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주작산 ( 朱雀山 428m)
♣ 소개 / 특징 / 볼거리
높 이 : 428m
위 치 : 전남 강진군 신전면, 해남군
◉ 주작산(朱雀山)
전설속의 산 주작산(주작(朱雀)은 남방을 지키는 신령인데, 주조(朱鳥)라고도 한다. 주조는 예로부터 붉은 봉황을 형상하여 무덤과 관 앞 쪽에 그렸던 신비스러운 새다)은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날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주작산의 형상은 해남 북일면 오소재에서 신전 어관 영수리 금학동 뒤편의 능선을 주작의 오른쪽 날개, 신전초등학교 뒤편의 산봉우리는 주작의 머리, 신전 수양리에서 도암 석문리에 이르는 능선은 주작의 왼쪽날개, 해남 옥천 첨봉에서 덕음산에 이르는 능선이 주작의 몸통)을 뜻한다.
주작산은 400m 조금 넘는 낮은 산이지만 그 웅장함은 수천 미터가 넘는 산 못지않다. 10m가 넘는 절벽위에 우뚝 솟은 수많은 암봉을 밧줄을 타고 넘나들며 칼날 능선을 거닐 때 오금을 절이면서도 쾌감을 느끼고, 천태만상으로 빚어진 만물상을 보면서 조물주의 능력에 감탄하고, 부드러운 억새 능선 길을 걸으면서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산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톱날 같은 암릉 구간을 한번 들어서면 한 고비 한 고비 넘어갈 때마다 왔던 길이 너무 힘이 들어 되돌아갈 엄두가 나질 않고 눈앞에 펼쳐진 암릉들이 자태를 뽐내며 손짓해 어쩔 수 없이 종주를 해야 만이 나올 수 있는 등산코스이기에 뒤돌아 갈 수 없는 인생길 같다.
주작산 줄기는 북으로 덕룡산(432.9m)과 석문산(272m) - 만덕산(408.6m)까지 이어진 긴 능선의 일부 구간이다. 이 산자락의 대부분 구간은 바위 봉우리와 벼랑으로 형성되어 보는 맛이 탁월하다. 특히 주작산 구간은 톱날 같은 암릉이 길게 이어져 아기자기한 산행의 묘미가 뛰어나다.
주작산의 정상에서 작천소령 북쪽 능선에 올라 바라 보는 강진의 산하 또한 일품이다. 진달래가 피면 능선 곳곳의 바위 암릉이 온통 빨갛게 물든 것처럼 바위와 어우러진 환상의 진달래 산행을 할 수가 있다.
곳곳에 긴 바위능선이 많고 정상에 서면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온다.특히 가을에는 산 아래 펼쳐진 논정 간척지와 사내 간척지의 황금 물결이 볼만 하다.겉으로 드러난 이 암맥은 곳곳에 길게 암릉을 형성하고 있어 멋진 남해 조망을 제공하고 산행에 재미를 더하지만 때때로 위험한 곳을 노출시키기도 한다.
주작산은 주작이 머리를 서쪽으로 돌린 형상을 하고 있어 이는 마치 먼 남해바다를 향해 날아가는 봉황새의 모습이다.멀리서 보면 덕룡산처럼 날카롭지 않고 두리뭉실하다. 그러나 이 산을 직접 올라 본 사람은 첩첩이 이어진 날카롭고 거친 암릉에 그만 혀를 내두른다.
해남과 강진의 경계를 이룬 주작산(약 475m) 능선은 전형적인 암릉길이다. 그동안 지척에 있는 두륜산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지만 특유의 거칠고 까탈스런 바윗길 덕분에 이제 남도의 대표적인 암릉산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주작산은 두륜산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산맥이 오소치에서 멈춘 뒤, 거친 기세로 솟아 오른 바위능선 한 귀퉁이에 솟아 있다. 그것도 주능선이 아닌 동쪽으로 조금 삐져나온 지능선 상에 위치한다. 그래서 주작산 산행은 이 주봉을 오르기보다 오소재 - 작천소령으로 연결되는 산줄기 전체를 타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작산 산행은 접근이 편리한 오소재에서 시작해 작천소령으로 답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초창기에는 산이 거칠고 길도 없어 10시간 이상 걸렸지만, 이제는 우회로가 많이 생겨 시간이 많이 단축됐다.
