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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09월14일 화요일 장로협회 영성 피드백♥
말 씀 : 장 미 영 목 사 님
♥2010년 09월14일 화요일 장로협회 영성 피드.hwp
오늘 이 시간은 우리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시고 계시는 장로님들과 그의 사모님들이 영성주최가 되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선지자의 권세 앞에 충성하고 봉사하며 헌신하는 잘들입니다.
[계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서머나 교회에게 하신 말씀처럼 잠시 동안의 어려움과 역경이 있을 지라도, 크고 작은 일에 충성 봉사하여서 생명의 면류관을 꼭 받을 수 있는 우리 장로님들과 그의 사모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주님께서 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우리들을 인도하여 주실지 참으로 기대가 됩니다. 이 시간 주님의 마른 막대기로 섰습니다. 너무나도 부족한자, 죄인 중에 괴수, 나약하고 아는 것 없는 나이까지 어린 종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이 자리에 이렇게 섰으니, 성령님께서 친히 함께 하여주시어서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친히 선포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번 30일 회개 켐프를 통하여서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가 아름답게 청산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만이 홀로 영광 받으시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물은 말씀입니다. 이 시간에 주님의 구름으로 나왔으니, 성령의 바람 불어주시어서, 사모하는 그 심령들에게 생명의 단비를 정확하게 쏟아주시어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귀한 옥토밭들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길가밭이 아닌, 가시밭도 아닌, 돌짝밭도 아닌 주님의 말씀과 은혜를 사모하는 진정한 옥토밭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진정으로 좋은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단에 서기 전에 이바다 대표님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십시오.”
그래서 장미영 목사님께서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고 합니다. “용서받고 싶은 사람에게 전하세요. 회개하라. 회개하면 상대방에게 용서의 마음을 주십니다. 주의 종은 일반인과 달라서 마음을 주시면 용서하고 아니면 가슴 치며 기도할 뿐입니다. 이번 캠페인에서 사람보다 하나님의 용서를 먼저 구합시다.”
여러분 회개한자와 회개하지 않는 자의 차이를 아십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회개하면 대적들이 쫓아오더라도 하나님께서 없던 바위를 만들어 주셔서라도 우리들의 피할곳을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회개치 않는 자는 있던 바위도 들어 치워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회개치 않는 자들에게 닥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우리의 죄는 가려집니다. 이것을 바로 도말이라고 합니다.(바를 도, 지울 말) 도배를 하듯이 우리들의 인생의 낙서, 스크레치를 지우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페인트로 덧칠을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의죄를 지워주시지 않고 가리워주시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너무나도 하나님을 속이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죄인의 허물을 사함을 받았어도, 회개의 자세가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그 페인트를 벗기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덮으시려고 페인트 부대를 보내시기도 하시지만, 회개의 자세가 없을 때에는 우리의 죄를 덮고 있었던 페인트 벗기는 부대를 내려 보내시어서, 우리들의 흉허물이 만천하에 들어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렇게 숨을 수 있는 바위입니다. 우리들은 숨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며 도망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습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나만 상처를 받은 것이 아니라, 나에게 상처받은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우리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일곱입니다. 그런데 왜 내가 상처를 주었던 사람 일곱이 모두 다 들어나지 않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허물을 가려 주신 것입니다.
도박판에서는 돈을 딴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돈은 한정적인데 밥값, 술값, 하우스 사용료 등등 계속쓰기만 하니 돈은 줄어만 간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단물 쓴물 다 빨아먹고 우리를 쫓아내버립니다. 이러다보니 뿌리내리지 못하고 겉돌게 됩니다. 좀 더 나은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두리번거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곳을 찾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좀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싶어서 목을 빼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고 합니다. 목회자들과 인터뷰를 해보면, 자신이 죽어도 좋을 정도로 헌신하며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구조대원과 같은 사명자의 자세로 일하는 진짜 목회자는 10%정도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들 먹고 살기 위해서 처자식 때문에, 하다하다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목회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강단에서 말씀 전하시는 분들이 예전에 잘나갔는데 하나님이 부르셔서 요 모양으로 살게 되었다는 말들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는 목회자의 길을 너무나도 초라한 길 인양, 그렇게 말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아무리 잘나가는 길이 있다한들 천국 가는 길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최고의 가치가 있는 길이 바로 천국을 가는 길, 천국을 가게 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화려함과 초라함의 가치관을 어디에 두고 계십니까. 천국 가는 길과 지옥 가는 길, 무엇이 값어치가 있는 길입니까.
