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도 막지 못한 산사랑 44년…산악계 작은 거인
- 부산연맹 회장 땐 회보 복간
- 쪼개진 산악회 하나로 묶어
- 오랜기간 투병생활 고통 속
- 등산학교 설립해 저변 확대
- 산과 관련된 책 5권 내기도
- 지난 13일 71세 일기로 타계
'등산을 44년간 했습니다. 산과 관련된 책을 5권 펴냈습니다. 등산 덕에 걷기를 좋아합니다. 산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산보다 사람이 더 좋습니다. 열심히 정직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이들 삶 속에는 높은 산보다 더한 굳센 의지가, 등산보다 더 치열한 삶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는 촉매가 되고 싶습니다'.
이는 만년 산꾼임을 내세우며 부산시민등산아카데미를 설립해 올바른 등산문화 보급에 앞장서다 지난 13일 71세를 일기로 타계한 김철우 선생의 개인 블로그에 소개된 글이다. 선생은 2003년 등산아카데미를 만들어 시민을 대상으로 등산에 관한 모든 것을 무료로 지도했다. 11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등산아카데미를 거쳐 간 사람은 1000여 명에 이른다.

선생은 거제시 옥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 부산으로 이주했다. 국립체신고와 충남대 문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군복무(ROTC 5기)를 마친 뒤, 1970년 부산일보사에 들어갔다. 이후 32년간 재직하고 논설위원을 끝으로 정년퇴임한 언론인이다. 산을 가까이하게 된 것도 신문사에 입사하면서다. 1971년 석봉산악회를 창립, 체계적인 등산 활동을 폈다. 산악회에 기술부를 만들어 유능한 클라이머를 영입해 후배 양성의 길을 텄고, 회장을 맡아 히말라야에 원정대를 파견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악운동에 뛰어든 선생은 대한산악연맹 부산연맹 부회장을 맡아 산악계와 언론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995년에는 부산연맹 최초로 경선을 거쳐 회장에 당선돼 의욕적인 사업을 펼쳤다. 김장호 허영호 손경석 등 유명 산악인을 초청해 '시민 등산 강좌'를 열어 건전한 등산문화 확산에 힘을 쏟는 한편, 1988년 이후 끊어졌던 연맹회보 '금정산'을 복간해 산악계의 활동상을 널리 알렸다. 또 금정산에 스카이웨이, 민속음식점, 커피숍 등을 설치하겠다는 부산시 계획의 백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특히 산악계의 분위기 쇄신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부산 산악계를 대표하는 대한산악연맹 부산연맹과 한국산악회 부산지부, 부산학생산악연맹은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며 냉랭한 분위기를 이어왔다. 평소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선생은 '부산 3개 산악단체 친선산행'을 열었다. 이후 3개 단체는 매년 친목산행으로 서로의 벽을 허물고 단합해 현안을 해결했고, 부산산악문화축제를 공동 주관하는 등 부산 산악계를 새롭게 탄생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공로로 1997년 '금정대상'을 받았다.
평소 "등산은 정신 건강에 좋은 사색하는 스포츠다. 산을 걸으며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고, 동행자들과 깊은 대화를 나눈다면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인생은 더욱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한 선생. 신문사 퇴직 후 등산아카데미를 설립해 등산 인구 저변을 넓히는 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부산연맹 회장까지 지낸 공인이 연맹 부설 등산학교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지 않고, 새 등산학교를 만들어 사람을 모은다는 비난도 뒤따랐다. 그렇지만 이는 시민을 대상으로 안전하고 건전한 등산, 상식과 지식을 갖춘 등산, 자연과 더불어 하나가 되는 등산 문화를 보급하겠다는 그의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로지 등산만을 생활 철학으로 삼아온 선생은 지병인 간암과 23년간 싸웠다. 싸운다기보다는 간암과 더불어 같이 살아가야 한다며 자신을 다잡았다. 1992년 간암 판정을 받고는 간의 3분의 2를 절제하는 대수술을 받았으나, 10년 만에 재발해 또다시 7분의 1 정도를 절제했다. 하지만 완전히 치유되지 않아 수시로 병원을 찾았다. 간암이 생긴 뒤 20년 넘게 살았으면 자기 수명을 넘어서 천수를 누린 셈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선생의 평소 등산철학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병을 얻고 난 이후 건강하게 사는 것은 사회를 위해 봉사하라고 준 '덤의 인생'이란 신념으로 왕성한 산악활동을 폈다. 부산연맹 부회장·회장을 역임했고, 최근에는 부산산악포럼 대표를 지냈다. 또 백두대간을 비롯해 낙동정맥과 낙남정맥 종주는 물론 해외 고산에도 정열을 쏟아 대만의 옥산과 설산, 킬리만자로, 코타키나발루 등을 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김철우 산행노트'란 5권의 저서를 통해 산이 주는 영감과 삶의 흔적 등을 담아냈고, 고향 거제도의 산줄기를 수없이 오르내리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돌며 주민의 애환과 소박한 삶을 잔잔하게 그려낸 '거제도'를 펴냈다. 또 부산산악포럼이 매년 발행하는 '마운틴포럼'에 글을 실어 부산 근교 산을 안내했다.
평생 무욕과 낮은 자세로 일관하며 참 언론인으로, 참 산악인의 길을 걸어온 선생. 등산을 통해 삶의 역경을 이겨내며 부산 산악문화 발전을 위해 헌신해 부산 산악계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그는 마지막 가는 길에도 진정한 산악인이었다. 평소 즐겨 사용하던 등산장비 수십여 점과 평생 모은 산악도서 800여 권을 부산 산악계에 기증했다. 선생의 긴 산악 인생과 치열했던 삶은 마침표를 찍었고, 산악계는 그가 남긴 업적과 흔적만 간직하게 됐다.
부산산악연맹 회장
첫댓글 어제 국제신문에 故김철우 대표강사님 기사가 게재됐군요.
아카데미 역사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아 기사를 전재해 봅니다.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훌륭한 스승 밑에는 훌륭한 제자가 있다고 했습니다.....고 김철우 선생님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 김철우선생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기사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분과의 첫대면이 토곡산에 자리한 비석이었슴다. 생전 알지도 못하는 사람임에도 묵념을하고 어느 한분의 소개로 그분의 약간의 이력을 듣게되었슴다. 그게 올해초 입니다.
라지겠죠

허나 그 뜻은 변함이 없기에 그를 알기위한 노력이 시작될것입니다.
그리하여 아카에 입문하게된 결정적인 산행이었기도 합니다. 세상엔 훌륭한 사람이 참으로 많슴다. 그것을 피부로 느꼈을땐 더더욱 내 삶의 방향이
안타까운것은 생전에 뵙지를 못했다는거죠
이 세상에 안계셔도 늘 곁에 계심을 느낍니다... 어느 산, 어느 골자기에서도 묵묵한 나무로, 활짝 웃는 꽂으로 항상 우리를 반겨 주시는 것 같이 또 그렇게 우리는 산을 오르겠죠. 기사 글 잘봅니다 윤중거사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