건각들은 주작 - 덕룡산 줄기를 하루에 답파하기도 한다. 위험한 구간에는 어김없이 로프를 매어 놓았지만, 아직도 아찔한 구간이 많으니 초심자가 낀 팀은 주의해야 한다.
주작산은 조선시대 지리지인 여지도서(1759~1765) 강진현편에 처음으로 등장한 산이며, 다산 정약용 선생의 외손인 윤기정의 동환록(1859)에 주작산은 덕룡산(德龍山)으로 나타난다.
원래 주작은 봉황처럼 상서로운 새의 상징으로 풍수지리학상 좌청룡,우백호,북현무와 더불어 사현신으로 남쪽의 최전방을 지켜주는 신장(神將)으로 통하고 있다.따라서 주작산은 한반도의 최 남단을 떠 받치는 영산(靈山)이라 할 수 있다.
옛부터 이산에는 8명당이 있다고 하여 풍수지관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데, 장군대좌(將軍大座), 노서하전(老鼠下田), 옥녀탄금(玉女彈琴), 계두혈(鷄頭穴), 정금혈(井金穴), 월매등(月埋燈), 옥등괘벽(玉燈掛壁), 운중복월(雲中覆月) 등의 8개 대혈을 일컬음이다.
▶ 산행코스
A코스 : 오소재 ~ 412봉 ~ 암릉지대 ~ 삼거리 ~ 428봉(진짜 주작산) ~
무덤 - 수양관광농원 ( 약 5시간 )
B코스 : 수양관광농원 ~ 동구리바위 ~ 475봉(가짜 주작산) ~ 작천소령 ~
428봉(진짜 주작산) ~ 무덤 - 수양관광농원 ( 약 3시간 )
▶ 산행지도
◈◈◈ 풍물, 전설 한 마당 ◈◈◈
■ 강진군의 풍물
● 시소바위
마음씨가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앉으면 바위가 기울어져 떨어져 죽는다.
● 흔들(동구리)바위
둥글둥글하다고 해서 주민들 사이에서 일명 '동구리 바위'로 불리는 이 바위는 지름이 4m가량으로, 한 가운데 부분은 칼로 잘라 놓은 듯 금이 가 있는 점도 신비롭다.
그것도 절벽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이다.설악산의 흔들바위를 능가하는 크기에 서있는 장소는 수십 m 절벽 바로 끝이어서 건들기라도 하면 수백 m 산 아래로 구를 것만 같다.
65톤 가량의 무게로 추정되는데, 바위 밑에 60cm의 돌멩이가 괴고 있어 특이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어 '자연의 신비'다. 게다가 바위 중간 부분에 가로로 금이 가 있어 거대한 가마솥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 지역을 관할하던 덕망있고 신령같은 장수(군)가 있었는데 이곳 주민들이 온순하고 스스로 순응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장수가 존재할 이유가 없어, 갑옷은 동구리바위속에 보관하고 말은 토질과 초목이 기름진 이곳에 풀어둔 채 용(용바위)을 타고 승천해 말은 바위가 되었고, 말의 먹이를 주었던 구시가 가마솥바위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이 동구리 바위는 주민들에게 가뭄이나 재난이 닥쳤을 때 소원을 들어준다는 믿음을 갖게 돼 매우 신성하게 모셨다고 한다.
실제 이 지역 사람들은 가뭄이 계속되어 기우제를 지내려면 자연스럽게 ‘동구리바위나 굴리러가세!’ 라고 말을 한다고 한다.
■ 강진군 소개
● 고려청자 도요지(청자박물관)
소재지: 전남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117
문의처: 061)430-3718
전남 강진군 대구면 일대는 9세기에서 14세기까지 고려청자를 제작하였던 지역으로, 우리나라 청자의 변화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청자의 보고(寶庫)"이다. 이와 같은 중요성으로 1963년 국가사적 제68호로 지정되었다.