야고보의 순교의길, 바울과 베드로가 갔던 그길,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지키려했던 바로 그 영성의 길을 닮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길의 끝이 바로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길에는 바위가 없습니다. 하지만 회개하면 우리가 숨을 수 있는 바위를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길은 어떻습니까. 세상의 길은 숨을 수 있는 바위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회개하지 않으니 대적들 앞에서 그 바위들을 하나님께서 싹 다 치워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망명하거나 도망가거나 감옥에 가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창피해서 얼굴 들고 못사니 자살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육신의 눈은 껍데기인지라, 또다시 껍데기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우리들은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더 이상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려서는 않될 것입니다. 엘리압이, 아비나답, 삼마와 같이 사울의 멋있는 군인이었던, 그리고 외모가 출중했던 이들 형제들 이였지만, 다윗을 택하셔서 기름 부으신 하나님께서는 바로 우리들의 중심을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두고 머뭇거리지 말라는 말이 어려우시다면, 전국과 지옥 어디를 선택할지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더 이상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삶을 살지 말았으면 합니다.
학교에서 우등상을 받기가 쉽습니까. 1등을 해야 받을 수 있는 상이기에, 쉽게 받을 수 있는 상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의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대회는 또 어떻습니까. 세상에서는 썩어질 면류관을 받기위해서, 수년 동안 갖은 노력과 애를 다 쓴다고 합니다. 그래서 금메달을 아니 은메달 동메달이라도 목에 걸려고 목숨 걸고 연습을 한다합니다.
얼마 전 피겨스케이트 선수 김연아씨가 책을 썼다고 합니다. 김연아는 어릴 적에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좋은 스케이트 장비를 구입할만한 형편이 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어려운 여건 가운데 그녀는 자신과의 싸움을 벌였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빙판에서 힘들게 연습을 하고, 돌덩이와 같은 얼음바닥에 1만번 이상 엉덩방아를 찍으면서 그렇게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대회가 있는 날이면 남들은 예쁜 슈트를 입지만 자신은 최소50만원 정도 하는 슈트를 살수 없어서 빌려 입곤 했다고 합니다. 또한 담당 코치를 둘 수 있는 형편이 아니였기에 시간당 코치를 불러서 썼으며 도시락은 스케으트를 신은체로 식사를 하고 했다고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많은 노력의 모습을 보면서 진짜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성공할 수가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짜 성공할만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의 형편이나 환경을 핑계 대거는 사람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핑계를 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금메달의 가치는 금이라서가 아니라 승리함의 증표라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금메달, 즉 1등을 하게 되면 군대면제, 억대의 상금, 앞길이 탄탄대로로 뻗어 갈수 있다는 것입니다. 1등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도 전 세계에서 1등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등을 했던 수영선수 박태환을 보더라도 연습하느라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빙판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김연아 처럼 말입니다. 남들과 경주를 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어려운 환경가운데서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던 사람들입니다.
김연아의 스케이트 타는 모습을 보면서 피나는 연습은 보지 못하고, 짧은 미니스커트와 예쁜 몸매만을 보고, 자기도 짧은 치마를 입으면 김연아 처럼 날씬해 질수 있을 것이라는, 겉모습 모양만을 따라하려는 루키즘으로 요즘 실내 스케이트장에서는 미니스커트 붐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 지방이 날아가기 전에 얼어 죽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런 루키즘으로 밥을 적게 먹고 양을 줄이는 그러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다 보니 허기가 져서 먹을 것이나 찾게 되어, 말씀자리나 찬양 기도자리에서 더 어수선해지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요즘 우리 청년부 중에 티도 내지 않고 금식을 하고 있는 유지영이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오늘이 8일째라고 합니다. 루키즘의 여느 청년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 아름다운 금식의 모습이었습니다. 한번 보십시오. 얼마나 예쁜지 말입니다.
