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향긋한 냄새가 코를 자극합니다.
옆을 보니 갈색 매끈한 탁자위에 아까 아까 가져다 놓은 커피 한 잔이 피어오르던 따슨 김은 다 날아가 버렸고,식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다 식어버렸습니다.
누군 뜨거운 맛에 커피를 마신다 하더이다만, 그래도 식어버린 커피도 맛있습니다. 뜨거운 걸 싫어하는 분들이라면 그 식은 커피가 꽤 마음에 들 것입니다.
한가위라고 부르는 추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똑 같은 '하루'이지만 사람들은 그 날을 이름을 지어 부르며 축제같은 차례를 지내곤 합니다.
요즘 시골 어른들은 하나같이 허리가 꼬부라져 걷기가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조상님들을 위해 차례상을 차리러 먼 오일잘엘 가서 차례준비를 합니다.
진주댁은 그 오일장엘 갔습니다.
고사리도 사고, 콩나물도 한 봉지 샀습니다. 부르는 게 값이라 코끝이 아렸습니다. 그래도 살 건 다 샀습니다. 그외 여러 가지를 사서, 봉지봉지 담아 밀고 다니는 유모차 같은 수레에 실었습니다.
시외버스도 하루에 두어번 밖에 오지 않아 그걸 놓지면 미아가 되기 십상이라 서둘러 허둥지동 시간이 부족할까 싶어서 노심초사,값을 다 따지지 못했습니다.
차례상에 큰 생선을 놓아야만 나중 내 자식이 큰 사람이 된다 하여, 조기, 민어 그리고 도미 한 마리씩 사다보니 돈이 들었던 작은 가방이 푹 쪼그라들었습니다. 아끼고 아껴두었던 비상금도 다 써버려야 할 형편이 되었습니다.
진주댁은 시골 생활만 해서인지 카드라는 것을 모릅니다, 어찌됐든 현금으로 물건을 사고 현금으로 계산하다보니, 어느 순간 텅 비어가는 손가방안을 보고 또 코끝이 찡해집니다.
진주댁은 커피를 꽤나 좋아합니다.
차례상을 다 본 후, 시간을 보니 버스올 시간이 제법 남았습니다.
조상님들을 위해 돈을 많이 썼지만, 자신을 위해서도 뭔가를 한 가지라도 해야 겠다 생각했습니다. 둘레둘레 둘러보았습니다.
시골 장터에는 유일하게 다방이 한 곳 있습니다. '별다방'입니다. 그 다방에는 별이 수두룩할거라 생각하면서 그 별 하나라도 따가야지 하며 웃음 띤 얼굴로 다방으로 향했습니다.
구부러진 허리를 다잡고 꽃다방으로 들어섭니다.
"어서 오이소!"
다방에서 일하는 늙지도 젊지도 않은 여인네가 반겨줍니다. 늙은 할매가 다방에 들어서도 그녀는 반가운가 봅니다.
대체나 다방 안은 아무도 없고 파리만 날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주댁이 커피를 사 마시러 왔을 거란 생각보다, 누구를 찾아온 것 같았나 봅니다.
"누구 찾아오셨어요?"
그래도 그 여인네는 싫어하는 내색은 않아서 고맙다고 진주댁은 생각했습니다.
"여기 커피 한 잔만 주이소."
진주댁은 적당한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고 그렇게 소리쳤습니다, 아주 당당하게!
커피는 비린내 나는 조기, 민어, 도미보다 몇 백배 향기롭습니다.
진주댁은 행복했습니다.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