꿈입니까.”
- 좋은 뜻을 펼치는 건 좋은데, 현실에서 종종 물의를 일으키더군요. 대표적으로 영감상법(靈感商法)이란 게 있는데요.
“영감상법은 우리가 만든 말이 아닙니다. 일본 언론이 만든 거죠. 그들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대단히 부정적으로 접근해왔어요. 이유가 뭐냐. 우리 통일교가 한국이라는 나라의 의미를 굉장히 강조하잖아요. 일본으로선 불편하겠죠.”
- 민족감정 때문이라는 겁니까.
“그런 게 있어요. 또 하나는 일본이 경제적 강국이다 보니 세계선교를 하는 데 아무래도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것도 탐탁지 않은 거죠.”
- 그렇다 해도 그 판매수법은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항아리에 영이 들었다며 수천만원에 판다는 게.
“일본 언론이 지어낸 말입니다. 우리가 일본에서 판매하는 게 인삼차인데, 고가가 아니라 정상가입니다.”
- 인삼차말고 항아리요.
“단순한 항아리가 아니라 예술작품과 같은 거죠. 도예품 같은 것. 일신석재(통일교 계열회사)에서 돌로 만든 조각품이에요. 예술작품이라는 건 가격 폭이 크잖아요. 돌로 만든 화병도 있고. 개중엔 5000만원짜리도 있더라고요. 예술작품이니 비쌀 수도 있는 거죠.”
- 법원판결에서도 인정됐는데요.
“사실이 아닙니다.”
“아프리카 교인은 16달러만 내라”
- 신도의 훤드레이징(fund-raising)도 문제가 됐지요?
“훤드레이징은 좋은 겁니다. 저도 미국에서 공부할 때 했어요. 한국적 사고로 이상하지 외국에서는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에요. 미국의 훤드레이징 꽃시장은 엄청난 산업이에요.”
- 훤드레이징 수입을 전부 교회 헌금으로 삼는다는 게 문제죠?
“교회 헌금으로 내면 공익사업에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겠습니까.”
- 자발적인 행위라면 문제 삼을 게 아니죠.
“자발적으로 하죠.”
- 자발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생계 차원이 아니라 통일교 교인으로서 꼭 거쳐야 하는 하나의 단계로 인식되는 게 문제죠.
“일종의 훈련으로. 어쨌든 지금은 하지도 않아요. 그때 그 시절 얘기예요.”
- 합동결혼식도 국제평화연대 등 취지는 좋은데 일본에서 무효소송이 제기되고 배상판결까지 나왔어요.
“그런 소송, 나는 모릅니다. 만일 있었다 해도 그건 매우 특별한 경우라는 거죠. 그걸 문제 삼아 합동결혼식을 비판할 수는 없죠. 긍정적인 의미가 얼마나 큰데.”
- 헌금 문제도 짚지 않을 수 없네요. 기독교도 헌금을 강조하긴 하지만, 특히 통일교가 센 것 같아요. 명목도 많고 정해진 액수도 크고. 어떤 이유로 그토록 헌금을 강조하는지. 통일교에서 말하는 탕감조건인가요.
“어느 종교나 헌금은 하죠. 그것 자체를 뭐라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헌금이 심하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그것도 문제라기보다는 그 종교의 특징이라고 봐야겠죠. 입체적으로 보면 탕감의 의미도 있는 거죠. 예컨대 축복받을 때 1만2000원씩 내는 탕감기금이 있어요. 헌금이 죄를 탕감해준다는 면죄부의 의미가 아니라 정성을 모아 내는 거죠. 총생축헌납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16달러를 해도 되고, 좀 더 있는 사람은 160달러, 또는 1만6000달러를 할 수도 있는 겁니다. 또 지금 해도 되고, 나중에 돈이 생기면 그때 가서 해도 됩니다. 아프리카 같은 제3세계는 16달러만 하라고 보낸 공문도 있어요.”
- 죽은 아들을 영계총사령관으로 임명해 사후세계의 영인을 교육한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는데요. 원리강론에 따르면 영인체는 지상생활에서 육신을 통해서만 성장하는 것 아닌가요.
“영인이 지상에서 육신을 통해 성장하는 건 맞아요. 그런데 죽은 후 영계로 가면 거기서 또 자랍니다. 문흥진, 그분에 관한 얘기는 영계에 관한 것이므로 검증하기 쉽지 않습니다. 만일 검증하고 싶으시다면 그분이 영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청평수련소에 가서 40일 수련을 받아보십시오.”