일전에 명우라는 청년과 가깝게 지내는 모습으로, 눈 밖에 나는 행동으로 미운털이 박히기도 했지만 지금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회개하고 용서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루빨리 모든 문제 해결받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사람의 눈에도 아름답게 예쁜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얼마나 예뻐 보이겠습니까. 뭐든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어떠할지를 생각해본다면, 신본주의로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모든 것이 달려 있습니다. 능력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드림으로 모든 문제 해결 받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기를 원합니다.
세상에서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1등을 해야지 만이 상을 줍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자에게 상 주신다 하십니다. 나의 겉 사람과 속사람과의 싸움,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축구에 열광을 합니다. 하나님께는 열광하지 못하면서, 축구경기는 목숨 걸고라도 꼭 보려고 합니다. 심지어 축구경기장에 가서 관중석 끝의 구석자리에 앉아서 잘 보이지도 않으면서 망원경으로 인상을 써가며 열심히 보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집에서 TV로 재방송을 보면 편하게 볼 수 있는데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4:2로 우리나라가 승리한 경기를 재방송으로 본다고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재방송을 보는 도중 우리나라가 골을 먹어서 0:2로 지고 있다한들 열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경기는 이미 우리나라가 이긴 경기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0:2로 지고 있지만 잠시 후에는 4:2로 역전승을 거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계시록에는 모든 것들이 다 나와 있습니다. 사단이는 무저갱으로 떨어져 영원히 갇히게 되고, 결국 예수그리스도께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지금 이겨놓고 싸운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런데 지금 경기에서 두 골을 먹었다고 힘들어해서야, 낙심해서야 되겠습니까.
환란 가운데서도 믿은 변치 않고 주님만 의지한다면, 마지막 그날에 어린양 예수님을 만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미 이겨놓은 싸움입니다. 절대로 기죽지 말고 힘을 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전9:11]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
상대방이 아무리 강한 팀이라고 할지라도 주눅들 수는 없습니다. 모든 시기와 우연, 기회는 우리에게도 온다고 전도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축구를 잘하는 부라질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이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연한 기회로 행운의 대진표나 부전승으로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투지로 우리나라가 최고의 강팀을 만나 2:0으로 이기고 있다고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이때에 사단은 어김없이 우리들에게 말을 넣어줍니다. 우리나라는 이길 수가 없다면서, 이건 우연이라고 이제 후반전에는 저 강팀의 진면목을 보게 될 것이라며 몸조심하고 수비나 하고 있으라고 그렇게 우리에게 좌절을 가져다가 줄 것입니다. 사단이의 말을 듣게 된다면 진짜로 역전패 당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 의지하고 사단의 소리 듣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간다면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경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당시 이스라엘과 아말렉과의 전투를 보겠습니다.
[출17:11-13]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하나님의 능력은 말씀을 믿는 믿음에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100살 넘은 파파 할아버지인 모세가 무슨 힘이 있어서 팔을 든다고 전쟁의 승패가 달라지겠습니까. 하지만 말씀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 능력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다 이겨놓은 싸움에서 사단이의 말은 듣지도 신경 쓰지도 말아야 합니다. 불가능하다고 하는 말은 무한대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단이는 “항상 좌절하라. 쉬지 말고 원망하라. 범사에 불평하라.”고 합니다. 사탄의 뜻을 따르는 미련한 자들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힘이 들더라도 넘어지더라도 꼭 십자가 쪽으로 넘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성공으로 가는 실패,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했지만 결국엔 회개하여 돌아와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았던 것처럼 실패해서 넘어지더라도 꼭 십자가 쪽으로 넘어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롬16:1-2]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여기 말씀을 보면 “뵈뵈”라는 자매가 나옵니다. 고린도 항구의 겐그레아 출신으로 중년여성쯤 되어 보입니다. 그녀는 로마서를 전달하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또한 “뵈뵈”는 바울의 측근 이였던 26명정도의 사람들에게, 바울의 감사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떠나게 됩니다.
