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위구르 실크로드 10일차 '26.6.12 화염산 베제클리크 천불동( 火焰山博孜克里克 千佛洞)
□ 여행트랙
<이동경로>
<화염산 답사 : 고창고성 ~ 베제클리크 천불동>
□ 여행일시 : 2026년 6월 12일 금요일 맑음, 영상 38 ~ 44도
□ 여행코스 : 우루무치 화령대주점 ~ 천산대협곡 ~ 고창고성 ~ 화염산 천불동
18:25 고창고성 출발 (高昌故城, 약-61m, 점심 식당에서 240.6km, 4:25)
18:55 베제클리크 천불동 도착 (博孜克里克 千佛洞, 약152m, 258km, 4:55) : 약 40분간 석굴을 관람한다. 20, 26, 27, 31, 33, 39호 석굴을 공개한다
19:35 출발
□ 동 행 인 : 등산지부 31인, 산바라기투어 임경성 부장, 현지 가이드 김정길
<베제클리크>
오아시스 계곡이 화염산을 가로질러 투루판으로 연결된다. 어떻게 이런 거대한 불꽃같은 산줄기인 화염산을 오아시스가 뚫고 지나갈 수 있는지 생각할 수가 없겠다. 벌거벗은 산 가운데에 물이 흐르며 호양나무가 파랗게 자라고 있다. 이 계곡에 석굴을 지은 이들의 신앙심을 볼 수 있다. 석굴마다 불상 뿐만아니라 벽화가 있었는데, 지금은 도난당하거나 훼손된 후의 유물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석굴마다 관리인들의 눈초리가 아주 매섭다.
공개된 석굴로 들어가서 보고 나오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은 것은, 현재 남아있는 유물이 거의 없어 텅텅 비어있고, 벽화도 없어졌거나 훼손되어 볼 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관리인들이 있어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도 없고 가이드의 설명은 동굴에서 에코가 심하여 들리지 않는다. 단지 동굴 밖에서 이 주변의 환경을 즐길 수 밖에 없다. 화염산과 천불동 계곡이 설악산의 천불동 계곡과 이름이 같지만, 주변 환경은 완전 다른다.
천불동에서 올라오니 이 뜨거운 사막의 모래에서 계란을 구워팔고 있다. 정상석이 있다고 하는데 근처도 가지 못하고, 대신 이 모래무 더기 앞에서 인증하고 선선으로 이동한다.
<개요도>
베제클리크 천불동은 고창고성에서 15km 북쪽에 위치한다.
화염산은 천산산맥이 우루무치 다반청 고개를 넘어가다가 남쪽으로 분기하여, 투르판 분지를 지나가는 작은 산줄기이다. 이 산의 남쪽에 고대 국가가 설립되어 고성이 세워졌고, 사막의 오아시스 역할을 하며, 경제와 생활의 중심지가 된다. 그리고 불교문화는 오아시스 강물을 따라 석굴이 세워졌다.
중국 신장위구르(新疆維吾爾) 자치구 투루판 지역에 있는 7∼12세기 석굴로, 남북조시대 후기에 창건된 후 번성한 불교유적지다. 쿠무타크사막 베제클리크'는 위구르어로 '아름답게 장식된 집' 혹은 '그림이 있는 곳'을 뜻한다. 화염산의 뜨거운 열기를 피해 무투구(木头沟) 계곡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굴을 파고 세운 석굴 사원이다. 실크로드 불교 예술의 정수로 남북조시대 (서기5~6세기)부터 시작되어 당, 오대, 송, 원나라에 이르기까지 약 700년 동안 조성되었고, 인도,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국 중원의 양식이 절묘하게 혼합되어 있다. 특히 9~13세기 고창 위구르왕국 (Uighur Kingdom of Qoco) 시기에 가장 번성하며 찬란한 불교 문화를 꽃피웠다. 벽화 속에는 부처뿐만 아니라 공양을 바치는 왕족, 귀족, 그리고 서역인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 당시 실크로드의 다민족 문화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천연 광물 안료를 사용하여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붉은색, 푸른색 등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가 보는 베제클리크는 과거의 화려함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지는 못하다. 14세기 이후 이 지역이 이슬람화되면서 우상 숭배 금지 교리에 의해 벽화 속 인물의 눈이나 얼굴이 긁혀 나가는 수난을 겪었고, 20세기 초, 영국의 스타인이나 독일의 르코크 등 서구 탐험가들이 벽화를 통째로 뜯어갔다. 특히 독일로 옮겨진 많은 벽화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소실되는 비극을 맞이하기도 했다.
