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장
11월 중순 어머니가 김장을 하셨다. 김치 가지러 오라 하시기에 주말 시간을 이용해 다녀왔다. 11월 하순 처가가 김장을 했다. 주말 시간 시골집에 다녀온 처남이 김치를 가져다주었다. 양쪽 집에서 가져온 김장이 10여 포기는 되는 것 같다. 가깝게 지내는 집에서 맛이나 보라고 보낸 김치도 한두 포기가 된다. 이 정도면 겨울을 보내는데 부족함이 없다. 대개 10포기 남짓이면 우리 네 식구 겨울을 보낼 수 있다.
시골 계신 어머니도 10포기 남짓, 서울 사는 큰딸도 10여 포기, 대전 사는 작은딸도 10여 포기, 서울 사는 동생들에게도 서너 포기씩. 이래저래 겨울 준비로 어머니가 마련하는 김장이 배추 50여 포기는 되는 듯하다. 50포기 김장을 하려면 이웃 아주머니들이 품앗이로 거들어 주어야 가능하다. 다듬고, 쪼개고, 절이고, 씻는데 하루가 걸리고, 버무리고 포장하는데 또 하루가 소요된다.
시골 사는 어머니와 장모님은 김장 안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지극 정성 겨울맞이를 하신다. 1년에 한 번 하는 김장을 위해 배추를 절이는 큰 통도 창고에 보관해 두어야 하고, 건져서 물을 빼는데 쓸 소쿠리도 잘 두어야 한다. 버무리는 대야와 김치를 담을 통도 늘 준비해 두어야 한다. 그러니 시골살림 도시 며느리들이 볼 때 구질구질 할 수밖에. 나이 일흔을 훌쩍 넘긴 어머니도, 장모님도 매년 김장을 하신다.
하지만 아파트에 사는 젊은 여인네들은 김장을 할 엄두를 내지도 못하거니와 김장에 필요한 도구를 집에 비치해 두려 하지도 않고, 김장하는 법을 배우려 하지도 않는다. 그때그때 필요한 김치도 담그지 않는 마당에 김장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기는 하겠다. 그래서 당장 우리 집만 해도 시골에 계신 어머니와 장모님이 살림을 손 놓게 되면 그때부터 연중 김치를 사다 먹어야 할 판이다. 매년 김장 김치를 가져와 냉장고에 보관하면서 ‘언제까지 시골에서 김치를 가져다 먹는 일이 가능할까’를 생각하곤 한다.
세상은 참으로 많이 변했다. 나 어릴 적만 해도 김장은 연중 치러야 하는 엄청나게 큰 행사였다. 김장을 하고 담근 김장김치를 담은 항아리를 땅에 묻을 구덩이를 파고 주변에 엉성하게나마 움막을 지어 김치를 추위와 눈보라에서 보호하기 위한 김치 광을 만드는 일은 피해갈 수 없는 중요한 연중행사이었다. 살림을 크게 하는 집의 김장하는 날은 동네가 들썩들썩 한 날이 되기도 했다. 눈을 감고 시계를 열심히 역으로 돌리면 어릴 적 요란스럽게 김장을 하던 날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지금이야 핵가족화 돼 가족 구성원 수가 3~4명인데다 김치 외에도 먹을 것이 많아 겨우 10여 포기 안팎을 김장이라고 준비하지만 내가 어려서 지켜본 시절은 그렇지 않았다. 웬만한 가정은 100포기 정도가 기본이었다. 큰살림 하는 집, 음식점이라도 하는 집은 500포기, 1000포기를 담그는 것이 예사였다. 그러니 그 것이 보통 큰일이었겠는가. 그렇게 많이 담아야 겨우내 김치를 먹을 수 있었고 신 김치를 만들어 찌개나 국을 끓여 먹을 수 있었다.
김장을 담그는 방식은 지역마다 다르고, 집집마다 다르다. 지역마다 기후가 다르고 토질이 다르니 우선 배추 맛이 다르다. 지역마다 생산되는 농작물의 품질이나 종류가 다르니 속을 채우는 재료도 다르다. 그러니 김장김치 맛이 틀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한 전형적인 내륙지역인 본가와 서해안 지역인 처가의 김치 맛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맛이 비슷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같은 충청도 땅이지만 내륙과 해안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양 집안의 김치 맛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김치 맛을 좌우하는 첫 번째 요인은 젓갈이다. 무슨 젓갈을 얼마나 사용하느냐에 따라 김치 맛은 확연히 달라진다. 내륙인 우리 고향 동네는 김치를 담글 때 새우젓 외에는 별다른 젓갈을 넣지 않는다. 김장때는 동태 살을 발라내 김치 양념에 넣는 경우도 있다. 어떤 집은 아예 젓갈을 넣지 않고 김치를 담그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칼칼하고 개운한 것이 특징이다. 양념도 비교적 많이 넣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이런 김치를 맛보고 자란 나는 역시나 젓갈을 많이 넣지 않고 시원한 맛을 살려낸 김치를 좋아하는 편이다.
반면 서해안 지역인 처가의 김장 맛은 확연히 다르다. 우선 젓갈 자체가 다르다. 장모님을 김장을 위해 실치(뱅어)를 구입해서 직접 젓갈을 담그신다. 그래서 그 실치젓으로 김치를 담근다. 김치 속을 만들 때 젓갈을 아주 많이 넣는 편이다. 어려서부터 실치젓을 맛보지 못하고 자란 나는 처음 처가 김치를 맛보았을 때 실치젓의 향이 적응이 잘 안됐다. 그래서 처가의 김치 맛이 익숙해지는 데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본가 김치는 양념을 최소화 시켜 담그지만 처가 김치는 비교적 많은 양념을 넣는 것이 특징이다. 무채를 비롯해 양념을 아주 많이 넣어 담그는 김치 맛을 길들이는데도 제법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양가의 김치 맛이 모두 익숙해졌지만 중요한 것은 음성김치도 서산김치도 맛 볼 수 있는 날이 앞으로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일흔 나이를 훌쩍 넘기신 양가의 어머니가 담가주시는 김장김치 맛을 볼 날이 이제는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내 아내도 누이들이나 처형들도 굳이 김장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모두들 공장 김치를 사먹을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된장이며 고추장이며 간장을 마트에서 구입해 먹은 지가 벌써 오래됐다. 하물며 김치인들 못 사먹겠나.
한국인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김치를 먹고 자랐으니 앞으로도 줄기차게 김치를 먹게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벌서부터 김치 맛을 알았으니 그들 역시 계속해서 김치를 먹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역적 특색도 각 가정의 독특한 맛도 없는 그저 획일화된 맛의 공장 가공 김치를 먹게 될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내 어머니가 담가주신 김치, 40년 넘게 내 입맛에 맞춰진 김치 맛을 볼 수 있는 날들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도 서글프다.
이제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그 김치 맛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매년 김장철이 다가오면 나는 부산하게 김장 준비를 하시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어머니의 김치 맛을 사무치게 그리워할 것이다. 공장김치 맛에 익숙해져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어머니의 김치 맛과 유사한 김치 맛을 보게 되면 한없는 그리움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하는 것뿐이다. “세월아! 천천히 흘러라. 이 시대의 김치 명인 울 엄니 오래 사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