사도바울을 도왔던 26명의 사람들, 하지만 세상에는 기도로 돕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도하게 하는 사람들도 있고,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을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뵈뵈”를 포함한 26명의 사람은 바울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고마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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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는 사건 사고가 터지게 되면 뉴스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하지만 뉴스에서 사건을 전달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범죄 사실만을 알려주면 되는데 범죄 사실부터 동기 범죄 수법까지 아주 자세하게 보도를 하는 바람에, 범죄 사건이 일어나고 나면 더 많은 모방범죄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범죄 수법을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뉴스를 통해서 범죄를 배운다는 것입니다.
바로 미디어가 범죄를 조장하는데 1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단은 하나의 사건을 더 많은 사건으로 퍼지게 하는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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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뵈뵈”는 바울분만 아니라 여러 사람의 보호자역할을 했던 사람 이였습니다. 수많은 핍박을 당했던 바울, 같은 유대인으로 부터의 핍박과 방해는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고린도 교회 교인들로부터 들려오는 조롱과 비난의 소리로 자신들의 교회를 위해서 3년 반이나 눈물로 기도했던 목회자를 괴롭혔던 것입니다. 세속적인 고린도 교인들은 사도바울에게 세상물정도 모른다며 말에 졸하다고 조롱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이때 사도 바울의 보호자가 있었으니 바로 “뵈뵈”였습니다. 보호자라는 것이 원래 더 못해줌에 미안해하는것이 보호자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날 원장님에게 장미영 목사님께서 교육목사로서 급여 얘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알았다면서 월급을 200만원을 주겠다고 하는 것 이였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이 지금까지 살면서 한푼도 받지 않았지만 이제부터는 사택에서 사는 집세와 관리비 수도세 전기세 기름값 식대 그리고 엄마 보호비를 받겠다는 것 이였습니다. 그러니 결론은 월급 200만원 줄 테니, 매달 300만원을 내놓으라는 것 이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없던 일로 하자고 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마쳤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뭔가를 바라면 더 많은 것으로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원장님께서“엄마 보호비”를 받으신다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감사가 밀려 왔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보호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꼭 기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많은 대적들 가운데서도 26명의 바울을 돕는 동역자와 도움을 주는 보호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작은 숫자이지만 전쟁의 승패는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와주는 소수의 성령의 사람, 기도하는 소수의 성령의 사람이 있기에 승리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바울을 핍박을 했느냐면 루스드라 까지 쫓아와서 죽기까지 돌로 쳐서 성 밖에 내어 버리는 일들까지 벌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들 앞에서 목숨을 걸고 사도 바울을 지키고 보호하려는 이 소수의 성령의 사람, 기도하는 사람 보호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이였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뵈뵈”였다는 것입니다.
