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구역 미사
(연중 제 22주간 금요일 가해)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
“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어려운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주 단순한 이야기이다.
한마디로 신자가 되었으면 신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신자가 되었으면서도 신자답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이 있느냐?
사람에 대한 평가기준과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 여전히 세속적인 기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있는 사람 앞에서는 주눅들은 것 마냥 굽신거리고 없는 사람 앞에서는 여전히 기고만장하여 무시하거나 상종하지 않으려 하는 태도가 그것일 것이다. 많이 배우고 재력이 좀 있으면 합부로 대하지 못하지만 배운 게 미천하고 살림이 넉넉하지, 못하게 살면 얕잡아 보고 쉬이 대하는 습성을 그대로 유지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선에 천주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많은 이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천주교인이 되기를 열망했던 이유는 양반 상놈 가문과 재력에 관계없이 모두를 평등하게 대했고 존중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있는 사람 배운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모두를 동등한 인격으로 대우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 새로운 가르침을 따르는 이의 태도로서 합당하다는 이야기이다.
세속적인 계산법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탈리온법을 알 것이다. 내게 잘해주는 이에게만 잘해주고 내게 못 해주는 이는 미워하고 소외시키며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소위 돈 안 되는 놈들과 상종하지 않겠다는 논리를 버리고 그들마저도 품고 함께하려 노력해야 한다. 어려우면 그들을 위해 기도로 위해주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를 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힘이 센 무리의 편에 서고 가담하게 된다. 그러나 양심에 어긋나고 하느님의 정의에서 벗어난다면 과감하게 그들 무리 안에서 머물지 말아야 할 것이고 나아가 그들 앞에 진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려줄 줄 아는 신념이 필요하다. 한 사람을 비방하고 모함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고 그들이 실세라 하여 그들 편에 서서 잘못된 것을 더 부풀리고 그들이 득세하도록 하는데 일조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대접을 받을 것이다.”
마음안에 어둠의 창고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양심을 어긴 일이나 상대에게 잘못한 일, 상처준 일, 속인 일, 손해 보게 한 일들에 대해 바로잡지 않고 마음 저편에 쌓아두고 살 때가 많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지고 어두워져 가지만 이미 지나간 것들을 다시 돌이켜 해결하기도 어려우므로 그냥 꾹꾹 숨겨둔 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면 우리는 하느님 앞에 떳떳하지 못한 상태로 영적인 성장을 지속시켜나가기 어렵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간음한 여인을 단죄하러 둘러싼 많은 사람들이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씩 물러간 것은 그들이 숨기고 있던 마음의 어두운 창고를 들켰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는 직접적으로 다가가 화해하거나 바로 잡으려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것이 안 되면 고백성사를 본 후 자선과 희생, 인내와 기도로 그것을 기워 갚으려 노력을 함으로써 정화시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두운 창고가 없는 냥 당당하게 시기 질투 모함 갑질을 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 말씀은 이 헌 부대를 찢고 말 것이다.
세속적인 도구들을 계속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욕, 험담, 시기, 질투, 모함, 소외, 무시, 갑질, 교만, 원망, 거짓말, 욕설, 폭언 등과 같은 세상 삶에서 사용하던 많은 방어기재 혹은 공격기재들을 내려놓으려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 아마도 내려놓으려 애쓰려 하면 주변 사람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 이들이 이런 연장들을 그대로 사용하며 산다면 비처럼 내리는 은총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내게 아무런 작용하지 못하게 되어 아무런 성화도 이루지 못하고 이름만 무늬만 신자로 살게 되고 말 것이다. 양보, 희생, 겸손, 인내, 자비, 관용, 기도, 친절, 온유, 정직이라는 하느님의 도구가 내 안에 장착되도록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그 변화가 느리더라도 비처럼 내리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게 작용하여 나를 더 의롭고 성스러운 존재로 변화시켜 갈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새포도주는 곧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받아 모시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을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틀에 그대로 담고 살게 되면 결국 나는 성화를 이루지 못하고 세속인도 신앙인도 아닌 이상한 존재가 되고 말 것임을 일깨운다.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우리는 1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표현처럼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이다.
에제 37,25~27
정화수를 끼얹어 너희의 모든 부정을 깨끗이 씻어주리라. 온갖 우상을 섬기는 중에 묻었던 때를 깨끗이 씻어주고 새 마음을 넣어주며 새 기운을 불어넣어 주리라. 너희 몸에서 돌처럼 굳은 마음을 도려내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넣어주리라. 나의 기운을 너희 속에 넣어주리니, 그리되면 너희는 내가 세워준 규정을 따라 살 수 있고 나에게서 받은 법도를 실천할 수 있게 되리라.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인 우리에게 바로 이 일을 해 주시고자 하신다.
그러므로 쉼 없이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은총을 들어 마시고 그 기운을 쬐는 시간을 허락해 드려야 한다. 그것은 기도하는 것이요 그분과 대화하는 일이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과거 그중에 특히 흑 역사, 잘못된 습관들과 관행들을 모두 던져버리고 새로운 마음과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주님 함께해주시고 이끌어주십사 기도하자~
잠시 묵상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쉼 없이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은총을 들어 마시고
그 기운을 쬐는 시간을 허락해 드려야 한다.
그것은 기도하는 것이요 그분과 대화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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