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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감사 절기는 크게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에 대한 예표이고, 둘째는 추수에 대한 감사와 나눔이며, 셋째는 과거 역사에 대한 회고와 감사이다.
첫 번째 의미를 생각해보면 유월절은 사순절과 부활절로, 칠칠절은 성령강림절로, 수장절은 예수님의 재림을 통한 영적 추수의 대망으로 이미 완성됐다. 신약교회는 성탄절과 부활절을 두 축으로 삼위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는 교회력을 따르고 있으므로 그림자에 불과했던 구약의 절기가 이제는 성취돼 신약교회에서 가장 풍성하고 의미 있게 지켜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더 이상 구약의 절기를 지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두 번째 의미를 생각해보면 유월절에 첫 이삭을 드려 감사하고, 칠칠절에 밀과 보리를 추수해 감사하며, 또한 수장절에 포도, 올리브, 무화과 열매를 추수해 감사하는 것이므로 오늘날도 추수시기에 맞춰 감사 절기를 지키는 것은 구약의 정신을 상황에 맞게 바르게 적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의미를 생각해보면 유월절에 양고기, 쓴 나물, 무교병을 먹고 초막에서 생활하는 의식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역사를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처럼 우리 민족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좀 더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오늘날 세계 모든 교회들이 추수시기에 맞춰 자유롭게 감사 절기를 지키고 있다. 구약절기의 정신과 의미는 계승하지만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므로 감사절의 시기에 대해서는 아무 구애됨이 없다. 오랜 기독교 전통을 가진 유럽의 많은 교회들은 감사절을 특정한 날짜로 확정하지 않고 개교회가 농작물의 종류나 수확시기, 기후나 역사적 전통 등을 감안해 추수를 마친 시기에 자체적으로 날짜를 정해 지키도록 하고 있다.
사실 구약의 3대 절기는 농작물의 수확시기와 관련이 있지만 실제로 수확을 마치고 예루살렘까지 이동이 가능한 일종의 농한기(農閑期)였다. 유월절은 10월말부터 3월까지 계속되는 우기가 끝나고 밀과 보리를 파종한 후 예루살렘까지 이동할 수 있는 여유와 기후적 여건이 허락되는 시기이다. 칠칠절은 밀과 보리농사를 지어 추수한 다음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5월말쯤이고, 수장절은 6월부터 사막의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는 건기를 지나 포도와 과일을 추수한 후에 시간적 여유와 이동이 가능한 기후 조건이 되는 10월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절기의 때를 정하실 때 백성들의 편의를 고려하셨다. 절기 때 드리는 제물도 마찬가지다. 보리 추수를 한 후 보리를 바치고, 포도 수확을 한 후 포도를 바치라고 추수절기를 정하신 것이 아니다. 예루살렘까지 보리 가마를 짊어지고 갈 수도, 과일을 담아 갈 수도 없다. 추수절기 때도 이스라엘 백성의 제물은 주로 이동에 용이한 양과 염소의 번제였다. 그러므로 감사절을 지키는 날짜는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다. 국민의 대부분이 농사를 짓지 않는다면 추수시기에 날짜를 맞춰야 할 필요도 없고 또 감사절에 곡물이나 과일을 강대상에 올려놓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반면에 유럽국가 중에 추수감사절 날짜를 정해 놓은 국가들도 있다. 영국은 8월 1일인데 그 날을 ‘래마스 데이’(Lammas Day)라고 부른다. ‘래마스 데이’는 고대 켈트족의 세속절기를 영국교회가 교회절기로 토착화한 것이다. 독일 교회는 성 미가엘의 날(9월 29일) 다음 첫 주일이 감사절이다. 하나님이 전쟁을 주관하는 천사인 미가엘을 보내 여러 차례 독일이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도우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함인 듯하다. 미국은 자신들의 신앙의 선배들이 드린 첫 추수 예배를 기념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지키고 있다. 이처럼 영국은 선교적 목적을 위해 자기 민족의 오랜 전통을 기독교화 한 경우이고 독일과 미국은 자기 민족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서 의미 있는 때를 감사절기로 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추수감사절을 왜 11월 셋째 주에 지키게 됐을까? 한국교회가 추수감사절을 지키기로 결의한 것은 1904년 조선장로교 총회에서였고,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한 것은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이었다. 그래서 영국처럼 기독교 토착화의 의미로 팔월 추석을 전후해 감사 절기를 지키거나 추수시기에 따라 절기를 지키는 유럽 국가들처럼 10월 초에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많다. 필자는 어차피 우리나라 농민 비율이 8%, 그중 사철 수확하는 과일이나 채소 재배농가가 60%이상인 점을 감안할 때 벼의 추수시기에 맞추기보다는 오히려 연말이 가까운 11월 셋째 주에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 절기를 지키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12월이 되면 연말연시와 신년 행사 등으로 분주하기 때문이다. 추수감사절의 시기는 각 교회의 형편에 따라 자유롭게 시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필자는 7월 첫주 맥추감사절은 반드시 한국교회가 함께 지켜야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이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 구약의 절기를 문자적으로 지켜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추수절기가 함의하고 있는 정신을 계승하자는 것이고, 우리 민족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해 한국교회가 함께 감사하며 풍요를 이웃과 나누는 전통을 이어가자는 의미이다.