- 원리강론에는 영인체가 영계에서 교육받는다는 얘기가 없는데요.
“우리의 텍스트로는 원리강론만 있는 게 아닙니다. 예컨대 원리강론에는 천일국의 삶에 대한 얘기가 없어요. 원리강론에 없는 얘기는 천성경(문선명 총재 말씀집)에 있어요.
- 제가 교리를 이해한 바로는, 인간이 죽으면 영인체가 분리돼 낙원이든 지옥이든 자신의 등급에 맞게 가 있다가 지상에 재림주가 오면 그때 다들 인간의 몸으로 재림하죠. 그런데 그들이 영계에 있으면서 교육을 받고 좋아진다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얘기가 아니냐는 거죠.
“흥진님의 수련소에서 (교육을 받고) 완성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이 땅에서 교육을 받고 의식이 향상되는 것처럼 영인체도 영계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한다는 뜻입니다.”
“기자님도 메시아 될 수 있다”
- 흥진님의 영이 자신에게 재림했다는 짐바브웨 청년 사건도 있었죠. 신도들에게 죄를 고백하라며 몽둥이로 팼잖아요. 흥진님의 영이 왜 느닷없이 그 사람 몸에 들어가 그런 일을 했나요.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영매자 혹은 무당을 보면 알지만 영적인 교류라는 게 있거든요.”
- 흥진님이 왜 그런 특별한 역사를 했지요.
“시대상황에 꼭 맞는 일이었습니다. 통일교 신도들을 교육할 필요가 있었던 거죠. 몽둥이로 팼다는 건 과장된 얘기고(웃음), 하나의 탕감조건으로 반성의 계기가 된 거죠. 금식도 하면서.”
- 홍난숙씨 얘기도 안 할 수 없네요. 홍씨의 책 내용에 대해 통일교에서 어떤 조치를 취했나요.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라 깊이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아픔의 역사죠. 섭리라기보다는 가정사예요.”
- 개인의 가정사를 파헤칠 생각은 없어요. 그런데 (신도들 사이에서) 참부모의 자녀는 완벽하다는 믿음이 있는 것 같아서요.
“그건 아니에요. 원리에도 나와 있는 대로 각자의 책임분담이 있습니다. 원리에 따르면 인류의 첫 조상인 아담도, 메시아로 오신 예수도 책임분담을 해야 했어요. 참부모이신 문 총재도 마찬가지예요. 참부모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분 말씀은 참부모 당신을 통해서만 구원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구원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건 천지가 뒤집힐 만한 종교개혁입니다. 조 기자님도 메시아가 되고 참부모도 될 수 있다는 거죠.”
- 원리강론에 나오는 메시아와는 다른 메시아네요. 거기선 절대적인 메시아를 말하는데.
“섭리의 중심자로서 다 같이 메시아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 어쨌든 홍난숙씨가 거짓말하진 않았겠죠? 돈 받고 쓴 것도 아닐 테고.
“그러나 제가 추측건대 과장된 부분이 있겠죠. 감정이 쌓여 있으니 어떻게든 흠집을 내려고….”
배석한 안호열 기획국장이 “재판할 때도 미국 내의 반통일교 정서가 크게 작용했다”고 거들었다.
- 재림주(문 총재)가 태어난 게 1920년인데, 그것을 재림주 강림 시기로 보나요.
“그렇게 봅니다, 우리는.”
- 그때부터 종말이 시작된 셈이네요.
“그렇죠.”
- 그럼 지상천국이 시작됐나요.
“시작됐죠. 지금 이 시간 천국이 실현됐습니다. 천국은 나 개인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 말씀을 철저히 믿고 따르는 사람은 이미 개인과 가정에서 천국을 실현한 사람입니다. 그것이 사회로, 국가로, 세계로 확대되면서 천국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 어쨌든 참부모가 오지 않았다면 아무리 회장님이 인격수련을 했다 하더라도 천국이 실현됐다고 할 수 없겠지요?
“그건 그렇죠.”
- 지상천국이 정신적인 차원에서 실현된다는 얘긴가요.
“아니, 현실에서 구현됩니다.”
황 회장에 따르면 청평수련원에서 선포한 천일국이 바로 지상천국이다.
- 브라질 자르딘에 사놓은 땅(1억평)도 천일국의 공간으로 이해하면 됩니까.
“그건 아니고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죠. 신앙촌 같은 곳이 아니고요.”