[롬16:3-4]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바울을 도왔던 두 번째 인물은 브리스가와 아굴라입니다. 항상 첫 번째로 가장 헌신적으로 바울을 도왔던 사람 이였지만 로마서에는 두 번째 이름으로 등장을 합니다. 그 이유는 편지를 전달하는 사람의 이름을 가장 먼저 쓰는 것이 질서이기에 먼저 “뵈뵈”이름을 언급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비량으로 선교를 했던 사람입니다. 물론 바울처럼 자기가 알아서 벌면서 자기 할 일을 다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목회자가 목회만 해야지 딴것을 하냐고 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양떼들이 목회자들에게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도록 소요를 채워준다면야 다른 일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양떼가 내어 놓지 않았을 때 목회자는 돈을 벌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처럼 자비량하는 것도 좋지만 목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양떼들이 목회자들의 그 소요를 채워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 나와 있는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어떻습니까. 바울을 위해서 자신들의 목이라도 내놓을 만큼 정말로 헌신적인 사람들이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자신의 유익을 위해 거짓하며 목회자를 죽음가운데로 내모는데 선동하겠습니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롬16: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안드로니고는 바울과 함께 옥에 같이 갇히게 되었습니다. 안드로니고가 바울의 친척이라서 옥에 갔겠습니까. 복음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바울과 함께 옥에 갇히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 질서보다 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10여년전에 원장님께서는 우리 마을에 있는 조립식 건물로 인하여서 구속수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가건물 이였기에 법에 저촉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립식 건물을 철거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우리 교인들 이주할 곳이 없었기에 법령에 따르지 못했던 것입니다. 급기야 나라에서는 원장님을 구속수사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들은 머리를 대신해서 감옥에 가기도 하는데 우리 원장님은 우리 교인들을 위해서 대신하여 감옥에 가게 됩니다. 그 후로 한 달 동안 밥도 먹지도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고 밤새 울기만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더욱더 눈물이 났던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돌아가신 분의 얘기를 하기는 그렇지만 조일경 장로님이 온 교인들에게 거짓말로 원장님이 창피해 하시니 아무도 면회 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한 달이 지나고 원장님이 감옥에서 나오셨고, 장미영 목사님에게 물어보셨던 말이 어떻게 아무도 그것도 단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을 수가 있느냐고 물으셨다고 합니다. 그때는 조일경 장로님의 말이 정말인줄로만 알았습니다. 아니 그것이 거짓이라 하더라도 그 당시 조일경 장로님의 힘이 워낙 있어서, 어느 누구도 뭐라고 따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장로님이 원장님에게는 또 어떻게 얘기를 했을까. 이렇게 교인과 원장님 사이에 이간을 하면서 결국에는 남들 다 떠나도 자기 밖에 없다는 것을 보이고 싶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진짜 불효녀가 되었던 자신을 돌아보면서 원장님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밤을 지새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안드로니고의 이름만 들으면 눈물이 납니다. 같이 가지도, 대신 가지도, 면회조차도 못 갔던 자신을 돌아보면서 안드로니고가 부러웠습니다.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히면서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많이 격었겠습니까. 매도 맞고 억울한 일도 많이 당했을 텐데 정의로운 일에 함께 갇혔던 자, 안드로니고가 부러웠습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고 감옥에 가게 되면 모두가 떠나가게 됩니다.
유대인이 바울을 핍박하듯이 같은 편이 핍박을 할 때, 안드로니고 처럼 오히려 같이 갇히고 함께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모든 제산을 주님께 바치겠다고 했다가, 제산을 팔고 그 돈을 보자 그만 욕심이 생기는 바람에 결국 돈을 일부를 감추게 됩니다. 베드로가 이것이 전부이냐고 묻지만 거짓말을 함으로써 이 두사람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됨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엘리사의 제자 “게하시”는 어떻습니까. 나아만은 자신의 문둥병을 고침 받고 예물을 엘리사에게 주려고 했지만, 엘리사는 거절을 합니다. 이 관경을 보고 있던 게하시는 욕심이 나서 결국 나아만을 뒤좇아 가서 은2달란트와 의복2벌을 받아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집에 숨겨둡니다. 엘리사가 게아시에게 물어봅니다. “네가 어디서 오느냐?” 거짓말을 고하다 그만 게하시는 문둥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전부냐고 물어보았던 베드로의 질문과 네가 어디서 오느냐는 엘리사의 질문은 바로 우리에게 주시는 회개의 기회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과 찔림이 있을 때에 반성도 하지않고, 회개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돈을 훔친 자들이 질문을 받습니다. 그때 양심이 감각되지 않고, 누가 일렀을까하고 혈안이 되어 이를 갈고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이러한 질문들이 바로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개의 기회임을 깨달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후에 게하시는 어떻게 되었는지 말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왕하8장]에 보면 문둥병에서 회복이 되어 요람왕 옆에서 엘리사의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게아시는 그 후에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 돌아왔던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게하시가 그 당시 수넴여인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그 엘리사를 잘 섬겼던 수넴 여인이 억울한 일이 있다면 왕을 찾아오게 됩니다. 이유인즉 7년 동안 기근을 피해 블레셋 땅에 다녀온 사이에 자신의 집과 토산을 누군가가 가로채갔다는 것입니다. 그때 게하시가 “에구 머리야. 에구 머리야.”하면서 죽었다가가 다시 살아난 그 아이가 저 여인의 아들이라며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결국 왕은 그 여인의 모든 제산을 되찾아 주고 회복을 시켜줍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잘 보이면 회복이 된다는 것을 형통하게 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회개하여 돌아오기만 한다면 게하시처럼 모든 것이 회복된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집중해보아야 할 것은 수넴 여인이나, 나오미 엘리멜렉과 룻의 가족들처럼 흉년이 왔다고 해서 어려움에 처해있다고 해서 있는 곳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간다면, 모압 땅으로 블레셋 땅으로 갔다가는 오히려 갖은것 모두 다 잃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귀한 자리 버리고, 뭔가 더 얻으려고 떠난다고 한다면 오히려 갖고 있던 것까지 모두 다 잃게 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자리가 가장 좋은 곳임을 기억하시길 원합니다.