실크로드 (6∼13세기)의 대표적인 불교 유적으로서, 전체 80여 개 석굴 가운데 50여 개의 석굴 내부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이 베제클리크 석굴의 벽화는 둔황(敦煌) 석굴 벽화와 함께 실크로드를 대표하는 유산으로, 불교적인 벽화와 위구르족 마니교적인 벽화가 함께 보존돼 있다. 베제클리크 천불동은 14세기 이슬람교가 전파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는데, 1898년 러시아의 클레멘츠에 의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 은 2009년 2월 신장위구르자치구와 5년 일정의 베제클리크 석굴사원 벽화 조사 및 보존협정을 체결하고 그해 9월 조사단이 현지로 출발했다. 이에 한국은 세계 최초로 신장위구르 베제클리크 석굴벽화 보존 작업에 들어간 바 있다.
투루판은 실크로드에서 우전국(于阗国, 지금의 호탄), 구자국(龟兹国, 지금의 쿠처)과 더불어 불교 문화가 활짝 꽃피웠던 곳이다. 그 증거가 바로 베제클리크 천불동이다. 훠옌 산 아래 목두구(木头沟, 무터우거우) 계곡 절벽을 따라 ‘신장에서 가장 큰 불교 석굴’이 조성됐다. 6세기부터 13세기 말 고창 위구르 왕국이 멸망하기 전까지 꾸준히 조성하여 총 83개에 달했으며, 현존하는 석굴은 57개이다.
관광객에게는 20, 26, 27, 31, 33, 39호 석굴을 공개한다. 그러나 막상 들어가면 온전한게 없다. 남아 있는 불상과 벽화는 머리가 잘렸거나 눈을 도려낸 것들뿐이다. 벽화와 불상은 2차례에 걸쳐 처참하게 파손되었다. 14세기 투루판이 이슬람 영향권에 들면서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교도들이 파괴했다. 더 막대한 훼손은 20세기 초 독일의 르코크와 그륀베델 탐험대가 저질렀는데, 그들은 원하는 벽화만 정교하게 잘라서 가져갔다.
<여행앨범>
18:25 고창고성 출발 (高昌故城, 약-61m, 점심 식당에서 240.6km, 4:25), 버스 안에는 에어콘이 빵빵한데, 외부온도는 43도를 가리킨다.
18:40 투루판(약 -57m, 246.1km, 04:40), 투루판 시내를 지나간다.
화염산이 보여진다.
화염산은 천산산맥이 우루무치 다반성 고개를 지나 남쪽으로 분기하여 투루판 분지의 중앙 부분을 가로지른다. 서쪽의 타오얼계곡(桃尔沟)으로 끝나고, 남서쪽으로는 아이딘호수(艾丁湖)와 마주한다. 길이는 약 100km, 폭은 5~8km이다. 산 산맥의 지류 중 하나로, 5천만에서 6천만 년 전 히말라야 시대에 형성되었으며, 수백만 년에 걸쳐 지각의 횡단과 자연의 침식으로 남긴 수많은 습곡 지형과 협곡을 형성했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산산현의 투유거우 근처로, 해발 831.7m이다. 중국에서 가장 더운 지역으로, 여름 기온은 47.8°C에 달하고, 화염산의 직사광선으로 기록된 최고온도는 82.3°C에 달한다.
화염산을 가로지르는 계곡으로 도로가 뚫려있어 빙 돌아가게 된다.
입구에는 고대 유적이 아닌 현대식 불교 조각품이 보인다.
화염산 부근은 강줄기를 빼고는 모두 풀 한포기 없는 광야이다.
18:55 베제클리크 천불동 도착 (博孜克里克 千佛洞, 약152m, 258km, 4:55), 강줄기의 남쪽에 있는 천불동을 보기 위해 계단으로 내려간다.
두 산 사이에 초승달 모양의 오아이스가 있고, 그 남쪽에 천불동이 있다.
공개되어 있는 석굴을 찾아간다.
15호 석굴은 잠겨있다.
공개되어 있는 석굴의 벽화는 도난당하고, 남아있는 벽화도 훼손되어 있어 보기가 안쓰럽다.
여행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현지인 악사를 보게 된다.
동쪽 방향의 끝으로 와서 되돌아간다.
내려왔던 곳을 바라본다.
화염산 한 가운데로 흐르는 강줄기는 트루판의 중심을 지나가게 된다.
강줄기 건너편의 봉우리도 화염산으로 불리는 것 같다. 현지에서는 어느 특정 봉우리를 지칭하지 않고 뭉뚱그려 화염산이라고 칭한다.
석굴 관람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올라간다.
주차장으로 올라가면서 천불동을 내려다본다.
주차장에서는 양쪽에 풀한포기 없는 황량한 산 사이에 있음을 알게 된다.
19:35 베제클리크 천불동 출발, 화염산의 뜨거운 모래에 노른자부터 익은 계란을 하나씩 먹으며, 관람을 마치고 선선(鄯善)으로 이동한다.
화염산은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선선(鄯善)은 광활한 오아시스 도시라서, 농토가 넓은 분지이고, 포도나무 농장이 계속 이어진다.
21:50 선선 식당(약409m, 오후 주행 328.7km, 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