이 지역에서 지표조사된 청자가마터(窯址)는 총 188기로, 이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청자가마터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수량이다. 이에 고려청자의 체계적인 보존과 연구를 위하여 1997년 9월 "강진청자자료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이 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청자박물관으로, 고려청자의 수집, 전시, 연구, 교육 등을 통하여 청자문화의 계승발전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기존 박물관과 다른 전시 방법과 유적지 주변에 세워진 역사성으로 현재 추진 중인 공립박물관의 모범이 되고 있다. 또한 박물관 주변에 고려청자를 재현하는 작업장이 세워져 우리나라 청자의 과거 및 현재를 볼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 정약용 유적지(다산초당)
소재지: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문의처: 061-430-3782
강진만이 한눈으로 굽어 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 유배 18년중 10여년 동안을 생활하시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등 600여권에 달하는 조선조 후기 실학을 집대성 하였던 곳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병조참지. 형조참의 등을 지냈으며 1801년 신유사옥으로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다시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처음에는 강진읍 동문밖 주막과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 집 등에서 8년을 보낸 후 1808년 봄에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해배되던 1818년 9월까지 10여년 동안을 다산초당에서 생활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저술을 하였으며, 다산의 위대한 업적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다산초당은 노후로 인해 붕괴되었던 것을 1957년 복원하였고 그 후 다산선생이 거처하였던 동암과 제자들의 유숙처였던 서암을 복원하였다.
다산초당에는 이밖에도 다산선생이 「丁石」이라는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등 다산사경과 다산선생이 시름을 달래던 장소에 세워진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있다
● 김윤식(영랑생가)
소재지: 전남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211-1
문의처: 061-430-3185
영랑 김윤식 선생은 1903년 1월 16일 이곳에서 김종호의 2남 3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에는 채준으로 불렀으나 윤식으로 개명하였으며 영랑은 아호인데 문단활동시에는 주로 이 아호를 사용했다.
영랑 선생은 1950년 9월 29일 작고하기까지 주옥같은 시 80여편을 발표하였는데 그중 60여편이 광복전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이곳에서 생활하던 시기에 쓴 작품이다.
영랑생가는 1948년 영랑이 서울로 이거한 후 몇 차례 전매 되었으나 1985년 강진군에서 매입하여 관리해 오고 있는데 안채는 일부 변형 되었던 것을 1992년에 원형으로 보수하였고, 문간채는 철거 되었던 것을 영랑 가족들의 고증을 얻어 1993년에 복원하였다. 생가에는 시의 소재가 되었던 샘,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 등이 남아 있으며 모란이 많이 심어져 있다
● 백련사
소재지: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246
문의처: 061-432-0837
백련사의 본래 이름은 만덕산 백련사이며 조선후기에 만덕사로 불리우다가 현재는 백련사로 부르고 있으며 신라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고려명종(1170년)때 원묘국사 요세에 의해 중창되었다.
고려 후기에 8국사를 배출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8대사가 머물렀던 도량이며 고종 19년(1232년) 에 원묘국사 3세가 이곳에서 보현도량을 개설하고 백련결사를 일으킨 유서 깊은 명찰이다. 대웅전은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집으로 겹처마인 다포식 건물이다.
내부에는 목조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 하고 있다. 이 삼존불은 중앙 본존불이 석가여래이기 때문에 당연히 좌우의 불상은 보살상이 배치 되어야 하는데도 여래상을 안치한 점이 특이하다
● 무위사
소재지: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1174
문의처: 061-432-4974
무위사는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 39년(서기 617) 원효대사에 의해 당초 관음사로 창건되었다고 하나 명확한 근거는 없다.
다만 신라시대부터 무위갑사란 이름으로 불려 왔던 사실은 경내에 현존하고 있는 선각대사편광탑비명에 의해 알려지고 있다.
무위사에 현존하는 대부분의 건물은 네번째 중건인 서기1555년에 건립된 것이나 극락전 만은 최근(1956년경)에 실시된 보수공사에서 보존 후벽의 벽화 명문에 "십이 병신삼월초길 화성"이란 기록이 판독됨으로써 성화 12년(서기 1476년)보다 앞서는 건물일 것으로 막연하게 추정해왔다.