여호수아 때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요단강을 건너려고 합니다. 그 당시 60만장정이 있었으니 모든 백성들을 합치면 200만~300만영쯤 되었던 것입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측정을 해보니 모두가 2줄로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약30일에서 35일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씀에는 하루 만에 건너게 됩니다. 이렇게 하루 만에 건너기 위해서는 5만줄(약16km)로 건너야지만이 하루 만에 건널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단강 한가운데는 제사장이 다 건널 때까지 서서 기다립니다. 제사장이 발을 내딛을 때 요단강이 갈라졌듯이 제사장이 요단강가운데 있는 한 요단강은 여전히 갈라져 있게 되어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서 12지파에서 힘쌘자 12명을 뽑아 갈라진 강 가운데서 돌을 하나씩 가져오게 해서 돌무더기를 쌓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이 요단강 기적을 잊게 될까봐서 이렇게라도 기억하게 하시기 위해서 증표로 돌무더기를 쌓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모두 다 쓸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첫 번째 여리고성을 정복을 합니다. 여리고성은 가나안 정복전쟁에서의 첫 번째 성이였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성을 온전히 훼파하여 모두 다 불사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물건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난후 두 번째 성인 아이성 전투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쉽게만 보였던 그 전투에서 3,000명만이 싸우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만 대패를 하고 맙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응답을 주십시다.
[수:7:10-13]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이스라엘이 범죄 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케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의 중에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네가 그 바친 물건을 너의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
다음날 아침에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물건을 훔쳐간 사람을 찾기 위해서 모든 지파 사람들을 모읍니다. 그중에서 유다 지파가 뽑혔고 유다 족속가운데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 중에 삽디가 뽑혔고 삽디의 가족 중에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히게 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묻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모든 일들을 자복하라고 합니다. 아간이 대답을 합니다.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자기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다고 합니다. 많이 훔친 것도 아닌데, 요것밖에 가져간 것 없다는 식으로 말을 합니다. 비록 자복을 하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아간을 돌로 쳐 죽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가족까지도 장대에 달아 불사르고 죽은 시체를 돌무더기로 쌓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결국에 회개하지 못하여 모든 죄악이 들통이 나게 되어서, 그에 따른 대가를 온 가족까지도 함께 치르게 되었던 아간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범죄한 아간을 벌한 후에는 3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아이성 전투에서 승리를 하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전리품을 선물로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하나님 일에 방해하거나 하나님의 것에 손을 대어서 범죄한 적은 없습니까. 십일조를 떼어먹는 것도, 하나님의 사업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히는 것까지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 도둑질을 한 것입니다. 자기 주머니에 하나님 것을 집어넣고 들킬 것 같으면 오리발 닭발 다 내밀고, 들켜서도 얼마 안 훔쳤다고 별것도 아니라는 아간의 태도가 우리들의 모습은 아니겠습니까.
