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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두륜산 대흥사로 여행하기로 정하고 가을 추억을 만들기 위하여 군산에서 220여Km 떨어진 두륜산을 향하여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렸다. 안개비로 파란 가을하늘은 보이지 않고 황금물결로 출렁대던 김제평야 들녘도 추수가 거의 다 끝나 가고 여기저기에 포장된 하얀 볏집단들만 쓸쓸한 모여 있는 풍경을 보니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차안에 있는 친구들은 신이 났는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노래도 같이 불러 보고 즐거운 이야기 속에서 웃음꽃이
피어났다. 운전을 하며 친구들을 보는 내 마음도 행복하였다. 대흥사를 가기 전에 두륜산 케이블카를 타기 위하여 목포를 지나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138-6에 위치하고 있는 두륜산 케이블카장에 도착했다.
이곳에도 1박2일에서 다녀갔는지 케이블카장 입구에 강호동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붙어있었다.
매표소에 가보니 케이블카의 요금은 1인당 왕복으로 대인 8,000원 소인 5,000원이다.
1층에서 케이블카표를 사고 2층으로 케이블카를 타려고 올라가니 안내요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낭을 가지고 탑승할 수 없습니다." 하여 안내판을 자세히 들려다보니 등산용 배낭과 피켈(등산용지팡이)을 소지한 고객은 탑승이 불가하다고 적혀 있어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배낭에 술과 음식물을 가지고 올라가는 관광객이 있어서 제지를 한다고 한다.
두륜산케이블카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1.6km의 선로로 초속 3.6m의 속도로 편도 8분간 탈 수 있다.
캐이블카에 올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아름다운 두륜산의 단풍절경을 마음껏 느껴보려 하였으나 중간지점이 넘어서자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상단역사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약간 안개가 거처 흐릿하게 보이는 한반도지형을 유심히 살펴보고 285계단의 목재 산책로를 따라 10분정도 올라가 해발 638m의 두륜산 고계봉에 있는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안개로 영암 월출산, 광주 무등산, 완도, 진도를 볼 수 없어 너무나 아쉬웠다. 맑은 날씨에는 제주도 한라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두륜산 고계봉 정상에 올랐다.
고계봉에서 친구들과 사진촬영을 하고 계단을 내려와 케이블카를 타고 안개속에서 단풍구경을 하면서 하부역사로 내려와 다음 행선지인 대흥사로 향했다. 대흥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차를 세워두고 매표소에서부터 대흥사까지 걸어 올라갔다.
대흥사로 가는 길은 깔끔하게 포장된 도로로 약 40여분 동안 걸어간다. 꼬불꼬불 숲길을 따라 걸어가면 동백나무 전나무 편백나무 등이 터널을 이르고 오색 단풍이 조화롭게 어울려 아름다운 멋과 정취에 빠저 들게 한다.
아름다운 숲길의 지나다보면 대흥사 숲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고풍스런 멋을 풍기는 전통한옥인 유선관이 나온다.
유선관에서는 영화 서편제와 장군의 아들과 천년학을 촬영했던 장소이며 1박2일에서 연예인들의 익살스런 눈싸움과 푸짐한 음식상으로 화제가 됐던 곳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랴 우리 일행도 유선관 마루에 앉아 도토리묵과 파전에 막걸리 한잔씩을 마시면서 잠시나마 풍류를 즐겼다.
유선관을 지나 울창한 숲 아래 나둥그는 낙엽을 밟으며 걷다보면 피안교가 나온다. 피안교를 지나면 드디어 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 바로 앞에는 사찰의 수호신인 천하대장군과 금귀대장 장승이 서있다.
일주문을 조금 지나면 50여기의 부도와 14기의 탑비가 모셔져 있는 대흥사 부도밭이 나온다.