그러나 1983년 옥개부 이상을 해체 보수할 때 중앙간 종도리 장혀에서 "선덕오년"이란 묵서명이 발견됨으로써 이 건물이 세종 12년(1430)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건물 내부에는 전혀 기둥이 없는 널찍한 공간을 이뤘고 내부 벽에는 여러 보살 및 천인상을 그린 벽화가 있는데 당대 인물화가인 오도자의 신필이라고 전해 오고 있다
● 전라병영성
소재지: 전남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
문의처: 061-430-3180
전라병영성(全羅兵營城)은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설치되어 고종 32년(1895년) 갑오경장까지 조선조 500여 년간 전라남도와 제주도를 포함한 53주 6진을 총괄한 육군의 총지휘부이다. 그러나 1894년 갑오농민전쟁(동학)을 맞아 병화로 소실되었고, 이어 1895년 갑오경장의 신제도에 의해 폐영되고 말았다.
병영성 성곽의 총 길이는 1,060m이며, 높이는 3.5m, 면적은 93.139㎡(28.175평)인데, 현재 사적 397호로 지정되어 있다. 병영성 내의 당시 건물이나 유적은 소실되고 없으나 성곽은 뚜렷이 남아 있어, 그 역사적 의의를 고려하여 2010년까지 정비할 계획으로 현재 복원 중이다.
특히 병영성은 서양에 우리나라를 처음으로 소개했던 하멜이 1656년 강진 병영으로 유배되어 7년 동안 살면서 노역했던 곳으로서, 주변의 ‘하멜 기념관’과 함께 하멜 관련 역사문화 유적지로서의 역할도 크다.
● 전라병영성 하멜기념관
소재지: 전남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 109
문의처: 061-430-3181
하멜기념관은 우리나라를 서양에 최초로 알린『하멜보고서』의 저자 헨드릭 하멜(Hendric Hamel)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고, 강진과 네덜란드 호르큼 시와의 활발한 문화적 교류를 위해 개관하였다.
타원형의 목조건축으로 지어진 왼쪽의 전시관은 하멜이 표착한 남도의 섬을 상징하며, 오른쪽 각진 형태의 건물은 망망대해에 표류한 조난선 스페르베르(Sperwer)호를 상징한다.
전시실은 『하멜보고서』를 비롯하여 하멜의 생애, 17세기 조선과 네덜란드의 사회·문화·역사적 상황, 그리고 강진군과 네덜란드 호르큼 시의 자매결연 등 각 주제별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있다. 하멜기념관은 1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 중 70여 점의 유물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하멜기념관은 하멜의 조선 표착의 역사적 의미 및 17세기 국제 교류사의 조사연구, 유물 전시를 통한 교육, 나아가 한국·네덜란드 간의 문화적 교류 증대를 위해 지역 전문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 월남사지3층석탑
소재지: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854
문의처: 061)430-3224
월남사터에 남아있는 삼층석탑으로, 단층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바닥돌 위에 기둥 모양의 돌을 세우고 그 사이를 판돌로 채운 뒤 넓적한 맨윗돌을 얹어 조성하였다. 탑신부의 1층 몸돌은 매우 높으며, 2층 몸돌부터는 그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기단보다 넓게 시작하였으며, 밑의 받침은 3단을 두었다. 지붕돌의 윗면은 전탑에서와 같이 계단식 층단을 이루었고, 추녀는 넓게 수평의 직선을 그리다가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다. 탑신의 모든 층을 같은 수법으로 조성하였고 위로 오를수록 낮은 체감률을 보인다. 탑의 머리부분에는 받침 위에 꾸밈을 위해 얹은 석재 하나가 남아 있다.
이 탑은 백제의 옛 땅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백제 양식을 많이 따르고 있다. 기단 및 탑신의 각 층을 별도의 돌로 조성한 것이나 1층의 지붕돌이 목탑에서처럼 기단보다 넓게 시작하는 양식 등이 그러한 특징이 된다.
대표적인 백제탑이라 할 수 있는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 제9호)과 비교해볼 수 있으며, 전라도 지역에서는 규모나 양식으로 매우 중요한 석탑이라 할 수 있다
● 남미륵사
소재지: 전남 강진군 군동면 풍동리 580
문의처: 061)433-6460
세계 불교 미륵대종 총본산인 남미륵사는 1980년에 석 법흥 스님이 창건하였다. 이후 법흥스님이 30여 년 동안 새로운 건물을 중창하고, 꽃과 나무로 사찰 안팎을 가꾸어 현재의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경관을 갖게 되었다.