범죄를 하고도 회개하지 못하고 내가 했으면 얼마나 했냐는 식의 아간의 태도, 어려운데 배고픈데 나아만의 예물을 받지 않는다고 뒤에서 자기욕심을 채웠던 게하시의 태도, 예수님께 향유옥합을 깨뜨리는 여인을 보며 아까워하던 돈에 눈이 먼 유다의 태도, 돈을 보고 아까워서 욕심이 생겨서 거짓말을 했던 아나니야와 삽비라의 태도, 이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은 아니였는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만민중앙교회 이초석 목사는 카지노가서 교회 돈을 탕진하고 교회를 위해서 건축도 해야 하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도박을 했다는 거짓말, 이런 거짓말은 해서는 않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게 되어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구약시대에는 자복을 하고 모든 것을 밝히고 내놓아도 장대에 매달아서 가족까지 불 질러 죽이고 맙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시고 나서는 회개하면 살려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회가 있을 때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업에 손해 끼친 것 회개해야 합니다. 꺼내놓고 자복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자존심 때문에 숨기고 있다가는 빙산이 통체로 들어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음향을 담당하고 있는 CHT와 권집사님 저와 우리 모두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음향 담당자가 하나님 앞에 엄청 예쁨 받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문제가 있겠습니까. 이번기회에 우리들 손에 붙어있는 가난하고 무능한 마귀를 모두 다 쫓아 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제는 앞으로 음향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인상이나 쓰는 것이 아니라, 관련자들이 회개하게 해달라고 중보기도 한번 못한 우리들이 먼저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백두산이 터지고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회개만 되어 있기만 한다면, 하나님께 감동을 드릴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움직이시고 모든 것들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사도 바울을 도왔던 소수의 인물들을 통해서 무능했던 자신을 회개 합시다. 바울을 도왔던 사람들은 다수가 아닌 몇몇의 소수였음을 기억하며 우리들도 주의 일에 협조 할 수 있는 그런 사역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들은 말씀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들은 말씀 떠올려서 회개의 자리로 나올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용서받고 회개하여 빙산전체가 드러나지 않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신 말씀에 실망하여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아버지 품으로 파고들어서 회개하여 회복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행여 하나 상대의 흉허물이 보일지라도 그것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자신을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로 삼는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 복된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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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승현아 찡하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말씀을 대할수 있게 해줘서
다음 피드백 기대가 된다~
아멘!아멘! 많은 찔림을 다시한번 받게하시네여 ~민심이천심~ 부지런히기본에 충실하고 싶습니다~아~버~지~!!!
이제 피드백 올리려고 합니다. 장로님 사랑합니다. ♥
저는 "승현 선생님" 이라고 항상 불러드립니다. 왜냐하면 이자리는 공식적으로 공개된 매체이고, 또 많은 제자를 두고 있으시고, 앞으로는 특공대로써 전세계 만방에 큰 사역을 하실 분이라서요. 그래서 깎듯이 존칭을 해드립니다. 그렇다고 다른분의 김승현선생님의 호칭에 대해서 만분의 1도 시비나 트집,의견은 절대 아닙니다.
이걸 어떻게 다 녹음해서 올리는지~ 승현형제! 숙연해지고 부끄러울 따름 입니다. 감사하고 수고했습니다. 그성실함에 성령님의 축복과 은총이 있기를~~~~~~
제가알기론 녹음 절대안하시구여 집중 필기하시구 몆번 재검토끝에 피와땀의 결실로완성되는거같습니다~장로님~^^축복기도마니마니해주세요~
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진짜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오늘은 또 뭐라고 감사한 말씀드릴까요!!~~ 장미영 목사님이 계셔서 ,또 이말씀을 김승현 선생님께서 이렇게 올려주셔서 은혜받게 해주시니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늘 아침에 읽고 지금 밤에 또읽어도 늘 새롭고 찔리고 제속에 영이 아주 좋아 합니다. 다음에 또 읽고 읽어서 행동으로 옮겨 지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