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한국교회에서 맥추감사절을 지키기로 공식적으로 결의한 사실이 없다. 즉 맥추감사절은 총회가 허락하지 않은 비공식적인 절기인 셈이다. 더욱이 일 년에 보리 추수를 포함해 두 번의 감사 절기를 지키는 나라는 전 세계에 이스라엘과 한국뿐이다. 이런 사실을 생각할 때 맥추감사절이 한국교회의 전통이 됐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맥추감사절이 한국교회의 전통이 된 것은 과거 혹독한 가난을 겪은 우리 신앙의 선배들에게 보리 추수의 기쁨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가르친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년 자발적으로 이곳저곳에서 드리기 시작한 감사가 반복되면서 우리 민족만의 고유한 감사 절기가 된 것이다. 비교적 먹을 것이 많은 여름이 아니라 오직 쌀을 주식으로 삼아 긴 겨울을 보낸 한국인들은 초여름에 보리를 추수할 때까지 가장 배고픈 시절을 보내야 했다. 이때가 바로 춘곤기라고 불리는 보릿고개이다. 요즘은 보릿고개라는 말이 실감나지 않지만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에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보릿고개 때문에 우리 민족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오죽하면 “추풍령, 대관령 고개보다 더 높고 호랑이, 사자 보다 더 무서운 보릿고개”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특히 일제 강점기 때에는 일본이 모든 농토를 강제로 빼앗고 농작물의 반을 세금으로 거둬갔다. 당시 일본군은 조선을 자신들의 식량 조달 창고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특히 쌀농사를 짓고 나면 모두 일본군이 빼앗아가고 대신에 만주에서 가져온 좁쌀을 나눠줬다. 그러니 긴긴 겨울밤을 굶주림에 허덕이면서 보리가 자라기만 기다리며 지낸 것이다. 이때 풀뿌리, 솔잎, 소나무껍질을 먹었고 싸라기를 산채나 나물의 묽은 죽에 띄워 먹었다. 수많은 사람이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굶어죽었다. 해방이 됐지만 6.25동란을 거치면서 보릿고개는 1960년대 중반까지 계속됐다. 마침내 보리가 익어 추수했을 때 살아남은 성도들은 제일 먼저 보리 가마를 들고 하나님께 나와 눈물로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성도들이 굶는데 목회자인들 예외가 됐겠는가? 그러니 맥추감사절에 드리는 성도의 보리 가마가 목회자 가정도 살렸다. 그러므로 온 교회 성도들에게 맥추감사절은 최고의 잔치였다.
신학적 근거도 약하고 역사적 전례도 없는 맥추감사절이 한국교회에 토착화된 것은 바로 이런 시대적 배경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했던 우리나라, 그 뼈아픈 가난의 상징이었던 보릿고개를 넘기고 눈물로 감사의 예배를 드렸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한 마음으로 만든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 맥추감사절, 이제 우리가 지키고 계승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미국교회가 자신들의 선조들이 1620년 102명 중 44명이 굶어 죽는 혹독한 겨울을 보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아 이듬해 첫 추수를 마치고 감사예배를 드린 것을 기억하려고 11월 셋째 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킨다면 우리 민족은 지난 수세기동안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고통을 딛고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속에서도 살아남아 이토록 큰 풍요를 누리게 된 것에 대해 마땅히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린이 주일, 어버이 주일, 군선교 주일, 신대원 주일… 필요에 의해 총회가 이런 저런 기념주일도 만드는데 우리 민족에게 주신 축복을 가장 실감나게 느끼게 하는 한국교회만의 아름다운 전통인 맥추감사절을 더욱 잘 지켜 계승해야 하지 않겠는가? 구약의 맥추절은 이제 성령강림절이 됐다고 굳이 없애려고 하지 말고 두 절기를 다 지키면서 맥추감사절에는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은혜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그날은 교회에서 보리밥을 함께 먹으면서 나이 드신 성도들이 젊은이들에게 보릿고개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마 모든 세대가 함께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가 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북한 동포들은 올해도 극심한 가뭄을 겪으며 힘든 보릿고개를 넘기고 있다고 한다. 지난날 보릿고개의 아픔을 기억하며 전 세계의 가난한 이웃을 위해 맥추 감사절 헌금을 사용하는 것도 구약의 정신을 계승하는 의미 있는 일이다.
■ 신성열 목사 / 대구 성산교회
첫댓글 위 글은 이번주(2015년 7월 4일) 기독교보(예장 고신 교단지)에 실린 글입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제가 "개혁정론"에 쓴 글 "맥추절, 과연 지켜도 되는 절기인가?"(http://reformedjr.com/xe/6440)를 읽고 쓰신 글 같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논리적 비약이 심각한지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에 대한 이해, 보편교회에 대한 이해도 매우 부족합니다.
댓글 안 봤으면 큰 오해를 할 뻔 했네요...^^; 비교가 되니 더 잘 이해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의아해하면서 읽었는데 비교로 올리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