부도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이곳 부도밭에는 조선 중,·후기에 대흥사에서 활약했던 스님들로 풍담스님으로부터 초의스님에 이르기까지 서산대사 청허당을 비롯하여 풍담, 취여, 월저, 설봉, 연담, 초의 등 대흥사의 불법을 크게 일으킨 13분의 대종사 스님과 만화스님으로부터 범해스님에 이르기까지 만해, 연해, 영파, 운담, 벽담, 완호, 상월 등의 13분의 대강사 스님을 위시하여 고승들의 사리가 안치되여 있다.
부도밭을 지나 사찰을 향해 오르다 보면 해탈문이 나오는데 이곳 대흥사 해탈문에는 사천왕상이 없다.
그 이유는 북으로는 영암 월출산, 남으로는 송지 달마산, 동으로는 장흥 천관산, 서로는 화산 선은산이 대흥사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풍수적으로 완벽한 형국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지 않다고 한다.
해탈문을 지나 대흥사 경내에 당도하면 멋진 풍경을 간직한 두륜산과 대흥사의 구두가 아름답다.
대흥사 사찰 뒤편으로 펼쳐지는 산의 모양이 마치 부처가 누워 있는 형상이다. 이게 바로 비로자나 와불이라고 한다.
대흥사는 신라진흥왕 5년에 아도상이 지였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사찰로 대둔사와 대흥사로 불리었다가 근대 이후 대흥사로 정착되었다. 두륜산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이 곳 대흥사는 한국불교사 전체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도량으로서 특히 임진왜란 이후 서산대사의 의발이 전해지면서 조선불교의 중심 도량이 되었다.
대흥사는 절을 가로지르는 금당천을 중심으로 북원과 남원 그리고 별원으로 나뉘어저 있다.
북원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침계루가 있으며 남원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봉향각 가허루가 있고 별원에는 표충사 대광명전 성보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성보박물관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이름을 떨친 서산대사가 입적하기 전에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이곳 대흥사에 보관하라는 유언의 뜻에 따라 1978년에 서산대사 휴정의 유물전시관을 열고 서산대사의 비와 서산대사가 쓰던 금란가사, 발우(밥그룻), 칠보염주, 신발 ,승군단표지, 호패, 서산대사의 교지와 친서, 정조임금이 하사한 금병풍 등을 전시하고 있다.
대흥사 대웅보전 앞에서니 능허대에서 두륜봉까지의 능선이 그림 같고 나뭇잎들은 오색단풍 옷으로 갈아입어 암봉들은 마치 붉고 노란 양탄자위에 솟아있는 듯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대흥사의 중심법전인 대웅보전은 현종8년(1667)에 심수대사가 중건하였고 이 안에는 목조 삼존불이 봉안되어있다. 대웅보전에 걸려있는 현판은 조선후기 명필인 원교 이광사선생이 쓴 글씨이다.
대웅보전 앞 우측에 있는 백설당은 대흥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로 큰방으로 사용 하고 있다.
백설당에는 현판은 2개가 걸려 있는데 하나는 추사 김정희가 1840년 제주도로 귀양가다가 대흥사에 들려 쓴 무량수각 현판이며
또 하나는 구한말 명신으로 미불체를 구사한 해사 김성근이 쓴 백설당 현판이다.
대웅보전 동편에는 응진전이 있으며 안에는 석가여래삼존불을 중심으로 16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응진전 앞에는 보물320호인 응진전 삼층석탑 1기가 있으며 전하는 말로는 신라지장이 중국에서 가저온 석가여래의 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이라고 한다.
윤장대는 불교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회전하도록 만든 일종의 장격각으로 윤장대 신건불사에 동참하는 것은 불법승삼보증 법보를 모시는 큰 인연공덕을 쌓는 것이다. 일반인들도 윤장대를 돌리면 경전을 읽지 않아도 공덕을 쌓을 수 있으며 윤장대에 자신의 희망과 소망을 담은 발원문을 넣고 돌리면 발원이 성취되는 성물이다.
