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국화 꽃다발
최은경
착한 우리 아버지 김평남씨는 유명 플로리스트다.
창덕궁 옆, 눈알이 하나만 남은 일 톤짜리 트럭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국화 꽃다발을 만든다.
아버지의 눈동자처럼 검고 반질거리는 무쇠 틀에다
아버지의 가슴처럼 무르고 희디흰 반죽을 듬뿍 붓고
아버지의 말씨처럼 정직하게 달콤한 단팥을 넣어서
바삐 앞뒤로 뒤집으면 국화꽃들이 송송히 피어난다.
국화꽃 향기를 싫어하는 단속반에게 이리저리 쫓기고
국화꽃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외면당해도
올망졸망한 자식들 입에 들어갈 뜨겁고 차진 밥이 될
아버지의 국화꽃은 시들지도 않고 부지런히 피고진다.
뜨거운 여름이 물러나고 창덕궁의 노오란 국화꽃들이
때 이른 추위에 탐스러운 머리와 푸른 손을 움츠리면
어깨를 옹송거린 사람들이 하나 둘, 아버지를 찾는다.
오늘 날씨 이야기, 이번 주 로또 이야기, 상사 놈 욕에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걸은 아련한 첫사랑 이야기까지
술술 풀어내는 손님들에게 맞장구치면서도 울 아버지는
유명한 플로리스트답게 국화꽃 한 다발을 뚝딱 만든다.
어젯밤, 어머니가 밤새 접어 만든 흰 종이 봉지에 담긴
아버지의 풍성한 국화 꽃다발을 넙죽 받아든 사람들이
시린 가슴을 햇병아리의 온기 같은 따스함으로 덥히며
만원버스에 올라 아침에 헤어진 가족에게로 돌아간다.
온종일 국화 꽃다발을 만드느라 할미꽃처럼 허리 굽은
우리 아버지 김평남씨도 실은 매일 밤 아홉 시만 되면
외눈박이 트럭을 타고 금호동 언덕배기집에 가고 싶다.
첫댓글 (122123 박준범) 총 7연 25행으로 구성되어진 시이다. 이 시는 국화빵을 구워 생계를 꾸려가는 김평남씨의 모습을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현실적인 이야기로 화자의 내면을 보여주었다. 2연에서 '~처럼'을 반복하고 있지만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리듬감이 생겨 좋다. 김평남씨의 현실과 처지를 보여주고 있는 3연과 7연이 가장 인상 깊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