현재 남미륵사에는 동양 최대 규모의 황동 아미타불 불상이 있으며, 일주문에서부터 경내에 이르는 길에는 500 나한상이 배치되어 있다.
이 밖에도 대웅전, 시왕전, 33관음전, 만불전, 천불전, 팔각 13층 석탑, 사각 33석탑, 18m 해수 관음보살, 5m 부부코끼리상 등 아름다운 시설물이 풍동 마을 경관과 잘 어우러져 불자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 마량미항
소재지: 전남 강진군 마량면 마량리 987
마량항은 조선초기 태종조 1417년 마두진이 설치되어 만호절제도위가 관장하였고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겪을 당시 거북선 1척이 상시 대기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유서깊은 만호성터가 남아있고, 까막섬이 수묵화처럼 떠있으며, 고금도와 약산도가 든든하게 풍랑을 막아주는 마량포구는 1종 어항으로서 천혜의 미항으로 손꼽히고 있다.
낮보다 밤의 정취가 아름다운 이곳 마량미항에서는 매주 토요일 아름다운 항구와 관광객이 하나되는 흥겨운 음악회가 열린다
● 금릉경포대
소재지: 경포대 관리소
문의처: 061-432-7921
강진의 북쪽 영암군과의 경계를 이루는 월출산은 옛부터 남쪽의 소금강이라 불리워 왔다. 이 월출산의 남쪽 계곡이 바로 금릉 경포대로 불리는 또 하나의 강진 절경이다. 월출산은 천황봉과 구정봉을 이은 능선을 경계로 해서 그 북쪽은 영암, 남쪽은 강진이 된다.
경포대쪽의 월출산은 산세 가 북쪽의 그것에 비해 아주 순탄하며, 2km에 걸친 계곡은 주변의 기암괴석과 맑은 계곡물로 절경을 이룬다. 그리고 이곳 경포대 계곡에서 천황봉을 지나 구정봉에 이르는 약 3km에 이르는 등산로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현재 이곳은 1988년 월출산과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입구에는 전라남도 교육위원회가 설치한 청소년 야영장과 태평양화학에서 조성한 녹차 밭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봄이 든다는 월출산을 북쪽으로, 구강포와 바다를 남쪽으로, 그리고 수많은 섬들과 갯벌, 산과 하천, 평야 등 자연이란 항목에서 어느 것 하나 빠진 것이 없는 선택받은 곳이라 할 수 있는데, 금릉 경포대계곡 역시 강진 땅이 간직하고 있는 또 하나의 명승지이다.
설악산과 청송 주왕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암산으로 꼽히는 월출산이 거느린 여러 계곡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계곡미를 자랑하는 금릉 경포대계곡은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에 위치하고 있다.
동해안에 있는 강릉 경포대와 이름이 같아 간혹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금릉 경포대는 바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첩첩산중에 있는 계곡이다. 월출산의 천황봉과 구정봉에서 발원하여 약 2㎞에 걸쳐 흘러내리는 경포대 계곡은 크고 작은 바위 사이로 맑은 물과 곡류 그리고 폭포수가 어우러지는가 하면, 계곡물마저 차디차서 여름 피서지로는 더할 나위없는 곳이다.
● 월출야영장
소재지: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1152-2
문의처: 061-432-5416
국보 10호인 무위사와 인접하여 국립공원 월출산 등산로와 경포대 맑은 계곡 등 주변경관이 수려하므로 청소년 심신 수련의 장소로 적합하다
● 강진다원
소재지: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733
문의처: 061-432-5500
월출산은 큰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산세가 뛰어나며 예로부터 산 주변의 여러 사찰을 중심으로 차나무가 재배되었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은 월출산에서 나오는 차가 천하에서 두번째로 좋은 차라고 극찬한 곳이기도 하다.
월출산 기슭은 해마다 5월 초가 되면 눈이 시리도록 푸른색으로 채색된다. 5월의 강진 다원은 취미로 다도를 즐기는 이들뿐 아니라 일반 나들이객들에게도 관광 명소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방문객들은 단지 관광이나 사진촬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윽한 차 향기에 취하며 녹찻잎을 따보는 이색체험을 할 수도 있다.
◑ 차량 경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