천불이란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승불교의 근본사상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천불전에 모셔진 삼존불은 목조로서 중앙에는 석가모니상 좌,우에는 문수, 보현 보살상이 모셔져 있고 주위에는 옥돌로 조각한 천개의 작은 불상들이 모셔저 있다. 천불전의 현판은 대흥사 대웅보전을 쓴 정조시기의 명필 원교 이광사가 쓴 것이다.
천불상은 경주 불석산에서 나오는 옥돌로 10명의 대흥사 스님들께서 6년에 걸쳐 만든 것으로 천불 모두가 서로 다른 형태의 모습을 간직하여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다.
천불은 경주에서 완성한 뒤 천불을 두 배에 나눠싣고 경주 장진포를 출발하여 해남 대흥사로 항해 하던 중 768개의 천불을 실은 배 한척이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일본의 축전 대도포에 당도하자 이 배를 발견한 일본인들이 기쁜 마음으로 서둘러 절을 짓고 불상을 봉안하려 했다 그러나 이 불상들이 축전 다도포 현감 꿈에 나타나 우리는 조선국 해남 대흥사로 가는 중이니 이곳에 봉안해서는 안된다고 여러번 현몽하여 이 불상들을 대흥사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옥불을 돌려 보내기 아쉬워 불상 밑에 日자를 새겨 보냈다고 일본 표해록에 기록 되여 전해지고 있다.
표충사는 정면 3칸의 맞배집으로 절에서는 보기드문 유교형식의 사당으로 조선현종10년(1669)건립된 대흥사의 대표적인 건물이다
조선정 12년(1778)에 임진왜란시 서산대가 8도16종 도총섭이 되여 유정, 처영과 함께 왜적을 물리친 큰 공을 기리기 위하여 정조대왕이 친히 사액을 내리고 직접 표충사라고 친필 현판 글까지 썼다. 이 사당에는 서산대사와 그의 제자 사명당 유정과 뇌묵당 허영의 영정을 봉안되어 있다.
대흥사 북미륵암 암벽에 조각된 마애여래좌상은 고려시대 조각의 특징을 보여주는 불상으로국보 308호로 지정 되여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초의선사는 동다송이란 우리나라 최초의 다서를 저술하고 당시 대흥사 주변의 유명한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와 교류하여 다도의 이론과 실제의 양면에서 한국 다도를 중흥시켰다. 또한 초의대사의 생애는 오로지 좌선하는 일에만 머물러 있지않고 일상생활에서 멋을찾고 불법을 구하려는데 노력하였다.
대웅보전 가는길목에 있는 연리근은 천년된 느티나무로 두나무 뿌리가 서로 만나 합쳐진 현상이다. 연리근은 두 몸이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연인의 사랑에 비유하여 일명 사랑나무라 부른다. 이곳 대흥사에 있는 연리근은 오른쪽은 양의 형태이며 왼쪽은 음의 형태로 남녀가 천년동안 사랑을 나누고 있는 듯하다.
연리근 앞에서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사랑의 소언이 성취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바라는(사랑 소망 승진 건강 화합 우정 합격 등)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대흥사의 천년의 역사를 알아보고 내려오는 길은 맑게 흘러내리는 계곡물 소리에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두륜산위에 온통 물감을 뿌린 듯 울긋불긋 예쁘게 물든 나무들의 향연에 우리일행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탄을 연발하였다.
두륜산 대흥사의 가을산행 !
가을과 잘 어울리는 사찰이라는 생각이 들어 정말 가보길 잘한 것 같아 돌아오는 발길이 가벼웠다.
이번 두륜산 대흥사 여행은 삶에 새로운 활력과 자신을 뒤 돌아 볼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갖게 해주었다.
즐겁고 행복한 가을여행이었다.
첫댓글 뽀얀 안개속에 형형색색의 단풍들이 그저 아름답기만 합니다. 역사공부도 많이 될것 같고요......
구경 잘 했습니다.... 이과장님!! 좋은 추억들 많이 만드시기 바랍니다.