- 실제로 신도들을 그곳으로 이주시키려고 계획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다들 거기 가서 교육도 받았잖아요.
“이주할 계획은 아니었어요.”
- 그러면 그 넓은 땅을 어떤 용도로 쓰겠다는 거죠.
“여러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남북통일이나 북한의 식량 문제와 관련된 것입니다. 내용을 다 공개할 순 없고요.”
- 지금은 어떤 상태죠.
“계속 관리하고 있어요. 개발도 하고.”
재림주 죽은 후엔 놀라운 영적 역사
- 어쨌든 통일교의 지상천국은 기독교의 천년왕국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네요.
“기독교에서는 천년왕국설, 후천년설, 전천년설 등 설(說)이 많은데, 그런 것과는 분명히 다르죠. 이 땅에서 이상세계를 만들자는 것이고, 또 영원히 사는 것도 아니고 때가 되면 영계로 가는 거죠.”
- 재림주가 계실 때 지상천국이 완성돼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 이상을 세계로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재림주의 책임분담이에요.”
- 언어 통일은 언제 된다는 거죠.
“이미 시작됐습니다. 완성은 안 됐지만. 천국이 시작됐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처럼.”
- 영어로 통일되는 듯싶은데요.
“양적으로는 영어를 쓰는 나라가 많지만, 수적으로는 한국어를 배우는 나라가 더 많습니다. 190개국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어요.”
- 2012년까지 조국을 해방시킨다는 건 또 뭐죠.
“그건 어디서 아셨어요? 꼭 우리 식구 같네. 전에 통일교 다니신 것 아니에요?(웃음) 2012년까지 이 땅에 천국의 기반을 잡는다는 뜻이죠. 천일국을 지향하는 185개국의 섭리중심 세력이 제도적으로 안착해서 사회운동을 일으킬 수 있는 틀을 갖추는 겁니다.”
- 문 총재께서 대관식을 하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그 자리에 참여한 사람들이 평화의 왕으로 공인한 거죠.”
- 청평에서 왕권즉위식을 한 것은 무슨 의미죠.
“2001년에 하나님 왕권즉위식을 열었어요. 이 땅에 사탄의 왕국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왕국이 시작됐다는 의미죠.”
- 재림주 되는 분이 돌아가시면 어떻게 되나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 재림주가 오면 모든 영의 재림역사가 일어나고 지상 사람은 육적 구원을 얻는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재림주 사후에도 그런 일이 계속 이어지느냐는 거죠.
“이미 역사 속에 답이 나와 있어요. 2000년 전 예수가 왔다가 죽은 후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아마도 재림주가 영계로 가면 지상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겁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생긴다는 거죠.
“예수가 부활한 후 제자들에게 성령이 역사해 새로운 부흥운동이 일어났잖아요. 재림주가 죽고 나면 훨씬 더 놀라운 영적 역사가 있을 걸로 충분히 예상되죠. 영계가 지상에 더 가까워질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 지상의 역사는 그대로 가고요?
“그렇죠. 육체의 세계는 그대로 진행되죠. 후손도 그대로.”
‘아벨의 유엔’
황 회장은 “재림주가 왔다고 해서 지상 세계가 끝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사탄 중심의 사회질서와 문화가 하나님 중심의 질서와 문화로 바뀌는 겁니다. 끝은 끝인데, 물질세계의 끝은 아니죠.”
- 원리강론에 보면, 재림주가 오면 모든 게 완성되지 않나요. 그런데 말씀대로라면 재림주는 틀만 마련해놓고 간다, 역사는 계속 점진적으로 발전한다는 거네요.
“점진적으로.”
- 그렇다면 예수가 온 거나 재림주가 온 거나 무슨 차이가 있나요. 예수 이후로도 인간의 역사는 점진적으로 발전해왔잖아요.
“저희는 그걸 발전으로 보지 않습니다.”
- 재림주가 있는 동안 다 해결되지 않고 돌아가신 다음에도 계속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재림주가 왔다 가면 영적으로 가히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리라 단언할 수 있어요. 이대로 가면 인류에 희망이 없잖아요.”
- 하나의 언어를 쓴다는 건 결국 하나의 나라, 통일국가가 세워진다는 것인데요.
“우리가 지금 그 준비를 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세계정부를 만들고 있습니다. 세계를 치리(治理)하는 기구와 제도를. 아벨의 유엔을. 천주평화연합이 그겁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유엔의 힘은 군사적인 게 아니라 사랑과 봉사, 섬김의 힘이에요.”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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